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맡는 산 공기가 맑다. 숙소 바로 뒤에 산을 끼고 있으니 창문만 열어도 산 냄새가 방을 꽉 채우긴 하지만 단순히 밀도가 높은 나무의 냄새와 산 정상의 가볍고 맑은 공기는 비교할 것이 못 된다.

 

"내려갈 땐 기록 안 잴 거니까 무리하지 말고 각자 페이스 맞춰라. 해산!"

"고생하셨습니다!"

 

감독이 먼저 지름길로 내려갔다. 여름의 초입에도 불구하고 산 정상은 선선하다. 시원한 바람이 뛰어 올라오느라 흘린 땀을 식혀줬다. 은호는 땀에 젖은 머리를 털며 정석 코스대로 하산하는 선수들의 뒤를 따랐다. 오늘 저녁 뭐랬더라. 세계가 분명 말해줬는데.

 

"야, 정은호."

"어?"

"잠깐 얘기 좀."

 

빡세게 뛰고 나면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단순히 저녁 메뉴를 생각하던 은호의 어깨를 툭 치는 성진의 표정이 제법 심각했다.

걷는 속도를 늦춰 다른 선수들과 거리를 벌린 성진이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민구름 요즘 운동해?"

"걔가 어떻게 운동을 해, 재활 다니지."

 

이제 성진의 표정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굳었다. 민구름이 반깁스로 바꾼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다. 구름은 요즘도 퇴원 직후의 루틴대로 재활과 경기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룸메이트인 은호가 보기엔 그랬다. 그러니 벌써 '민구름'이랑 '운동'이 나란히 나오면 안 된다. 그 누구의 입에서도.

찌르르, 찌르르. 산벌레 울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뜬금없는 질문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설명이 나와야 할 텐데 박성진이 너무 조용하다. 은호가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 노력하며 물었다.

 

"그건 왜?"

"아까 나 등산 직전에 잠깐 화장실 다녀오려고 빠졌는데 일 층 화장실이 공사 중이길래 이 층으로 올라갔거든."

"근데."

"이 층 짐에서 누가 런닝 뛰길래 잠깐 봤는데 민구름이더라."

 

정은호가 알기로 민구름은 오늘도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운동하기엔 불편할 것 같은 외출복을 입고,

 

"근데 속도가 단순히 몸 푸는 게 아니라 아예 그냥 본격적으로 운동하고 있던데."

 

단순히 재활 가기엔 부피가 큰 더플백을 메고.

 

"근데 그래도 돼? 몸 괜찮대? 뭐 삐끗하기라도 하면 진짜 안 좋을 거 같은데. 너도 몰랐으면 감독님도 모르시나? 아씨, 새끼가 허락도 안 받고 뛰는 거야? 네가 앉혀 놓고 말 좀 잘 해봐."

"…알았어, 땡큐."

 

성진도 설마하니 은호까지 모를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걱정이 길어졌다. 아무렴 정은호만 하겠냐마는. 어떻게 산을 내려가서 밥을 먹고 씻었는지 모르겠다. 그때까지 민구름은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이층 짐에 있다고 들었으니 직접 잡으러 갈 수도 있었지만 은호는 그냥 방에서 구름을 기다렸다. 민구름이 뛰는 걸 직접 보면 후회할 짓을 할 것 같아서였다.

선수들이 다 씻고 각자의 방에서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구름이 돌아왔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보송한 얼굴로 나가기 전과 같은 외출복을 입고서.

 

"다녀왔습니다."

"어디 갔다 왔어?"

"물치 받고 왔죠."

"……."

"오늘 병원에 유난히 사람이 많아서 좀 늦었어요. 밥은 밖에서 먹었-"

"구름아."

"……."

"어디 갔다 왔어?"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5,154 공백 제외
5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