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라는 건, 여자아이들이나 챙기는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중학생 때의 쿠로코라면, 발렌타인 같은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농구가 중요했고, 농구 외에는 보고 있는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발렌타인 데이에 쿠로코 테츠야는 긴장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초콜렛을 샀다. 그리고 직접 포장도 했다. 세이린의 모두가 봤다면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로 진지했다. 이걸 받아줄 사람을 생각하면 행복해졌다. 사귀기 시작하고 반년, 아직 제대로 마음의 표현을 주고받지 못해서 늘 아쉬웠는데, 이번 발렌타인 데이를 핑계로 확실하게 해둘 생각에 심장이 떨렸다.
약속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표정으로는 분명 잘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쿠로코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되어 들뜬 것을 감추는 게 어려웠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제 연인은 아니나 다를까 먼저 도착한 것인지 그 주변의 다른 사람들 머리 위로 얼굴이 보였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쿠로코. 놀래키지 말라는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놀랐다면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렸나요?”

“별로… 나도 막 도착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약간은 부끄러운 듯이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모습에 쿠로코는 살랑살랑, 분홍빛 바람이 제 가슴을 간질이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그의 모습을 보면 그랬다. 중학교 시절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간지러움이, 애정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에 올라온 이후의 일이었다.
그의 파트너라 불리는 타카오와 함께 있는 그를 본 이후, 잠들 수 없었다. 분명 그와 타카오의 플레이는 굉장히 보기 좋았고, 멋졌다. 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이겼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듯 대변인의 위치를 자처하는 타카오와 그런 타카오에게 구박을 하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을 내비치는 그의 모습이. 각막에 새겨 넣은 것처럼 하나하나 또렷하게 살아 숨 쉬며 몇날 며칠을 그렇게 쿠로코를 괴롭혔다.
여름 방학의 합숙에서 다시금 그를 만났을 때, 쿠로코는 그 감정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알았다. 한 번의 시합으로도 잊혀지지 않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합숙기간 내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밤잠을 설치는 것은 당연했고, 아침마다 머리 모양이 심하게 망가지는 것 역시 점점 더 심각해졌다.

‘미도리마군, 저에게 잠시 시간을 내 줄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냐는 것이다.’

‘잠깐이면 됩니다.’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합숙의 마지막이 다가올 즈음, 그와 단 둘의 시간을 가졌던 것은 분명한 경계도 있었다. 그와 타카오가 너무 가까워지기 전에 확실하게 선을 그어두고 싶은 그런.

‘네가 나에게 따로 보자고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저도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

‘농담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장난을 치지 못하는 것도 여전하니 그렇게 화난 표정 짓지 마세요, 미도리마군.’

곤란한 표정이 되어 버벅거리며 그런 거 아니라는 거다하고 변명하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쿠로코는 저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에 흠칫,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감정도 확실하게 모르는 주제에 그를 보자고 한 것은 모험에 가까웠지만 이렇게 단 둘이 되자 조금은 구체적인 형태를 띠려고 한다. 그 변화에 쿠로코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미도리마군,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저도 지금 충분히 놀라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너는 아리송한 말만 하고 있다는 거다’

‘…제가, 미도리마군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그날의 기억은 되새길수록 좀 더 제대로 표현했어야 한다고 후회가 남는다. 애매모호한 자신의 말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대답이 어땠더라?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정적이진 않았기 때문에 쿠로코는 그날부터 그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아마도.

“오늘은 어땠나요?”

“별로 평소와 다름없었다는 거다. 키세로부터 기분 나쁜 메일이 작년과 다름없이 도착했다는 것조차 똑같았다는 것이다.”

“그랬군요.”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좋아서 쿠로코는 순간 제 가방에 들어있는 것의 존재를 잊어버릴 뻔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라며 룸으로 된 카페에 들어가 빠네를 주문했다.

“오늘 뭔가 이상하다는 거다.”

“그렇지 않아요. 참, 미도리마군…”

“뭐냐는 거다.”

“줄 게 있어요.”

가방에 고이 모셔두었던 상자를 꺼내는 마음이 두근두근 뛴다. 좋아해 줄까? 좋아해주면 좋겠다. 계란을 삶는 일 외에 부엌에서 뭔가 제대로 된 완성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굳건한 의지로 일주일 넘게 사투를 벌인 결과물이었다. 조금 뭉개진 부분도 있지만 나름 만족스럽게 잘 완성된 결과물. 분홍색은 낯간지러워서 그가 당황할 수도 있으니 포장지는 얌전한 연두색. 그 위에 있는 풍성한 리본은 예쁜 하늘색.

“직접 만든 거라 모양은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쿠로코.”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어요.”

“쿠로코.”

“…미도리마군?”

눈을 마주하기엔 부끄러워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가 있었다.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상자를 매우 곤란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는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미도리마 신타로가 아닌 것 같아서 쿠로코는 무서워졌다. 오늘 이상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자신의 둔감함에 소름이 돋았다.

“미안하지만…”

안돼요. 그 이상은 말하지 말아요.

“헤어지자는 것이야…”

“…미도리마군”

“정말 미안하다는 것이야”





*





발렌타인 이후 쿠로코는 조금 멍해졌다. 그날 그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빠네를 들고온 점원은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쿠로코를 의아한 듯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2인 분의 빠네를 두고는 조용히 나갔다.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의 빠네는 다 먹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꾸역꾸역 모두 먹었다.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토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참았다. 소화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내내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아 물음표 투성이었다.
연습에서 조차 미스가 생기자 감독은 물론, 선배와 동기들로부터 많은 걱정을 받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침마다 보내는 모닝 메일도 여전하고, 점심과 저녁때마다 보내는 메일은 여전한데, 답장이 오지 않는다. 답장이 오지 않는 것이 여전하지 않다. 전화를 받지 않고,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
안 그래도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 그날 먹은 2인 분의 빠네가 1년치의 식사였던 것처럼 식욕이 없어져서 밥을 먹는 양이 반 이상 줄었다. 주변에서 괜찮냐고 물어도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괜찮은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있으려니 화이트 데이가 다가왔다. 감독과 모모이로부터 몇 번의 재촉을 받았다. 멍하니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가 보고 싶었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만나지 못하면 정말 미쳐버릴 지도 몰랐다.









- 이 뒤에는 슈토쿠에 찾아가서 미도리마에게 이유를 물어보는 쿠로코...가 나와야 하는데 뭔가 애매해서 접음..
- 미도리마에게는 타카오처럼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타입이 편한데
  쿠로코는 진심을 읽을 수 없는 타입이라 혼자서 앓다가 이별 선언.
- 그리고 사실 이 이별 선언의 뒤에는 미도리마가 연애 상담을 한 아카시의 계략이 있었다고 해두고 싶다...

2D 2.5D 3D가 통합된 덕질의 망망대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한 마리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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