태형은 지금 떼를 쓰고 있다.

태형은 어렸을 때부터 떼쟁이였다. 7살때까지만 해도 마트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마트 바닥에 누워서 엉엉 울며, 떼를 썼다. 엄마는 그런 태형을 절대 이기지 못하고 태형이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줬다. 태형은 우리집의 정말 막내다운 막내였다.

누구의 강요도 없었는데, 내 장난감은 태형에게 모두 양보했고 좋아하는 음식도 전부 태형에게 양보했다.

1살차이였지만, 태형은 나에게 늘 어린 애였으니깐.

그러던 태형이 떼를쓰지 않게 된건,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을때부터였다. 13살 때, 태형은 아픈 엄마를 곁에 두고 더이상 울면서 떼를 쓰지 않게 됐다. 태형은 큰 눈으로 눈물을 꾹 참고 아픈 엄마의 곁에서 병간호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뒤에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다. 다 자란 태형의 모습은 어쩐지 섭섭했기 때문이다.

내일은 내 생일이었다.

매년 내 생일 때면, 가족들과 함께 보냈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는 태형과 꼭 단둘이 생일을 보냈다. 아빠가 주신 돈으로 맛있는것을 사먹고, 나는 그 남은 돈으로 항상 태형의 옷을 사줬다. 얼굴만 보면 부잣집 막내아들같이 생긴 태형이 낡은 옷을 입는게 싫었고, 낡은 운동화를 신는 것도 싫었다. 태형은 그럴때마다 항상 이 담에 크면 꼭 돈을 많이 벌어서, 로 시작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그럴때마다 조용히 웃었다.

내일은 내 생일이다.

나는 내일 호석과 호석과 잘되가는 여자애와, 여자친구와 애버랜드를 갈 계획이었다. 태형은 그것을 알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단식투쟁을 한다. 먹성이 좋은 녀석이라, 고작해야 12시간이나 하겠지만. 태형의 이런 말도 안되는 떼는, 언젠가부턴 내게 너무 버거워졌다.


"태형아. 밥먹어."

"싫어. 안먹어."


아깐, 네가 어린애야? 라고 소리쳤다가 한바탕 했다. 태형은 어린애다. 키만 큰 철부지 어린애. 아직도 떼를 쓰면 저가 원하는대로 되는줄 안다. 나는 밥을 안먹는다는 태형의 말에 문을 닫는척하고 문틈새로 태형을 쳐다봤다. 태형은 내가 나가자마자 급히 이불을 내리고 숨이 막힌지 헥헥 거렸다. 바보.


"라볶이 해놨어. 먹어."

"싫어."


태형은 연습도 안간다. 왜 안가냐고 했더니 다 내 탓이란다. 나는 참지못하고 태형의 이불을 잡아당겼다. 태형은 얼마나 힘이 쎈지 꿈쩍도 안한다. 나는 힘이 들어 나가 떨어지고, 침대맡에 앉았다.


"왜 싫은지 이유나 들어보자."

"이제 여자친구가 더 소중한거지?"


나는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태형은 이불을 뒤집어 쓴채로 헥헥거리고 있다.


"이제 나같은건 신경도 안쓰이는거지?"
"..............."


태형은 숨이 막힌지 여전히 헥헥거린다. 나는 키가 커서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태형의 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애버랜드 갔다와서 생일파티 하면 되잖아."

"됐어. 안해."


가슴이 답답해졌다. 밥안먹어?, 내 말에 태형은 응, 하며 끙끙거린다. 


"어떻게 매년 생일을 같이 보내냐."

"나는 내 생일날에 매일 친구들 뿌리치고 형이랑 보냈거든?!"


태형은 드디어 못견디고, 이불을 내리고 큰 소리를 쳤다. 이불안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태형의 볼은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누가 그러래? 안 그래도 되는데.."

"나는 매년 생일날 형이랑 같이 보내고 싶어."


어떻게 그러냐... 나는 조용히 대꾸했다. 태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은 나 결혼하면 보지도 않겠네."

"............."


태형이 결혼을 한다. 나도 언젠간 결혼을 하겠지.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깐 여자친구가 더 소중한거겠지. 나랑은 결혼도 못하는데."


***


그 말에 난 뭐라고 받아쳤어야 했다. 맞아. 우리는 언젠간 떨어진다고. 그러니깐, 이젠 새삼스러운짓 그만 두자고. 

태형이 나와 생일을 같이 보내고 싶다한건, 내가 친형으로서 좋아서 그런다는것을 알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태형은 순수한 애니깐. 

만약 이번에도 태형때문에 약속을 취소하면 유나랑은 헤어지게 될것이다. 동생이 가지 말래서 못가. 이 얼마나 바보같은 변명인가. 우리 넷은 심지어 자고 오자고, 약속까지 했으므로 난 태형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가방에 짐을 싸고 있었다. 고작 하룻밤 자고 오는데도 짐이 많았다. 


".............."


옆방에서 태형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형은 울 때 정말 아기같이 운다.

눈물이 떨어지기 전부터 눈부분이 온통 붉어지고, 꼭 소리를 내서 운다. 아기같이. 나는 참지못하고 태형의 방문을 열었다. 태형은 내가 오자마자 또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난 한숨을 쉬면서 태형을 뒤에서 이불채 끌어안았다. 태형은 불편한지 꼼지락거렸다. 나보다 한참 더 큰 애기.


"미안해."

".............."


태형은 여전히 훌쩍거린다. 나는 계속 미안하다며 태형을 달랬다. 내가 미안하다고 할때마다 태형은 아기처럼 우는 소리를 더 크게 냈다. 태형은 몇분뒤 참지 못하고 현관으로 뛰어갔다.


"야. 너 어디가!"


태형은 맨발로 현관까지 달려가더니 운동화를 가져왔다. 흰 운동화.


"나 운동화 사줘!"

"어?"


나는 뜬끔없는 말에 태형을 올려다봤다. 태형은 눈물, 콧물 범벅에 바보같은 얼굴로 내게 따졌다.


"형, 변했어. 나 밑창봐바. 다 떨어질것같애. 근데 형은 돈받은걸로 친구들이랑 놀러가잖아. 전에같았으면 다 뿌리치고 나랑 있어주고.. 내 운동화도 사주고, 옷도 사줬을텐데."

"................."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태형을 바라보기만 했다. 태형은 씩씩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애버랜드 가지말고, 운동화 사주라고. 사줘!"

"너 진짜 어린애야?"


태형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이제 운동화고 팽개치고 엉엉 운다. 


"그 여자가 더 좋은거지?"

".............."

"나 이거 신고 연습 어떻게 하냐구!"


태형은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떼를 썼다. 나는 떼를 쓰는 태형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운동화를 쳐다봤다. 정말 많이 낡은 운동화. 뒤 밑창은 아예 닳게 생겼다. 


"운동화는..형이 나중에 사줄게."


태형은 저의 떼가 통하지 않는걸 알았는지 뾰족한 눈으로 나를 한참동안 째려보고,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문소리가 쾅 닫히자마자, 태형의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나는 듣지 않으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

나는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빠가 늦은 저녁에 집에 오고, 태형은 여전히 방에서 한발짝 나오지 않았다. 새벽 두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나는 현관으로 걸어가 태형의 운동화를 바라봤다. 현관등이 깜빡거렸다. 나는 다리를 쪼그려앉고, 생각했다.

내일 밥이라도 굶어서, 태형의 운동화를 사줘야겠다고.

나는 못난 형일까?

아니면, 태형을 뿌리치지 못하는 형일까.

그 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쓸쓸한 얼굴로 가방을 챙겼다.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왔을때도 태형은 여전히 방 안에 있었다. 나는 출발을 하기전 태형의 방을 두드렸다. 


"형, 간다."

"............."


내 말에도 태형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문을 두드리려다, 이내 포기하고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었다. 그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태형이었다. 태형의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태형은 현관까지 성큼 걸어왔다.


"형. 미안해."

"............."

"잘 갔다와."


내가 지금까지 본 얼굴중 가장 바보같고 못생긴 태형이 한순간에 빠르게 다가왔다. 내 볼에 입을 맞추고 태형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애버랜드는 전혀 재밌지 않았다. 나는 하루종일 정신을 빼먹고 다녔다. 심지어 지갑을 두번이나 잃어버려서, 하루종일 지갑만 두번을 찾고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몇번이나 들여다봤다.


[형. 미안해.]

[잘 갔다와.]


유나는 무슨일이 있냐고 물었고, 호석은 지민이가 무서운걸 못탄다고 변호해줬다. 사진을 찍을때도, 퍼레이드에도 나는 딴 생각을 했다. 태형의 운동화를 사줘야겠다고.. 배가 고픈데도,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계속 남은 돈을 생각했다. 내가 이기적인걸까. 아니면, 태형이 철부지 어린애인걸까. 아니면, 내가 뿌리치지 못하는걸까.

그래도 나는 유나가 말을 걸때마다 능숙하게 연기했다.

나 바이킹은 못타.

그렇게 말했더니 유나는 오히려 귀엽다며 내 옆에 꼭 붙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유나는 좋은 애다. 유나는 나 때문에 회전목마도 타줬다. 사진속의 우린 즐거워보였다. 여덟시가 되자, 우린 피곤하다며 이젠 일제히 숙소에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유나는 언젠가부터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연락기다리는 거 있어?"

"아니?"


호석은 하루종일 멍한 나에게 속닥거리며 물었다. 나는 아니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동생, 이라고 말하면 호석은 토하는 시늉을 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애버랜드를 빠져나와, 좀만 걸어가면 예약해놓은 숙소가 있었다. 나는 음료수 하나를 들고, 유나의 손을 꼭 잡은채로 걷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왔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지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세요."

[형. 나........]

"어. 태형아."


심장이 덜컹거렸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태형은 급히 속닥거렸다.


[형, 여기 지금..]

"어? 왜. 무슨 일 있어?"

[나 지금 집에 도둑이 든것같은데. 신고를 어디다...]


그 때 전화가 끊겼다.

나는 급하게 끊어지는 전화에 넋을 놓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

어딘지도 모르는데 택시를 탔다. 전화를 끊자마자 귀신이라도 본것같이 새하얗게 변한 내 얼굴에, 호석과 여자친구는 걱정을 해줬고 나는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았다. 용인역을 가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정신이 들자마자 아빠에게 바로 전화했다. 아빠는, 사업때문에 나보다 더 멀리 있었다. 나는 괜히 아빠에게 큰 소리로 성질을 냈다. 기차를 타는 중에 몇번이나 태형에게 전화했다. 태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경찰서에 까지 전화했다. 설마 잘 못 되면 어떡하지. 눈물이 비오듯 떨어졌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급하게 달려서 택시를 잡았다. 태형이 잘못되면 아마 나는 평생을 후회할것이다. 평생 죽고싶어 할것이고.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들어갔다. 계속 눈물이 나서, 비밀번호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문을 열자마자, 큰 소리로 울며 거실 불을 켰다.


"................."

"진짜 왔네?"


거실 탁자위엔 케이크가 있었고,

태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태형을 때렸다.



***


내가 때려놓고, 도리어 내가 울었다.

펑펑 울면서 태형의 위에서 주먹으로 훔씬 두들겨패고, 제풀에 힘이 들어 주저앉았다. 태형은 우는 나를 어찌할지 모르고, 큰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태형은 맞은데가 아프지도 않은지, 우는 나를 대신 일으켰다.


"이 개자식아!"


나는 일어서자마자, 다시 주저앉았다. 다리에선 계속 힘이 풀렸다. 태형은 나를 따라 바닥에 쪼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


태형은 입가가 찢어졌는지, 한손으로 입가를 문지르며 날 쳐다봤다. 난 크게 눈을 뜨고 태형의 터진 입술을 바라봤다. 


"미안해. 내가 왜 때렸지?"


다친 태형을 보니, 더 눈물이 나왔다.


"아니.아니. 내가 더 미안해.."


태형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형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태형은 숨을 들이마쉬고 내게 안겼다.


"진짜로..진짜로 전화 받자마자 뛰어왔어."

"..............."


목소리가 계속 떨렸다.

온 몸이 떨리서,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힘겹게 말을 했다. 계속 눈물이 났다.


"너 잘못 되는 줄 알고..."

"..............."

"형은 이제 너밖에 없는데... 나 너 어떻게 되면 어떻게 살지..생각하면서.."

".............."


태형은 대답대신 나를 꽉 끌어안았다. 태형은 내 품에서 조금 울었고, 나는 태형의 티셔츠가 온통 눈물범벅이 될정도로 오래, 오래 울었다.


"나는 진짜 이제 너 없으면 못 산단말야..."


내 말에, 날 꽉 껴안던 태형의 심장 소리가 더욱 커진건 내 착각이겠지.

아마.




슬로우모션을 다시 한번

회색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