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에 인터뷰를 읽었다. 타이틀은 <보육원 출신들을 채용…칼 버리고 꽃을 품었습니다>. 트윗과 함께 링크가 첨부돼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눈물 대신 옛 기억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경솔하게도 아주 꼬꼬마 시절 차라리 부모 또는 모부에게 버려진 아이였으면 했다. 


정말로 보호자 중 하나에게 버려졌다는 사실 (또 다른 보호자에게 버려질 뻔했다는 사실도), 자매는 기억 못 하지만 나는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점, 크면서 수없이 그 장면을 복기하며 느낀 고통이라는 한 갈래. 

양가 중 한쪽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동안 끊임없이 들어왔던 폭력적인 상황 및 나를 향한 감정적인 폭력들,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치 보며 커온 시간, 보호자 역할을 못 하는 부를 대신해 조모가 뒷바라지한 세월이 또 한 갈래. 

유치원-초등학교-교회까지 모두 한통속인 마냥 앞에서는 쉬쉬하고 동정하면서 뒤에서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음흉한 어른들, 이혼 가정이라는 편견으로 곱게 보지 않을뿐더러 대놓고 따돌리던 또래들, 따스함보다는 테두리 밖으로 배제된다는 느낌만 차곡차곡 쌓였던 학교의 행정까지 한 갈래. 


자라나며 나는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더 자주 접하고 움츠리며 살 수밖에 없었다. 자아효능감은 무슨, 내 존재를 부정한 순간이 더 많았다. 내가 없었다면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는 우울함이라는 구름이 잔뜩 낀 상태로 연명해온 셈이다.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도 왕따를 당했고, 그러면서도 소수의 친구과 절친했지만 부러 관계를 파탄 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이 선을 넘으면 넌 실격이야 하는 내 안의 신호등이 아주 엄격했고 파란불보다는 빨간불인 시간이 길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내보여야 하는 순간이면 그렇게 밀어냈고 나는 스스로를 동굴로 몰아붙였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괜찮은 체, 해맑은 척 굴었다. 


대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관계가 파탄 난 이후, 한 선배가 학생서비스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해줬다. 나를 내보이면 버림받을 거라는 의심, 불신,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먼저 선을 긋거나 상대를 밀어내는 방어기제란 걸 상담받으며 알았다. 근시일의 관계가 파탄 나서 힘든 줄로 알았건만, 역사가 길었다. 5주간은 거의 매번 울었다. 고이고 고인 슬픔과 아픔은 일순간 증발하지 않았다. 그즈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은 동네를 돌아다녔다. 교회에 간다고 나와서는 한 곳씩 둘러보고 돌아가곤 했다. 유치원, 살았던 이층집, 초등학교 등굣길, 자주 놀았던 놀이터 등등. 언젠가는 유치원 원장님께 물어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땠었냐고, 나의 보호자들은 어떻게 헤어졌냐고. 


뿌리 깊은 갈망은 모를 만나면 꼭 듣고 싶은 말들이었다. 왜 버렸느냐고, 그 폭력에 시달리며 얼마나 힘들었느냐고(나와 자매를 버리고 갈 만큼 힘들었느냐고), 지금은 잘살고 있느냐고. 대학생 때 우연찮은 기회로 만날 자리가 생겼다. 쿨해진 건지 쿨한 듯 군 건지 몰라도 부가 중간다리를 놔줬다. 모와 만나서 나와 자매는 식당에 들어갔고, 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터미널 부근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어리광 부리려야 그럴 깜냥이 못 되는 나와 기억을 못 해 생판 남으로 여긴 자매, 새 가정을 꾸려 잘 지내는 듯 보이는 모. 그때 처음으로 모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보게 됐다. 딸로서는 괜히 만났다 싶은 씁쓸함이 가득했지만, 여성으로서는 잘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혼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이 있고, 삶은 길다는 걸 살아내며 보여주고 있단 게 고마울 만큼. 


인터뷰 말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ㅡ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아직도 보고 싶으세요.

"부모님이 저를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렸다고 믿고 싶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저를 찾아서 알아보실 거라고."


나도 모를 만나기 전에는 꼭 한 번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몇 번은 그 마음이 너무 커지니까 아니, 보고 싶지 않다고 나를 속이기도 했다. 막상 만나보고 나니, 염원한 만큼 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생각이 그쪽으로 고이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싶다. 그건 트라우마이고 어쩌면 알아도 승화되지 않는 짐일 테니까. 나는 이로써 가정 꾸리기를 애당초 바라지 않게 되었다. 전보다 유연해졌을지언정 비혼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당시에는 이상한 생각이었는데 요즘은 시류가 되어 재밌다고 생각하는 요즘. 



Boxed in Boxed in 나 혼자의 세계

이러다가 나 홀로 남을 거야 I don't know what to do 이거 말고는

I don't wanna be alone No 잊혀지기 싫어


애매하고 모호한 삶 사이를 헤집어 사람을 기록으로 남겨요. 프리랜서 인터뷰어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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