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My Mistake ! 









 민윤기는 또라이다. 내 하나뿐인 상사지만 부정할 수 없다. 민윤기는…진짜 또라이다. 대학을 졸업 하고 이 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이 회사에 취직했다. 그것도 내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비서직으로. 나는, 일단 꿈이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에 취직해서 편집이든 교정이든 그냥 거기서 책이랑 뒹굴면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생각처럼 인생은 안 풀렸다. 그래서 그냥 돈이나 좀 모으고 사직서나 내자 싶어서 무작정 서류를 넣었더니 떡하니 붙은 곳이 여기였다. 면접 때 스펙이고 뭐고 안 보니까 잘 버틸 수 있겠냐는 의미심장한 물음을 한 번 더 생각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그래도 내가 지금 여기에 아주 착실히 삼 년째 얽매여 있을 줄은 몰랐다. 광고 회사 대표 비서직이라해서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매일 바쁠 줄 알았는데 얼씨구, 이 회사 대표 민윤기는 한량이었다. 그저 아버지 잘 만나 낙하산 제대로 펼쳐진 한량.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스케줄표 줄줄 외워주고, 민윤기가 맨날 시키는 샐러드나 아메리카노 심부름이나 좀 해주고 월 사 백씩 가져가는 것 밖에 없었다. 아주, 평화롭게. 정말 아주…평화롭게. 


 그럴 줄 알았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너, 내가 다 봤다고! 어? 증거도 있어, 여기서 보여줘?!"

"미친새끼야, 여기 내 직장이거든? 너 진짜 돌았어?"


 인생은 다사다난하다.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다사다난하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바빠서 한 달만에 만난 애인이 내 직장 로비에 찾아와 아침부터 개지랄을 피우고 있을만큼. 내가 통장에 얼마나 모아놨더라, 사직서는 또 어딨더라. 씨발, 씨이발.


"네 직장이든 뭐든 내가 지금 그걸 신경쓸 것 같아? 얼마나 됐어, 얼마나 됐냐고!"

"이 미친새끼야! 입 안 닥칠래 진짜?"


 이판사판이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직원들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렸던 나도 그냥 오늘이 마지막이다 싶어서 악다구니를 썼다. 이 또라이가 한 달동안 연락도 없더니 갑자기 왜 지랄인지. 지나가는 직원들 몇몇이 수군거리며 우리를 에워쌌다. 망했다. 이보다 좋은 직장은 없었는데. 돈 좀 작작 쓰고 더 모아둘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제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나타난 건. 그의 등장에 일순간 모든 사람들이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진짜 좆됐다. 


"전정국씨? 나 지금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아…그게, 그게요 대표님…."


 민윤기 네가 껴들 일이 아니라고. 네가 끼어들면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간다는 표정을 한껏 지어보였으나 삐딱하게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 민윤기는 아랑곳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 애인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어딘가 묘하게 깔보는 듯한 그 시선 덕에 그 미친놈은 기다렸다는 듯 더 펄펄 뛰었다. 


"네가, 네가 민윤기 맞지? 어?"

"맞는데."

"이 씨발…하라는 일은 안하고, 내 애인이랑 바람을 피워?"


 아, 씨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애인, 아니 그 십새끼가 민윤기의 멱살을 잡아쥔 탓이었다. 바람? 그 자극적인 단어에 주위에 있던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민윤기를 번갈아 쳐다봤다. 어머, 대표님이랑 비서가 지금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야? 뭐야, 이거 드라마야? 하는 소리들이 내 귓가에 팍팍 꽂혔다. 상황이 이렇게 개판이 되어버렸으니 나도 더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민윤기의 멱살을 쥐고 있는 그 놈의 손을 거칠게 쳐내버리고는 그 앞을 막아섰다. 뻔뻔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먼저 바람 피운게 누군데! 너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한성이랑 어? 그것도 나랑 제일 친한 동생이랑 어? 이 십새끼야!"


 그랬다. 바람은 이 새끼가 먼저였다. 내 말에 놈이 약간은 주춤하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 그거 어떻게…. 어떻게 알기는 개새끼야! 나는 더이상 참지 않고 그 놈의 등짝을 소리 나게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된 직원들과 경비원들이 달려와서 나를 떼내려고 난리를 쳤다. 아, 진짜 굿바이다. 이 회사랑은 진짜 안녕이다. 그 순간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깐만."


 그때였다.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일순간 멈추게 한 건.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민윤기가 나선 탓이었다. 말리던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민윤기가 단숨에 놈 앞에 다가와 섰다. 그 무심하고도 날카로운 눈빛에 조금 쪼는 게 보일 정도였다. 찌질한 새끼, 개새끼, 나쁜 새끼. 나는 씩씩거리며 민윤기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상황을 정리해 주겠지? 어떻게든 해주겠지?"


"전정국씨, 나랑 바람 핀 거 아닙니다."


 라고 생각했던 내가 등신이었다. 


"전정국씨는 그냥 나랑,"

"……."

"잤습니다."


 …이런 개…미친. 민윤기의 발언에 주위에 있던 직원들이 더 술렁이며 난리가 났다. 나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이렇게까지 또라이일 수가. 나는 민윤기의 어깨를 퍽 떠다밀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미치셨습니까, 대표님?! 그걸 여기서 이렇게 말한다고요? 좆된 제 생각은 안 하세요, 씨발?"


 …존댓말은 이용당한 수준으로 험한 말이 마구 튀어나왔다. 민윤기는 그런 나를 보고도 아랑곳 하지 않더니 아직까지 상황파악이 안된 듯 멍하게 서 있는 내 전 애인에게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서더니 말을 덧붙였다. 


"근데, 내가 진심이 되어서 한 번 작정하고 만나보려고요."

"…뭐?"

"내가, 전정국이랑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 번 만나보겠다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분명 서로 자는 것만 하자고 선을 그어놓은 사이였다, 우리는. 나도 황당한 표정으로 민윤기를 쳐다보았다. 이 상황에서 침착한 건 민윤기 뿐이었다. 


"보니까 먼저 바람 피워놓고 안 들킨 줄 알고 여기까지 와서 개지랄 떤 것 같은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바람에는 맞바람이 정석이고. 더이상 쪽 안 팔리려면 그만 꺼졌으면 좋겠는데. 우리 직원들 입이 워낙 가벼워서 그쪽 다니는 회사에 언제 말 돌지 모르거든."


 무심한 듯 날카롭게 던져지는 말에 그 놈이 주춤하더니 끝까지 전정국, 너…너 진짜…라는 등신 같은 말만 내뱉고서는 그대로 뒤를 돌아 회사를 뛰쳐나갔다. 이게 무슨…폭풍이 지나간거지. 내가 멍하게 서 있자 민윤기가 내 어깨를 감싸더니 다른 직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 안합니까.


 그 말 한마디에 개미처럼 모여있던 직원들이 우수수 흩어졌다. 나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내 회사 생활…내 이미지…내 미래…다 좆됐다. 로비에는 언제 사람들이 모였냐는 듯 나와 민윤기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고 민윤기를 쳐다보았다.


"…방금, 뭐예요?"

"뭐가."

"방금 내뱉으신 개소리요."

"상사한테 말이 심하네. 자리에 커피가 없길래 내려왔더니 이 꼴이라 상황까지 다 정리 해줬는데."


 이 미친. 나는 간신히 욕을 집어 삼키고 다시 한 번 이성을 찾으려 숨을 크게 몰아 쉬고 물었다. 방금, 만나자는 말 그거 뭐냐고. 


"뭐긴 뭐야, 만나자는 거지."

"…대표님 돌으셨어요?"

"멀쩡한데. 근데 카페인이 땡기긴 한다, 좀."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그의 표정에 환장할 것 같은 건 나뿐이었다. 그래, 맞다. 나는 민윤기랑 잤다. 그것도 무수히, 아니 존나 많이. 내 애인이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 어느 날 술을 왕창 마시고 정신이 헤까닥해서 민윤기를 불렀고, 정신 차려보니 같이 취해서 뒹굴고 있더라. 몸이 너무 잘 맞아서, 그래서 우리 그냥 잠만 자자고 도장 쾅 찍은 사이였는데 이게 무슨…끈적이다 못해 질척이는 뒷 마무리란 말이냐고. 


"우리 서로 자는 것만 하기로 했잖아요."

"내가 전정국씨 좋아하나보지."

"…예?"

"나 이제 너랑 자는 것만 못해. 다른 거도 하고 싶어."

"미치셨어요?"

"나 잘 때 매너 좋아서 좋다고 했지. 그거, 다른 데서도 보여줄테니까 나랑 만나."

"…저는 몸부터 먼저 맞춘 남자랑은 절대 안 만나요."


 황당함의 연속에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그렇게 내뱉자 그가 내게로 한걸음 다가와 서더니 손을 뻗는다. 뭐야, 할 틈도 없이 머리에 붙은 내 먼지를 떼주고는 후우, 불어내며 하는 말이 이렇다. 


"내가 깨줄게, 그거."


 전비서, 점심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그러더니 자연스레 내 손을 깍지 껴 잡고 로비 중앙을 가로 지르는 것이다. 로비 내 카페에서 우리 상황을 빼꼼 보고 있던 직원들이 서로의 어깨를 팡팡 치며 난리를 치는 게 보였다. 진짜…다른 의미로, 좆됐다. 







 나는 대표실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쾅 닫고 민윤기의 등을 떠다밀어 의자에 앉혔다. 앞서 나가던 그가 휘청이며 의자에 풀썩 앉는게 보였다. 


"상사를 이렇게 대해도 됩니까? 본인이 갑 됐다고 너무 하네."


 저 능글거림이 사람을 진짜 환장하게 했다. 여긴 직장이었다, 직장. 평소에 쌓아둔 내 이미지가 한 순간에 몽땅 날아가버렸는데 이 사람은 뭐가 좋은지 그저 여유만만이었다. 너는 네 아버지라는 믿을만한 구석이라도 있지, 나는 아니라고!


"대표님, 장난 그만하시고요. 진짜 카페인 떨어져서 이러시는 거면 가서 벤티 두 잔을 사올게요, 그냥."

"잠 못자. 안 그래도 네 생각 하느라 잠 못자는데."

"…진짜, 미치신 거 아니세요?"


 갑작스럽다 못해 폭탄이 주위에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멍하게 서있는 나를 민윤기가 단숨에 끌어당겨 제 책상에 앉힌다. 


"진심이라니까. 나 너 좋다고. 잠만 자는 거 싫어. 그러니까 좀 만나봐."

"…어디 아프신 거 아니죠?"


 나는 애써 그 말을 부정하며 민윤기의 두 뺨을 감싸고 이리저리 얼굴을 살폈다. 얼굴은 멀쩡하니 탱탱한데…. 민윤기의 시선이 나를 따라 고대로 움직이다가 내뱉는다는 소리가,


"키스하고 싶게 자꾸 이럴래."


 개미친. 나는 바로 손을 잡아뗐다. 그런 내 모습이 웃긴지 뭔지 민윤기가 피식 하고 웃더니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며 또 그러는 것이었다. 


"만나자니까."

"…싫어요."

"왜."

"말했잖아요, 몸정 든 사람이랑은 안 만난다고. 몸정은 몸정, 딱 거기까지거든요, 저는."

"나는 몸 맞추면서 마음도 맞췄는데 몰랐나 보네."

"…대표님, 저 대표님 비서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보면서 일해야 된다고요. 제가 오늘 일로 잘리지 않는 이상."


 나는 이제 거의 민윤기를 설득 시키고 가르치기에 이르렀다. 대체 왜 말을 못 알아 먹냐고…. 싫은 건 아니다, 지금도 민윤기가 키스 어쩌구 할 때 나도 하고 싶었으니까. 이게 근데 좋아하는 감정은 아니잖아? 그냥, 그냥 몸이 잘 맞는거지! 여기서 더 복잡한 관계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좋지, 나는. 전비서 맨날 보니까."

"…그냥, 제가 사직서를 낼까요."

"수리 안하면?"

"…튀는거죠."

"고소할건데?"

"돈 없어요, 저."

"어, 그러니까 고소하면 어마어마하게 합의금 때리려고."

"…아, 씨발."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 싶었다. 대표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진짜. 라는 소리까지 나왔을 때였다. 민윤기가 의자에 앉은 채로 빙그르르 한바퀴 돌더니 우뚝 멈춰서 나를 보고 묻는다. 


"내가 싫어?"

"네?"

"내가 싫냐고."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직구로…. 솔직히 인생이 부러워서 좀 질투한 적은 있어도 싫지는 않았다. 악덕한 상사도 아니었고 그냥 가끔 존나 까탈스럽고, 또라이 같아서 그렇지….


"가끔 또라이 같다고?"

"…제가 방금 그걸 말로 내뱉었나요?"

"응. 가끔 존나 까탈스럽고 또라이 같아서 그렇다고."

"……."


 머리가 아팠다.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 나는 제자리에서 왔다갔다 하며 이마를 짚었다가 머리를 헝클었다가 했다. 사실 나는 이 꿀 같은 회사에 사직서를 던질 마음도 없고 민윤기도 나를 자를 마음은 없을거라는 걸 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로 일을 해야 한다는 소린데…. 그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응."

"…지금 실수하시는 거예요, 진짜."


 실수, 그 말이 딱 맞았다. 착각 같은 실수. 내 말에 민윤기가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어쩌다보니 통유리창에 몸을 기댄 내게 가까이 다가온 민윤기가 대수롭지 않게 웃음기 어린 소리로 불쑥 말한다.


"그럼, 하자."

"……."

"실수."


 정말…이보다 더 완벽히 거지 같은 순간은 없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아, 씨발 나는 그래도 민윤기랑 잤을거다. 실수, 실수. 그냥 실수로 퉁 치고 저지르기에 민윤기는 너무…어마어마했다. 









Be My Mistake ! 










 트위터서 짧게만 보여드렸던 연성이 드디어 포타로...제목이 번뜩 떠오르더라구요. (제목 떠오르면 꼭 써야 하는 사람) 약간 앞으로도 민대표와 전비서의 티키타카가 많을 예정...저는 이렇게 서로 잘 맞는데 안 맞는(?) 캐릭터들이 너무 좋아요. 

 무튼, 새 글도 잘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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