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버스

※하단은 소장용 결제창입니다




구치님 감사합니다💚










여주와 정우가 가이드 훈련에 나가 있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은 세 시간. 그동안 팀원들은 무엇을 하느냐.




“시뮬레이션하러 갈 건데, 같이 갈 사람?”


“나.”




도영과 재민처럼 훈련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고,




“미리 성묘를 갈 장소를 알려주시면 저희가 코스를 좀 짜보려고요.”


“네. 그리고 장소를 미리 알고 있어야 교통 통제도 더 편해요.”


“그걸 왜 방까지 찾아와서 묻고 지랄인 건데.”




여주에 관한 문제로 텐을 괴롭히는 영호와 태일 같은 사람도 있고,




“누나랑 형이 먹어보고 싶다고 했던 게 이거야. 바클라바.”


“이거 센터에서는 안 팔아. 아는 애한테 밖에서 사다 달라고 해야 겠네.”




내일 여주와 정우에게 먹일 후식 때문에 바삐 움직이는 성찬과 재현 같은 사람도 있다.


아니면 트레이닝룸에서 체력 훈련이나 능력 운용 훈련을 할 때도 있고, 여주처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여주가 꾸며놓은 게이밍룸에서 게임을 할 때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소파 거실에 말라비틀어진 콩나물 같은 몰골로 누워 여주가 보고 싶다고 염불을 왼다든가, 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여유로운 휴식 시간을 갖는다든가.


부지런히 할 일을 하긴 했지만 다들 심심해했다. 왜냐면 1팀 숙소는 여주와 정우가 없으면 적적한 사람들 천지기이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에게 <내일 임무 나가는 사람? 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재현은 터벅터벅, 소파로 걸어와 앉는 영호와 태일을 보곤 픽 웃었다.




“본부장님 뭐라셔?”


“어, 서류로 뽑아주신대.”

“그래?”

“얘기 들어보니까 진짜 전국 각지를 다 돌아다녀야 할 것 같더라.”


“우리 팀에 도영이 형이 있어서 다행이네.”


“그러게나 말이야.”




우리 팀에 순간이동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느껴지는 아찔함에 태일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을 보고 큭큭 웃던 영호가 재현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넌 뭐 하는 거야? 여주 앨범 정리?”

“어, 그건 아까 했고, 내일 임무 나가는 애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메시지 보내는 중.”

“부탁?”

“선배랑 정우가 바클라바를 먹고 싶다고 했대. 근데 센터 안에는 그거 파는 곳이 없어서, 밖에 나가는 애한테 부탁 좀 하려고.”

“우리 애들이 바클라바를 먹고 싶다고 했어? 언제?”

“아까 테라스에서 저거 막걸리 섞을 때 그랬어.”




성찬이 손을 살짝 들며 대답했다.




“막걸리 섞고 있는데 바클라바가 먹고 싶다고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더라고.”

“속삭여?”

“어, 둘이 양옆에서 그랬다니까?”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말하던 성찬은 “왜 그랬는지 이유도 모르겠어. 하여튼 조르는 방법도 특이해.” 하고 중얼거리다 리모컨을 찾아 들었다. 마침 TV에서는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밝혔습니다. 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날 새벽에 이루어진 반정부 단체의 기습 공격은 비겁하고 파렴치한 공습이었다며 반정부의 괴멸을 대대적으로 선포한바…”]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난리네.”

“그래도 오스트리아는 이제 다 끝나가네. 반정부가 새벽에 기습 공격을 했는데도 사상사도 별로 없고 오스트리아 정부랑 센터도 멀쩡한 걸 보면.”

“그러게. 이번 기습 공격이 마지막 발악이었나 본데?”




소파에 늘어지듯 앉아 TV를 보고 있던 태일이 영호에게로 시선을 스윽 돌렸다.




“아직도 밀항하는 놈들 많대?”


“많대. 그냥 밀입국 자체가 많아. 저번엔 비행기 꼬리에 매달려서 온 놈도 잡았다고 했으니까.”

“그거 미친놈이네.”

“미친놈이니까 밀입국도 하는 거지.”

“안 그래도 저번에 선서경 만났는데, 새벽에도 출동하느라 요즘 등골이 휜다더라.”


“그쪽 요즘 신혼 아냐? 각인 신청서 냈다며.”

“어, 냈어.”


“괜히 미안해지네…….”




입맛이 쓰다며 입으로 쩝 소리를 내는 재현이었다. 영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A급들이 잘 버텨주고 있으니까 아직은 괜찮아.”

“그래도 우리 팀에서 하루에 한 명 정도는 임무 나가도 되지 않나? 밀입국자 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한 시간도 안 걸릴걸?”

“으음… 아냐, 안 돼. 이제 날짜가 코앞이기도 하고.”

“9일 남았지?”

“어. 진짜 조금만 더 버텨주면 돼. 8월 6일만 잘 넘기면 그다음부턴 우리가 등골 휘어라 일하면 되고.”

“일 다 끝나면 A급들한테 휴가 좀 주라고 그래.”

“안 그래도 이태용도 그 소리했어. 보너스 두둑하게 챙겨주고 휴가도 좀 줄 거래.”




A급이면 나도 포함되나? 우스갯소리를 내뱉으며 끌끌 웃던 태일이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VVVIP 병실에 설치해 놓은 센서 알람이었다. 폭주의 여파로 인해 실신하듯 잠들었던 지성이 깨어난 모양이다.




“나 VVVIP 병동에 갔다 올게.”


“지성이 일어났어?”

“어어. 가서 상태 좀 보려고.”

“그래, 갔다 와.”




고개를 대충 끄덕인 태일이 소파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 태일은 숙소에서 중앙 건물까지 걸어가는 동안 핸드폰에 연동된 모니터링 화면을 살폈다. 맥박도 정상, 혈압도 정상, 심박도 정상, 체온도 정상. 산소포화도까지 모두 정상이다. 병실에 가면 동공 반응만 확인하고…




“……흠.”




눈매를 가늘게 좁힌 태일이 눈동자를 좌우로 느리게 굴렸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걸어가는 태일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




어깨에 붙어 있던 패치를 떼어내던 지성이 멈칫했다.




“뭐라고?”




그 물음에 모니터 화면을 보며 태블릿에 무언가를 끄적이던 태일이 그랬다.




“집에 가도 된다고.”




태일은 여주와 약속한 것이 있다. 바로 지성의 중독 지수가 0.2점대, 그러니까 0.29점만 되어도 지성을 퇴원시켜주기로. 그리고 현재 지성의 중독 지수는 0.28점. 그의 퇴원은 오늘부로 확정됐다. 참고로 통증 수치는 24다.




“앞으로는 매일 오후 3시까지 여기로 오기만 하면 돼.”

“…….”

“폭주 시간대에 너는 여기 있어야 되거든. 진통제도 투여해야 되고 폭주할 때 MRI 검사도 계속해야 되는데,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집에서 하기가 좀 그러니까.”

“…….”

“그렇다고 선생님 방에 MRI 기계를 들여놓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태일이 태블릿 펜을 윗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태블릿 화면을 옆으로 슥슥 넘겨보던 그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며 화면을 끄고 지성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패치를 떼어내던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태일의 한쪽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여태 옷도 안 입고 뭐해.”

“…….”

“야.”




그가 지성의 귓가에서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퍼뜩 정신을 차린 지성이 얼떨떨한 얼굴을 해서는 그를 올려다봤다.




“……나 퇴원하라고?”

“어. 퇴원하라고.”

“……퇴원해?”

“어. 하라고.”




했던 말을 왜 자꾸 하게 하냐며 타박하는 태일이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지성이 부산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짐도 안 챙겼는데…….”

“짐 챙길 게 뭐가 있어. 어차피 너 여기 매일 와야 된다니까.”

“……진짜 퇴원하라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 했던 질문을 계속 반복하는 지성이었다. 태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퇴원해. 네가 안 나가면 내가 내쫓을 거야. 선생님이랑 한 약속 어기기 싫어.”

“…….”

“네 옷이랑 선생님이 선물해준 인형은 내가 챙겨갈게. 나머지는 나중에 통원 치료까지 다 끝나면 챙겨가면 되니까 두고 가.”

“…….”

“그리고…….”




숨을 길게 내뱉은 태일이 손을 뻗어 지성의 손목을 잡아 올렸다. 주머니에서 꺼낸 아주 작은 주사위 모양의 특수 열쇠가 제어 수갑의 잠금쇠를 풀었다. 툭, 그리고 툭. 지성의 손목에 걸려 있던 제어 수갑이 침대 위로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이건 앞으로 이 안에서만 차고 있으면 돼.”




눈꺼풀을 느리게 여닫던 지성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손목에 족쇄처럼 달려 있던 수갑이 없다. 느낌이 이상했다. 여주와 데이트를 할 때를 제외하면 제어 수갑은 언제나 자신의 손목을 옥죄고 있었는데.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더욱 아래로 향했다. 침대 위에 떨어진 수갑을 향해서였다. 그가 수갑을 눈에 담은 건 아주 잠깐이었다. 잽싸게 수갑을 수거한 태일이 주머니에 쑤셔 넣었기 때문이다.


지성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태일은 뭘 보냐고 뻔뻔스레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허. 실소를 흘리며 제 얼굴을 버석하게 쓸어내리던 지성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인상을 굳히더니 이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누나는?”

“아직 몰라.”

“어딨어?”

“가이드 교육관 체력훈련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내려온 그가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태일이 간발의 차이로 지성의 팔목을 붙잡았다.




“뭐야, 왜.”


“옷 입고 가, 옷!”

“…아.”




그제야 자신이 여태 반라의 상태였다는 걸 알아챈 그가 어깨에서 달랑거리는 패치를 아무렇게나 잡아 떼어내곤 벗어놓았던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지성은 티셔츠를 급하게 입으며 병실에서 뛰쳐나갔다.


문을 어찌나 세게 열어젖혔는지, 쾅!! 커다란 소음이 났다. 문짝도 약간 금이 간 듯싶다. VVVIP 병실 문이라 쉘터만큼은 아니어도 튼튼한 문짝이었는데.


태일은 살짝 기운 것 같기도 한 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살살 저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귀와 어깨 사이에 핸드폰을 끼워놓고 옷장 안에 있던 지성의 옷들을 챙기던 태일이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 문 닥. 왜?] 하는 익숙한 목소리에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 서 팀장. 지성이 말인데…”






























“그래서 여기로 바로 온 거라고?”

“응.”




정우의 물음에 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지성의 품 안에는 어깨를 한껏 웅크리고 있는 여주가 안겨 있었다. 간혹가다 어깨가 들썩이고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울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주를 바라보던 정우가 표정을 굳히고 지성을 노려봤다. 야, 너는 왜 말도 없이…! 그러다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손을 휘적거렸다. 아냐, 아냐… 퇴원한 건 좋은 거지…. 그러다 또 인상을 팍 찡그리고 그를 째려보다, 다시 다행이라는 얼굴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오락가락하는 정우를 진정시킨 사람은 제노였다. 제노는 정우의 등을 토닥이며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팀원들도 소식 들었나 봐. 지금 재현이 형이 태일이 형 짐 옮기는 거 도와주러 간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영호였다. 미간을 살짝 좁히고 화면을 들여다보던 정우가 민형을 향해 “나한테도 왔어?” 하며 고개를 쭉 내밀고 물었다. 훈련 중이라 민형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맡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어, 너한테도 오고 나한테도 왔어.”




민형은 지성의 곁에 바짝 붙어 서 있었는데,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여주 때문이었다.




“여주.”

“…….”


“볼만 살짝 보여줘. 빠르게 리커버리만 할게. 얼굴 안 볼게.”




어르고 달래가며 말을 건네기를 한참. 여주가 슬쩍 고개를 틀었다. 정말 볼만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로만. 민형은 몸을 꾸깃꾸깃 숙이고 접어가며 여주의 볼을 살피고 곧장 리커버리를 해 주었다. 그는 여주의 볼을 치료해주고 나서야 지성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태일이 형이 뭐 따로 말해준 건 없었고?”

“응. 없었는데.”

“네가 느끼기에 네 상태는 어때.”




그 물음에 지성은 여주를 꽈악 끌어안고는 “좋아.” 간결하면서도 진심이 가득 담긴 대답을 내뱉었다. 몸 상태가 좋다는 건지, 여주가 좋다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인 건지는 좀 헷갈리지만.


그나저나 이 상태로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엄연히 가이드 훈련 시간이고, 정우와 여주라면 몰라도 제노와 민형은 들어가서 훈련을 봐줘야만 했다. 종합훈련실 문을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뱉은 민형이 지성을 향해 말했다.




“같이 있어 주고 싶은데 우린 들어가 봐야 돼.”


“괜찮아. 얼른 들어가 봐.”




그의 대답에 옅게 웃어준 민형이 눈짓으로 여주를 가리켰다. 그 후 훈련실이 있는 쪽이 아닌 반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여주를 데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지성이 알겠다는 의미로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그럼 우린 다시 들어가 볼게. 정우 너는 어쩔래?”




민형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정우가 턱짓으로 훈련실을 가리켰다.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민형이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선생님, 저희 들어갈게요.”

“……응.”


“누나, 좋은 일이잖아요. 그만 울어요, 눈 다 붓겠어.”

“……응.”




맥아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였지만 두 사람은 여주가 대답을 해줬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정우는 다시 훈련실로 들어가기 전 아프지 않게 지성의 머리를 쥐어박았고, 제노는 픽 웃으며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쳐주곤 정우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다시 훈련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던 민형은 지성에게 자신의 능력이 필요해지면 부르라는 수신호를 보여주곤 느지막이 자리를 떴다.


복도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지성은 작은 등을 토닥여주며 물었다. 나갈까요? 여주는 고개를 저었다. 주변이 조용해져서 그런가, 훌쩍이는 소리가 아까보다는 크게 들려왔다. 어떡하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떨군 그가 여주의 목덜미 위로 얼굴을 묻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미리 연락이라도 하는 거였는데.”

“…….”

“아니다. 그냥 집에서 기다릴 걸 그랬다. 그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안겨만 있던 여주가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지성이 다급하게 허리를 숙이며 여주의 얼굴을 살폈다. 잔뜩 젖은 눈가가 안쓰럽다. 엄지로 여주의 눈 밑을 살살 문질러 닦아주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나. 민형이 형 잠깐만 불러서 리커버리 받자.”




그랬더니 피에로처럼 새빨개진 코를 훌쩍이며 그런다.




“준비를 못 했는데…….”




지성의 얼굴에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준비?”

“으응.”

“무슨 준비?”

“파티…….”


“……?”

“박지성 퇴원 축하 파티…….”




여주의 대답에 지성은 멍하니 눈을 꿈뻑이기만 했다. 그러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다시 눈물을 퐁퐁 떨구기 시작하는 여주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작은 몸을 품에 벅차게 끌어안았다.


울지 마요. 괜찮아. 난 누나만 있으면 돼요. 그 말에 여주는 끅끅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 정도 울음을 그친 여주는 지성의 휑 한 손목을 보고 또 뿌엥하고 눈물을 터트렸고, 또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이후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또 뿌엥하고 울어댔다.


그런 여주를 달래는 건 오로지 지성의 몫이었다. 그는 여주를 품에 안고 토닥이다가, 젖은 얼굴에 입을 맞추다가, 귓가에 듣기 좋은 말을 잔뜩 속삭이기도 하면서 여주를 달랬다.


지성의 가슴팍에는 눈물로 만들어진 여주의 얼굴 무늬가 훈장처럼 남았다.





❊❊❊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을까? 답은 아니.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유인 즉,


로라 훈련은 다 봐주고 갈래. 중간에 내팽개치긴 싫어.


참 여주답다면 여주다운 이유였다. 지성은 실실 웃으며 기다릴게요.” 하고 대답했다. 그렇데 다시 훈련실로 돌아왔다. 여주는 누가 봐도 울었다는 얼굴로 헤실헤실 웃으며 들어왔고, 지성은 누가 봐도 사랑에 푹 빠진 사람 같은 얼굴을 해서는 여주의 뒤를 졸졸 따라 들어왔다.




“너도 저기서 기다려. 알았지?”


“네.”




고분고분 알겠다고 대답한 지성은 여주의 머리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팔불출 센티넬들이 일렬로 쪼로록 앉아 있는, 일명 응원석이다. 여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걸음을 옮기던 그는 벽에 다다라서야 쪼그리고 앉아 있던 서경과 평조를 발견했다.




“어, 안녕하세요.”

“어어. 지성이 오랜만이다.”

“너도 드디어 여기에 합류를 했구나.”




두 사람의 능글맞은 어투에 작게 웃던 지성이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지성의 시선은 다시 여주를 향한다. 여주는 자기 대신 로라와 훈련을 하고 있던 제노와 교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리 떠서 미안해.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근데 언니… 눈이 너무 부었는데…?

어엉, 괜찮아. 앞은 보이니까. 훈련 계속하자.

……진짜 보여요?

그럼 가짜로 보이겠니.




속절없이 웃음이 터진다. 누나는 왜 저렇게 귀엽지. 그보다 들어오기 전에 민형이 형이나 제노 형을 따로 부를 걸 그랬네. 보는 눈이 많아서 눈에 리커버리도 못 해주고, 얼음찜질도 못 해주니까. 아니면 집에 있는 형들한테 냉찜질 팩이라도 가지고 와 달라고 할까.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던 지성은 옆에서 제 어깨를 툭툭 쳐오는 서경에 슬쩍 고개를 틀었다.




“왜요.”




고개만 틀었지,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여주에게 고정 되어 있다. 그 모습을 질린다는 듯이 바라보던 서경이 손가락으로 그의 옷자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냐?”




그 물음에 잠시 시선을 내려 제 옷자락을 확인한 그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우리 누나 얼굴이요.”

“허어…….”

“귀엽죠.”

“어, 귀엽네.”

“누나가 왜 우리 누나한테 귀엽다고 해요?”




서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뭐 이런 또라이 같은 반응이 다 있어?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린 서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물어봤잖아.”

“그냥 응이라고만 하면 되잖아요.”

“그거나 그거나 똑같잖아.”


“다르죠. 제가 로라 누나한테 귀엽다고 하면 누난 좋겠어요?”

“…어, 야.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빠르게 제 잘못을 인정한 서경이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로라와 여주가 아주 느린 속도로 스파링을 하고 있다. 로라는 스파링을 하다가 여주가 “여기선 뒤꿈치가 아니라 앞꿈치로 발을 디뎌야 돼.” 하고 알려주자 토끼 눈을 뜬 채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로란 애가 왜 이렇게 귀엽지. 확 자바머거. 속으로 염병을 떨어대던 서경은 뒤를 돌아보는 여주의 행동에 눈썹을 주욱 들어 올렸다.


뒤를 빤히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은 그냥 자신의 센티넬과 눈빛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지성이 뒤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듯 한 모양새였다. 여주는 그 행동을 몇 번인가 더 반복했다. 로라를 가르치다 지성을 빤히 쳐다보고, 로라를 가르치다 또 지성을 빤히 쳐다보고.




“너 여주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여주가 돌아볼 때마다 손을 살살 흔들어주던 지성은 서경의 물음에 고개를 한 번 작게 주억였다.




“잘못한 거야 많죠. 저는 맨날 누나한테 잘못해요.”

“……진짜?”

“네. 잘해주고 싶은데 맨날 실수하고 잘못해요. 근데 누나가 매번 용서해줘요.”




그리 말하며 옅게 웃던 지성은 오늘 집에 가면 점핑 무릎 꿇기를 할 예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무릎 꿇기면 그냥 무릎 꿇기인 거지, 점핑 무릎 꿇기는 또 뭐야? 어리벙벙한 얼굴로 지성을 쳐다보던 서경은 뭔지는 몰라도 큰 잘못을 했나보다- 생각하며 고개를 바로 했다.


야, 근데… 여주한테 우리 로라 좀 살살 가르쳐달라고 하면 안 되냐.

살살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저기서 우리 누나가 어떻게 더 살살 가르쳐요.

우리 로라는 몸이 목화솜보다 더 약한 애란 말이야. 여주는 장군님이잖아.

우리 누나가 아무리 장군님이어도 똑같은 가이드거든요? 우리 누난 몸이 깃털보다 가볍단 말이에요.


두 사람이 조용히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로라는, 우리 누나는- 하며 세기의 팔불출 대결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을 짜게 식은 얼굴로 보고 있던 평조는 몸을 슬금슬금 움직여 두 사람에게서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난 절대 밖에서 저러고 다니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한 평조였지만, 단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안면근육의 힘이 풀리는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팔불출 센티넬 중 한 명이었다.






























늦은 밤인데도 1팀의 숙소가 소란스러웠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갑작스러운 퇴원이 결정된 지성 때문이다. 허나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없었다. 지성의 퇴원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반기는 사람만 가득했다.




“너 앞으로 말도 안 하고 일 저지르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둘 줄 알아!!!!!!!!”




고래고래 소리치는 정우는 있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이 자식아!!!”

“미안.”

“미안하다면 다야?! 미안하다면 다야?!!!!”

“형, 진짜 미안해. 진짜.”

“또 이런 일로 선생님 울리면 그땐 내가 너 깜빵 보낼 거야!!! 알겠어?!!!!”




지성의 입이 조개처럼 꾹 다물렸다. 정우는 눈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지성에 주먹을 꽉 쥔 채로 몸을 배배 꼬아댔다. 한 대 때리고 싶은데! 차마 못 하겠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정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끌끌 웃던 재민이 물었다.




“이제 치료만 받으러 다니면 된다며?”

“응.”

“몸은 좀 어때.”

“좋아. 괜찮아.”

“잘됐네.”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던 재민은 “지성아, 지성아, 지성아!” 하며 부엌에서 달려 나오는 여주를 보곤 몸을 틀어 길을 터주었다.


여주의 손에는 뜨끈뜨끈한 두부 한 모가 들려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바쁘게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한참을 안 나온다 싶더니, 냉장고에 있던 두부를 데우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그보다 두부는 왜? 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주는 그의 앞으로 두부를 들이밀며 외쳤다.




“이거 먹어!”


“……네?”

“원래 출소하면 두부 먹는 거야. 얼른 먹어!”


“아하하핫!! 출소래-. 으하하, 출소!”




재현이 빵 터져서는 소파 위를 굴러다녔다. 여주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놨다.




“너, 어? 너 쉘터랑 병동에 계속 갇혀 있었잖어. 그러니까 교도소나 병동이나 쉘터나 다 똑같은 거야. 교도소도 사람을 가둬놓고, 쉘터랑 병동도 사람들 가둬놓고. 응? 그치? 이제 거기서 나왔으니까 두부를 먹어야지!”

“…….”

“이건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야. 출소는 두부지. 그러니까 얼른 식기 전에 먹어!”




두부는 소화도 잘 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먹어. 한 입만 먹어. 액막이라고 생각하고 먹어. 아니면 뭐, 간장 갖다줘?


투명한 봉지에 들어가 있는 두부를 소중히 쥐고 발을 동동 굴리며 말하는 여주였다. 어리둥절한 낯으로 여주를 보고 있던 지성의 입술이 점점 호선을 그렸다. 큭큭거리며 웃던 그는 두부를 듣고 있는 여주의 손목을 살짝 그러 잡곤 뜨끈뜨끈한 두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때? 어때?!”

“으음, 음. 맛있어요.”

“그런 거 말고, 느낌은 어때? 새 사람이 된 것 같아?”

“아, 네. 새 사람 된 것 같아요.”


“새 사람이 뭐야, 새 사람이. 누가 보면 진짜 출소한 줄 알겠네.”




성찬이 낄낄거리며 지성의 어깨 위에 팔을 툭 얹었다. 근데 진짜 새 사람 된 느낌 나냐? 소근거리며 묻는 성찬에 지성은 입을 우물거리며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그보다 아까 봤을 때도 느꼈던 건데, 지성이 키 큰 거 아냐?”




여주가 조금 떼어서 나눠준 두부를 지성과 마찬가지로 우물거리며 먹던 제노가 말했다. 그 말에 여주가 떼어주는 두부를 받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도영이 고개를 휙 틀어 지성을 위아래로 한 번 스윽 훑었다.




“……진짜 컸어?”

“조금.”

“뭐야. 넌 왜 누워있기만 했는데도 키가 커?”

“아무래도 누나한테 사랑이라는 양분을 받다 보니까 키가 쑥쑥…”


“지랄하지 마!!!!!!”


“미안.”




도영은 씩씩거리는 정우를 힐끗 쳐다보다 그의 팔뚝을 툭툭 토닥였다. 넌 그냥 입 다물고 두부나 먹는 게 좋겠다. 그 말에 지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에서는 별안간 소소한 두부 파티가 시작 됐다. 누나, 나도 줘. 선배, 나도 먹여 줘.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장정들에게 둘러싸인 여주는 “달라붙지 마!” 하고 빽 외치면서도 부지런히 두부를 떼어 그들의 입에 쏙쏙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흐뭇하게 관람하고 있던 영호가 지성의 옆으로 스윽 다가가 섰다.




“경호 준비는 잘 돼 가?”




영호가 조용히 질문을 건넸다. 지성은 이제 진통제가 없어도 두 시간 정도는 무리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고, 진통제를 맞으면 세 시간도 거뜬했다. 아직 영호가 제시했던 네 시간이라는 조건은 충족하지 못했지만, 뭐.




“거의 막바지야.”




남은 시일 안에 달성할 수 있다. 오기로라도 달성하고야 말 테다. 그래야 여주를 곁에서 지켜줄 수 있으니까. 영호는 지성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고는 주먹 쥔 손등으로 그의 등을 툭 쳤다.




“퇴원 축하한다.”





❊❊❊




지성은 잔뜩 질린 얼굴을 해서는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퇴원을 축하한다더니, 뭐?


축하는 이만하면 됐지? 이제 일 얘기 좀 하자, 부팀장씨.


저 형은 진짜…… 아니다, 그동안 내가 일을 못한 건 맞으니까.


한숨을 작게 내쉰 지성이 짧은 복도를 걸어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침대 헤드에 기대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텐 뿐이다. 누나는요? 하고 지성이 묻자 텐은 그를 보지도 않고 고갯짓으로 욕실 쪽을 가리켰다.


누나 씻는 구나.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인 지성은 서랍 안에서 드라이기를 꺼내 화장대 위에 미리 올려 놓고는 침대로 다가가 풀썩 주저앉았다. 방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이불도 그대로고, 가구도 그대로고. 뭐 추가가 된 것도 없고, 사라진 것도 없고.


방을 느릿하게 둘러보던 지성은 침대 밑에 절전 모드로 잠들어 있는 모모를 가만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언제 가요?”


“4일.”

“그리고 6일에 다시 돌아오고?”

“어.”

“그다음은요?”




미간을 살짝 좁히던 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는 지성과 한참 시선을 맞대고 있던 그가 말했다.




“본부로 돌아가야지.”

“왜요?”

“왜긴 왜야. 난 원래 네가 쟤 옆으로 다시 돌아오면 가려고 했어.”

“누나도 알아요?”

“알아.”




눈꺼풀을 느리게 여닫던 지성이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제가 가라고 할 때까진 있어 주면 안 돼요?”


“네가 이여주도 아닌데 내가 왜.”

“와- 차별 심하다.”

“네가 할 소리야?”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묻는 텐에 지성이 픽 웃었다. 텐은 그런 지성을 응시하다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이유를 말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물었다. 두 팔을 뒤로 뻗어 비스듬히 세운 상체를 지탱한 자세로 앉아 있던 지성이 고개를 옆으로 느릿하게 기울였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솔직히 말해 지성은 아직도 자신이 퇴원을 했다는 것이 얼떨떨하기만 하다. 팀 닥터인 태일과 민형은 통원 치료를 해도 문제 없는 상태라고 말했지만 지성의 입장에선 문제가 많다.


그래도 그가 퇴원이라는 절차를 받아들인 것은 이곳에 텐이 있기 때문이었다. 텐은 지성에게 있어 일종의 보험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성을 놔버리고 본능만으로 여주를 짐승처럼 덮치기라도 한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피떡으로 만들어 줄 사람이니까.




“불안해요.”

“뭐가.”

“저는 저를 못 믿겠어요.”

“…….”

“아까도 퇴원하고 바로 누나 찾아갔었는데, 누나가 울었거든요?”




여기 누나 얼굴도장도 찍혀 있었는데. 제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하던 지성이 어깨를 잘게 들썩이며 웃었다. 그러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랬다.




“전 누나 달래주는 척 하면서 눈물이나 핥아 먹었어요.”

“…….”

“선생님이 봤으면 개새끼라고 욕했을 걸요?”


“그게 뭐 별거라고.”

“…….”

“넌 평소에도 개새끼잖아. 왜 이제 와서 아닌 척을 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지성은 이어진 그의 말에 “아.” 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그건 맞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또 한숨만 푹푹 내쉬는 지성이었다. 턱을 치켜들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말했다.




“누나를 위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요.”

“이여주가 아니라 너를 위한 안전장치겠지.”

“……솔직히 말하면 그렇죠.”




아아. 앓는 소리를 내며 등을 구부정하게 숙인 지성이 거친 손길로 마른세수를 해댔다. 누나한테 미움 받기 싫다. 누나가 나한테 실망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퇴원까지 했는데 충동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버리면.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커져만 간다. 지성은 애꿎은 제 머리채를 부여 잡은 채로 괴로워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난 일주일 뒤에 갈 거야.”




부스스하게 헤집어진 머리를 한 지성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주일 안에 해결해.”




건조한 음성으로 유예 기간을 고지하는 텐에 지성이 인상을 팍 구겼다.




“너무 짧잖아.”

“그건 네 사정이고.”




지성이 짜증 가득한 눈길로 그를 노려봤다. 자신은 심각해 죽겠는데 노트북이나 두드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재수 없기 그지없다. 얼굴 가죽을 뚫어버릴 기세로 쳐다보고 있는데도 미동 한 번이 없다. 진짜 재수 없어. 지성이 침대 위에 힘없이 풀썩 드러누웠다.


한 명은 멍하니 누워 천장이나 바라보고 있고, 한 명은 기계적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일을 하고 있는 와중. 욕실 문에 무언가가 부딪히며 텅! 하는 소리가 났다. 뭐야? 지성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고, 텐은 또 저러네- 하는 얼굴로 한숨을 작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머리 감겨주러.”

“그걸 왜 선생님이 해요?”

“해 달래서.”

“허.”

“왜. 아니면 네가 할래?”




텐의 물음에 눈동자를 느리게 굴리던 지성은 이내 다시 힘없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누나 머리는 제가 말려줄 거예요.”




그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들썩거린 텐이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닫힌 욕실 문을 힐끗 살핀 지성이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성의 눈은 얼마 가지 않아 질끈 감겼다. 물에 젖어 촉촉해진 여주의 모습이 천장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탓이었다. 그는 베개로 얼굴을 틀어 막곤 속으로 필사적으로 애국가를 불러대야만 했다.































오랜만에 잠든 여주를 품에 안고 누운 지성은 밤새 괴로움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느라 바빴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여주를 품에 안고 새벽 내내 뒤척거리는 지성에 텐이 지랄 좀 작작 하라며 뭐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피곤하기는커녕 몸이 개운하기만 했다. 간지러울 정도로 부드러운 입맞춤에 잠에서 깬 여주가 눈을 뜨자마자 배시시 웃으며 “이거 되게 오랜만이다.” 하고 말해준 덕분이었다.


나 어제 되게 따뜻하게 잤어.


그랬어요?

응. 근데 또 무섭다. 너네 무서워.


여주는 무섭다는 소리도 방긋방긋 웃으며 했다. 텐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여주에게 먹일 영양제를 찾았고, 지성은 여주를 품에 안고 아침부터 이러면 반칙이라고 중얼거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


지성의 주접은 식사 자리에서도 계속되었다. 이젠 따로 주문한 환자식이 아니라 평범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너무 맵거나 소화가 잘 안되는 질긴 음식은 아직 금지였다. 그런 지성을 위해 여주가 고른 아침 밥상은 강된장과 푹 삶은 호박잎쌈이었다.


어, 지성아. 이거다, 이거. 이게 안 매운 강된장.

네.

너는 이걸로 조그맣게 싸서 먹어. 알았지?

네.


자그마한 호박잎을 지성의 앞으로 옮겨준 여주는 그가 먹는 것을 한 번 확인하고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손바닥보다 큰 호박잎에 주먹만 한 밥을 척 올리고 우렁과 청양고추가 듬뿍 들어간 강된장에 노릇노릇 구운 팽이버섯 구이를 올려 큼지막하게 쌈을 쌌다.


정우야, 준비 됐어?


네. 됐어요.


두 사람은 커다랗게 싼 쌈으로 건배를 하곤 입을 크게 와앙- 하고 벌려 쌈을 먹었다. 으음! 정우는 진실의 미간을 선보이며 엄지를 치켜올렸고, 여주 역시 양손 엄지를 펼쳐 보였다. 지성은 아예 몸을 여주 쪽으로 비스듬하게 튼 채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여주 저러다 턱 빠지는 거 아냐…?

그럼 형이 치료해주면 되지.


하여튼, 진짜… 정우랑 선배는 입 크기가 다르다니까요?

누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너 진짜 지독하다.

누나가 귀엽잖아.

웩.

웩 이번에도 정성찬이지.


뭐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쟤 뒤통수에도 눈 달렸어, 지금.


여주는 그만 보고 밥 좀 먹으라는 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그는 대답만 설렁설렁할 뿐, 여주에게서 시선을 떼질 못 했다. 여주가 이렇게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밥을 먹는 모습도 그에게는 오랜만이었으니까.


후식을 먹을 때도 그랬다. 지성은 페이스트리 사이사이에 생크림과 딸기, 블루베리가 가득 들어간 밀푀유를 먹는 여주를 정말 뚫어져라 쳐다봤다.


몰랐는데 지성이가 눈싸움을 잘 하는 타입이구나. 눈을 안 깜빡이네.


시섬으로 태어났으면 대박이었겠는데.


그보다 난 쟤가 저러고 있는데 선배가 신경을 요만큼도 안 쓴다는 게 더 신기해.


어, 선배는 지금 그냥 먹느라 바빠.


팀원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여주의 모습만 눈에 담았다. 그는 9시 정각을 알리는 모모의 알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담금주 통이 있는 테라스로 달려 나가는 여주의 뒤를 졸졸 쫓아 나갔다.


땅콩 막걸리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하는 유치한 질문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여주를 지켜보느라 바빴다. 10시에 있을 지부장 회의 때문에 나갈 채비를 하다가도 멍하니 서서 여주를 바라봤다.


약속이 약속인지라 트레이닝복 대신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주는 거울 앞에 서서 태용과 지성이 선물해주었던 비녀로 머리를 돌돌 말아 올렸다. 그러다 거울 너머로 눈이 마주친 지성을 장난스레 흘겼다.




“너 뭐 내 전용 감시카메라야?”




그 말에 작게 웃던 지성이 여주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섰다.




“제가 누나 전용은 맞는데, 감시카메라는 아니에요.”

“아니긴 무슨… 아침부터 계-속 쳐다봤잖아.”

“그거야 누나가 너무 좋아서 쳐다본 거지.”




동그랗게 말린 여주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찔러보던 지성이 여주를 마주하고 섰다. 그는 여주의 이마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살살 정리해주며 물었다.




“제가 보는 거 싫어요?”

“으응. 싫은 건 아니야.”

“그럼 계속 보고 있을래요.”

“그거야 상관 없긴 한데, 왜 계-속 보고 있는 거야?”

“누나가 너무 좋아서요.”




흐응. 여주가 간드러지는 비음을 흘리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새초롬하게 지성을 흘겨보던 여주는 흥, 콧방귀를 뀌고는 제 손을 척 하고 내밀었다.


지성은 자잘한 흉터가 가득한 손등을 물끄러미 내려보다 여주의 손을 밑에서 받치듯이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쪽. 귀여운 소리와 함께 손등에 내려앉았던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제 가요.”

“응.”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




어머, 저게 무슨 일이야?


누군가가 얼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른 시간에 1팀 전체가 어딘가로 우르르 몰려 가는 모습은 보기 힘든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들을 이끌고 걸어가는 사람은 여주다. 여주는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텐과 지성의 손을 맞잡은 채로 위풍당당하게도 런웨이를 했다.


여주의 바로 뒤에서 따라 걷고 있는 사람은 영호와 정우였다. 정우는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 영호에게 속닥거렸다.




“사람들이 너무 쳐다보는데?”


“우리 팀이 다 같이 이동하는데 안 쳐다보기도 힘들지 않아?”


“또 이상한 헛소문이라도 날까 봐 그러는 거지.”

“어차피 목적지가 중앙동이니까 괜찮아. 다 같이 회의라도 하나 보다 할걸.”




그 말에 정우는 미심쩍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주는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뒤를 힐끗 쳐다보다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많긴 하네.”

“소문 듣고 나온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흐음…… 그래도 요즘은 센터에서 자주 돌아다녔는데… 아직도 신기한가?”

“1팀이 다 같이 몰려다니면 신기하죠.”

“아, 그래? 그런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봐.”

“우씨, 물어볼 수도 있지.”


“그러게요. 물어볼 수도 있지 왜 누나한테 그래요.”




잔뜩 질린 표정으로 지성에게 짧게 시선을 던지던 텐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네 둘 다 나한테 말 걸지 마.”

“왜?”

“속 터지니까.”

“칫!”




강하게 혀를 찬 여주가 입술을 쭉 내밀고 툴툴거렸다. 지성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여주의 얼굴을 살폈다. 누나, 삐치지 마요. 저 인간은 원래 저랬잖아. 그 말에 한층 더 불퉁하게 튀어나오는 여주의 오리주둥이.




“밖에서는 입술 내밀지 말지.”

“싫거드-은. 내 맘이거드-은.”

“누나 맘이긴 한데 너무 귀여워서 그래요.”

“귀여우면 좋지, 뭘… 어, 안녕!”




……? 안녕?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는 여주에 지성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길 건너편에 서서 여주와 인사를 나누던 사람은 지성도 익히 알고 있는 보안부 직원이었다.


보안부 직원은 지성을 보고는 “너도 안녕.” 하며 손을 살짝 흔들었다. 지성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 누나가 여기서 왜 나와? 그보다 이 누나가 우리 누나랑 인사를 왜 해?


어리둥절한 얼굴로 스쳐 지나가는 보안부의 직원을 응시하던 그가 다시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여주가 너무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어우, 박치기 하는 줄 알았네.” 하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누구… 아, 쟤?”

“응. 어떻게 알아요?”

“어제 빅 사이즈 카페에서 빙고 게임하다가 친해졌어.”

“……뭔 게임?”

“빙고 게임.”


“…….”

“너 빙고 몰라?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여주였다. 지성은 “어… 아마 알 거예요.” 요상한 대답을 꺼내놓곤 다시 허리를 세우고 섰다.


머리가 멍하다. 빙고, 그거 뭐… 빙고가 빙고겠지. 어쨌든 그는 지금 빙고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늘이 없었다. 여주가 요새 들어 센터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팀원들에게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는데.




“어? 여주 언니!”

“어엉~ 효원이 안녕~”




내가 없는 사이에 진짜로 마당발이 되었을 줄은…….


지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여주가 친구를 사귄 것은 좋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여주가 친구를 사귄 것은 싫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니 더욱 싫다. 무척이나 모순적이지만 지성은 그랬다.


그래도 이건 좋은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듯이 되뇌었다. 누나가 이곳에서 인맥을 넓혀간다는 건 누나가 이곳을 아지트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오, 누님 어디 가세요?”

“오냐-.”




이 XX놈은 또 뭐야.


눈에 핏발을 세우고 노려봤더니 새파랗게 질리는 모습이 우습다. 그러다 또 아차 하고 만다. 하마터면 여주가 다 듣는 앞에서 상스러운 소리를 낼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진짜로.




“저 사람 누구예요?”

“에엥? 너 몰라?”




모르니까 물어보죠……. 지성이 말없이 여주를 바라봤다. 여주는 방금 지나친 사람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기술부 직원이야. A/S 부서랬는데.”

“A/S 부서에 저런 사람이 있었다고?”

“응.”

“난 모르는 사람인데.”




그 말에 눈을 꿈뻑이던 여주는 이내 “아, 맞다.” 하며 말을 이었다.




“쟤 올해 초에 입사했다고 그랬어. 그게 3월인가 4월인가 라고 했으니까 넌 모를 수도 있겠다.”

“…….”

“왜? 쟤 센티넬 아니야. 쟤는 일반인이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려 덮은 지성이 이를 악물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랑 친해져도 눈이 뒤집힐 판에, 왜 내가 모르는 사람이랑 친해진 건데. 지성은 울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센터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다.


누나, 우리들만의 이여주로 돌아와…….













여러분여러분여러분!!!!!!!!!!


ㅎ...ㅏ......... 여러분 다들 이걸 봐주세요...

진짜 하루에 하나씩 공개하고 싶었지만 이 벅차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건 여러분들이 봐야 돼요 이건 꼭 자랑을 해야해!!!!!!!!!!!!

구치님께서 주신 정말 영롱하고 예쁜 표지.... 정말 감사합니다😭

모니터 앞에서 입틀막하고 오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저예요


영화 포스터 같지 않아요??? 그죠??? 막 영화 포스터 같죠???

저 진짜 보자마자 소리 질렀잖아용 넘 좋아서...ㅎㅎㅎㅎ

앞으로도 소중하게 잘 쓰겠습니다!!!

구치님 정말 감사해요💚💚💚💚💚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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