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energy like tiger

우리의 힘은 호랑이같으며

New time is coming up

새로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

Change the universe

To East West South North Spread em up

우주를 변화시키세.
동서남북 사방으로 펼쳐지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지명, 지역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 트리거 요소(조폭물) 및 유혈 폭력적 표현 주의


극  極

楽  락

정  浄

土  토



 

[현재 멕시코를 떠나온 이 비행기는 안전하게 중국 구이린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립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질서있게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손바닥 한 뼘보다 조금 큰 비행기 창문 너머에 시선이 닿는다. 후드를 푹 눌러쓰곤 열 몇 시간의 비행을 버텼다. 기내식도, 물도, 한 모금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비행기 좌석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기만 했다. 그가 올까? 구이린 티켓을 줬으니까. 목숨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충전만 계속 해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옆자리에 앉는 머리가 하얀 백인 아주머니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몇 번이나 '괜찮니?'라고 물어왔지만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이다. 비행기의 안내음이 들려온다.

착륙 후 몇 분이 더 흘렀다. 제복을 갖춰 입은 승무원들의 지시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 공항에서 기다리면 되는걸까? 일단 가장 먼저 데이터를 활성화 하고, 호석에게서의 연락을 기다린다. 제법 떨리는 손가락으로 버튼을 내리눌렀지만 데이터는 깜박거리기만을 반복한다. 후드를 푹 눌러쓰고 짐과 캐리어를 가득 들고 내리는 여행객들의 길고 긴 줄에 끼어들었다. 좁은 비행기 복도를 걸어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고 마침내 멕시코가 아닌 중국 계림의 공항에 발을 들였다.

분명 몇시간 전까지는 멕시코의 바깔라르 호수에 있었는데, 이제 한국도 아닌 중국 땅을 밟는다니. 비행기로 거대한 대양 하나를 넘어오는 동안, 밤과 낮은 뒤바뀌었다. 태형은 검은 밤하늘의 별과, 아득하게 먼 바다와 하늘, 구름위를 날았지만 첫 발을 내딛은 계림의 공항은 이제 다시 그가 '땅'을 밟았음을 알려준다.

 태형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출국 심사대에 섰다. 가방에 챙긴 것은 단촐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비자를 제대로 받기나 했을지는 모르지만, 호석이 '알아서' 뭐든 해놓겠다고 했으니 결국 그를 믿는 수 밖에 없다. 정호석은 이상한 사람이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겠다고 했을 때, 어째서 그렇게 평온하고도 차분하게 그 다음 해야 할 것들을 일러줄 수 있었을까.

초췌한 낯의 태형이 여권을 들고 입국 심사대 쪽으로 걸어가자, 여권을 조금 신경질적으로 가져간 심사원이 태형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도장을 두세개씩 찍어낸다. 긴장했던 것과 다르게 태형은 가벼운 크로스백 하나를 메고 계림 공항으로 빠져나왔다. 넓디 넓은 공항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중국은 한번도 와본 적이 없다. 이름만 대어도 다 안다는 수도 베이징, 상하이- 등이 전부일텐데.

계림은 어느쪽에 있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중국 땅덩어리의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은 알았다. 태형은 푹 눌러썼던 후드를 그제야 천천히 벗었다. 누구도 그를 쫓아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까, 이제 겨우 꼬박 굶은 배가 배고프다며 울부짖는다. 주머니 안에 그 동안 태형이 열심히 모아온 몇 달러짜리 지폐가 들어있다.

몇 백 미터 앞에, 태형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네온사인 간판을 밝힌 곳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핫도그다. 치즈를 잔뜩 넣은 핫도그.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이고 배가 고프다. 태형은 뭔가에 홀린 듯 사람으로 북적이는 공항 로비를 걸어갔다. 인파를 헤치고 걷는 태형의 양 옆에 있는 이들이 술렁인다. 어, 라? 태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와. 와…. 태형 역시 술렁이는 인파 속에서 멈춰섰다. 그 순간 그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은 모두 한 곳을 향해 있었다. …해외에서도 이름만 대면 전부 알만한 유명한 연예인들이 바깔라르에 휴양 차 들르는 것도 몇 번 어깨 너머로 보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앗아간 한 점에 선 '남자'는 바라보고 서 있는 것 조차 '기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그 넓은 구이린 공항 내부 라운지에 있는 이들이 모두 멈춰섰다. 한 남자가 홀로 걸어오고 있다.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그가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마저도 느릿한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진다. 길고 매끈한 다리에 달라붙은 블랙 진, 먼지 한 톨도 없는 검은 무광 구두 앞 코. 내딛는 걸음은 여유롭다. 포식자인 맹수들이 사냥 전 느릿하게 자신의 영역을 걷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인간임에도. 보폭이 큰 걸음걸이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다음, 다음 발을 내딛는다.

걷는 것 만으로도 그 주변의 공기가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위험하게' 느껴지는 남자는 이 남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태형의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어, 라? 하지만 점점 더 여기로 가까워, 지는 것 같다?

그 아름다운 남자의 발걸음이 정확히 태형이 서 있는 곳을 향해서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에 숨을 헉, 하고 집어먹었을 때 즈음. 이미 태형의 바로 앞에 그가 서 있었다. 코 끝자락에 서늘한 향기 스쳤다. 딸꾹. 태형은 난데없는 딸국질까지 하는 자신의 입을 손등으로 틀어막았다. 그가 태형이 선 어깨 너머의 핫도그 가판점을 힐끗 바라본다.


"…배고프지 않아요?"


 ---?? 그 남자의 입술에서 나온 것은 태형도 곧장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다. 지금 내게 묻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의 시선은 정확히 태형을 바라보고 있다.


"저, 저, 저한테, 물, 물으신 거에요?"


 그는 태형을 향해 고개를 아주 조금 옆으로 꺾었다. 왜 그리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한 태도다.


"당연히 그 쪽에게 물었지."

"저, 저요?"


태형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꼭, 아주 오래 전에 만났던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든다. …우리 언제 또 만난적 있나요? 바보 같은 질문을 할 뻔했지만 태형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만큼 아름답고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남자를 한번이라도 스쳤다면, 잊을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가 태형의 앞으로 조금씩 더 가까이 걸어온다.


"응. …또 핫도그 쪽에 가고 있네. 좋아해요? 사줄까?"

"에, 예? 아니에요, 저 돈 있어요!"

"하하."


시원하게 웃는다. 아름답고도 위험하게 느껴졌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웃는 방식조차 그 남자 답게 매혹적으로 아름답다. 그는 태형의 앞을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어, 어어? 핫도그 매장 가판 앞에 선 그가 몇 마디를 건넨다. 부드럽고도 억양이 선명하게 들리는 중국어다.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중국인? 뭐지? 그의 손에 치즈 소스가 가득 뿌려진 핫도그가 어느새 들려 있다. 그는 태형을 향해 그것을 건넨다.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저 저 진짜 괜찮아요!"

"-나도 괜찮아. '엔런'에게 이정도는 해야지."

"에? 엔런? 에인-런?"

"그거 알아요? 중국에는 이런 격언이 있어. 처음 만나면 낯설고(一回生), 두 번 만나면 낯익고(二回熟), 세번 만나면 친구가 되고(三回朋)-, 네번 만나면 언제나 친구가 된다(四回老朋)."


우리가 그렇게나 많이 만난 사이인가? 우린 지금 처음 본 사이인데. 역시 만났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 코 끝까지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핫도그를 손에 쥔 태형이 눈을 깜박였다. 배에서 꼬르르륵- 소리가 흘러나온다. 미쳤나봐. 감동적인 멋진 말 하는 사람 앞에서 지금 꼬르륵 소리나 내고.

태형의 얼굴과 귀가 단시간에 붉어졌다. 잔뜩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로 한 숨도 자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 몸은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지만, 말이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태형이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부드러웠다.


"은인이란 뜻이에요. 에인-런. 엔런. 한국에도 이런 말 있지 않나? 은인은 바위에 새겨라."

"…저, 제가…. 제가 저, 그 쪽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저는 그냥 평범한…."

"당연하지. 당신이 내 '언제나 좋은 친구'인 엔런이야."

"그, 그럼 당신은요?"


이 남자의 대화는 도통, 따라갈 수가 없다. 용기를 내어 물은 이름에 그는 그저 태형이 알 수 없는 단어를 내뱉을 뿐이었다.


"난 그냥 '메이바쉬'라고 불러. 그렇게 불러주는 게 좋아."

"메이바쉬요?"


중국어인걸까. 한국인인데 중국어를 잘하는 거겠지? 그는 무슨 일을 할까? 갑자기 나타나버린 사람. 아, 뭐. 모르겠다. 태형의 온 신경은 다시 손으로 향했다. 여전히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핫도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절로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간다. 아, 먹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는 태형을 향해 그가 낮게 웃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웃는 남자다.

'어서 먹어요,'라고 고갯짓하는 남자를 앞에 두고 입을 어색하게 벌리고 한 입 베어물었다. 입 안쪽으로 이미 테형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핫도그 맛이 가득 퍼진다. 우물거리며 꿀꺽이는 태형을 보고 있다, 그는 공항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마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연 같은 거 믿어요?"

"으, 에, 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난다는 것도, 결국 꼬여 있는 끈을 풀어내면 하나의 원이 되고- 반드시 어느 한 점에서 만난다는 것도."

"…."


 꿀꺽. 빵과 소세지를 우적우적 씹으며 넘겼다. 태형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확신하듯 덧붙인다.


"난 그런 거 믿거든."

"예?"

"그러니까 나랑 갈래요?"

"예에-!?"

"나, 잘해요. 뭐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남자지만 그의 한마디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다. 태형은 반쯤 먹다 남은 핫도그를 입에 넣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태형이 서 있는 등 뒤에서 툭 던지는 듯한 말소리가 들린 것은 그 즈음이었다.


"…차 구해오라고 지랄하면서 보내드만. 남자를 또 꼬시고 있나."


히익. 태형의 어깨가 단번에 움츠러들었다. 파들파들 떨며 고개를 돌렸다. 불퉁한 목소리는 이미 잔뜩 날이 서 있었고- 태형도 종종 듣곤 했던 사투리와 같은 억양이었다. 삐딱하게 선 남자는 꽤 요란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양 쪽 귀에 뚫은 피어싱, 새까만 머리카락. 그리고 쌍커풀 없이 옆으로 조금은 길게 뻗은 눈매는 끝자락이 위로 치켜올라가 있다.

편한 차림의 그는 태형을 노려본다. 윽. 뭐, 뭐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대화의 내용으로 봐서는-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진다. 설마, 애인사이? 저 둘이? 에. 태형의 앞 쪽으로 메이바쉬가 한 걸음 걸어나온다. 완전 고마워요, 메이바쉬! 그의 어깨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아. 너 정말 질투 많네."

"…이 녀석이 니가 말한 그 놈이고."

"내 연인은 아니지만 은인이긴 하지."


대화가 제멋대로 튄다. '지민'이라고 불린 남자는 제법 도톰하게 올라붙은 입술 끝자락에 힘을 주곤 태형을 노려본다. 히이익. 태형은 메이바쉬의 등 뒤로 몸을 움츠렸다. 방금 전 먹은 핫도그가 목에 얹힐 것 같다. 이래서야, 잘 챙겨서 먹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호석은 아직 멀었을까? 반쯤 씹다 만 핫도그를 다시 씹는다.


"은인? 저 시시해 보이기만 한 쪼끄만 얼라가?"

"-오야, 여 있었는갑네."

 

동시에, 태형이 서 있던 등 뒤에서 가볍디 가벼운 인사가 들려왔다. 태형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 눈 앞에는 - 한 달 만에 보는 것임에도 바로 어제 만났던 것처럼 단숨에 선명해진 호석이 가벼운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는 동그란 알을 가진 선글라스를 코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치곤 헐렁한 바지 안에 양 손을 찔러넣곤 여유롭게 서 있다. 호석이 태형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짓는다.


"핸드폰 연락은 받지도 않고, 사람 피말리게 하는 사람이시. 이 때쯤이면 도착했을 것인디- 입국장 안쪽에서 이리저리 돌아 댕기다가 배 출출해져서 여 와봤당께. -사람이 딱 이상하기맨치로 발길 닿는대로 가다보면 요로코롬 만나는디."

"와, 와 있었어요?"

"당연히 와 있었지라. 그라게 전화해서 우는디. 먼저 와 있어야제."


호석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그리곤 고개를 옆으로 까닥이며 지민과 메이바쉬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거, 그짝이 말한 시시하고 쪼끄만 얼라는 내 쪽 사람인디."

"…."

"그 짝은 어디서 왔으까잉? 우덜은 우덜이 갈 길이 바쁜께로. 여서 기분 좋게 빠이빠이- 하고 서로 갈 길 갑시다. 어찌요?"


호석이 태형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지민이라던 남자는 턱을 조금 치켜들곤 호석을 노려본다. 이제껏 수 없이 많은 녀석들과 직접 주먹이든, 칼이든 맞대고 훈련해 왔기에 꽤나 쉽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전라도의 사투리 쓰는 저 녀석.

유들유들하고 호리호리하게 가벼워 보여도, 만만하거나 쉬운 녀석은 절대 아니다. 웃음기 하나 없는 눈으로 지민을 보고 있을 뿐이다. …분명 지민이 어떤 행동을 취하면 그 역시도 제대로 반응을 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지민 역시 주머니 안 쪽에 찔러넣었던 한 쪽 손을 움찔거린다. 이번에는 메이바쉬가 지민을 막아섰다.


"- 아직은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냐."


지민에게 속삭인다. 머고. 내가 저 자슥보다 몬하다는 기가? 지민의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타니파의 박지민이라는, 나름대로 자신이 스스로 지켜왔던 수식어가 갈갈이 찢긴 기분이다. 지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순간 잔뜩 힘이 들어간 지민의 뒷 목을 메이바쉬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부드럽게 매만진다. 그가 묘하게 속삭이는 것 같다.


"괜찮아. 내 뱀은 강해지니까."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웃는다. 지민은 이를 아득였다. 뭐가 강해지니까냐. 어린애 취급이나 하고 있으면서. 일단은 홍콩에 계속 머물렀다가는 구룡회 놈들이 귀찮게 굴 것이 분명했으니 당장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배를 얻어타고 여기까지 흘러왔더만. 이제는 '조금 놀다 가자. …만날 사람이 있거든.' 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겨놓고 사람을 개처럼 부려먹고 있다.

…싫은 티를 팍팍내면서도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문제긴 하지만. 저 남자를 여기서 놓쳤다가는, 영영 만나지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래서다. 뱀은 한번 문 것은 입 안에 삼켜서라도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던 제 아버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던 말도 왜 그랬는지 이해가가기도 하고. 지민은 한껏 달아올랐던 숨을 스스로 진정시켰다.


"니는 어데서 왔나?"


 지민의 물음에 호석은 가볍게 답했다.


"그 말투 쪼매 더 자세-히 들어보니까 말인디. 니 경상쪽이제? 경상쪽이라믄 내 이름이랑 들어봤을랑가는 모르겄네. 미키파 정호석이라고."

"아."


지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들려오는 풍문으로만 전해듣고 있었던 녀석의 이름이다. 지민의 반응을 보던 그가 씩 웃는다.


"요로코롬 눈썹 꿈틀하는거 보니까, 내 이름 들어봤는갑제. 여서 본 것도 인연인디, 통성명이나 하잔께. 그 짝 행님은 이름이 머시여?"


지민과는 한 살 터울이라던- 전라쪽 패권 다 잡고 있던 광주 미키파의 들개. 회칼을 자기 손에 붙여둔 것 마냥 자유자재로 잘 다룬다던 칼잡이. 타니파에도 건드리지 않는 부분들이 한 두개쯤은 있다. 쉽사리 손 댈 수 없는 이들도. 바다 건너 홍콩 마피아인 구룡회 놈들이야, 간부들 죄다 퍽퍽 죽여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땅 위에서 땅따먹기하듯 선 그어놓고 살고 있는 '미키파' 놈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제 아부지조차도 '건드리지 말라.'라고 엄포를 놓았던 곳이었으니까. 물론 '저 쪽'도 타니파의 박지민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지민은 호석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름'을 씹어뱉었다.


"박지민."

"왐마. 타니파 아들래미 아녀. 니 쬐까 거시기허게 유명하드라잉. 그 걸걸한 타니파 할배 핏줄 이어받은 유일한 놈이라매? 할배 뒤지믄 니가 타니파 요거 될라냐잉?"


 지민의 이름을 듣자마자 호석이 엄지를 치켜들어보이며 말을 이어간다.


"한국도 아니고, 중국 남단의 공항에서 타니파를 다 만나부네."


호석이 가볍게 덧붙인 말에 지민은 짤막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건 제가 할 소리다. 이건 무슨 일이고. 꼭- 누군가가 꾸며내는 극에 놀아나는 기분이 든다. 이미 판 위에 올라온 장기말이 된 기분. 이 판에서 내려갈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움직이는대로 '움직여야만' 이기든 지든,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지민이 거역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지금 이 거대한 장기판을 움직이고 있다.


"…대체 먼 일이고. 이게. "

"---모든 게 '정해진 것' 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


메이바쉬가 답한다. 그를 제외한 세 명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뭔가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시작되고 있는 기분이다. 호석은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메이바쉬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바라볼 뿐이다. 메이바쉬는 북적이는 공항의 한 구석에서, 그들 셋을 향해 한 이국의 문장을 빠르게 내뱉는다.


"Alea iacta est."

"…."

"주사위는 던져졌다. - 로마의 장군인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진격을 결정하며 한 명언이야."

"…."

"우린- 구이린의 '강'을 건너야 해."


메이바쉬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도, 떠올리지도 않는 이들을 향해 그 다음에 해나가야 할 일들을 판단하고, 전달한다. 신은 분명 이 모든 판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건 신과 하는 '장기'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움직여서 결국 신의 발치에서 '장이요-!'라는 말을 외쳐야 할 것이다. 메이바쉬인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 동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지식과 정보, 힘, 경험을 전부 끌어모아 이겨야만 하는 신의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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