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아직은 서늘한 봄밤이었을 것이다. 

차창밖으로 어스름한 달무리가 보였고 그 사이를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았으니.

성우는 차창밖으로 차갑지만 따뜻한 그 기묘한 광경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애수에 잠겼다. 

어느 순간 노란머리가 다가와 시선을 집어삼켰다.


“뭐보노.”


다니엘이었다. 


“벚꽃.”

“벚꽃?”


다니엘은 뒤를 돌아 창밖을 확인했다. 한강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가 어느새 몸을 흔들며 제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꽃잎들을 덜어내고 있었다. 바람이 휘익 불며 순간 벚꽃들이 공중으로 하늘하늘 낙하했다. 자동차의 유리창으로도 흩날리던 벚꽃잎이 살짝살짝 몸을 뉘였다. 


“옛날에 너 처음 봤을때도 벚꽃잎 같다 생각했는데.”

“언제?”

“처음 프듀 나올때. 너 그때 분홍머리였잖아.”


다니엘은 “아 그때.”라며 어색하게 뒷통수를 긁적였다. “그땐 천지도 모르고 그냥 튀어보이려고..” 다니엘은 머쓱하게 변명하며 해사하게 웃었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앉은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나 그때부터 너 좋아했던거 같아.”

“뭐라카노. 언제는 겟어글리때 부터래매.”

“아냐.그때부터 너가 눈에 들어왔던거 같아.”


다니엘은 쑥스럽게 웃으며 가만히 성우의 볼에 손을 올렸다. 성우는 그런 다니엘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다시 4월이 되었다. 프로듀스101 시즌2가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이후로 두번째 봄이었다. 

그 동안 성우와 다니엘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워너원 활동이 끝나고 워너원은 각자의 소속사로 돌아갔다. 멤버, 팬, 음악.. 모든 것이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을 감내하고 시작한 것이었기에 묵묵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Mmo로 돌아간 윤지성과 다니엘은 잔뜩 홍역을 겪었다. 원래는 다른 멤버를 섞어 같은 Mmo 그룹으로 나오기로 한 둘이었지만, 윤지성은 더이상 병역의 의무를 미룰 수 없어 결국 군대로 끌려갔고 소속사는 홀로 남은 다니엘의 거취를 고심하다 결국 솔로로 내보내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지금, 다니엘은 몇주 뒤에 있을 첫번째 솔로 컴백을 위해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우 역시 판타지오로 돌아갔다. 끝까지 다른 기획사로 이적할까 고심했지만 결국 성우는 배우활동을 주력으로 하며 아이돌로서의 활동을 노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성우의 다양한 끼와 연기적 재능을 알아본 각종 영화계와 뮤지컬계에서 러브콜이 이어졌고 성우는 7월에 방영예정인 <열여덟> 의 남자주인공 역에 발탁되어 연기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생긴 벅찬 스케줄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둘이었지만 다니엘과 성우는 틈나는대로 꼬박꼬박 만났다. 거기에는 성우가 차를 산 덕도 컸다. 워너원활동과 광고촬영의 정산금 덕분에 막판에 성우는 나름대로 수중에 적지 않은 돈을 쥘 수 있게 되었고 금전적 숨통이 트이자 바로 그토록 소원하던 ‘마이카’를 구매했다. 첫차로 몇날몇일을 고민하던 성우는 결국 파란색 BMW 미니쿠퍼를 구매했다. 출시된지 다소 오래되고 차체가 작은 편이었지만 이정도면 끌고 나가기에도 부끄럽지 않았고 다니엘과 단 둘이 데이트를 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자가차를 구입했을때 성우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토록 소원하던 ‘엄마 집바꿔드리기’와 ‘내 차사기’라는 인생목표가 달성되자 성우는 더할나위없다는 듯 행복하게 웃었다. 


그리고 봄이 되자 다니엘과 벚꽃데이트를 하러 차를 몰고 나섰다. 목적지는 한강이었다. 한강 대로변에서 차를 세워놓고 함께 차안에서 벚꽃을 보며 맥주마시기. 그것은 성우의 소소한 낭만 중 하나로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다니엘은 “일본여행가서 벚꽃보는거 아니었나”라며 갱잉히 웃었고 성우는 “꿩대신 닭”이라며 한강벚꽃데이트를 적극 추천했다. 그리고 다니엘의 연습이 끝나자 늦은 밤이었지만 성우는 다니엘의 소속사까지 차를 몰고가 다니엘을 픽업하고 한강으로 달렸다. ‘Kool&the gang’의 ‘celebration’을 들으며 한창 신나게 따라부르면서 향하니 어쩐지 작년 워너원고 가평드라이브가 생각나 가슴안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때는 다니엘과 이렇게까지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


사람들 눈에 띄지않는 한적하고 으슥한 한강변에 차를 세우고 성우는 창밖에 하늘거리는 벚꽃잎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까만 밤하늘에 찰랑이는 흰색 벚꽃잎은 마치 작년 겨울 뉴욕에서 봤던 고운 싸라기 눈같았다. 


“예쁘다..”


성우는 낮게 감탄했다. 다니엘 역시 그런 성우의 얼굴을 보며 장난스레 감탄했다.


“형이 더 예쁘다.”


닭살스런 다니엘의 멘트에 성우는 낮게 그르렁 웃었다. 뭐야. 오글오글. 

진심이었다. 사실 봄에 벚꽃을 보는것 같은 낭만적인 취미에는 그닥 관심없는 다니엘이었다. 오로지 성우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데이트랄 할 수 있다는것.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다니엘은 물끄러미 성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워너원 활동이 끝나자 성우는 기묘하게 더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워너원 활동을 하며 힘들게 수행해야 했던 벅찬 스케줄과 안무연습이 끝나자 성우는 드디어 얼굴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연습만 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보기 좋게 볼에 살도 붙었고 퀭하던 눈은 생기를 찾았다. 거기에 워너원에서의 스타일링 경험 덕에 성우 역시 어떤 머리를 하고 어떤 메이크업을 해야 자신이 돋보이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성우는 머리를 포마드로 완벽히 넘긴 상태였다. 훤히 이마를 드러내니 서양인같은 옆얼굴이 더욱 강조되었다. 보기좋게 튀어나온 이마 밑으로 그리스 조각처럼 오똑한 코가 솟아있었고 살짝 뾰족한 입술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턱은 살짝 각져 둥그렇고 큰 귀와 대조를 이루며 묘하게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시원한 하늘색 셔츠를 입은 성우는 그 어느때보다 청량했고 화사했다.


“어. 내가 선물 준 시계 찼네.”


마침내 다니엘의 시선이 성우의 손목에 닿았다. 가느다란 손목에 하얀색 샤넬시계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우는 쑥스러운 듯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계속 아끼는게 더 아까울거 같아가지궁.. 오늘은 좀 차구 와봤어.”

“잘했다 형아. 안그래도 그거 안차고 다녀서 내가 다 아까웠다 아이가.”


성우는 눈이 휘어저라 다니엘에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성우는 스윽 손등을 다니엘에게 내밀었다. 은은한 벚꽃향이 새어나왔다. 


“나 오늘도 향수 뿌렸다? 니가 준 조말론 향수.”


다니엘은 픽 웃었다.


“그거 쓰레기통에 버리네 어쩌네 했는데 잘 뿌리고 다니네.”

“응. 봄이라서 잘 어울려가주구....”

“여름에도 뿌리고 다니고 가을에도 뿌리고 다니고 겨울에도 뿌리고 다녀라.”

“아까워.”

“다 쓰면 또 사줄게.”


성우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고 큭큭 웃었다. 가끔 성우는 전혀 엉뚱한데서 다니엘의 말에 터지곤 했다. 그럴때마다 다니엘은 영문을 몰랐지만 그래도 성우가 웃으니 저도 좋아 따라 웃었다. 


“손 줘봐라.”

“응?”


성우는 선선히 손을 내밀었다. 다니엘은 눈을 감고 성우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수줍은 벚꽃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창밖에 흩날리는 벚꽃이 성우의 손목에 묻어있는것 같았다. 다니엘은 다시 성우의 손목에 키스하고, 손등에 키스했다. 그리고 손가락에 가만히 입을 맞대었다. 다니엘은 가만히 눈을 떴다. 눈앞에는 성우가 얼굴이 벌게진채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성우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성우에게로 다가갔다. 성우의 긴 속눈썹이 다니엘의 눈가에 닿았다. 다니엘은 눈을 꾸욱 눌러 감은 성우의 눈가에 입을 맞추고,  오똑하고 동그란 콧날에 입맞추고, 다시 천천히 내려와 인중에 입을 맞댔다. 그리고 천천히 그 아래로 더 내려왔다. 성우는 팔을 들어 다니엘의 노란 뒷통수를 감싸안으며 조심스럽게 그를 받아들였다. 다니엘의 입술에 성우가 어린아이처럼 매달렸고 다니엘은 그런 성우의 입술을 어르고 달래며 농밀하게 헤집었다. 


크리스마스의 첫 키스 이후 키스 횟수는 놀라울만큼 많아졌다. ‘안좋으면 어떡하지’ ‘징그럽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고 웅얼거렸던 성우의 걱정이 무색하게, 성우와 다니엘은 미치도록 좋았다. 시간이 날때마다, 단둘이 있으면 무조건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입술을 맞대는것만으로 서로의 가슴속 저 깊은 진심을 알수 있는것 같았다. 키스를 할때면 그들을 감싼 모든 시간은 멈췄고 바람 역시 숨죽였으며 생각 역시 정지했다. 그저 그의 입술과 혀, 치열을 느끼는것만으로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혀천장을 핥을때 가릉대는 성우의 키스버릇, 다른사람보다 유난히 뾰족한 송곳니, 혀를 감쌀때마다 움찔움찔 놀라는  행동.. 키스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알수 있었다. 그것은 나만 아는 것으로 묘한 소유욕을 충족시켰다. 


한참의 농밀한 키스를 마친 후 성우는 달뜬 한숨을 몰아쉬며 다니엘의 입술에서 숨을 떼었다. 이마까지 또렷하게 하얗던 그 얼굴은 어느새 홍조로 가득채워져 있었고 하늘색 티셔츠 사이로 살풋살풋 보이는 쇄골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다니엘은 그 순간 참지 못해 다시 성우의 입술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웁..웁..”


성우가 야트막한 신음소리를 내뱉자 다니엘은 한손으로 성우의 양 손을 결박한 후 한손으론 운전석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 능숙하게 성우가 앉은 좌석을 제꼈다. 갑작스럽게 젖혀진 의자에 성우가 당황한듯 달뜬 얼굴로 다니엘을 바라보자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입술이 성우의 목으로 향했다. 톡 튀어나온 목젖 부분을 핥고 목덜미를 살짝 깨물며 키스하자 그는 다시 옅은 신음을 흘린다. 



“아..니엘아...아..”



결국 참을 수 없어 다니엘은 성우의 하늘색 셔츠로 손을 파고들었다. 수컷의 본능이었다. 다니엘의 서늘한 손이 제 허리에 닿자 성우는 깜짝 놀라 다니엘을 밀쳤다.





“야!!!! 뭐하는거야!!!!”





성우의 큰소리에 다니엘은 깜짝 놀라 성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우는 말려 올라간 하늘색 셔츠를 다급하게 정돈하며 다니엘의 등을 찰싹 때렸다. 





“뭔짓이야 이 변태야!!!”

“............”





다니엘은 황당한 듯 몸을 일으켜 성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미 성우의 얼굴은 첫날밤에 보쌈이라도 당한 처녀마냥 당혹스러움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 어......”



다니엘은 할말을 찾지 못했다. 변태라 변태..아니 키스하다가 셔츠로 손들어간건 지극히 당연한 남성의 본능 아닌가요. 저 형도 그걸 모를리 없을텐데.... 

다니엘은 얼척없는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형.. 안해봤나.”

“뭘 안해 뭘.”

“섹스.”


다니엘의 노골적인 단어에 성우는 다시 피가 얼굴로 몰린듯 귀끝까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니엘의 입에서 그런 단어를 들으니 저로서도 퍽 부끄러운 눈치다.


“...해..해봤지.”


당연히 해봤을거라 생각했지만 진짜 해봤다는 대답에 어쩐지 가슴한켠이 뻑적지근했다. 다니엘은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왜그러는데.”

“...........”


성우는 차마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완깐’의 이국적이고 도시적인 미남이 당황함에 10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힌 모습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한참 대답거리를 찾던 성우는 하늘색 셔츠를 다시금 정돈하며 어렵게 입을 떼었다. 


“몰라.. 너랑은 안돼..”

“왜 안되는데.”

“몰라...무서워..”


이미 울것 같은 표정의 성우였다. 결국 다니엘은 한숨을 내쉬며 성우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좋다고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릴땐 언제고 지금 와서 저 지랄이고.

성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눕혀진 운전석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냥 플라토닉도 좋은거 같아.”

“.............플라토니익?”

“응. 뭐 그냥 키스만..?”

"................."


"............."

“.........형 지금 니 내랑 장난하나..”





다니엘은 입을 쩌억 벌린 채 성우의 뻔뻔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정신이가 저 형. 지금 플라토닉이라 했나. 지금 수컷본능의 절정을 치닫고 있는 혈기왕성한 20대 청년 앞에서 플라토닉??

다니엘은 뒷목이 저려왔다. 뻐근해져오는 뒷목에 손을 댄채 다니엘은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공기가 다니엘의 얼굴을 스치며 비로소 다니엘은 제정신을 찾았다. 


플라토닉..플라토닉...플라토닉이라.. 

근래에 들었던 단어중에 가장 충격적인 단어였다. 다니엘은 묵묵히 그 말도안되는 단어를 곱씹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큰 난관이었다.




***




“.......그 뒤로 어떻게 됐어?”

“뭐 어째긴 어째요. 그냥 그대로 아무말 없이 둘다 삐져서는 성우형은 내 집에 델다주고, 성우형은 그대로 차타고 집에 가버리고.. 완전 엉망됐죠.”


“파하하하하하”


황민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쭈욱 들이키며 파하하 웃었다. 너무나 다니엘답고 성우다운 결말이었다. 그 하얀 얼굴에서 눈꼬리까지 휘어저라 웃다가 눈물까지 맺혔다. 


“뭐가 웃겨요.”


다니엘은 기분이 안좋은 듯 추욱 귀를 늘어트리며 속이 탄다는 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왕창 들이켰다. 쌀쌀해지기 시작한 9월의 가을날씨였지만 속에서는 뜨거운 용암이 치솟아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얼척없는 일이었다. 전대미문의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여자친구를 많이 사겨보긴 했지만 이렇게 초장부터 ‘혼전순결’..아니 혼전도 아닌 완벽한 ‘순결’을 요구하는 애인은 없었기에 다니엘은 애가 탔다. 그렇게 혼자 끙끙거리길 5개월. 그 날 이후 다니엘과 성우는 다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5개월째 성우의 털끝하나 건드리지를 못하고 있었다. 5개월째 금욕에 지친 다니엘은 결국 하소연할 곳을 찾다 그나마 자신들의 사정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황민현을 불러냈다. 다니엘이 플레디스 앞까지 찾아가 연락을 하니 민현은 뉴이스트 신곡 연습을 중단하고 선선히 나와 다니엘의 면담에 응해주었다. 고마운 형이었다. 


“아니..너네가 그런 고민을 한다는게 너무 웃겨서... 내가 알던 애들이 맞나 해서.”


민현은 웃겨 죽겠다는 듯 눈물까지 닦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다니엘은 쭈욱 입을 내밀었다. 기껏 상담하러 왔는데 비웃음이나 당할줄이야. 민현은 다시금 놀랍다는 듯 둘의 사귄날을 헤어려보더니 그 찢어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 지금 사귀고 9개월째 키스만해?"

".....네.."


다시 민현은 빵 터지며 박수를 쳤다. 누구보다 한마리 늑대같은 다니엘이 성우의 앞에서는 그저 순한 양일 뿐이었다.   

"아이고 다니엘 고생많았네." 위로인지 비아냥인지 한참이나 웃어대던 민현은 마침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고 잠시 생각에 잠기며 성우의 심정을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무섭다..무섭다라. 뭐가 무서운걸까. 성우는.”

“내말이요. 만날천날 그 형은 무섭대요. 뭐가 그리 겁이 많은지 사내가..”

“사내라서 무서운거 아냐?”


의외의 정곡을 찌르는 민현의 발언에 다니엘은 우뚝 굳었다. 

민현은 차분한 표정으로 찬찬히 성우를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로 다니엘에게 속삭였다. 


“내가 듣기론 성우도 남자를 사겨본 경험이 없는데..맞지?”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럴수도 있지. 처음 남자를 사겨봤으니 뭘 알겠어. 모르니까 무서운거야.” 

“.......”


민현은 다니엘의 잠잠한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처음 사귀었으니 키스하는 법도 모를테고, 또 그 이상의 스킨쉽을 하는것도 모르겠지.”

“..........”


다시 성우는 다니엘만 듣게 작게 숨을 죽여 말했다.


“그리고 또 무섭긴 할꺼야. 남자끼리 어떻게 섹스하지. 혹시 했다가 별로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지금 성우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껄.”

“.........”


듣고보니 민현의 말도 어느정도 일리 있었다. 분명 성우는 그 간단한 키스조차 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었더란다. 그때가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크리스마스 이브였길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키스의 ‘키’자도 못꺼낼뻔 했더란다.


“우째요..”


다니엘은 울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민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남자를 사귀어본적이 없기에 뾰족한 답을 낼수 없는건 매한가지였다.


“어쩌겠어. 그냥 기다려줘야지. 성우가 준비가 될때까지.”

“언제 준비가 되는데요.”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너무나 당연한 민현의 대답에 다니엘은 카페 테이블에 푸욱 엎드렸다. 이렇게까지 남자와의 연애가 힘들줄은 몰랐더란다. 다른것보다 잠자리를 거부하는 남자애인이라니. 세상에이것만큼 더 가혹한 형벌이 더 있을까. 


민현은 그런 다니엘이 안타까운듯 어깨를 툭툭 치더니 이내 다른 조언을 던져본다.


“뭐 저번처럼 뭘 걸어보던가.”

“뭘요.”

“내가봤을땐 타이밍 문제야. 어짜피 하게될건데 그 구실이 중요한거지.”

“.........”

“저번에는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로 뽀뽀를 걸었다면서. 이번에도 뭐 다른 이벤트로 그런걸 걸어봐.”


다니엘은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게 뭔데요.”

“나야 모르지. 니 생일이든..” 

“제 생일 12월인데요.”

“아니면 100일이든..”

“100일 지났어요.”

“............”


민현은 더이상 어쩔수 없다는 듯 눈을 깜박였고 다니엘은 다시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와앙 울었다. 최악이야. 왜 엄마는 나를 12월에 낳아서.. 왜 100일은 그딴 고작 소소한 레스토랑 파티로 지나가서... 


한참 멘탈이 나가 있는 다니엘을 붙잡은건 민현의 싱글거리는 질문이었다.


“니엘아 근데.. 나 이런거 물어봐도 돼?”

“네..”


민현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니엘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았고 다니엘은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대체 뭘 물어보려고 하는거지 이형.

민현은 조심히 다니엘의 귓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남들이 들리지 않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성우랑 키스하면 좋아? 여자랑 키스할때랑 뭐가 달라?”


순간 다니엘의 얼굴이 벌게졌다. 여자랑 비교했을때 뭐가 좋냐라.... 다니엘은 벌게진 얼굴을 수습하며 민현의 귀에 속삭였다.


“그..여자랑 할때보다 좋아요.”

“아 정말 왜?”

“그...그... 좀 더 딱딱하달까..... 여자는 키스하면 그냥 물컹하고 부드러운데.. 성우형은 키스할때 그 입술이나 혀나 혀천장이나..더 딱딱하고 단단해서... 뭐랄까..”

“......”


이제 다니엘의 얼굴은 최고수위로 부풀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톡 하면 터져버릴것처럼. 할말을 요리조리 굴리던 다니엘은 이윽고 그 촉감을 표현할 정확한 말을 찾았는지 민현의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였다.


“그... 더 꼴려요...”

"아항.."


그제서야 민현은 알았다는 듯 음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더 휘어저라 올라갔다. 아 변태여우. 

잠시뒤 민현은 다른 뉴이스트 멤버들의 카톡을 받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9월 컴백이지? 곧 나오겠네? 우리랑 겹치지말자. 컴백 화이팅!”

“아..고마워요.형.”


민현은 해맑은 표정으로 다니엘에게 화이팅을 외쳤고 다니엘 역시 그런 민현에게 고마워하며 황민현을 배웅했다. 


황민현의 응원에 문득 현실이 덜컥 다가왔다. 난데없는 성우의 순결선언때문에 그간 경황이 없었지만 분명 다니엘은 일주일 뒤 두번째 솔로 컴백을 앞두고 있었다. 4월에 나왔던 첫번째 솔로는 예상보다 반응이 뜻드미지근했다. 다니엘의 인기가 식기전에 내보내야한다는 소속사의 다급함때문에 제대로 좋은 곡을 준비하여 내보내지 못한 탓이었다. 첫번째 앨범이 워너원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니 여기저기서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벌써 거품이 빠진거냐, 워너원으로서의 강다니엘이었지 솔로로는 역부족이었지않느냐, 가뜩이나 저조한 성과에 가슴아파 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다니엘을 흠씬 두드리는 기사들에 다니엘은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래서 두번째 컴백 역시 생각보다 늦어지게 되었다. 생각치 못하게 길어진 컴백기간의 텀에 팬들은 소속사에 성명서까지 보내며 다니엘의 컴백을 촉구하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무서웠다. 혹여 이번에도 그 기대가 충족치 못하면 틀림없이 그 기대는 날선 비난의 화살로 돌아올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배짱 좋은 다니엘이었지만 첫번째 솔로 컴백을 그렇게 아쉽게 접고 나니 두번째 컴백은 그저 두렵고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솔로는 완벽히 접어야할수도-

다니엘은 쓸쓸히 카페를 나섰다.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성우 하나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두번재 컴백생각을 하니 명치께가 체한듯 답답해졌다. 이번 컴백은 칼을 갈고 나와야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치 못한 묘안을 발견했다.


이번 컴백에 목숨을 걸만한 또다른 미끼를. 




***




“뭐? 컴백 1위하면 소원들어주기?”


초가을의 차안이었다. 날이 약간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운데 평소에 열이 많던 다니엘은 뭐가 그리 더운지 성우 차에 타자마자 에어컨을 틀었고 몸이 찬 편인 성우는 자신은 춥다며 에어컨 바람을 다니엘에게로 돌렸다. 그 날도 어김없이 성우는 연습을 마친 다니엘을 차로 데리러 왔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던 중이었다. 가을이니까 전어 먹을래?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전어. 전어 콜. 평소와 같이 시덥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던 둘이었다. 그러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일주일뒤에 있을 다니엘의 두번째 컴백 이야기로 흘러갔고, 컴백준비 과정의 부담감을 토로하던 다니엘이 성우에게 덥썩 저런 제안을 해버렸다. 


다니엘은 장난감을 물어온 강아지처럼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이번에 1위하면 소원들어주기. 그렇게나 어렵지 않은 주문이었다. 그 소원이 뭔지 성우는 아마 까맣게 모를것이고, 컴백 1위를 위해서라면 저정도쯤은 애인이 애교로 받아줄수 있는 사안이니까. 

성우는 운전대를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역시나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좋아. 그 정도쯤은 당연히 해줘야징. 컴백 1위인데..”


다니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 다니엘 역시 컴백 1위를 달성할수 있을거란 확신이 있는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컴백텀과 지난 앨범의 아쉬움으로 팬들이 하나둘씩 이탈해나가기 시작했고 화제성 역시 예전같지 않았다. 자신이 듣기에는 좋은 곡이었지만 이 곡이 과연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을지도 의문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컴백기간에 대형아이돌의 컴백이 겹치면 그대로 순위권에서 밀리는게 눈에 선했다. 모든 상황들이 예측불허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위공약을 ‘소원들어주기’로 잡은 것은 떡본김에 제사지내자는 속셈이었다. 이렇게까지 공약을 걸어버리면 자신 역시 1위를 향해 미친듯이 노력하게 될 것이고, 만약 1위를 달성한다면 성우에게 당당히 ‘소원’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1위를 한다면 그것대로 좋고, 성우가 소원을 들어준다면 더할나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힌 묘안이었다. 


다니엘은 슬그머니 미소지었다. 이런 다니엘의 검은 흑막을 눈치 채지 못한 듯 성우는 그저 다니엘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라 웃었고 운전대를 음식점쪽으로 틀었다. 반팔 사이로 비죽 나온 성우의 하얀 팔이 눈에 보였다. 다니엘은 성우의 얇고 가는 손가락부터 마른 근육이 선연한 팔, 톡 튀어나온 쇄골, 섹시한 목젖, 그리고 얇은 입술까지를 찬찬히 흝으며 저도 모르게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원래 가질수 없는 것이 더욱 애탄 법이었다.


“대신 내 소원도 들어줘.”


성우는 장난스럽게 빙글거렸다. 다니엘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무슨 소원?”


성우는 잠시 곰곰히 생각하더니 스스로도 웃긴지 짧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킬킬 웃었다. 그리고 핸들을 꺾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1위하면 카메라 앞에 대구 나를 향해 찡긋 윙크해주기.”

“뭐꼬 그게.”

“왜 아이돌들 연애할때 막 카메라에 대고 비밀 신호 보내고 그러잖아.”


다니엘은 그런 깜찍한 발상을 하는 성우가 귀여워 낮게 웃었다. 지금 자신은 어떻게든 본인을 넘어트리지 못해 이러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저런 귀여운 소원을 빌다니.. 한편으로는 다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참 신나 떠들던 성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좀 그런가? 너무 연애하는거 티나려나?팬들한테 좀 미안한가?”


매사에 팬들을 생각하는 신중한 성우였다. 


"윙크정도면 괜찮제. 뭐 형한테만 하는것도 아니고.." 


"진짜진짜?" 성우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다니엘을 바라보았고 다니엘은 자신만 믿으라는 표정으로 팡팡 가슴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소원쯤이야 백번은 더 들어줄수 있다 형. 형이야말로 나중에 딴소리하지마라." 


성우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니엘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얘기에 신나하는 성우를 빤히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아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한번 동침하려고 이런 고난을...  


갑자기 때아닌 '현타'가 물밀듯 밀려왔다. 이럴때 밀려오는 '현자타임'이 아닌데 엉뚱한데서 밀려오니 다니엘은 속이 쓰렸다. 

성우와의 연애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너무나 어려웠다. 



***


컴백은 순조로웠다. 티저가 공개되며 소속사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인원이 폭주했고 티저만으로 유투브와 네이버캐스트의 상위권 순위를 점령했다. 호조였다. 오랫동안 기다렸던만큼 팬들의 화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팬들은 돈을 모아 지하철 광고판에 다니엘의 컴백을 홍보했고 티저만으로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 실시간으로 오르내렸다. 두번째 컴백에 그들은 칼을 갈았다. 첫번째 컴백처럼 우야무야 소속사와 갈등을 빚다 끝내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Mv와 음원이 풀리며 다니엘의 순위는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빠른 미디움 템포의 힙합곡은 다니엘의 저음 목소리톤에 맞게 잘 뽑힌 상태였고 중간에 다니엘의 춤을 돋보일 수 있는 댄스 브레이크 구간을 삽입해 볼거리 역시 높였다. 대중의 반응 역시 나쁘지 않았다. “첫번째 솔로곡보다 낫다” “의외로 노래를 잘 부른다” "다니엘과 어울리는 노래를 골랐다"는 호평이 이어졌고, 첫번째 컴백에서는 날선 비난기사를 내보내던 언론에서도 금새 태도를 바꿔 ‘비를 이을만한 남자 솔로 댄스가수 유망주 탄생’ 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팬들은 그 기사에 달려가 화력을 보탰고 다니엘을 다룬 기사만 연달아 순위권을 점령하는 기현상 역시 벌어졌다. 막강한 팬덤과 잘 뽑힌 대중성 있는 노래가 결합하니 화제성은 엄청났다. 연달아 다니엘의 두번째 컴백성공을 알리는 보도들이 네이버 메인을 장식했다. 

결국 다니엘은 첫 컴백주부터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모두들 예견했던 바였지만 1위 트로피를 거머쥔 다니엘의 기쁨은 상상 이상이었다. 다니엘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흩날리는 폭죽 밑에서 컴백소감을 이야기했다.


“어...일단 두번째 컴백인데 이렇게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구요.. 어.. 그리고 5개월만의 컴백이었는데 잊지 않고 저를 기다려주시고 사랑해주신 팬들..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Mmo 소속사 식구분들, 매니저형, 스타일리스트 누나들, 실장님...우리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방송을 보고 응원하고 있을 우리 워너원 멤버들! 사랑합니다!”


좌석을 가득 메운 다니엘 팬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그의 입에서 워너원 멤버들의 이름이 나오니 반가운 기색이다. 다니엘 역시 그런 팬들을 향해 씨익 웃어주며 1위 앵콜무대를 준비했다. 1위발표와 엠씨의 정리멘트가 끝난고 다니엘의 신곡이 울려퍼졌다. 다니엘은 연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감사합니다!”를 외쳤고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의 성공적 귀환을 축하하였다.

다니엘은 팬들에게 너무나 고마웠다.반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 그의 의리있는 팬들이었다. 다니엘의 컴백이 늦어진다 싶을때 사정없이 소속사에 피드백요구와 성명서를 보내 컴백을 촉구했고, 자신과 관련된 기사와 사진에 몰려가 장문의 댓글을 쓰고 밤낮없이 스트리밍을 돌려주는 이들이었다. 아마 그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다니엘은 절대 없었을 것이리라. 다니엘은 팬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다정히 인사했다. 다니엘의 슬로건을 든 이들은 다니엘의 인사에 열정적으로 환호했으며 다니엘은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마침내 카메라가 앵콜장면을 잡으며 다니엘에게로 다가왔다. 다니엘은 그 순간 성우가 떠올랐다. 


-1위하면 카메라 앞에 대구 나를 향해 찡긋 윙크해주기.


다니엘은 부끄러운듯 웃으며 카메라 앞에 다가가 한쪽눈을 살짝 찡긋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것을 목격했다. 다니엘은 제가 해놓고도 우스워 푸흐 웃어보였다.  


학수고대하던 컴백에 1위 트로피를 거머쥔것도 기뻤지만, 성우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수상을 자랑할 수 있는 사실이 무척 뿌듯했다. 현재 가수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성우 역시 틀림없이 자신이 탄것처럼 몹시 기뻐하리라. 다니엘은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빨리 이 트로피를 들고 성우에게 가서 자랑하고 싶었고 그에게 칭찬받고 싶었다. 그리고 1위공약으로 내건 소원 역시 이루고 싶었다. 역시, 이 공약으로 걸길 잘했어.

앵콜곡이 끝나고 다니엘은 팬들을 향해 하나하나 인사하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는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 소속사 대표님이 와 있었고 다들 다니엘의 1위를 축하하며 꽃다발을 건넸다. 다니엘 역시 해사하게 그들에게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했고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성우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온 것이다. 다니엘은 헤벌쭉 웃으며 구석으로 가 성우의 전화를 받았다. 

작은 모니터에 성우의 잘생긴 얼굴이 꽉 찼다. 다니엘이 전화를 받자마자 성우는 제가 다 기쁜듯 소리를 지른다. 


"다니엘!!"

"흐헤. 형아 내 1위했다~"

"응응!! 봤어봤어!!! 생방송으로 봤지!!"


성우는 제가 1위라도 한것처럼 방방뛰며 박수를 쳤고 다니엘은 그런 성우가 귀여워 입이 귀에걸리도록 웃었다. 다니엘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구석으로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그 봤나. 그 형아 소원."

"......어...봤어. 흐흐. 나도 이제 니 소원 들어줄게."


성우는 키득키득 웃었다. 성우가 소리죽여 웃는것만으로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다니엘은 내친김에 물었다.


"형 오늘 뭐하나."

"응.. 드라마 촬영 밤에 끝날것 같아가지궁.. 왜?

"오늘 밤에 보자."

"그래~좋아~ 1위 슈퍼스타님의 데이트신청인데 당연하지."


다니엘은 흐흐 웃었다. 성우의 입에서 낯간지러운 칭찬이 나오니 다니엘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럼 니엘 안뇽~"

"응. 촬영 잘해라. 뿅!"

"뿅!"


애교섞인 성우와의 전화가 끝나고 다니엘은 신나서 높게 점프하며 방방 뛰어다녔다. 흥이 오르면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그였다. 옆에서 스타일리스트 누나는 행여 옷이 상할까봐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오늘 밤에 성우와 함께 있을수 있다는것만으로 머릿속이 꽉 찬 그였기 때문이다. 

두번째 솔로곡으로 1위를 한것만으로 세상의 모든 소원은 다 이룬것 같았는데, 성우까지 마지막 한 소원을 이루어준다하니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다니엘이었다. 젤리 한통을 혼자 다 먹는다 해도 이보다 달콤하지 않을것 같았고 피터와 루니가 자신의 얼굴에 털을 부벼와도 이보다 보드랍진 않을것 같았다. 모든 우주의 햇살이 다니엘을 향해 따사롭게 내리쬐는 기분. 그 절정의 기분을 맞이하며 다니엘은 9월의 컴백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기분좋은 시작이었다.  

 

***


홍대 근처에서 mmo소속사 식구들과 소고기 회식을 끝내고 다니엘은 성우가 데리러왔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거하게 취한 소속사 사장님이 조금만 더 있으라 다니엘을 붙잡았지만 다니엘은 오늘 하루종일 신경썼더니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쪽에 눈에 익은 파란색 미니쿠퍼가 보였다. 서늘하면서도 귀여운게 묘하게 성우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반가운듯 손을 흔들며 차안으로 탑승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셔츠를 멀끔히 차려 입고 머리를 반만 위로 넘긴 성우가 환하게 웃으며 다니엘을 맞았다. 


"왔어? 다니엘 1위 축하해~"


성우는 차 뒤에서 슬금슬금 화려한 프리지아와 안개꽃이 장식된 꽃다발을 건넸다. 다정하고 섬세한 연인이었다. 프리지아의 달콤한 향이 차안을 금새 가득 메웠다. 다니엘은 성우의 진심이 담긴 꽃다발을 받고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오늘 받았던 꽃다발 중에 가장 아름답고 풍성한 꽃다발이었다. 


"어디 갈까."


성우는 백미러를 보며 주차장에서 차를 빼며 물었다. 주차권을 물고 뒤를 보며 후진을 하는 성우는 묘하게 섹시했다. 튀어나온 목젖이 선연한 하얀 셔츠 사이로 쇄골이 언뜻언뜻 보일때마다 다니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음식점 주차장에서 나온 성우는 정처없이 차를 몰기 시작했다. 창문을 여니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 성우는 다니엘과 밤드라이브만 즐겨도 행복한듯 싶었다. 빨간불에 멈추자 성우는 음악이라도 틀어볼까 하며 계기판을 조정하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무심히 물었다. 


"아참. 소원이 뭐야. 나 그게 궁금해가주구..."

"아...."


다니엘은 꿀꺽 침을 삼켰다. 가장 바래왔던 순간이었지만 정작 성우가 저렇게 순진한 표정으로 묻자 숨이 턱 막혔다. 기껏 요리조리 머리를 써가며 공약을 걸고 밤낮으로 무대를 준비하며 거머쥔 1위였지만, 정작 1위가 되고 성우가 소원을 묻자 다니엘은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햐얘졌다. 그리고 대체 어떤 말로 이 검은 욕망을 전할지 고뇌했다. 


아씨 뭐라카나.. 이 대사까진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다니엘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1위할 생각에만 들떠있었지 정작 그 소원은 어떻게 말할지 전혀 생각해놓지 않던 그였다. 한참 다니엘을 의문스럽게 바라보던 성우는 저장해둔 플레이리스트를 틀으며 무심히 묻기 시작한다.

 

"밥사줘?"

"아니..."

"그럼 술사줘?"

"....아니.."

"그럼 옷?"

"그런 사주는거 아이다."


성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다니엘을 빤히 바라보았다. 성우의 시선을 느끼고 다니엘은 홱 고개를 돌렸다. 귀끝까지 뻑적지근하게 차오른 열감이 느껴졌다. 


"그럼 뭔데?"

".....음.........."


그 순간 다니엘은 온갖 대사를 머릿속에서 그려가기 시작했다.

섹스하자? 형이랑 자고싶다? 오늘밤 내랑 같이 있자?  

아무리 그럴싸한 대사를 점잖게 그려내도 아무것도 모르고 나온 성우를 당혹스럽게 하기는 매한가지일것 같았다.




그리고 귀끝까지 벌게진 다니엘을 보며 성우는 순간 성우는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키스까지 밖에 안한 상대연인이 제 앞에서 소원 운운하며 얼굴이 빨개지고 몸을 배배 꼬으면 그 의중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수 있으리라. 

성우는 그런 다니엘을 한참 바라보다 혹시나 싶어 살짝 떠보았다. 혹시..혹시..니가 말하는 소원이...










"......호텔?"

".................................................."







다니엘은 당황한듯 입을 쩌억 벌리며 성우를 바라보았다. 이미 얼굴은 귀를 넘어 정수리까지 벌겋게 물든지 오래였고 성우의 발언에 뭐라 할말을 찾지 못해 어버버 변명을 해보려 했지만 차마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성우는 그런 다니엘을 바라보며 제 생각이 맞았음을 직감했다. 


당혹스럽기는 성우도 매한가지였다. 소원이라고 했을때 막연히 여행이나 선물같은 소원을 떠올렸던 성우였다. 혹시나 다니엘이 그런 소원을 빌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요새는 하도 잠잠하여 다니엘 역시 그런쪽으로는 별 생각이 없는 줄 알았더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실은 다니엘은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머릿속으로 꽉 차 있었고 1위공약을 그것으로 내걸만큼 상당히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었다. 


성우는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사실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성우 역시 남자였기에 성적 욕망이 얼마나 삶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도 알고 있었고 자신보다 더 활동적이고 남성적인 다니엘이 그 부분을 얼마나 갈구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성우를 좋아했을때 아랫도리부터 반응했던 다니엘이었다. 그렇게 동물적 반응이 자신보다 강한 그였으니 지금쯤 얼마나 몸이 달았을런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문제는 성우 자신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성우는 두려웠다. 키스야 사실 다니엘과 한 번 해보니 좋아 계속 서로를 탐했지만 그게 섹스와는 별개의 문제라 생각했다. 키스가 단순히 입만 맞추는 것이라면, 섹스는 서로의 몸을 보는것이었다. 지금까지 완벽한 스트레이트로 살았던 다니엘이 나의 몸을 본다라. 완연히 남자로서의 특징이 살아있는 나의 몸을 본다라..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했다. 자신과 같은 것이 달려 있는 나의 신체를 보았을때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머릿속으로는 다 상상하고 있지만 실제 눈앞에 두면 징그럽고 혐오스러워 도망가지 않을까? 다니엘이 자신에게 실망해 떠나가는것. 사실 이것이 성우가 가장 두려워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성우는 이 문제가 드러날때마다 자꾸 다니엘을 피했고 무시했다. 저번에는 싫다며 밀치기까지 했더란다. 마음에도 없는 플라토닉을 운운했을때 다니엘의 서운한 표정이 눈앞을 스쳤지만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성우 역시 눈을 감는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잘 알았다. 어짜피 이 문제는 한번쯤은 맞닥트려야 하는 문제였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언제까지나 두려워 도망갈 수 없었다. 


성우는 벌게진 얼굴로 어쩔줄 몰라 끙끙대는 다니엘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첫 1위라는 다시 못올 순간의 소원을 그것으로 내걸만큼, 다니엘에게 있어 섹스는 자신과의 연애에 있어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만약 이 문제가 끝끝내 해결되지 못하면 언젠가 이별을 맞게 되리라는 것은 성우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연인 사이에 섹스는 정말 중요한 문제니까. 


자신의 몸을 보고 혐오스러워 헤어지던, 아니면 섹스가 해결되지 못해 헤어지던, 어짜피 헤어질 것이라면 한번 시도라도 해보고 헤어지는게 나았다. 그것이 나중에 덜 후회하는 길일것 같았다. 


마침내 생각이 정리된 성우는 한숨을 내쉬며 내뱉듯 중얼거렸다. 


"........알았어."

"???????"


다니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성우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질색팔색하며 싫어했을것 같은 성우였다. 어떻게 남자끼리 호텔을 가냐고, 자신은 플라토닉 러브라며 바락바락 대노할 성우의 표정이 선연히 그려졌는데, 저 얌전한 얼굴로 순순히 알았다고 내뱉는 성우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진짜가.."

"싫어?"

"아..아니!! 당연히 안 싫제!!!"


다니엘은 당황한 나머지 손을 파닥거리며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하도 요란스럽게 손을 흔드니 품안에 든 안개꽃 찌끄러기가 차안에 정신없이 흩날렸다.  


"...그..그럼 어디로 가지..."


쿵쾅쿵쾅. 

호텔을 찾는 다니엘의 손이 벌벌 떨렸다. 이렇게나 선선히 통과될줄 몰랐는데 예상 밖의 결과에 다니엘 역시 당황한 기색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첫...첫 섹스장소.. 음........  

네이버에 쳐볼까하다가 너무 바보같아 그만두었다. 이 나이되도록 제대로 된 호텔 하나 모르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런데 그냥 호텔도 아니고 성우와의 첫 호텔이니 더욱 더 신중해야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미리 예약하고 올껄..

머릿속에 온갖 고급호텔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얏트..포시즌..쉐라톤....신라.. 해외투어를 하며 유명 체인호텔에 묵어본적은 있어도 한번도 그곳을 첫날밤 장소로 생각해본적이 없었기에 다니엘은 머릿속이 아득했다.


어떡하지..어떡하지..어디서 자지.. 


제가 먼저 권해놓고 막상 대안을 내놓지 못하니 다니엘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러다 더 시간이 흐르면 성우가 다시 마음을 바꿔먹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룬 소원인데.. 절대 그럴수는 없었다. 다니엘은 더욱 맹렬하고 심각하게 호텔을 찾기 시작했고 성우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차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다니엘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고 그나마 원하던 호텔이 만석이 뜨자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여기 갈래?"


그 숨막히는 정적을 깬건 성우였다. 한참 마포 인근을 돌며 다니엘이 호텔 찾는것을 기다리던 성우는 홍은동 언덕 위에 자리잡은 그랜드힐튼서울 호텔을 발견했다. 


"...네?"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간만에 존잿말을 내뱉었다. 성우와 사귀고 왠만해서는 존댓말을 쓰지 않는 그였지만 어쩐지 지금 순간만큼은 존댓말을 써야할것 같았더란다. 성우는 슬슬 호텔이 있는 언덕으로 차를 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나름 이름있는 호텔이면서 사람도 별로 없어가지궁.. 연예인들도 많이 온대." 

"누가 그래요?"

"옛날에 판타지오 나병준 대표님이 지나가면서.."


백프로 확실한 업계정보였다. 다니엘은 호텔을 찾고 있던 분주한 손을 우뚝 멈추고 성우와 함께 호텔전경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야경이 아름다운 호텔이었다. 적당히 고상하면서 품격도 갖추고 있었고 다른 강남이나 광화문의 호텔처럼 외국인들로 북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얼굴을 가리고 입장하면서 예기치 않은 첫날밤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가장 최적의 호텔이엇다. 


".... 좋네요.."


한편으로 다니엘은 아쉽고 미안했다. 제가 성우에게 먼저 그런 제안을 했으면 당연히 호텔같은건 제가 먼저 알아보고 예약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무생각없이 턱 소원이라 싸질러 놓고 성우에게 호텔을 찾게 했으니 다니엘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성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호텔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발렛파킹 직원이 다가왔고 성우와 다니엘은 서둘러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차에서 내리며 키를 맡겼다. 호텔입구에서 다니엘은 성우를 제지하며 말했다. 


"형.저 먼저 갈게요."

"아.."

"형 한 20분뒤에 와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연예인이 되고 연애를 하면 이렇게 호텔 앞에서 007작전을 펼치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대상이 다니엘일줄은 꿈에도 상상못했더란다. 다니엘은 성우를 입구에 세워두고 프론트로 향했다. 사실 다니엘이 앞서간 따로 이유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호텔비였다. 성우가 먼저 호텔을 찾은만큼 적어도 호텔비 만큼은 자신이 계산하고 싶었다. 그것이 다니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성우를 향한 자신의 작은 배려였다. 성우와의 첫날밤인만큼 다니엘은 가장 비싼 Executive 스위트룸을 잡았다. 


호텔의 룸번호는 1312호. 13층의 끝에 있는 객실이었다. 다니엘은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서둘러 객실로 향했다. 마침내 객실에 도착해 문을 닫고 키를 꽂자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와 억수로 넓네.."


객실구조는 넓은 거실이 딸려 있는 방으로 되어 있었다. 마치 실제 사는 집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었다. 거실에는 TV, 쇼파, 작업테이블, 티테이블등이 놓여있었고 방에는 킹사이즈 침대가 분위기 있는 노란색 조명을 발하며 빛나고 있었다. 화장실은 모두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방금 닦아놓은것처럼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다니엘은 스위트룸에 묵어본적이 한번도 없었더란다. 해외투어를 가더라도 멤버들과 함께 써야했기에 고급형 스탠다드 객실에 머무르곤 했고 예전에 여자친구를 사겼을 시절에도 돈이 없어 늘 저렴한 모텔행이었다. 그런 다니엘에게 있어서 고급 체인호텔의 스위트룸은 성공과 부의 상징이었다. 


"부산촌놈 억수로 출세했네."


다니엘은 중얼거리며 성우에게 객실번호를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화장실부터 옷장, 메이크업 룸까지 한참 방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리던 찰나,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성우였다.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성우 역시 어색한 표정으로 객실로 들어왔다. 방의 규모에 놀라워하기는 성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이런곳은 처음 와본다며 아이처럼 좋아했고 다니엘처럼 호텔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화려함에 감탄을 표했다. 잠시 뒤 성우는 여기 비싸지 않았냐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다니엘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오늘 1위했으니 특별히 쏘는거다." 다니엘의 귀여운 허세에 성우는 그제서야 씨익 미소지어보였다. 드디어 마주하는 성우의 해맑은 미소에 다니엘은 왠지 모르게 안심했다.




"............."

"..........."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무려 거실까지 있는 드넓은 스위트룸에 두명이 덩그러니 킹사이즈 침대에 앉아 있으려니 미친듯한 어색함이 몰려왔다. 다니엘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제가 덥썩 성우를 여기까지 끌고와놓고선 대책이 없는건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결국 최후에는 누구나 할법한 식상한 한마디를 내뱉어버렸다.


".... 나 먼저..씨..씻는다."

"....어? 어.."


성우 역시 얼굴이 새빨개진채 시선 둘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는 중이다. 성우 역시 용기를 내 이곳까지 발을 내딛었지만 그 역시 어쩔줄 모르겠는건 마찬가지였다. 한참 다니엘의 씻는 소리를 듣자니 머릿속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아 괜히 온다 그랬나.

괜히 하자그랬나.

말도안되는 용기를 갑자기 내버려선..


갑자기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여기까지 전진해 온 이상 도망칠 수 있는 퇴로는 없었다. 마침내 다니엘이 샤워를 마치고 밑에 수건만 두른채 욕실 밖을 나왔다. 뽀얗고 탄탄한 그의 상반신을 그대로 마주하자 성우는 당황했다. 옛날에 같이 살았을때야 늘 마주하던 그의 알몸이었는데 이렇게 사귀게 된 후로는 처음 보는 그의 몸이었다. 오랜만의 컴백으로 몸을 만드느라 열심히 운동했다더니, 곳곳에 잔근육이 탄탄하게 배어있는게 딱 보기 좋았다. 


다니엘이 방에 들어오고 성우 역시 곧장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마쳤다. 샤워가운을 걸치면서 성우는 이것도 어짜피 벗겨질건데 왜 입지 싶었지만 그래도 역시 부끄러우니 입는게 낫다고 생각하며 보송한 샤워가운의 허리끈을 단단히 종여매었다. 

성우는 조심스레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다니엘이 앉아있는 침대로 향했다. 다니엘은 침대에 바싹 얼어 멀거니 앉아있었다. 성우는 조심스레 그 옆에 앉았다. 사실 여기까지는 해외투어때 호텔생활과 별 다를바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다니엘이 먼저 씻었고, 성우가 이어 씻었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곤 했는데..  오늘은 분명 '무언가'를 더 해야했다.


다시 드넓은 스위트룸에 숨막힐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아무리 인적없는게 장점인 호텔이라지만 너무나 쥐죽은듯 고요했다. 심지어 옆에서 성우가 침을 꿀꺽이는 소리조차 생생히 들렸다. 


아-정말 어떡하지- 최악이다- 




"......."

"......."




다니엘은 미칠것 같았다. 도저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잡혔다. 그때 차안에서 키스를 했을때는 키스의 달뜬 분위기에 바로 다음 스킨십으로 넘어가고 싶었더란다. 그때야 한창 농염한 키스로 이미 몸이 달아오른 터였고, 아랫도리 역시 빳빳하게 위로 섰으니까. 헌데 지금처럼 정작 방까지 잡고 샤워까지 마치고 수건까지 맨 멀쩡한 정신으로는 도무지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전 여자친구들은 제가 먼저 "니엘아~"하고 안기며 애무로 넘어갔을텐데, 옹성우 역시 남자와 이런 경우가 처음인건 마찬가지라 목석처럼 빳빳하게 굳어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기껏 비싼 Executive 스위트룸까지 잡고 앉아 이렇게 서로 멍하니 천장만 보다 집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뭐라도 해야했다. 




"......형.."




목소리가 갈라져나왔다. 성우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옆을 돌아보았다. 지금 이 순간 둘은 누구보다 가까워질 채비를 마쳤지만, 심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멀었다. 






"..그...그.." 





다니엘이 부끄러운 듯 땅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성우 역시 다니엘의 심정이 백번 이해갔다. 지금 자신 역시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저.. 뽀뽀해도되나."






"................어?..어?"






다시 드넓은 호텔방안에 숨막힐것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그 고요함의 색을 밝히자면 가을에 무르익은 단풍잎과 같은 새빨간 붉은색이었으리라.









***




분량상 24-1과 24-2 로 끊어 연재합니다.. :) (거기 꼬옥 쥐신 돌 내려놓으세요..ㅋㅋ)

내일 24-2가 발행됩니다. 정말정말정말 별거아닌 수위지만 그래도 양심상.. 성인글로 돌리려 하는데..혹시 성인물을 못보시는 분이나 청소년분이 계시면 답글이나 메세지 주시면 청소년물(편집본)으로도 올려놓겠습니다.

늘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럼 내일 밤 9시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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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편집본에는 24-2가 바로 발행됩니다..ㅋㅋㅋ 다음글을 확인해주세요  




RPS 기반/ 소설을 쓰고 만화를 그립니다. https://twitter.com/gomchu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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