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솔(@silverpinetree)님과 함께한 썰을 기반으로 한 소설입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 금수강산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얼레벌레 마무리:)


부엉이는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날아가는 자신을 뒤따라 오는 맹수들의 살기가 날개깃을 떨리게 했다. 특히 흑표범은 눈빛으로 산을 불태울 것처럼 금안이 흉흉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흑표와 불곰 그리고 곰의 등에 매달린 채 가고 있는 노란 고양이는 잔가지에 스쳐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다. 드디어 독수리 둥지가 있는 산에 도착하자 흑표는 빠르게 자신의 토끼 형 냄새를 쫓았다.


“둥지는 이 산 가장 저 소나무가 있는 절벽에 있어. 내 안내는 여기까지야.”

“고마워요. 나중에 보답할게요.”


부엉이는 지쳐서 아무 나무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런 부엉이는 안중에도 없고 가벼운 인사만 날리고 빠르게 소나무가 있는 절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부엉이는 방금까지 맹수들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 여기 독수리들 씨가 마를지도 모르겠군….”


덩치가 큰 우림이 달리자 주변 잔나무들이 힘 없이 쓰러져 길을 만들었다. 형호는 우림의 뒤에 달리며 두훈의 냄새를 계속 쫓았다. 그때 하늘에서 독수리의 힘찬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맹수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경고했다. 형호는 그런 독수리를 보며 이를 갈았다.


“저 새대가리가….”


형호는 당장이라도 저 독수리를 잡고 싶었지만 너무 높이 있어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이를 갈며 둥지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


두훈은 스르륵 눈을 떴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따가웠다. 차갑게 부는 바람이 몸을 더 떨리게 만들었다. 독수리에게 잡힌 이후로 정신을 잃어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볏짚과 깃털, 그리고 알 몇 개가 있는 것을 보아 독수리 둥지라는 것을 유추할 뿐이었다. 


“머리야…. 얼른 여기서 나가야겠다.”


두훈은 독수리가 자신을 바로 먹지 않음에 감사하며 조심히 둥지를 빠져나갔다. 나무 위가 아닌 절벽 바위 사이에 있는 둥지 덕에 두훈은 천천히 발을 내디뎌 내려갈 수 있었다. 옆구리의 긁힌 상처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동생들이 걱정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때 저 멀리 독수리의 경고음이 들렸다. 그리고 자신의 둥지로 빠르게 날아오는 독수리를 보며 두훈은 속도를 냈다. 발을 다급히 내딛다 굴러 떨어졌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달렸다. 온몸이 꼬질꼬질 해졌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또 잡히면 그때는 정말 잡아먹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독수리는 도망가는 흰 토끼를 발견하고 바로 노선을 바꿨다. 독수리는 너무 많이 굶주렸고, 간신히 잡은 먹이를 놓칠 수는 없었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이 다시 두훈을 노렸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발톱에 두훈은 몸이 굳어버렸다. 이대로 잡힌다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비명이 절벽 전체에 퍼졌다.


*


“… 어라?”


자신을 향한 발톱이 오지 않음에 이상함을 느낀 두훈은 눈을 슬며시 떴다. 그리고 눈앞에 보인 건 독수리의 목덜미를 낚아채 바닥에 패대기쳐버린 흑표범이었다. 독수리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바닥에 내려쳐지면서 꺾인 날개 때문에 제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흑표범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독수리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누가 봐도 위협스러운 이빨로 독수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독수리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하늘의 제왕은 바닥에 추락했다. 입이 피범벅이 된 흑표범은 다급히 자신의 형을 찾았다. 다행히 두훈은 우림의 손에 올라가 있었다.


“형!”

“형호야….”


뒤늦게 자신의 모습을 인지한 형호는 그루밍하면서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우림의 곁으로 다가가 두훈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오들오들 떨면서 우림의 손 위에 있는 두훈은 피 때문에 털이 말라 붙어있었고 흙먼지가 가득해 꼬질꼬질 해져 있었다. 우림도 얼굴이 눈물범벅이었고, 우림의 등에서 다급히 내려온 민규는 엉엉 울면서 두훈을 그루밍해주고 있었다.


“으아앙, 난 형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형 이제 괜찮아 민규야.”

“진짜 괜찮아요?”

“응응, 진짜야.”


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두훈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동생들을 달래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사라져 버렸다. 긴장이 풀린 두훈은 그렇게 우림의 손바닥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동생들이 큰 소리로 두훈을 불렀지만 그 목소리는 두훈에게 닿지 않았다.


*


두훈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눈앞 모든 것이 어두컴컴했다. 두훈은 순간 자신이 눈이 멀었거나 아무것도 있지 않은 죽음의 세계에 왔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눈앞의 어둠이 동생 형호의 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드러운 털의 감각과 쌕쌕 들리는 숨소리가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너무 오래 잔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찌뿌둥한 몸을 움직이자 형호가 움찔하면서 잠에서 깼다.


“아이고, 너 자는 거 깨워버렸구나.”

“형?”

“더 자도 돼.”

“… 몸은 이제 괜찮아요?”

“응, 아프지 않은 것 같아. 개운해. 나 오래 잤어?”

“…응.”


대답을 한 형호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두훈은 그루밍해주면서 형호를 달랬다. 형호 말로는 꼬박 사흘을 잠들어있었다고 했다. 두훈은 그 말에 깜짝 놀랐지만 우는 형호를 달래느라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놀랐을 동생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형호를 달래고 있으니 동굴 바깥에서 약초를 가득 들고 들어온 민규와 우림이랑 눈이 마주쳤다. 동생들은 일어난 두훈을 보자 약초를 바닥에 던지고 달려왔다.


“형아! 다시는 혼자 다니지 마!”

“어떻게 혼자 안다녀.”

“무조건 우리 데리고 돌아다니라구!”

“형 안 일어나는 줄 알고 마음 졸였어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 우림아.”


아닌 밤 중에 동굴에서는 눈물 파티가 났다. 맹수들은 동그랗게 옹기종기 모여 하얗고 작은 토끼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토끼는 난감하다는 듯 동생들을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두훈은 일주일간 외출금지를 당했고, 한 달은 동생들 중 하나를 동행해야 나갈 수 있었다. 두훈은 난감했지만 동생들의 마음을 알기에 얌전히 따랐다. 덕분에 흑표범과 고양이, 불곰이 초식동물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되어 초식동물들은 한동안 그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난감해진 두훈은 주변 동료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했다. 


*


날씨 좋은 산골짜기, 이곳은 평범한 짐승과 영험하고 신비로운 힘을 가진 영물들이 뒤엉켜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이곳에는 보기 힘든 광경을 볼 수 있는데, 흰 토끼와 흑표범, 노란 고양이, 불곰이 같이 사는 동굴이었다. 이 네 마리의 영물들은 서로를 잡아먹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가끔 투닥투닥 싸우곤 했지만 보통은 평화로운 네 마리는 서로가 소중한 가족이었다. 주변 영물들은 괴기한 풍경이라며 웅성거렸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다.


먼 훗날 인간들은 이 괴기하고 신비로운 곳을 금수강산(禽獸江山)이라 하였다.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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