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들은 대부분 즉흥적으로 시작한다.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일단 쓰고 보는 식이다. 그래서 지금 가장 핫한 신보들을 듣고 체계적으로 리뷰하는 일은 그다지 없다.


오늘의 글도 아주 쓰잘데기 없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게 뭐냐면, 이 세상에 나온 많은 노래가 있을 것 아닌가. 그 중 비슷한 제목의 곡들이 어떤 가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표현되었을까? 가 궁금했다. 심지어 그게 데뷔곡이라면? 오우, 구미가 좀 당기는데.


그래서 오늘은 공교롭게도 같은 제목으로 데뷔한 두 그룹 중 한 그룹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일단 두 그룹은 더보이즈와 TREASURE인데, 선배 대우 해주기 위해 더보이즈부터 시작하겠다.

덧붙여 더보이즈의 <소년 (BOY)>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프듀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었기에 프듀 이야기도 생각보다 많이 추가했다. 프듀와 관련된 나름의 고찰에 관심 있다면 2) 프듀와 주학년의 쓰임으로 바로 넘어가시라.




더보이즈 - 소년 (BOY)



1) 일차원적


방금 데뷔한 신인 그룹 더보이즈의 데뷔곡명은 소년이고 무대 의상으로 교복을 입고 있다. 일부러 교차 편집 무대로 가져온 이유가 거짓말 아니고 매 무대에서 교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박수. (짝짝짝)


옷 진짜 못 입는 사람들은 패션센스는 차치하고 TPO도 못 맞춘다. 더보이즈는 적어도 데뷔무대에 TPO는 맞추고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일차원적이라는 말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곡이나 가사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일차원적이다. 

소년들이라는 그룹이 소년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상황. 그룹명만 한국어로 바꿨을 뿐인데 갑자기 북한 그룹 같아졌네. 미안하다 소년들.


크래커가 정석적인 컨셉으로 더보이즈를 데뷔시킨 이유는 아무래도 신인 때 소년미 있는 컨셉과 무대를 못하면 손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정말 그것뿐일까?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곳에 또 다른 결론이 있다고 생각한다.



2) 프듀와 주학년의 쓰임


프듀는 대국민 사기극이었지만 아이돌 오타쿠 판에 남긴 의의가 하나 있다. 성인 아이돌 팬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킨 것이다. 라떼는 아이돌 덕질은 무조건 10대 때 떼고 와야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방에 아이돌 포스터가 붙어있으면 정신 못 차렸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하지만 프듀2가 시작 되고 나서 20대건 30대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모두 프듀를 봤다. 오바 좀 보태서 문자투표 영업도 잘 안 먹혔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원픽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프듀는 성인 아이돌 오타쿠들에게 면죄부를 증정했다. 어떤 20대 팬이 '앞으로 프듀 안 본 자만이 나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외치자 아무도 던지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이렇게 대국민적 사랑을 받은 프듀2의 파이널까지 올라간 주학년 군이 바로 더보이즈의 멤버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 기억이 맞다면 학년 군은 프듀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지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내 새끼 빼고는 다 적인, 그야말로 무법 지대 aka 원조 광야 (KWANGYA) 프듀판에서 깔 거리를 찾는 건 숨 쉬는 것만큼 쉬웠고 주학년 군은 실력과 태도 논란의 표적이었다.

하지만 프듀라는 광기의 판이 끝나자 조금 냉정해진 팬들은 주학년 군이 그만큼이나 욕 먹을 짓은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도 주학년 군이 진짜로 싫었다기보단 11자리 밖에 없는 워너원의 한 자리를 내 픽이 아닌 그가 차지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위협적인 팬덤과 기세를 보여줬던 것이다.

그런 그가 더보이즈 라는 그룹으로 데뷔를 하였으니 프듀 좀 봤다 싶은 사람들은 더보이즈의 무대를 기대한다. 호재는 프듀의 화제성이 컸다 보니 프듀 좀 봤다 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오조오억명 있다는 것? 주학년 군의 팬도 있지만 그때 그 학년이가 얼만큼 늘었는지 보자 정도의 가벼운 마음도 물론 섞여 있었다.


이런 전 세계적 관심을 크래커는 놓칠 수 없었다. 신생 회사에서 나온 첫 보이 그룹. 이들이 뜨려면 어떻게서든 사람들의 가벼운 주목을 팬심으로 전환해야 했다. 더보이즈를 맛집으로 만들려면 사람들이 더보이즈에 찾아온 이유를 충족시켜줘야만 한다.

프듀 출신 주학년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이미 한번 프듀라는 늪에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더보이즈의 무대에서 프듀를 느끼면 어떨까? 입덕문이 활짝 열리는 길이 아닐까? 결국 데뷔곡의 목적이 프듀가 끝난 후 허해진 마음을 달랠 길 없던 라이트 팬들을 긁어 모으는 일이 된 것이다. 


가사에 대한 이야기는 3)에서 할 것이기에 의상 얘기 먼저 하자면 소년 활동 내내 통일된 교복만을 무대 의상으로 입힌 건 노림수가 분명하다. 프듀는 4시즌 내내 참가자들에게 교복을 입혔으며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이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12명의 멤버 (현재는 탈퇴한 활 포함) 중 주학년 군의 활동명만이 풀네임인 것도 각이 나온다. 팬이 아닌 입장에서 보았을 땐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멤버 이름의 통일성을 위해 주학년 군은 당연히 학년이 되어야 했지만 크래커는 주학년 군의 성을 떼서 데뷔시키면 프듀에서 쌓아온 인지도가 전부 무용지물이 될 거라 생각했나보다. 아니, 우리를 빠가사리로 보는 거야 뭐야. 학년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내가 다른 멤버 팬이었다면 약간 킹 받았을 것 같다. 가뜩이나 흔한 이름이어서 서치 힘든 내 새끼는 왜 두 글자고 학년이는 풀네임인 거죠? 심지어 이름 두 글자는 양반이다. 데뷔 당시 더보이즈엔 예명이 한 글자인 멤버가 세 명이나 있었다. 큐뉴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올립니다...



3) 당신의 소년이 될 준비가 된 더보이즈



프듀의 표어가 혹시 뭐였는지 기억나는가.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 였다. 나는 이 문구가 참으로 교묘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내가 투표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당위성과 책임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미래가 내 손에 달린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엄밀히 말해 내 한 표 때문에 누군가가 붙거나 떨어지는 일은 없다. 근데 마치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실수로 하루치 투표를 빼먹으면 엄청난 죄를 짓는 것 같고 마치 나 때문에 내 새끼 데뷔길이 막히는 것만 같은 "느낌". 


'난 너의 boy, boy, boy 나를 찾아줘', '너만을 난 기다려왔어 I'm the only one your boy' 같은 가사들은 자연스레 프듀의 표어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 프로듀서로서 느꼈던 감정, 내가 저 아이의 미래를 응원해야 할 것만 같은, 어딘가 내 힘을 빌려줘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모성본능을 자극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더보이즈의 상황이 이런 팬들의 마음을 더욱 자극한다. 더보이즈는 (그래봤자 로엔 계열사의 아이돌이지만) 웬만한 중소 기획사에도 있는 선배 그룹 하나 없다. 레알 혈혈단신인 것이다. 내 새끼들 불쌍해서 어떡해, 내가 챙겨줘야지 가 절로 입에서 나온다.

로엔은 레알로 더보이즈 하나 챙기기도 부족한 작은 기획사지만 이런 짠내나는 상황이 의도치 않게 더보이즈를 도와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번외) 프듀의 불공평함


프듀라는 오디션이 광기로 물들었던 이유는 101명의 연습생이 떼거지로 나온다는 비주얼 쇼크에도 있지만, 1차부터 파이널 생방까지 불공평함이 전제되어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저지른 대국민 사기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봐왔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생방송 파이널에 진출하기 전까진 참가자들의 실력을 바탕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실력 말고는 평가대상이 없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참가자의 외모도, 집안 배경도, 심지어 인기까지도 가십 거리의 일종이지 생방송 진출의 당락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었다.


실력이 있으면 살아남는다 라는 당연한 전제를 개박살 내버린 게 바로 프듀였다.

프듀에서 실력은 여러 가지 평가 요소 중 단 하나일 뿐이며, 내 새끼가 아무리 춤과 노래를 잘해도 내 새끼보다 한참 떨어지는 실력의 다른 연습생이 충분히 붙는 구조였다. 한국인이 이런 억울함 못 견디는 거 느낌 빡 오지 않나.

내가 조금이라도 손을 놓고 있으면 내 픽이 다른 연습생에게 밀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자극 + 내 새끼보다 부족한 연습생이 높은 순위에 있다는 억울함이 합쳐져 전에 없던 과몰입 현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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