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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해도 너무 진부했다.

텅그렁, 깔끔치 못한 소리가 나뒹굴었다. 쇠로 된 무언가가 바닥에 내팽겨진 채 마구 구르는 소리가 울리자 입김을 훅 불면서 일어선 문별이가 머리를 높게 질끈 올려묶는다. 큰 소리 좀 났답시고 교양머리가 있니 없니, 층간소음으로 신고하니 마니 따위의 말이 나올 리 없는 인적드문 이 동네 최고의 수혜자다.


“아 무슨 대낮부터 술을,”

“야 놔, 안 놔? 이것들이 쌍으로 아주!”



갈 지(之)자를 그리며 휘청이던 남자가 기어코 두꺼운 손을 치켜들어 휘두른다. 적당히 듣기 싫은 소리 좀 하다 빠지려던 문별이는 저도 모르게 성큼 끼어들어 그 앞에 우두커니 섰다.


“악, 씹….”



지금처럼 재수없게 타이밍이 잘못 맞아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될 때만 빼면.

그럭저럭 살만한 동네였다.



* * *



“뭐한다고 거기에 끼어들어 끼어들긴.”

“술은 좀 안 팔면 안되냐. 밥만 팔아도 되잖아.”

“이 동네에 돈 주고 밥 사먹는 사람 몇이나 되는데? 술이라도 파니까 오는 거지.”



하여튼 똑똑한 지지배.

뭐라 말하려던 문별이는 입술을 꾹 닫는다. 이거나 발라. 김용선이 툭 내민 연고를 보고 눈만 꿈뻑거리자 멍 빼는 약, 하고 짜증스러운 설명이 뒤따른다. 그래도 너네 식당 진상 쫓아주려다 얻어터진 건데 발라주는 다정함은 영, 사치 같은 거야? 최대한 순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안 바를 거면 말고. 미련 없이 제 카디건 주머니에 연고를 집어넣으려던 김용선은 아 바를게 바를게, 하는 문별이의 손 위에다 연고를 툭 내려놓는다.

미끄덩한 연고를 볼록 솟은 볼 위에 올리고 문지른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김용선은 ‘살살 문질러.’ 하고 짧은 말만 남긴 채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른 낙엽이 여기저기 쌓인 풍경이 꽤 삭막하게 느껴진다. 옛날엔 이런 걸 운치 있다, 풍경 좋다 뭐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은데.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거리며 주변 환경을 둘러보던 문별이가 새삼 바싹 마른 제 감정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때 봤던 낙엽이나 지금 본 낙엽이나, 똑같이 마른 잎일 게 분명한데 괜히 삭막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 사람 탓이지 싶다. 그때의 이 무렵은 건조한 바람과 퍼석하게 마른 낙엽이 난잡하게 떨어져있었지만 그 바닥을 딛고 서있는 김용선이 반짝거려서 그냥 운치있는 가을풍경, 뭐 그렇게 느껴졌었고


“자연한테 안 미안하냐.”



그때처럼 한쪽에 잔뜩 쌓인 나뭇잎 무더기나, 그때에 비하면 훨씬 깔끔하게 정돈된 길, 아마 그때보단 포근하게 부는 바람이지만 그 속에 선 지금의 김용선은 뒷모습이 퍽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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