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너와 나만 남겨진다면 어떨까?”


 처음 마주한 날 꺼낸 이야기치고, 너무 급진적일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걸까? 


 “무슨 생각해?”


 나를 바라보며 생긋 웃는 얼굴에서는 기쁨이 비친다. 하지만 나는 그 눈에서 집착을 확인했다. 집요하게 나를 따라 붙는 눈빛에서 짐작해야 했을까?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고립된 이 곳에 홀로 남겨진 나와 그녀의 이야기다. 


*****


 “비상사태를 선포 합니다.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 쇄설물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동시다발적 폭발로 인해 항공기 운항은 중단되었고, 주요 도로 또한 통제되고 있습니다. 되도록 실내에 머물며, 창문을 닫고 대기해주십시오. 노약자를 비롯한 국가 지정 대피 1순위 부터 순차적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군경과 공무원의 지시를 따라주십시오. 공사장 인근이나 등산로 인근은 낙하하는 물체와 낙석 우려로 접근이 불가합니다.”


 사실 처음 사이렌을 들었을 때, 여느때처럼 민방위 훈련인 줄 알았다. 화산이 활동한다기에 그런줄만 알았다. 화산은 나와 멀리 떨어진 곳이라 큰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후지산의 폭발로 일본이 사라질 때 예상했어야 할까? 이제는 옛 나라가 되어버린 일본식 술집에서 만났던 여자가 내 옆에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어디서 방송하는 거지?”

 

 흐린 하늘을 응시하며 창문가로 다가갔다. 아마 가두 방송일 것이다. 며칠전부터 군용트럭 위에 스피커를 올리고 방송을 하고 있다.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틀자마자 붉은 빛이 들어온다. 동시에 울리는 경고음에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 시끄럽다.”


 여자가 음악을 틀었다. 밖에서 울리는 사이렌을 무시하겠다는 듯, 어두운 집 안을 음악으로 채웠다. 화산 폭발 이후, 하늘은 늘 흐리다. 그래서 기분마저 흐려진다.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는 공기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집 안 갈 거야?”

 “어떻게 가? 도로 통제 중이라는데?”

 “걸어서라도 가야지…. 이러다 까딱하면 둘이 갇히겠어.”


 내 우려는 안중에도 없는지, 여자가 내 속옷을 입고는 티셔츠를 주섬주섬 입었다. 비상 급수 시스템이 발동해 빨래를 못한지 꽤 됐다. 어제 먹다 흘린 라면의 흔적이 짙은 티셔츠를 입고, 여자는 생긋 웃기까지 했다.


 “여기서 이렇게 둘만 있는 게 싫어?”

 “그런게 아니라…. 걱정도 안 돼?”

 “뭐가?”

 “이러다 순번 놓쳐서 대피소 멀어지면…. 어떡해?”

 “별 걱정을 다하네?”

 

 자신이 쓰고왔던 안경을 낀 여자가 머리를 틀어올리며 말했다.


 “소풍갈래?”

 “뭐?”


 밖에 나가지 말라는 방송이 지금 오분째 반복되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린걸까?


 “산으로 가면 돼.”

 “무슨….”

 “낙석의 위험이 적은 곳. 즉, 밀림에 가까운 곳.”


 여자가 하얀 종이를 끌어오더니,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피소에 가면? 지금 이 사태가 지속된지 오래야. 이미 국가 정상과 상류층은 국외 대피 시작했고….”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린다.


 “비행기가 못 뜨는데?”

 “서해로 배는 뜰 수 있어.”


 여자가 중얼거렸다. 뭐하는 여자인지 진작 물어봤어야 한다.


 “남은 사람은 살아야지? 서해로 가는 수원지. 그 인근에서 버티면 돼.”

 “상수도 시설도 보안 강화된 거 몰라? 지난주에 현장 사살 있었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예의 그렇듯 각부처의 높으신 나리들은 잠적을 해버렸고, 얼마전 선출된 대통령은 일주일 쯤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하다 사라졌다. 뉴스는 여전히 생산되지만, 재난 방송에 그치고 만다. 높으신 분들이 일찌감치 줄행랑을 치며 만들어둔 ‘국가 지정 대피 순서‘만 우리 곁에 남았다.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나만 믿어.”


 의기양양하게 웃는 여자. 아직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우리는 몇번의 밤을 함께 했고, 이동금지령이 내리며 동거인이 되어버렸다. 보급받은 즉석식품은 1인분이었고, 여자와 나는 식사량을 조절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성욕은 남아서 매번 한 침대에 눕는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에, 그저 여자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


 “어디까지 갈 거야?”


 내 질문에 여자는 답이 없다. 우리는 길도 아닌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 한참이나 올라온 것 같은데, 여자는 쉬지 않는다. 다리도 아프고, 나무가 빽빽하고 잎이 우거져서인지, 빛이 들지 않는다. 폭발 이후 어두워진 하늘, 햇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기분이다.


 “다 왔어.”


 여자가 나뭇가지를 오른손으로 치워낸 곳에는 낡은 대피소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녹슨 문을 겨우 열어내자,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 내가 마주한 것은 몇년을 묵었는지 알 수 없는 퀴퀴한 먼지 냄새였다.


 “들어가도 돼?”

 “이정도면 쓸만해.”


 먼저 들어간 여자가 라이터를 켠다. 연초를 태우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우리 집에 머물면서부터는 담배를 사러 나갈 수 없어서인지 몰라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하긴, 창문 틈으로 밀려드는 매캐한 냄새를 직접 맡고 싶지 않았겠지. 여자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내내 소매로 입가를 가렸던 나를 향해 돌아선다. 어둠 속에 홀로 붉게 핀 담뱃불을 홀린 듯 보던 내게, 붉은 점이 가까워졌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물만 마실 수는 없어.”


 여자의 진지한 목소리 앞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가방에 가져온 모든 걸 꺼내고 정리를 하자.”


 눈에 띄지 않으려 일부러 사람들이 적은 시간을 택했다. 그 와중에도 오가며 닫힌 가게를 들러 온갖 짐을 챙겼다. 여자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마 몇번 내려가야 할 거야. 그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하자.”


 방긋 웃는 미소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비친다.


*****


 “내가 다녀올게. 기다리고 있어.”


 내 이마에 입을 맞춘 여자가 상냥한 손길로 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응.”


 언제고 여자가 떠나기를 바라던 내가 이제는 언제나 여자를 기다린다. 우리는 아직도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언제쯤 내게 이름을 알려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이곳이 내 마지막 쉼터가 될 것 같은 기분에 재촉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낭만적인 관계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세상의 끝, 서로만 남을 수도 있으니까. 여자가 처음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 


 다리가 욱신거렸다. 지난번에 산을 내려갈 때 다쳤는데…. 몇번이고 다녔던 길에 덫이 있을 줄을 몰랐다. 야생동물을 잡는 불법 덫이라던데, 나를 찾으러 내려온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여자는 전날 비가 와서 쓸려내려왔을 거라 했다. 여자의 손에 이끌려 다시 돌아온 쉼터에서 나는 여자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쉼터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커튼을 쳤다. 말이 커튼이지, 여자가 어디서 주워온 낡은 천조각이다. 보아하니 현수막이었던 것 같은데, 여자는 제법 재주가 좋아서 이것저것 가져오고는 했다. 


 그때 봤던 사람들은 살아남았으려나? 대피소에서 나왔고, 다른 대피소로 이동중이라 했는데…. 그 사람들은 내가 있는 곳을 궁금해 했다. 하긴, 제한된 급수로 꾀죄죄하고 푸석푸석하던 그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림이었으니까…. 그날 쉼터로 돌아온 나는 여자에게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아마 초등학교 강당에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들에게 내가 라이터를 빌려줬다고, 혹시 나가서 기회가 된다면 받아오라고. 여자는 놀라워했고, 이제 무법지대가 된 산 아래를 조심하라 당부했었다.


 그 다음에 내려가다 당한 사고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저 아래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잔뜩 가져다 둔 종이 뭉치를 집어들었다. 저마다 자신의 대피소로 사람을 모으고 있다. 법이 사라진 곳, 국가가 기능을 잃은 곳은 저마다의 세상이 생겨났다. 아마 그때 그 사람들도 조금 더 큰 곳으로 가던 길이었을 거야.


 이제는 해가 든다. 이 사실에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여자는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다. 나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니…. 


 어릴 적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던 마음으로 여자를 기다린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직전에 녹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가 나를 다정히 토닥이고 가져온 짐을 내리기만 기다린다. 나는 여자를 기다리며, 창틈으로 스며드는 빛에 종이를 비추어 본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여자와의 짧은 대화를 제외하면 말을 하는 경우는 손에 꼽기에 혼잣말이 늘었다. 종이를 띄엄띄엄 읽어가던 내 손에서 종이가 팔랑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내가 읽은 내용이 이해한 내용과 같은지, 괴리감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붉게 타오른 빛이 내 발치를 덮는 것을 가만히 보던 나는 멀뚱히 서서 여자를 기다렸다. 다시 읽어달라고, 당신이 본 내용이 내가 읽은 내용과 같은지 궁금했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 들어온 여자는 붉어진 내 눈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다리가 아픈가?”


 여자의 다정한 손길을 살포시 건져내며 물었다. 저 아래 침전된, 꽤 오래된 질문이 둥실둥실 떠올라서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읽어줘.”


 내가 주워올린 종이를 여자는 한참이나 읽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는 듯, 몇번이나 읽고는 이제 중얼거리던 여자가 웃었다.


 “내려갈래?”

 “어떻게 된 거야?”

 “모르기를 바랐는데.”


 여자는 태평하게 중얼거리며,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본다. 잠시 이 핏빛을 즐기겠다는 듯, 얼굴 가득 붉은 빛을 받던 여자가 눈을 떴다. 


 “설명 해줘.”


 가벼운 질문에 답하는 사람처럼, 여자는 가방 가득 채워온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하나씩 꺼내두며 답했다.


 “이 세상에 너와 나만 남겨진다면 어떨까?”


 장난스러운 가정 같다. 옛날, 연인과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며 주고받던 질문처럼…. 여자는 비적비적 쌓아온 미소를 내보인다. 


 “무슨….”

 “궁금하지 않았어?”

 “말해.”

 “너와 내가 둘만 남는다면, 내가 네 세상의 전부라면 어떨까 궁금했어.”


 여자와 나는 이제 옛나라가 된 일본식 술집에서 마주쳤다. 처음 본 여자에게 이토록 빠지게 될 줄은,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운명을 맡기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이런 질문이 생겼나요?


 “기억 못하네.”


 여자는 이제 막 꺼내둔 따스한 밥을 내 무릎 위에 올렸다.


 “밥부터 먹자.”


 한 번도 의심하지 못했다. 잿빛 하늘이 사라졌을 때도, 저 아래 모든 사람이 죽었을 거라던 여자의 말도, 때마침 마주한 다른 사람들의 존재도, 이제 막 읽어낸 소식도…. 더불어 따뜻한 밥 한 주먹조차…. 의심도 못했다.


 “무슨 생각해?” 


 여자의 미소를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내 세상은 이곳이니까. 나는 바보처럼 이곳에 고립되었다.


  집착, 순수한 집착은 처음 마주한 익숙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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