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죄송합니다 나중에 보쿠토 캐해가 아주 엉망진창개똥망이됩니다

* R16정도의 발언 주의, 드림주가 일단 제정신이 아님(근데 나중에 보쿠토도 제정신 아님)

* 약 2.1만자.. 

* 노래 틀고 봐주세요!!







 

정상에 한 내가
너라는 정상에 해서,





'미안해요, 애가 많이 취해서….'

"어디라고 했지?"

'여기 xx로 앞,'


 어딘지 알 것 같다. 혼잣말처럼 뱉음과 동시에 통화를 종료했다. 수화기 너머로 말을 미처 끝내지 못한 끝물이 따라붙었지만, 애써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그대로 휴대폰을 조수석에 내동댕이로 던졌다.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커다랗게 주차장을 울렸다.

 저번에도 거기에서 나를 부르지 않았나. 같은 친구가 전화한 것 같은…. 아차. 그래도 끊을 때 말이라도 하고 끊을 걸. 그렇기엔 차가운 머리가 열불나는 생각을 집어삼키는 과정이 커다랬다. 다른 생각이 들 여유가 마땅히 없었다며, 이건 나 조차 포장하지 못한 생각들이 뒤엉키기 바쁘다는 핑계가 커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뭐라고 말 해야 하지.


 요란한 소리가 주차장을 울렸다. 차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과정에 많은 소음들이 섞였다. 너는 왜 그래. 너는 왜 자꾸 나한테 이래. 들리지 못할 말도 그 소음과 하나가 되어 섞인다. 샤워를 마친 머리가 평소처럼 뻗지 못해서 덮여진 머리카락이 미러사이로 보였다. 가라앉은 머리카락과 닮은 분위기가 표정에 비쳐 보였다. 보쿠토는 그 모습이 평소에 스스로가 가진 모습과는 달라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본 자신의 모습이 평소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품은 듯이, 마치 화라도 난 것 같이,

 …뭐지. 나 화 났나.


 화 났나?


 네비게이션의 음성이 귀를 튕겨나왔다. 무시하고 싶었다. 보쿠토는 들려오는 경고음이라거나, 신호들을 무시하고는 깜깜한 도로를 마구잡이로 파고들었다. 이제 익숙해지려는 이 길을 멍한 눈빛으로 보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저 멀리로 던지고 싶어서 부던히도 애를 쓰며 핸들을 돌렸다. 신경질에 가까운 손짓이었다.








 "코타로네?"

 "…자기야."


 "자기?"


 보자마자 손목을 낚아챘다. 꺄르르, 하는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왜 이런 볼품 없는 사람이랑…. 옆에서는 방금 자신과 통화를 한 여자친구의 지인이 저번과 같은 제스쳐로 자신이 사과하는 마냥 몸을 계속 숙였고, 앞에선 웬 처음보는 남자가 제 여자친구의 손을 잡았던 그대로 굳어 있었다. 보쿠토가 연신 고개를 숙이는 여자에게 손을 저었다. 괜찮아, 진짜 괜찮아. 손을 들어서 그 행동을 저지했다. 늘 짓는 표정이 기계처럼 얼굴 위를 겉돈다. 품에 안긴 여자의 체온이 미지근했다.


 "진짜 많이 취해서 그래요. 다음부터 꼭 안 그럴 수 있게…."

 "응."


 그땐 꼭 부탁할게. 눈썹이 휘었다. 입꼬리를 따라서 웃지 못하는 표정이 제것이 되지 못하고 떠돌았다. 저 쪽도 제정신은 아닌 듯 그저 말로 괜찮다는 나에 고개를 숙이다가 자리를 벗어났다. '뭐야. 얘 애인 없다면서 순 구라를….' 고개를 돌렸다. 싸구려 시계를 찬 남자가 머리를 헝클이며 제 품에 안긴 여자를 노려보았다.


 이젠 저런 것들에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진빠지게 하는 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손목이 잡힌 채로 꺄르르 웃고있는 제 애인으로 족했다. 한숨이 짧게 터졌다. 앞에서 남자가 뭐라 씨부리던지 무시하며 여자의 손목을 보다 세게 쥐었다.

 "가자."

 망설임 없이 발을 옮겼다. 야, 야! 이거 미친년 아니야! 성큼이며 자리를 벌리자 뒤에서 바락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찌르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놈년들이 지랄을... 야, 거기 안 서?! 떽떽거리는 소리가 귀를 거슬리게도 붙는다. 이번에도 무시하며 보폭을 벌렸다. 야! 거슬리는 손이 제 손목을 붙잡는다.

 아…….

 이젠 하다하다 별게 다…. 불쾌하게. 돌아간 고개가 서늘하게 내려앉는다. 핏기없이 꽂히는 표정이 같잖은 사람을 내려다 보겠다고 눈을 반쯤 뜬 채 시선을 마주했다.


 "뭐, 뭐! 짜고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덕분에 나만 오늘 허탕만 쳤잖아!"

 "너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어쩌,"

 "한번만 더 욕하면 화낼지도 몰라."


 그러니까 조용히 가. 알겠지?

 벌려진 입술과 대조된 눈빛이 남자를 훑었다. xx! 천박한 욕소리가 들렸다. 보쿠토는 끝까지 이를 무시하려 했다. 손목을 잡힌 채 배실거리는 여자를 내려다보며, 짧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걸음을 틀었다. 주머니에서 힘없이 차 키를 꺼내 허공에서 조용히 버튼을 눌렀다. 멀찌감치서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술 안 마시기로 했잖아.

 왜애.

 …자기가 자꾸 이런 짓 할 때마다 속상해.

 속상해?

 응.

 진짜?

 …….

 코타로.


 코타로 화 났어? 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취기로 발그레진 뺨을 들어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베-하며 전혀 즐겁지 않은 상황에 혼자 다른 세상인양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 마음에 안들었다.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하게 말하면 제 정신이 아닌 것 처럼, 제 정신이 아닌 것…. 아닌가. 실수가 한번이 되고, 두번이 되고, 그게 겹겹이 싸이면 행동이되고 성정이 될 텐데. 이번에도 나를 똑같은 장소에서 별 같잖은 것의 손을 잡고 보란듯이 방실방실 웃던 너를, 이번엔 키스라도 할 것 처럼 그 놈이랑 붙어있던 너는….


 이게 진짜일까?


 "…자기ㅇ,"

 "있잖아 코타로,"


 난 네가 나를 보고 화내는게 너무 좋아.



 지어지는 웃음이 술기운의 탈을 쓰고 순수하게 빚어 나왔다. 빌어먹게도 순수해 보였다. 마치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보고 감탄하는 것 마냥, 티끌없이 지어지는 미소와 이질적인 말에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보쿠토는 이제 얼어버릴 듯한 뇌로 가볍게 정의내릴 수 있었다. 

진심이었다.

 저건 자기 여자친구의 진심이라고.


 그건 새삼스럽게 깨달아진 것이라기 보다는 마치 예전부터 무시해오던 진실을 강제로 인정하게 하려는 행동에 가까웠다.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상에 반하다

w. 숭아





sub title

: 나는 네가 나와 같았으면 좋겠어






 만약 지구가 우주고 사람들이 행성이라면, 아마 나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칠흑같은 성운의 먼지일 것이고 보쿠토 코타로는 별일 것이다. 스스로에게서 나는 에너지로 자신을 태워 눈부시게 타오르는 별. 사방이 깜깜한 공간에서 벅찰만큼 빛나는 존재. 이글이글 타올라 주변에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마저도 빛난다고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커다란 별.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없겠어. 어두워도 너무 어두운 내가 그렇게 밝은 빛을 보았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한순간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냔 말이야. 고등학교 시절에 치어리딩을 하면서 본 보쿠토 코타로의 모습은 실시간으로 화려하게 화학작용을 하는 별이었다. 학교라는 작은 성운이 비좁다고 소리를 지를 만큼 타오르는 별이었다.


 이번에도 전국에 진출했대. 우리학교 배구부 엄청 잘 하네. 원래부터 잘 했나? 이번에 특히 잘하는 것 같아. 그야 전국 세손가락 안에 드는 에이스가 있잖아. 걔 이름이 뭐였지? 보쿠토군이랬나?


 "맞아, 보쿠토 코타로."


 반짝반짝 빛나는 보쿠토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답했다.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로 꽂았어요. 이번에도 후쿠로다니의 4번!


 "어, 너 보쿠토군이랑 친ㅎ,"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에서 응원단장이 손을 들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박수를 치며 보쿠토의 이름을 불렀다. 코타로! 한번 더! 도쿄에서 제일 크다는 체육관에 보쿠토 코타로의 이름이 울려퍼진다. 요란하게 퍼지는 목소리에, 그 당사자는 부끄럽기는 커녕 만족스러운 듯이 해맑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위로 치켜들었다. 세레머니였다.


 아,

 …정말.


 친하기는 무슨. 내가 일방적으로 슈퍼스타 보쿠토를 아는 것 뿐이지. 아니 정정한다. 일방적으로 보쿠토를 좋아하고 있다. 이는 보쿠토가 득점할 때면 나도 모르게 발이 중력을 거부하고 싶다며 방방 뛰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본능처럼, 그저 저 빛나는 보쿠토에게 닿고싶다는 열망 하나로 움직이는 발버둥이다.



 그러니 요하자면 내가 보쿠토를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었다. 이유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체적으로 빛을 뿜어대는 행성에게는 내가 갖지 못한 중력이 뭉쳐있으니, 자석보다 강한 이끌림에 그에게 끌려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그를 좋아했더라? 내가 치어리딩을 시작하면서? 잘 모르겠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면 항상 보쿠토의 반을 들락날락거리고 있고, 뭇 여자애들이 쌓아놓은 간식더미 위에 가장 커다란 간식을 올려놓으며 흐뭇해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어디갔다와? 으응, 잠깐 화장실. 거짓말 치지마. 또 보쿠토네 반 들렸지? 하하. 들켰네.


 보쿠토, 나의 사랑하는 코타로(光)군.


 나는 빛나는 너를 사랑해. 그것도 아주 많이.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정의할 수 있을 단어가 없다. 나는 보쿠토 코타로를 열망하고, 동경하고, 사랑하고, 많이 사랑한다.


 정말 많이 사랑한다.








 고백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늘 똑같은 레파토리로 전해지는 고백에 보쿠토가 미안! 이라고 외치는 소리도 이제 익숙해졌다. 항상 중요한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보쿠토는 쉬는 시간마다 자리를 비웠는데, 유명한 배구선수로 이미 스카우트가 하나씩 들어오는 그에게 불나방처럼 반한 여학생들이 허겁지겁 그를 부르는 탓이었다. 물론 항상 그런 식으로 고백하면 미안! 이라는 아주 경쾌하고, 빌어먹게 밝은 목소리로 거절하는 그가 있지만.

 이건 내정된 사실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 고백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계속 기대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미안미안. 그놈의 사과는 자판기처럼 쉽게 나오는 말인데.


 오늘도 반에 친구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들어왔다. 너도 아니야? 응...


 "그럼 너는 언제 고백할 거야?"

 "나?"

 "응. 너도 보쿠토군 좋아한다고 했잖아."

 "으음, 글쎄..."


 내일...? 수줍게 짓는 표정은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었다. 착실하게 그려내는 표정에 그래그래. 너도 내일 울지 말고...라며 미리 고백했던 여학생이 훌쩍이며 위로를 빙자한 동정을 보내왔다. 응. 너도 너무 속상해 하지 마. 너 혼자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럼 나는 위로를 빙자한 조소를 숨겨 되돌려주었다.


 내일 고백하기는 무슨. 가장 친근하게 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가장 확실한 거리를 세운다는 것은, 보쿠토를 여태까지 지켜본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섣부르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바운더리가 확실한 그에게 오히려 급격한 전개는 독이 될 것이니. 나는 그에게 스며들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내가 보쿠토에게 다가가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스며들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슬비가 휴지조각을 천천히 적셔 바닥에 으깨질 수 있도록. 나는 아주 느리고 천천히 그에게 스며들고 말아서 그가 스스로 자신의 은하계 안에 나를 초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보쿠토군 맞지?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어! 나를 알아?!"

 "당연하지!"


 학교에 너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아? 하하! 역시 그렇지?



 처음엔 네가 좋아하는 말을 많이 해 줄 거야.







 "보쿠토군, 마지막 스파이크 정말 멋있었어!"

 "으..."

 "응? 무슨 일 있어?"

 "마지막 쯤에 크로스를 치는 법을 잊어버리셨대요."

 "어, 이런..."

 "나 생각보다 멋진 스파이커가 아닌 건가..."

 "무슨 소리야!"


 그런 생각 뚝! 뚝 해야지 보쿠토군! 옆에 있던 아카아시도 화들짝 놀랐다. 연습이 끝난 체육관을 대뜸 우렁찬 소리로 부정어를 외치는 나에 안에있던 모든 사람이 놀란 것이다. 제 말에 덩달아 풀죽음 보쿠토도 어깨를 눈에 띄게 움칠이며 놀란 부엉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꿈뻑, 꿈뻑하고 감았다 떠지는 눈망울이 나만 바라보았다.


 네가 왜 멋지지 않아. 너만큼 멋진 스파이커가 어디있다고!!


 "...너."


 그치!! 역시 그래도 내가 멋진 건 변함 없지?! 아카아시가 눈치껏 배구공을 던졌다. 보쿠토가 본능적으로 공을 향하더니 손목을 있는 힘껏 틀었다. 공이 비현실적으로 꺾이며 체육관 바닥을 크게 울렸다.


 "이거 봐! 잘 하잖아!"

 "헤이헤이!!"


 "덕분이에요."


 요즘에 이런 일이 많아졌네요. 보쿠토 선배의 기분은 매일 바뀌어서 곤란한데. 선배가 계셔서 그나마 한시름 덜었어요.



 다음으로는 너의 주변에 천천히 익숙해질 거고,








 "엑, 나 친한 여자애 없는데!?"

 "뭔 소리야. 너 좋다는 애라도 빨리 데려와. 다음 2인삼각 너라고!"

 "어어...!"

 "배구부 매니저들이라도 없어?"

 "매니저들은 다른 애들이랑 나갔는ㄷ,"


 "헉, 코타로...군!!"


 나 늦었을까? 급하면 나라도 대신 나가줘도 괜찮아? 마치 급한 일에 뛰어왔다는 것처럼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건넸다. 보쿠토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헉헉거리는 나를 내려다 보았다. 시끌벅적한 운동회 분위기 속, 셋 사이에 가벼운 정적이 돌았다. 나는 있는 힘껏 보쿠토를 걱정했다는 티를 팍팍 묻힌 얼굴을 들어 그를 올망졸망한 눈빛으로 펴다보았다.

 

 정적을 깬 것은 보쿠토가 뱉은 외마디였다.

 "있다!"

 나 얘랑 친해. 그치? 우리 엄청 친하지? 나 그럼 얘랑 나갈래!!



 마지막으로 내가 네 범주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했을 때.








 "좋아해."

 "어엉?"

 "미안. 멋대로 말 해서..."


 근데 더이상 혼자 담아두기엔 너를 너무 좋아해 코타로. 진짜 좋아해. 스스로가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실로 그와 나 사이의 관계가 나름 오래오래 묵혀졌을 때라고 생각한 시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의 손에 꽃다발이 들려, 유년기의 우리들을 추억하는 졸업식 날에 묵혀왔던 말을 꺼냈다. 2년 동안 그에게 스며들었다면 스며들었다고 만족할만큼 생각이 든 뒤에 꺼낸 것이다. 그에 보쿠토는 말도 없이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처음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때처럼.


 "우린…. 친구잖아"


 응. 친구지. 보쿠토의 얼굴은 처음을 닮은 당혹감을 갖고있었지만, 속에서 울렁거리는 감정은 뭔가 다른 낯빛을 띠는 듯 했다. 휴지가 촉촉하게 물을 머금은 것이다.


 "맞아. 친구…. 친구지. 근데 말이야, 코타로군.


 난 너랑 더이상 친구하고 싶지 않아.

 연인이 되고 싶어. 너의 여자친구로 서고 싶어. 어른이 된 너에게 내가 첫 여자친구가 될 수 없을까?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쌓아온 관계가 제발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바란 마음으로 진심을 쥐어 짜냈다. 그는 이를 알긴 아는지, 아니면 그저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인지 안절부절 못하기만 하며 꽃다발을 쥐었다 폈다만 반복했다. 커다란 손으로 뭉개진 다발이 잔주름을 자아내었다.


 "그, 그게…."

 "대답하기 곤란하면…. 나중에 답 들려줘."


 만약 그게 거절이라면 난 네 대답을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아. 나는 그대로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에게 아주 최선을 다하는 마냥 뛰어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면서, 만에 하나 네가 거절할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동시에 부디 이 끝에 네가 내 예상대로 흘러가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몇년을 생각했던 대본대로 흘러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려!"


 …그래, 이렇게. 보쿠토가 다음에 나를 붙잡는 말은 내가 이미 짜두었던 각본이었다.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멀지 않은 거리에서 달음박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커다란 인기척이 바로 뒤에서 났다. 작지않은 숨소리가 좁은 보폭 사이로 흘러나온다.


 "나 한 번도 연애, 같은 거…. 안 해봤어."

 "……나도야."

 "그러면, 우리가 사귀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더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슬픈 것 같아. 보쿠토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그 표정을 바라보고 싶다며―바라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운데에 들어가 보쿠토의 눈과 시선을 맞추려 애를 썼다.


 별 거 없지 않을까? 좋아하는 대로 행동하면 되지.

 그게 뭐야? 좋아하는대로 행동하는 게 뭔데?

 이런 거?


 나는 그대로 보쿠토의 손을 잡고, 엇갈리게 깍지를 낀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여전히 벙벙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보쿠토가 노란 안광의 끝에 나와 잡은 자신의 손을 담았다. 내가 이러면 기분 별로야…? 보쿠토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다행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코타로."

 "……응."


 보쿠토의 얼굴이 부끄러운 마냥 뒤로 살짝 젖혀졌다. 내가 그 얼굴을 보겠다며 시선을 위로하자 보쿠토의 목선과 귀 끝자락이 눈에 들이찼다. 약간은 붉어진 귓가가 지금의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과 같았다. 아...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모든 게 착실히 젖어들었구나. 보쿠토라는 인생에 나를 스며들기까지 너무 오랜시간이 걸렸다. 이제 시나리오는 서막을 시작해야 한다. 내가 보쿠토 코타로와 진하게 사랑할 시나리오의 시발점을. 아주 예전부터 품어온 이 생각을 부디 실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보쿠토라는 태양의 바운더리에 내가 담겨진 순간이었다.









 응. 그래서 알고는 있었어. 이 관계의 시발점을 굳이 따지자면 내가 키운 것이 맞고, 그가 나를 이후에 좋아하게 된 것도 내가 계획하고 원했던 것이 맞았으니까. 그래서 사랑의 퍼센테이지를 따진다면 당연히 내 지분이 많을 것이고, 그 사랑의 거대함도 내 지분이 더 컸으니 사랑의 좋은 면과 나쁜 면 둘다 내 쪽이 더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질투라거나, 너를 너무 좋아하는 집착이라거나. 사랑 중에서도 못된 성정을 갖고있는 친구들도 내쪽이 더 많을 것이라고.

 그래서 알고는 있었지만


'왜 못 오는데?'

"그날 개강총회가 있어서…."

'음. 그럼 어쩔 수 없지. 조심해서 갔다와!'



"누구랑 연락해?"

"이번에 들어간 동아리 선배."

"그래?"


"…남자냐고는 안 물어봐?"

"응? 왜...?"

"아니야."



"친구가 나더러 미팅 제발 자리만 채워달라고 부탁 하던데. 역시 거절하는게 맞지?"

"음…. 도와줘야 할 일인가…?"

"……코타로?"

"츠무츠무에게 들었어. 그냥 친구 사귀고 올 수도 있다면서!"

마음에 걸리면 조심히 갔다 와. 난 너 믿으니까 친구 부탁 급하면 들어주고 와도 돼.



 관대한 건가? 신경이 없는 건가? 무뎌도 너무 무딘 것 아닌가? 이게 정상인가? 보쿠토는 내가 뭘 하든, 누구를 만나든, 내가 밤중에 애먼 남자랑 손을 잡든 말든 사실 상관하지 않는 건가?

 언젠가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너는 내가 남자랑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냐고. 그럼 보쿠토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랑 있다고 그게 뭐가 문제가 될 수 있냐는 말을 건넸다.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하라는 말을 했다. 마치 그게 좋은 남자친구의 덕목인 양 생각하는 어투였다.

 처음엔 내가 보쿠토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남자 여자 사이에 친구가 있냐고 물으면 나는 없다는 쪽과 가까웠고, 보쿠토는 있다는 쪽과 가까운 건 아닌지 하고.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기 쉬웠다. 말마따라 그는 이성친구든 동성친구든 대하는 범위과 관대했고, 나는 언짢았을 뿐이다.


 근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내가 동아리 선배와 단 둘이서 술집에 두시까지 붙어있었다는 사실도 가볍게 지나가고, 내 시험기간과 네 리그가 겹쳐서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잘 못보고 있을 때, 남자동기가 내게 에너지바를 건네주며 대놓고 끼를 부리는 행동을 보고도 그냥 넘어갈 수가 있나?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공표했는데도 대놓고 번호를 달라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가 있나?

 그게 돼?

 초반엔 내 마음이 어려서라고 생각했어. 내가 단순히 어린 마음에 그의 질투를 원하는 것 뿐인지. 그런데 그게 하나가 되고, 두개가 되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낯선 남자가 '미안, 너 남자친구 없는 줄 알고. 얼마 전에 헤어진 줄 알았어.' 라면서 내게 말을 건네는게 한 두번이 아니게 되자 기분이…. 조금 이상한 거야. 나는 아니거든. 난 보쿠토 네가 일적이라도 다른 여자랑 말하고 다니는게 질투나고, 나한테만 웃어줬으면 좋겠고, 난 네가 운동을 핑계대지않고 다른 여자랑 밤늦게 술을 마신다면 우리가 대판 싸울 만큼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왜 너는 내가…. 다른 모임에서 다른 남자가 내 손목을 문지르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근데 왜 욕도 못하게 웃으면서 환영하는 거야. 진짜 내가 다른 친구랑 아무일도 없이 왔던 것 처럼 구는 거야…. 화도 못 내게. 응?


 좆같게 답답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보쿠토에게 반해서 만든 관계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 보쿠토가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배제되진 않았을 것 아닌가. 내가 철저하게 쌓고 쌓아온 애정은 보쿠토에게 강제적이라도 전해졌을 테니 그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도 현재할 것이 분명할 텐데.


 그럼 너는 내가 다른 남자랑 키스해도 아무 생각이 안 들어?

 …어?

 다른 사람이랑 키스해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드냐고.

 음….


 근데 자기가 다른 사람이랑 키스할리가 없잖아. 그렇지? 난 너 믿으니까.



…….



 "아니 그니까 예를 들어서,"

 "이런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


 정말 네가 다른 사람이랑 키스할 것도 아니고. 이런 말 하지 말고 늦었으니까 잘까?



 믿으니까. 나를 믿으니까. 그걸로 나머지를 다 퉁칠 수 있는 건가. 혹여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건가. 그게 내포하는 다른 의미는 모르겠다. 절대 일어나지 못할 상황이라고 굳건하게 믿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에 무한한 확신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그래서 얘가 다른 여자들이랑 그렇게 서스럼없이 말을 섞나? 마음에 장작이 차올랐다. 제 분에 이기지 못한 작은 불씨앗이 장작 위로 싸분히 내려앉았다. 천천히 불길이 번진다. 단순히 얘랑 나랑 생각하는게 다른 건가? 불길이 점점 번진다. 아니잖아, 보통의 사람이라면 질투라도 하는게 당연하지 않나. 불길이 계속, 점점 번진다. 나는 화나는데. 네가 다른 여자랑 말이라도 섞는 게 그렇게 참을 수 없는데. 장작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활활 불타기 시작한다.


 코타로. 나는 화나. 네가 다른 여자랑 이야기한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화나. 네가 다른 여자랑 키스하는 상상하면 너무 화나서 다 부시고 싶을 것 같아. 나한테 사랑을 속삭이던 네가, 본적도 없는 여자에게 다가가 똑같은 말을 한다면 금방 죽고싶을 정도로 화나. 그런데,

 너는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그런 말이라도 해줄 생각이 없는 거야?

 뭐가 그렇게 미더운 거야. 내가? 그래도 그 선이 있지 않아?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할 수 없다고. 이제는 네 머릿속이 꽃밭인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어. 근데 코타로, 보통은 아니잖아. 네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굴다가 내가 진짜 다른 길로 새기라도 하면 어떡해. 물론 내가 그를 많이 좋아한다는 티는 많이 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를 완전히 풀어놓아서는 안되잖아.


 연인으로서 아무런 생각도 욕심도 안나는 걸까. 앞서 말마따라 내가 널 많이 좋아하니까…. 어떤 사람이 들어오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널 붙잡고 놓지 않다는 사실을 강하게 믿고 있는 것일까. 


 그는 나를 믿는다는 말로 넘겼다. 그 말은 내가 그를 더이상 믿지 못하는 시작을 던진 것처럼, 다른 생각이 위험하게 휘청거리게 했다. 별이 아닌 행성이 휘청거린다. 자체발광조차 하지 못하는 별이 궤도 주변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지.

 틀어진 궤도가 숨통을 트여보겠다며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래도 아니지 않을까. 한 생각을 뒤적여 꺼냈다. 아니겠지. 그래도 코타로, 네가 네 눈으로 직접 본다면 그러진 못하겠지. 네 연인이라고 하는 내가 진짜 다른 사람이랑 손이라도 잡고 있어봐. 입이라도 맞춰봐. 네 앞에서 마치 다른 사람과 연인인 것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너도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않겠지. 비틀리기 시작했다. 이 비틀림은 지금 잡지 못하면 계속계속 다른 길로 향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 진짜로 네가 그런 모습을 본다면 그냥 그렇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건 진작에 자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하루이틀 쌓여가는 건 수순이었다. 나는 말도 없이 술에 취해 다른 남자와 잔을 섞었고, 일부러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쯤 보쿠토의 전화를 받는 짓을 일삼았다. 으응, 자기야. 나 xx포차. 응, 술 좀 마셨어. 데리러 오게? 으응... 좋아.

 처음엔 다른 남자와 말을 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쿠토는 내가 누구랑 말을 하거나 말거나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제 차에 실기 바빴다. 두번째로는 내가 낯선 남자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보쿠토가 웃으며 '뭐 하는 거야?' 라고 물어보았다. 취한 사이로 짐짓 엄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이걸 보고 난 어땠더라. 기뻤었나. 기뻤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라고 말하며 손을 뗐다. 그 손짓이 여우의 꼬리를 닮았다. 일부러 교태롭게 낯선 남자의 손가락을 놀리며 빠져나오는 짓에 보쿠토가 미간을 아주 미세하게 꿈틀였다. 가자. 그 말을 거부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세번째로는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낯선 남자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 네 남친 왔...!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룸술집 방 문이 열렸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익숙한 인영을 눈에 담았다. 헤헤, 코타로군... 흐릿한 시야 사이로 정색한 그 얼굴이 보였다.


 요즘 왜 자꾸 그래?

 뭐가.

 왜 자꾸 다른 사람이랑 그러고 있어.

 뭘 그러고 있어.

 …….

 뭔데. 말을 해줘야 알지.

 ……졸리면 나를 불러. 나도 어깨있고 손 있잖아.

 어, 질투한다.

 자기야.

 하하. 질투하는 거야, 코타로?


 잘하네, 질투. 이 감각은 새콤하고 달콤했다. 부족했던 마음의 욕심꾸러기가 아주 살짝 채워지는 착각을 내게 안겨주었다. 어린아이가 불량식품을 처음 맛보는 느낌과 같았다. 마치 마약처럼, 잠들었던 도파민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는 나쁜 약물과 같았다. 보쿠토 코타로가 이런 상황에서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낮게 눈을 내리까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미친듯이 좋았다. 뭐든 상관없는 그와 대비되는 그 분위기가 좋아 죽을 것 같았다.








 있잖아, 코타로.


 난 네가 나를 보고 화내는 게 너무 좋아.









 "……뭐?"



 내가 보쿠토에게 처음 보는 남자와 키스하기 직전의 모습을 비추고서 내보인 말이었다. 하루이틀 쌓여간 비틀린 마음이 태산처럼 모인 결과였다. 너무 좋아. 네가 나를 향해서 질투라는 마음을 비추는게, 너랑 하나도 닮지 않은 감정을 나한테 쏟는게 너무 좋아. 평소에 다 포용할 것 처럼 굴면서 이럴때 화내는 네 얼굴이 좋아서 죽을 것 같아.


 "내가 다른 남자랑 있는 거 보면 화나?"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진짜 화낼 것 같,"

 "너무 기쁘다……."


 나도 그래. 네가 여자랑 인사만 해도 속이 뒤틀릴 것 같아. 억울했거든. 나 혼자만 그러는 것 같아서.


 "자기야, 많이 취했어. 집까지 바래다 줄테니까,"

 "내가 다른 사람 목 감고 뽀뽀해도 그렇게 화내줄 거야?"

 "그만."

 "다른 남자 앞에 알몸으로 안겨있어도."

 "하지 말라고 했어."

 "내가 너한테 박히면서 울듯이 다른 사람한테서도…."

 "그만!!"


 그만, 그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높아진 언성이 반듯한 외제차 안을 울렸다. 분에 못이겨 휘청이던 보쿠토의 팔이 클락션을 울렸다. 빠아앙, 하고 크고 커다란 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주변에 적지않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보쿠토의 차를 흘끔거렸다.


 ……하. 빨리 가자.

 참지 마.

 더 말하지마, 자기야. 나 화나서 주체 안될 것 같으니까

 그래. 그렇게 더 화내줘.


 나를 사랑한다는 티 많이 내줘. 내가 눈치챌 수 있게. 보쿠토가 신경질이 나듯 페달을 밟았다. 커다란 외제차가 좁은 포차거리를 우악스럽게 빠져나왔다.






: 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으... 몇시지. 뿌연 시야로 들어온 핸드폰이 오전 다섯시를 가리켰다. 몸을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도수 높은 양주가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었다.


 술을 즐겨하지 않는다. 운동 선수에게 알코올은 독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어제 빚어낸 상황에서 도저히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익숙한 이의 일탈을 한 번 따라해 봤다. 너는 다 잊고 싶을 때마다 술을 마신다며. 나도 그래봤어. 자기처럼 나도 그래 봤,


 ……이제 자기라고 하면 안되겠지.


 어제 스스로가 본 광경을 믿고 싶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에 야채죽을 사고 찾아갔더니 울긋한 몸으로 자신에게 두팔을 벌려 환영하는 여자가 있었다. 어서 와. 집 치울 생각을 못 해서 조금 지저분한데... 들어올래? 옷가지가 난장판으로 어지러진 실내가 보였다. …나는 어제 여자친구랑 밤을 보낸 적 없는데, 이게 무슨…,


 "……너."

 "아 미안. 별거 아니야."


 나 아프니까 어서 들어와주라.

 그때 순간적으로 코 끝을 스친 향이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은 향이었다. 냄새였다.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나올 듯한 냄새였다고. 밤꽃향을 닮은, 여자친구 자취방 너머에서 밤꽃 냄새가

 아, 이....씹,


 …자기야. 내가 싫어?

 무슨 소리야. 코타로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나를 대체 어디까지 바보로 알 거야.

 왜 화내?

 내가 싫어져서 자꾸 이런식으로 구는 거야?

 갑자기 왜 그래. 현관에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서 이야기하,

 더는 못 보겠어.

 진짜 더는 못 보겠다. 죽이 담긴 봉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안의 내용물을 상관하지 않는다는 마냥 적막한 복도 사이에 부스럭거리며 내려앉았다. 여자의 얼굴을 볼 용기도, 보고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왜 그래.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한 것처럼.

 코타로 어차피 이런거 신경 안 쓴다고 했잖아. 나 믿는다며?


 미친 거지. 이 순간 자기보고 미친 사람을 가리키라고 한다면 나는 고민도 없이 내가 사랑한다고 자부한 너를 가리킬 것이다.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보쿠토가 생각한 마지막 생각이 저 문장이었다.


 "연락 안 받을게."


 그러니까 앞으로 하지 마. 지금 관계에 선을 긋는 건 내가 분노로 미쳐서 저지른 짓이 아니고 명백히 너의 잘못때문이다. 내가 홧김에 저지른 일이 아니고 네가 미쳐서 그런 것이다. 대체 나를 어디까지 몰아가고 싶은 거야. 질투받고 싶다는 말같지도 않은 핑계로 언제까지 그렇게 굴 거야. 대체 어디까지 나를 바보로 알고 이런 식으로 굴 건데. 안그랬잖아. 너 원래 안그랬잖아. 응?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연인처럼 굴어도 그렇게 화내 줄 거야?'


 내가 그런 말같지도 않은 말장난에 긍정했다면, 너는 오늘을 만들지 않았을까? 자기야, 대체 널 누가 이런 생각이 들게끔 했어. 대체 뭐때문에 그래. 대체 왜. 대체, 대체….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이런 나라서 미안. 하지만 그 전에 넌 밤에 남자 동기랑 세시간을 넘게 통화하는 나를 보고 화를 내줬어야지. 내가 동아리 선배와 밤 늦게 단 둘이서 동아리 방에 축제를 준비한다고 말했을 때, 한번이라도 언짢은 네 모습을 보여줬어야지. 내가 저번주에 고백받고 온 날 웃지만 말고 조금 화도 내주지. 그거 누구라고 한번만 언질 해보지. 내가 속 좁은 거야? 아직도? 왜 매일, 언제까지 믿는다는 말로 나를 풀어놓으려 했어. 대체 언제까지. 네가 정상이 아니지 않고서야 그럴리가 없잖아. 그러니 코타로,

 지금 미친 사람은 내가 해도 좋아. 하지만 처음에 미친 사람은 분명히 너였을 거야. 나는 너를 사무치게 사랑했지만 네 마음은 어땠어? 너도 그랬어? 그랬다면 한번이라도 나랑 같다는 티를 내주지. 나는 네가 사랑의 나쁜 면을 나와 같이 드러내줬으면 했는데. 태양같은 너는 어쩌면 사랑조차도 별을 닮으려 했을까. 하지만 코타로, 사랑은 단편적이지않고 지극히 양면적인 감정이다. 내가 바라본 양면의 감정을 너 또한 품어줄 줄 알았어야 했다.


 이 또한 핑계로 삼을 수 있겠지. 하지만 핑계라고해서 무게가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게 가벼운 무게라면 몇년에 걸친 우리의 관계를 이리 가볍게 반토막을 낼 수 있을리가 없다.

 커다란 소행성이 핑계를 뒤집어쓰고 결국 나와 너를 헤집으러 튀어나왔다. 그 행성의 종말은 태양같은 보쿠토가 다 태워버려서 끝이 났다.








 쨍그랑. 모서리에 아슬하게 기울어진 양주병이 결국 무게에 못이겨 떨어졌다. …깨졌네. 내일 아주머니에게 연락해서 집 다 치워달라고 해야겠다. 방이 너무 넓었다. 나 혼자 도망친 네 곁을 곱씹어보기에 방이 너무나 넓다는 사실이 신경을 긁었다.







反, 반하다

: 내가 같아진다면 마지막에 반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별은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죽는다는 표현을 빌려서 이만 작용을 중단한다. 인간의 시선으로 가늠하기엔 아득한 시간이지만, 몇천년이든 몇억년이든 시간이 지나면 모든 화학작용을 일단락해버린다. 나는 보쿠토 코타로라는 별이 나를 떠나서 제발 죽어버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올림픽으로 떠들썩한 요즘같은 때가 싫었다. 미치게 싫었다. 저번 브이리그때도 그렇게나 싫었는데, 하계 올림픽에 배구시즌이 떠올랐을 때는 온 사방이 보쿠토 코타로라는 이름을 입에 달고 사는 지금이 싫어도 너무 싫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분위기가 애증이라는 탈만 쓰고 증오로 얼룩지기까지 순식간이었다.


 인터뷰 자신 없어요.

 그래도 너 아니면 누가 하겠어. 한번만 수고 해줘

 못해요. 진짜 못해요

 평소에 잘 하면서 왜 그래?


 그럼 내가 반 해 줄게. 나머지는 그래도 네가 맡아. 이정도는 할 수 있지? 하필이면 이 시즌에 스포츠 매거진에 컨택이 들어와서 국대 선수를 인터뷰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보쿠토가 국가대표 배구선수로서 일한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있긴 했다. 물론 이젠 전남친도 아니고 구남친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릴만큼 우리가 성장했지만, 끝이 안좋아도 너무 안좋게 끝났던 인연은 시간의 도움을 아무리 받아도 꺼려지기 마련이다.

 그럼 앞 번호는 선배님이 맡아주세요. 제가 세터분들 위주로 질문할게요. 부디 이 상황에서 그와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철없이 보냈던 사랑의 서사는 이미 주인을 떠난지 오래니까.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마지막에 야쿠 모리스케라는 리베로 선수의 인터뷰로 시끄럽지 않게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상하네. 한 분이 비어."

 "네?"

 "아마 보쿠토군 같은데. 아까 연락왔다고 잠시 자리 비우러 갔거든요."

 "보쿠토 선수요?"

 "네. 원래 앞번호라서 초반에 인터뷰 했어야하지만 급한연락이라고 방금 자리를 비웠어서,"

 "일났네. 어디계신지 알아요? 회사측에서 전부 인터뷰 해야 한다 전해들어서."

 "그럼 선배님께서 마저 보쿠토군 선수 인터ㅂ,"


 "미안!!"


 나 늦었어?!


 몇년이 지나도 에너지는 여전했다. 보쿠토 빔-! 하고 퍼지는 관중의 소리가 허상처럼 귀를 스치는 것 같았다. 얼마만이지, 우리가…. 내가 보쿠토의 이 음성을 매스컴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듣는 게 얼마만이지. 그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본능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같이 온 선임 인터뷰어에게 보쿠토군의 선수를 맡긴다며 말을 건네려던


 "인터뷰 나 빼놓고 하는 거 아니지!?"


 찰나에,


 "……네?"


 손목이 잡힌 비현실적인 모습이


 "해줘!"


 여전히 올곧음을 내보이는 그 목소리와 열기가


 "네?"

 "하하,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연히 보쿠토 선수 인터뷰를 빼놓을 수 없죠!"

 "그치?"


 내게 꽂히면서,


 "급한 일이 생겨서 잠깐 나갔지만, 인터뷰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마치 그 기다림이 비단 이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나를 가리키는 것 처럼.







 앞 선수들에게 했던대로 형식적인 진행이었다. 그가 보이는 행동도 다를 것은 없어보였다. 중간에 어깨 힘줄이 움찔인다거나, 흥미있어 보이는 주제에 눈썹을 꿈틀인다거나, 자신의 존재감이 치켜지는 순간에 눈빛을 빛내는 모습도 여전했었다. 내가 알던 그 보쿠토 코타로가 맞았다.

 그래서 묘한 달라짐도 눈치챌 수 있었다. 전보다 더 단단해져보이는 흉곽같은 외관적인 것 뿐만 아니라 어투에 여유가 있다는 점. 그 여유는 자만이나 자신이 아니고 말 그대로 여유였다.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이 분위기에서도 자신이 정당하고 떳떳한 여유를 부리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답해주셔서 감사해요.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인터뷰 끝까지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응! 더 없어?"

 "없어요. 수고하셨어요."

 "진짜 없어?"

 "…? 없어요."

 "진짜?"


 정말? 카메라는 꺼졌다. 이미 여기까지 찍힌 내용은 편집되어 주말쯤이나 올림픽 특집으로 내보낼 예정이었다. 스케쥴은 이미 온점을 찍었다.


 정말 없어?


 그런데 보쿠토 혼자서 마치 다 끝난 일정에 반점을 찍었다. 왜 이래? 시선 끝에 내가 꽂혀있다는 점이 상당히 언짢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건 여전했다. 그런데 보쿠토는 그 시선을 물리지도, 옆에서 다른 선수가 '평범한 에이스 그만쫌 해라...'라며 눈치를 주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내에 이상한 공기가 흘렀다.


 그럼 내가 질문해도 돼?


 "……네?"

 "뭐라카노?"

 "보쿠토 선배?"



 "난 누가 배구랑 애인중에 고르라고 하면 아마 배구를 고를 거 같아."

 "갑자기 뭐라는…."

 "이러면 내가 잘못된 걸까?"

 "보쿠토씨, 사적인 잡담할 시간은 없어요."

 "근데 요즘 생각드는 게 있어."

 "뭐, 니 인터뷰어한테 작업거나...?"

 "시간 돼?"


 너랑 이야기하고 싶다.


낯선 표정이었다. 보쿠토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알았나? 입꼬리가 군더더기없이 호선을 그렸다. 보쿠토가 가졌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얼굴의 이면이었다. 그래서 이를 홀린 듯이 멍하니 바라보자, 그가 손목을 붙잡고선 어딘가 성큼거리게 자리를 비켰다. 나는 벙찐 상태로 미처 무슨 말을 하지도 못했다. 뒤에서 선배가 부르는 말도, 그의 동료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도, 전부 영화관 스크린 안에 갇힌 배경처럼 깔렸다. 그가 내보인 이질적인 표정이 새로운 길을 그리는 동시에 내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차는 바뀌어 있었다. 몇년 전에 내가 타던 보쿠토의 차와는 다른 외제차였다. 여전히 집에 돈 하나는 더럽게 많은가보네. 멍한 머리에서 깊은 생각을 자아낼 여유는 없었다. 가벼운 생각만 하릴없이 둥둥 떠다녔다. 보쿠토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나를 앉힐 때까지, 나 또한 이상하게도 그 손길에 저항 없이 탔을 때까지. 보쿠토가 시동을 걸기 전에 몸통을 비틀어 내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번 눈을 깜빡거리고선 차키를 돌릴 때까지.


 "어디 가요?"

 "어디 갈까?"


 시동이 커졌다. 큰 소음없이 커지는 소리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울렸다. 과거의 향수가 나는 것 같은 소리였다.


 "빨리 이야기 해요."

 "응. 일단 차 좀 빼고."

 "어디 갈 건지 안 정했잖아요."

 "뭣하면 데려다줄게."

 "…."

 "그럼 됐지?"


 그냥 오랜만에 봤잖아. 가볍게 생각해! 보쿠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약간은 안심한 마음에 안전벨트를 그러쥐었다. …안심? 뭐 불안할 게 있긴 한가?


 "이제 내가 인터뷰어 하는 건가?"






 그냥 그렇게 생각해. 내가 배구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만약 배구마저도 던져버리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게 진짜 사랑인 거지! 어때, 말 되지 않아?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그가 능숙하게 차를 빼내서, 드라이브라도 할 듯이 운전대를 돌리면서 하는 소리들이 하나같이 형태가 없었다. 관념어들이 문장을 재미삼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일부러 대꾸없이 가볍게 일관했다. 그가 해맑은 얼굴로 나보고 가볍게 생각하라고 했으니까, 굳이 답지않게 이상한 어투를 꺼내는걸 잠자코 듣기만했다. 행선지를 이탈하였습니다. 네비게이션의 목소리가 더 뚜렷하게 들리는 느낌이었다.


 "근데 진짜 어디가는..."

 "그래서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거야."

 "지금 나랑 어떻게 해보려고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지?"

 "그냥…. 그냥 너만 생각나더라고."

 "거짓말 하지 마. 나보고 미친년이라면서 끝난지 몇년이나 지났잖,"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랑 잤던 너를 봐놓고도 난 왜 너를 떠올렸을까?


 "…보쿠토, 차 틀어. 고속도로라도 탈 셈이야?"

 "응? 왜 그랬을까."

 "차 틀어!"

 "나는 이해가 안돼."


 이해가 안돼 자기야.

 호칭이…. 거짓말이지? 보쿠토의 한마디로 몇년의 사이가 순식간에 어제의 시점이 된 것 같았다. 어제 내 집 앞에서 죽을 떨어트리고 보쿠토가 떠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학생인 나와 블랙자칼에 신입 선수로 소속되어 뛰어다니던 그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와 보쿠토가 몸만 큰 그대로 타임머신을 탄 뒤 이상한 행선지에 놓여진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어. 이게 네가 혼자 몸 굴리고 다녔던 이유였을까하고."

 "속, 속도 줄…. 제발!"

 "내가 어려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사랑은 원래 좋은 거잖아"

 "내 말 좀 들어!!"

 "좋은 거. 예쁜 것만 생각하고 보여주는 거 아니야?"


 근데 아니더라. 사랑이라고 완벽하게 자각한 순간 알싸한 향이 났다. 그 대상과 헤어지고 나서의 사랑은 특히나 달콤하지 않았고 새콤하고 쌉싸름했다. 기분이 별로였다. 달의 뒷면을 본 느낌이었다. 평생을 달콤한 면만 보다가 자기조차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섞여서 사랑이라고 정의하니, 이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싫었다. 스스로가 갖지 못한 여자가 그렇게 짜증났고 미운 감정을 건드리는 탓이었다.


 어쩌라고. 알 바 없잖아. 난 어릴 때 뭣모르고 사랑했던 보쿠토가 이제와서 이러는게 그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가 주저리주저리 이상한 소리를 하는 보쿠토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고, 제발 차 좀 틀으라고, 무지막지하게 고속도로를 가르는 운전자에게 소리치는 것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점점 속도가 높여졌다. 생리적으로 두려운 감각에 목소리가 떨렸다. 코타로. 코타로..


 "지금 코타로라고 부른 거야? 다시 이름 불려서 기쁘네."

 "나, 나 무서워. 속도만이라도 좀,"






 그래. 이제 알겠다. 인터뷰장에서 속으로만 계속 그렸던 사랑의 장본인이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게, 자기에게 그 이후로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으면서 웃음을 참 가볍게도 흘리고 다니는 걸 보고 몇년이 지난 뒤에야 자각했다. 아…. 인터뷰장에서 완벽하게 깨달았다. 기분이…. 뭐 같네. 잘 살았나봐. 아츠무에게 눈웃음을 흘리며 인터뷰를 했을 땐 끼를 부리나 생각했다. 하나도 재미없는 말을 재밌다고 받아치는 상황이 피가 혈류를 헝크리는 마냥 기분이 나빴다. 대놓고 나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내장이 비틀어질 것 같다.

 미안해. 나는 서툴러. 네가 예전에 날 알고 있었듯이 나는 서툴러. 그런데 나도 그정도는 알아. 네가 먼저 나를 좋아했잖아. 네가 멋대로 내 마음을 너에게 향하게 했었잖아. 서투른 감정만 덜렁 던져놓으면 내가 나머지를 어떻게 알아서 하겠어.


 "어디 갈까?"


 그러니까 나머지 책임감은 제대로 지고 가줘. 다시 내게 반하는 것으로 대신해.


 "그만, 제발…. 돌아가고 싶어."

 "안되지, 이번엔 누구한데 엉덩이 붙이려고."

 "그만해! 어렸을 때 이야기를 왜 자꾸, 꺅!"

 "아니면 내가 진짜 사고라도 냈으면 좋을까?"

 "코타로!"

 "어렵지 않아."


 하나도 어렵지 않아. 이번에도 나는 여전히 배구하고, 네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있을게. 그니까 웃음 함부로 흘리지 말고 나만 봐.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반했다. 그가 나에게 반反한 채로 반했다. 이번에 반한 쪽은 완전히 저쪽이었다. 이를 어쩐다. 불나방은 그때 유년시절의 그 친구들이 아니라 나였다. 내가 행성인 줄 알았더니 먼지만도 못한 나방이었다. 전등도 뜨겁다며 타죽는데 태양에게 다가가 개죽음을 당하게 생겼다. 안돼. 내려줘.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춰질 수 없었다. 날렵한 외제차가 위태롭게 밤길을 가로질렀다.



숭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