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 보기★


#58

 

“흉측한 가시는 우리를 아프게 해.”


작은 동물들이 모여 사는 조그만 숲속 마을, 어느 부근.

온몸에 삐죽삐죽 가시가 솟은 아기 고슴도치는 몸을 움츠리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대요. 많은 이들이 고슴도치의 주변을 둘러싸고서 웅성웅성 떠들어대고 있었대요. 무서운 표정을 짓고서. 수군수군. 속닥속닥.

 

“생명을 살리고 싶어 의사가 되겠다고? 어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너 자신을 돌아봐. 너의 그 삐죽삐죽 솟은 무서운 가시가 도리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고!”

“맞아! 피부에 가시가 있다니, 넌 괴물이야!”

 

아이들의 말을 듣던 고슴도치가 그제야 입을 열었대요.

 

“내 말을 들어봐, 내가 천천히 설명해 볼게. 그러니까, 화를 가라앉히고 숨을 깊게 내쉬고서, 내 말을 들어줘. 한마디라도 좋으니까, 제발. 부탁할게.”

 

고슴도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동물 친구들을 쳐다봤대요.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고슴도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대요.

 

“세상이 멸망한다는 얘기 들었어?”

“물론이지.”

“분명, 저 흉악한 고슴도치가 사람들을 죽일 거야. 깊은 밤, 침대 위에서 자다가 우린 모두 저 아이에게 찔려 죽게 될 거야.”

“아무도 모르게,”

“무서워. 정말 무서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온몸에 흉기를 달고 다닌다는 게.”

 

수군수군. 속닥속닥.

작은 고슴도치는 점점 더 작아졌고, 그를 둘러싼 아이들은 점점 더 커졌대요. 아이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고슴도치의 몸을 덮었대요. 컴컴하고, 어두운. 짙은 그림자가.


그 후로, 고슴도치는 나무 위의 작은 집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대요. 홀로, 쓸쓸히, 전등도 켜지 않고서. 아무도 고슴도치를 찾아오지 않았대요. 예쁘게 노래하는 꾀꼬리도, 찌르르 짹짹 우는 아기 참새도, 부지런히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아기 사슴도. 아무도. 그 누구도.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만나지 않던 가엾은 아기 고슴도치는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대요. 이상해. 정말 이상해. 자음도 모음도, 알파벳도, 문장도, 말의 흐름도 모두.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대요. 머릿속으로는, 가슴으로는 완벽한 문장이 흘러가는데, 도무지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대요.

아무리 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대요.

 

똑똑똑.

어둠에 묻힌 서늘한 침실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대요.

악몽을 꾸던 고슴도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봤대요. 아침이 오려면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누가 온 걸까. 잠결에 잘못 들은 걸까.

고슴도치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 현관문을 열어젖혔대요.

문 앞에, 연보라색 뻐꾸기 한 마리가 서 있었대요.

 

―안녕. 시온.

 

아름다운 보랏빛 날개를 퍼덕이며, 뻐꾸기가 고슴도치에게 인사를 했대요. 말을 할 수 없는 고슴도치가 가만히 그 앞에 서 있자, 뻐꾸기가 집 안으로 들어와 전등을 켰대요. 정말로 오래간만에, 고슴도치의 작은 집에 불빛이 들어왔대요. 따스하고, 포근한, 그런 빛이.

 

―앞으로는, 혼자 있지 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영원히 혼자 있어야 해.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뿐인데, 어떻게 다 알아들었는지, 뻐꾸기가 대답을 했대요.

 

―왜? 왜 그래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뻐꾸기를 바라보며, 고슴도치가 몸을 움츠리고서, 다시 마음속으로 대답했대요.

 

모두가 날 무서워하니까. 가시가 불쑥불쑥 솟아난, 나 같은 흉측한 동물은, 아이들을 위협하니까. 사람들을 상처입히니까. 아프게 하니까.

아기 고슴도치와 뻐꾸기 사이에는 20센티 정도의 간격만 있을 따름이었대요. 뻐꾸기는 슬픈 표정을 짓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이 굳건한 얼굴을 지어 보였대요.

그러고는, 고슴도치의 따가운 가시를, 그 작고 여린 연보라색 날개로 꼭 끌어안았대요.

 

―흉측하지 않아. 난 네 가시가 좋아. 가시가 있어서, 그래서 좋아. 맞아. 네 가시는 아파. 내 날개를 아프게 해. 하지만, 그래도 좋아. 그냥, 가시가 있는 네 모습 자체가, 난 좋아. 그러니까 내가 함께 있어 줄게, 시온. 

전등을 켜고, 어질러진 침대를 정리하자. 부엌에서 내가 요리하는 동안, 너는 테이블 위에 식탁보를 깔면 돼. 깨끗하고 새하얀 색으로 골라서. 그리고, 따뜻한 밥을 맛있게 먹고 난 뒤에, 함께 책을 읽자. 그림책도 좋고, 동화책도 좋아. 그렇게 하면, 혼자 지내는 것보다 백배는 더 행복할 거야. 내가 장담해.

 

고슴도치는 멀뚱멀뚱 작은 뻐꾸기를 바라봤대요. 뻐꾸기는 아름답게 웃었대요.

 

―어때? 나랑 같이 지내볼 거야?

 

뻐꾸기가 그렇게 묻자,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고슴도치는 꾹 다물었던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했대요. 창을 타고 따뜻한 바람이 솔솔 밀려들어 오듯이, 고슴도치가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대요.

 

“너, 너랑 함, 함께하고 싶어.”

 

 

...

 


“7행성에 사는 의사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차갑고 추운 행성에 사는 걸까요?”

 

나는 도리의 주머니에 쏙 들어가면서 말을 건넸다. 우리 앞에 놓인 커다란 연둣빛 젤리는 성인 세 명을 태울 수 있을 만큼 둥실둥실 크게 부풀었는데, 도리가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이 쑥 빨려들어 갔다.

 

“펭귄! 펭귄!”

 

도리 대신, 하얀 토끼가 시원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내 말에 대답했다. 도리가 통역해 주었다.

 

“차갑고, 어둡고. 그리고 우울한 사람일 거래요!”


나와 도리를 삼킨 연둣빛 젤리 안에, 마지막으로 토끼가 들어왔다. 산소도 충분했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푹신한 게, 마치 분홍지갑 같아서 나는 잠시 분홍지갑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건 도리도 마찬가지였는지, 도리가 내 몸을 주머니에서 꺼내 손 위에 올리고는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얀 토끼가 그 작고 하얀 손으로(물론 지금은 내 손이 더 작지만) 젤리를 톡톡 두드리자, 자동차에 시동을 걸듯, 젤리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움직이던 젤리가 공중으로 치솟더니 엄청난 속력으로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와, 너무 재밌어요, 다람 씨!”

“펭귄!”

 

도리와 하얀 토끼는 놀이 기구라도 탄 듯 신나게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도리의 손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깔깔 웃던 도리는 내 작은 몸을, 하얗고 보송보송한 털을 사랑스럽다는 듯 어루만지면서 내 분홍빛 코에 키스했다.

 

“다람 씨, 귀여워요. 정말로. 헤헤.”

“도리…도리 씨. 세상이 빙빙 돌아요…”

“금방 도착할 거예요. 응?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요, 다람 씨. 귀여운 아기 다람쥐.”

 

아기 다람쥐, 하고 쪽 소리 나게 뽀뽀하는 도토리라니.

다람쥐로서 면목이 없지만,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내 애인이 귀여워서 그런 건지, 놀이 기구보다도 더 빠르게 공중에 날아오르는 연둣빛 젤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찌 됐든, 쿵쿵쿵 요란스럽게 뛰는 심장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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