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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이치

-2차 창작 소설

-바텐더마츠 AU

-바텐더 카라마츠 X 이치마츠

-약수위(R-15)

-공백 포함 11,416자














 나뭇잎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계절, 카라마츠는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이치마츠를 처음 만났다. 차가운 저녁 공기의 영향을 받아 피부가 새하얗게 보였던 이치마츠는 가게에 들어오고선 어쩔 줄 몰라 하며 쭈뼛거렸다.



 '저 손님... 이런 곳은 처음 와 본 건가?'



 연보라색 니트에 검은 코트를 걸친 이치마츠의 첫인상은 조금 차가우면서도 어설픈 면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은 이치마츠는 가게 안을 한참 둘러보았다. 가게의 분위기는 꽤나 예뻤다. 전체적으로 붉은빛의 조명과 깔끔하게 나열된 술병들, 작게 들려오는 피아노 재즈. 각각의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은 칵테일을 마시며 한껏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이치마츠는 개인 석에 앉긴 했지만. 카라마츠는 이치마츠 같이 혼자 온 손님들의 말상대가 되어야 했다. 그런 일을 카라마츠는 나쁘지 않게 생각해왔다. 처음 보는 낯선 이와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아, 음, 그게..."



 이치마츠는 메뉴판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쉽게 내뱉지 못했다. 이치마츠가 헤매는 게 보이자 카라마츠는 웃었다.



 "칵테일은 처음이신가 봐요? 처음이라면 도수가 낮은 것부터 시도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이치마츠는 본인이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 같아 자존심이 조금 상한 듯했다.



 "아뇨, 도수 제일 센 걸로 주세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당연하죠."



 이치마츠의 당돌한 모습에 카라마츠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손님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건 맞지만, 카라마츠는 괜스레 걱정돼서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칵테일을 준비했다. 이치마츠는 그 칵테일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홀짝였다.



 '뭐랄까, 꼭 고집이 센 어린 아이를 보는 느낌이군.'




Peach Crush_W.레몬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잔을 다 비운 이치마츠는 잔뜩 취해 해롱거렸다. 붉어진 얼굴로 이미 빈 잔을 계속해서 마시려는 시늉을 했다. 냉정했던 아까와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아아- 좀 더 도수가 낮은 걸로 드릴 걸 그랬나?'



 카라마츠는 문득 이치마츠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발견했다. 사귀는 사람이 있구나, 카라마츠는 빛을 반짝이는 반지를 잠시 바라보았다.



 '손 되게 예쁘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카라마츠는 고개를 젓더니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애인 있나 봐요?"



 "으응... 상냥한 사람이에요. 나를 몇 번이나 도와줬으니까..."



 이치마츠는 말을 흐리는 것 같더니 이내 엎드려 잠들었다. 



 "어라, 손님...? 잠들면 안 되는데..."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워보려 했지만 이치마츠는 작은 소리로 웅얼거릴 뿐이었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웬 남자가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카라마츠는 그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아는 분인가요?"



 "아, 네. 우리 이치마츠가 워낙 술에 약해서 잘 잠들어요. 곤란하셨을 텐데, 실례가 많았습니다."



 남자는 이치마츠를 일으켜 부축했다. 남자는 카라마츠에게 짧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선 가게를 나갔다. 카라마츠는 그 남자의 손에서 반지가 반짝이는 걸 잠깐 발견했다.



 '흠, '우리 이치마츠' 라... 애인이 남자였군.'



 잠깐 봤던 그 남자의 다정한 미소와 다르게 남자의 전체적인 인상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카라마츠의 착각일지 몰라도 카라마츠는 왠지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치마츠는 다시 바에 찾아왔다. 카라마츠는 낯익은 얼굴을 보자 반가워하며 이치마츠를 반겼다.



 "아, 어서 와요. 이치마츠 씨!"



 "네- 지난번엔 죄송했습니다. 제가 그만 너무 취해버려서……… 아, 아니, 잠깐.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는 거죠?"



 "후훗, 그거라면 당신 애인에게 물어보시죠."



 "애인이라뇨...?"



 "저번에 당신 데리러 온 그 남자, 애인 맞잖아요."



 "아... 어떻게 알았지."



 이치마츠는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조금 당황한 게 보였다. 카라마츠는 그저 싱긋 웃었다. 아까보다 더 소심해진 목소리로 이치마츠가 말했다.



 "...애인이 남자라니 기분 나쁘시죠?"



 "아뇨, 걱정 마세요. 저는 그런 편견 없는 사람이라. 제 이름은 카라마츠입니다. 오늘은 당신과 좀 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군요. 음료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냥 그쪽이 적당히 골라주세요."



 카라마츠는 코앵트로와 보드카, 크랜베리 주스, 라임 주스를 쉐이커에 넣었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푸른 넥타이에 깔끔한 정장 조끼 차림의 카라마츠가 능숙한 듯 칵테일을 만드는 모습이 어쩐지 분위기 있어 보였다. 붉은빛 조명을 받아 더 그렇게 보였다. 카라마츠가 쉐이킹한 것을 역삼각형 모양의 예쁜 잔에 따르자 투명한 선홍빛의 모습이 보였다. 라임 슬라이스까지 장식을 마치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잔을 건넸다.



 "이건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라는 칵테일이에요."



 희미한 분홍색 그라데이션의 예쁜 술을 이치마츠는 잠시 자신의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향긋한 향의 칵테일을 한 입 마셨다. 달달하고 끝 맛이 산뜻했다.



 "우와, 이거 엄청 맛있네요. 술맛도 거의 안 나고..."



 "그래도 천천히 드시는 게 좋아요. 그거 도수 은근 높거든요. 20도 조금 넘던가?"



 "엣, 그렇지만 알코올 향이 전혀 나질 않는데..."



 "달달한 향이 강해서 그래요. 계속 마시다 보면 어느새 취할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마셔요."



 이치마츠는 저번처럼 잠들지 않게 칵테일을 조금씩 마셨다. 말을 잘 듣는 이치마츠를 보고 카라마츠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보다, 칵테일은 많이 안 마셔봤죠?"



 "네, 사실 저번에 처음 먹어본 거였어요..."



 이치마츠는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그럼 앞으로 자주 와요. 내가 많이 만들어 드릴 테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자주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애인이 있는 사람이 바에 자주 오는 건 부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 애인이랑 함께 올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그건 내가 싫네.'



 카라마츠는 예전에 봤던 그 남자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훤칠하게 생기긴 했어도 조금 못 미더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생각은 예의가 아니지... 의외로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말이야.'



 그 후로 이치마츠는 적지 않게 바를 찾아왔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주 찾아오자 카라마츠는 그저 기뻤다. 같은 바에서 일하는 쵸로마츠의 말에 의하면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일하는 날이 아니면 도로 돌아간다고 했다. 카라마츠는 본인이 아니면 낯을 가리는 이치마츠의 모습이 특이하면서도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늘 경계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술에 취하면 스스럼없이 구니까 말이다.



 "………그래서 제 애인이-"



 이치마츠는 가끔 애인에 관한 이야기도 전부 다 털어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카라마츠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그 애인이 될 수 없는 거지?'



 카라마츠는 자꾸만 드는 이상한 생각에 정신을 차려보려 했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은 듯했다. 카라마츠는 확실하게, 이치마츠를 좋아하게 됐다.



 '하... 저 사람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는데 어쩌자는 거야, 카라마츠...'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이 이미 카라마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지 한참이다. 자신이 언제부터 남자를 좋아했었던 건지도 카라마츠는 의문이 들었다.



 "그보다 카라마츠 씨, 이제 슬슬 말 놓아도 되지 않을까요? 계속 존댓말 쓰기 불편하잖아요."



 이치마츠의 제안에 카라마츠는 기꺼이 승낙하려다가 주춤했다. 말을 놓아버리면 이치마츠에 대한 마음이 더 커져 버려서 그 마음을 나중에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두려웠다. 카라마츠는 조금 재치 있게 이 상황을 넘기기로 했다.



 "음- 이치마츠 씨가 형이라고 불러주면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카라마츠는 싱긋 웃었다.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것이, 카라마츠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읏, 그건... 아니, 그보다 서로 나이도 모르면서 형이라니요?"



 "이치마츠 씨가 딱 봐도 저보다 어려 보여서 그런 건데...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가?"



 "...스물 넷이요."



 "이거 봐~ 내가 형이잖아요."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놀림 받는 것 같아 우물쭈물했다. 카라마츠는 그 모습을 보고 귀엽다는 듯 웃었다.



 "뭐, 형이라고 불러달라고 한 건 농담이에요~ 저는 우리 관계가 좀 더 가까워지면 그때 말 놓고 싶어요."



 "카라마츠 씨에게 가까워진다는 기준이 뭐죠?"



 "비밀이에요."



 이 이상 더 가까워지는 것, 그러니까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카라마츠는 어렴풋이 느꼈다. 카라마츠는 사랑이라는 이 낯선 감정을 이치마츠를 통해 처음 느껴봤기에 이 감정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치마츠가 그저 자신의 첫사랑으로 남아주는 것만으로도 카라마츠는 기쁠 것 같았다.






 몇 주마다 카라마츠를 만나러 오던 이치마츠가 점점 찾아오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3일에 한 번꼴로 찾아오게 됐다. 이상할 정도로 자주 찾아오는 데다가, 술을 마시고 나면 늘 높았던 텐션이 이제는 조금 어두워진 걸 보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오늘도 술에 취해 조금 울적해진 이치마츠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 상태를 봐선 내가 괜히 더 기분 상하게 할 것 같아 걱정이군.'



 카라마츠는 뭔가 다른 질문을 하기로 결심하고 크흠, 헛기침했다.



 "그런데... 요즘 되게 자주 오시네요?"



 "왜요, 내가 자주 오니까 싫으신가?"



 이치마츠가 힘없이 푸흐흐 웃었다. 분명 평소와 같은 말장난이지만 현재 이치마츠의 기분 때문인지 장난 같지가 않았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카라마츠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냥 잠자코 있기로 하고 카라마츠는 컵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괜한 컵을 지금 몇 개째 닦고 있는 건지 모른다. 이치마츠가 조금 울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실 제 애인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아요."



 아, 카라마츠는 입 밖으로 나올 뻔한 소리를 꾹 막았다.



 '아아-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카라마츠는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저랑 만나는 횟수도 많이 줄었고, 연락도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까 여기를 자주 찾아오게 되더라고요. 제가 최근 자주 찾아오는 이유가 이거예요. 말상대가 조금 필요해서..."



 이치마츠의 기분을 생각하면 분명 안타까워해야 하는 일인데, 카라마츠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와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한 느낌.



 '뭐야... 나 언제부터 이렇게 나쁜 남자가 된 거지.'



 카라마츠는 축 처진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마음 같아선 그만 끝내고 싶은데... 정이 있어서 그런지 그게 쉽지가 않네요."



 '그냥 헤어져요' 라고 카라마츠는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이치마츠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사실 거의 거짓말에 가까운 말들뿐이었지만.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말들을, 카라마츠는 심히 가벼운 마음으로 내뱉고 있는 거였다. 오늘따라 유독 이치마츠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자꾸 카라마츠의 눈에 띄는 날이다.






 늦가을이 전부 지나고 어느새 코끝이 시린 겨울이 다가왔다. 그 기간 동안 이치마츠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 남자와 헤어진 거라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영 소식이 없어서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걱정됐다. 오늘도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카라마츠는 가게를 이만 정리할 수 있었다.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던 참에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제 마감 시간인데-……"



 카라마츠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그 상대가 이치마츠였기 때문이다. 밖에 눈이 내리는 모양인지 이치마츠의 옷과 머리에 흰 눈이 묻어 있었다. 보라색 목도리를 한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보고 싶었다는 듯, 하얀 피부에 볼과 귀가 선홍빛으로 물든 채. 다만 이치마츠의 눈은 너무나도 흐린 빛이었다. 카라마츠는 그 눈을 보고 이치마츠가 헤어진 게 확실하다는 걸 알았다. 이치마츠의 손으로 시선을 옮기자 역시 반지는 없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기 보다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이 더 컸기에 이치마츠에게 다가갔다.



 "이치마츠 씨! 오랜만이에요. 오는 게 너무 뜸해져서 걱정했었는데. 그보다 많이 추우시겠ㅇ…………"



 툭,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가슴팍에 기댔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 줘요..."



 카라마츠는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치마츠는 쿵쿵거리는 카라마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항상 바에서 일하고 있어서 온갖 칵테일의 향이 카라마츠의 몸에 밴 것 같았다. 달짝지근한 알코올 향이 이치마츠를 조금은 안심시켰다. 카라마츠는 퇴근하긴 글렀다고 생각하고 오늘 새벽은 이치마츠와 진담이나 나눌까 했다.



 "저, 이치마츠 씨... 칵테일 만들어 드릴 테니까 드시고 가세요."



 "...미안해요, 카라마츠 씨도 퇴근하고 쉬셔야 하는데..."



 "아뇨, 저 하나도 안 피곤하니까 이치마츠 씨가 원하시는 때까지 있어도 괜찮아요."



 당신과 이 새벽을 함께 보내고 싶어,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결국 헤어졌어요."



 이치마츠가 초점 없는 눈으로 아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헤어지는 편이 차라리 이치마츠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카라마츠는 생각했지만 지금으로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이치마츠 씨에게 위로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



 "헤어진 후로 한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죠. 그러다가 오늘 새벽에 오랜만에 밖에 나온 거예요."



 "그렇군요... 헤어진 거 정말 유감입니다."



 "...그래도 말이죠, 왠지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에요. 우중충했던 기분도 나아지는 것 같고, 옛 애인과의 기억도 전부 잊을 수 있어서... 이것도 카라마츠 씨 덕분인가?"



 이치마츠는 평생에 한 번 있는 일처럼 밝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눈에서 뚝, 뚝 흘러내리는 미련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부드럽고 차가운 피부였다.



 "울지 마요. 나까지 마음 아프게..."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마츠를 위해 달달한 술을 준비하기로 했다. 곱게 간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각종 재료를 쉐이킹한 것을 붓자 맑은 복숭아 빛깔이 눈에 띄었다.



 "이건 카시스 프라페(Cassis Frappe) 인데, 한 번 마셔봐요. 과일 향이 나서 기분이 좀 나아질 거예요."



 "...우와, 복숭아 향... 이거 맛있네요."



 입안 가득히 퍼지는 달달한 복숭아 향과 마지막까지 여운으로 남는 알코올 기운이 이치마츠의 기분을 한결 낫게 했다.



 "확실히 달달한 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카라마츠 씨는요?"



 "흐음, 제가 칵테일을 만드는 게 일이긴 해도 단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아, 그렇구나..."



 "후훗, 뭐 아무튼... 더 만들어 드릴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슬픈 감정 다 흘려보내요, 응?"



 이치마츠는 끄덕이며 칵테일을 홀짝였다. 도수가 낮은 술이었음에도 이치마츠는 몇 잔 조금 마시고 금방 취했다. 평소 차가운 이미지였다가 술만 마시면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모습이 어디서 함부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치마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울고 웃는 걸 반복했다. 카라마츠는 주정하듯 내뱉는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반응해주는 데 바빴다.



 "근데 있자나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카라마츠 씨 애인 있어요오...?"



 "글쎄요- 있을까?"



 "우우... 있나 보네."



 "하핫,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왜냐면...... 나 봐버렸거든요. 어떤 여자가, 그것도 엄청 예쁜 여자가... 카라마츠 씨한테 번호 주고 가는 거......"



 카라마츠는 소리 내어 웃을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바에서 일하면서 몇 번 여자들에게 헌팅을 당한 적이 있긴 하지만, 번호를 받아도 카라마츠가 먼저 연락한 적은 없었다. 이 남자 저 남자 다 꼬시고 다니는 여자들일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여자에게 번호를 받는 그 장면을 이치마츠가 언제 본 건지 카라마츠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으응~ 그건 또 언제 보셨대?"



 "난 다 알고 있어요오... 카라마츠 씨는 꼭 오래 연애하세요, 나처럼 아파하지 말구........"



 뭐랄까, 이치마츠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반응이 귀여워서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이 상황을 즐겼다. 이치마츠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카라마츠 씨는 애인 없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한 번쯤은 내가 당신의 애인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 했는데........."



 어쩌면 카라마츠의 마음은 더 이상 숨겨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이치마츠의 손가락에 있던 반지도 없고, 이치마츠는 현재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이치마츠를 다른 누군가에게 뺏기기보다는, 카라마츠가 먼저 잡고 싶었다.



 "...그거 알아요? 당신이 마신 그 카시스 프라페, '키스를 부르는 칵테일'이라는 별명이 있다는 거."



 "네...?"



 "나 지금 당신한테 작업 거는 거예요."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입을 포개었다. 달달한 복숭아 향이 카라마츠의 입안에 퍼지는 것 같았다.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카라마츠의 입맛에도 이 키스만큼은 달달해도 좋았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바 안에서 단둘만을 비추는 붉은빛 조명, 은은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재즈, 취할 것처럼 복숭아 향이 퍼지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둘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했다. 서로의 입술이 포개어진 채 조금은 느리게, 그래도 진하게 입맞춤을 하다가 입술이 벌어지며 서로의 혀가 섞이기 시작했다. 달곰씁쓸한 알코올 향이 카라마츠까지 취하게 만드는 듯했다. 혀가 조금 깊게 밀려 들어오자 이치마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숨을 가삐 쉬었다.



 "후읍, 응... 우웅.... 츕, 하으..."



 처음 키스를 하는 카라마츠에 비해 이치마츠는 키스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분명 전 애인과 키스 정도는 해 봤을 텐데, 아직까지 서툰 모양이다.



 '뭐, 그런 점이 귀여운 거지만...'



 그렇게 둘만의 고요한 새벽이 흘러갔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사적인 곳에서 만났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사실상 사귀게 된 거나 다름없었다. 둘은 고급진 호텔에서 와인을 마시며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데이트라고 하기엔 조금 모호할 수 있지만, 카라마츠에게 있어선 첫 데이트나 다름없었다. 이치마츠는 호텔 방에 들어오고 커다란 창문 너머를 바라보느라 바빴다. 도시의 온갖 불빛이 모두 모여 아름다운 야경을 이룬 모습은 이치마츠의 시선을 끌었다.



 "이치마츠 씨, 여기 와인."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잔을 건넸다. 이치마츠는 그 잔을 조심스럽게 받고선 카라마츠와 건배를 했다. 잔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청명했다. 카라마츠가 와인을 한 입 들이키더니 말했다.



 "사실 전 이런 게 소원이었어요. 애인이랑 전망 좋은 호텔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하는 거."



 "꽤 낭만적이네요."



 그 애인이 이치마츠 자신이라는 걸 생각하니 이치마츠의 귀가 서서히 빨개졌다. 조금 후덥지근해져서 와인을 홀짝였더니 카라마츠가 무언가 눈치챈 듯 말했다.



 "아, 와인은 별로인가요?"



 "네? 아, 아뇨, 그건 아닌데... 생각보다 써서요."



 카라마츠는 푸흐, 웃으며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실히 어린 아이 입맛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럼 제가 칵테일 만들어 드릴게요."



 "엣... 재료 있어요...?"



 "으응, 이럴 줄 알고 제가 챙겨왔죠."



 카라마츠가 챙겨온 재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꽤 간단한 칵테일을 만들려는 모양이다. 늘 바에서만 칵테일을 만드는 모습을 보다가 다른 곳에서 사복 차림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니 이치마츠의 기분이 낯설 정도로 떨렸다.



 "...카라마츠 씨가 무언가에 전문적인 모습을 보면 되게 멋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고마워요."



 카라마츠는 순식간에 만든 칵테일을 이치마츠에게 건넸다.



 "이건 피치 크러쉬(Peach Crush)라는 칵테일인데, 여성 분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치마츠 씨의 입맛이 여성 분들과 많이 닮았더군요."



 "확실히 맛있어요... 정말 제 입맛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치마츠와 정반대인 입맛을 가진 카라마츠는 와인을 마저 들이켰고, 이치마츠는 조금 나른한 듯 칵테일을 홀짝였다.



 "카라마츠 씨는 그런 쓴맛의 술이 맛있나 봐요?"



 "네, 쓰긴 해도 향이 좋거든요. 이치마츠 씨는 아직 어린애 입맛이라 잘 모를 거예요."



 "읏, 전 애가 아니라 어른이거든요?"



 "제가 볼 땐 어린애인 걸요, 뭐-"



 카라마츠는 픽 웃으며 이치마츠에게 입 맞췄다. 서로의 혀가 진득하게 얽히며 달달하고 조금은 새콤한 맛이 카라마츠의 입안에 감돌았다. 아까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더 달게 느껴졌다. 잠깐 숨 쉴 틈을 주기 위해 카라마츠가 입을 떼자 이치마츠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씁쓸한 어른의 맛이 나요."



 카라마츠는 와인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이치마츠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선 깊게 혀를 섞었다. 좀 더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었는데, 카라마츠의 몸이 참지를 못했다. 이치마츠도 자신의 잔을 내려놓고선 카라마츠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균형이 뒤로 무너지더니 이치마츠는 침대에 눕혀졌다. 카라마츠는 제 검은 티를 벗고선 이치마츠의 목에 키스했다. 으응, 투정을 부리듯 이치마츠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왔다. 카라마츠의 손은 이치마츠의 옷 안으로 들어가 가슴을 어루만졌다. 굵은 손 마디 하나하나가 이치마츠의 몸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하읏, 아, 으응.... 카라마츠 씨..."



 "형이라고 불러줘요, 응?"



 "우으, 형... 카라마츠 형.... 흣, 응..."



 "예뻐라."



 카라마츠의 손은 이치마츠의 골반까지 내려갔다. 카라마츠는 꼼꼼하게 이치마츠의 귓바퀴를 따라 입을 쪽, 쪽 맞췄다. 이치마츠의 엉덩이골을 큼지막한 손으로 매만지자 이치마츠의 몸이 움찔거렸다.



 "저, 그... 처음인데..."



 "애인이랑 이런 건 안 해 봤어요?"



 이치마츠가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카라마츠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치마츠의 처음을 자신이 가져가는 거니까. 카라마츠는 낮은 목소리로 이치마츠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걱정 마요. 이 밤이 지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Fin







쉬어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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