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깔끔하던 검은 책상 위에 오늘은 크고 두꺼운 서적 두어 권이 각각 덮이거나 펼쳐져 있고, 펼쳐져 작고 빽빽한 활자들에 더해 의미 모를 표와 그래프까지 무덤덤히 내보이는 책 옆에는 그 갈피에서 흘러나왔다기에는 이질적인 사진 한 장이 무심히 놓여 있었다. 자신이 왜 손을 뻗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틈도 없이 시노하라는 사진을 집어 들여다보았다. 네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작고 파란 꽃들을 가득 피워 제 얼굴만 한 꽃차례를 여러 덩어리 이룬 수국을 뒤에 두고 서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명한 사진 속 아이는 정교한 인형 같았다. 아직 말랑하지만 정갈하게 또렷한 이목구비에, 단정한 머리, 구겨진 곳도 흐트러진 데도 눈에 띄지 않는 반팔 셔츠와 반바지에, 티끌 하나 묻지 않았을 듯이 하얀 양말과 자그마한 검정 구두. 아니. 인형 같다기보다 어린 왕족의 풍모일까. 그렇게 느낀 것은 이 작은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있는 엄격한 부유함의 자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아이의 모습에, 자그마한 얼굴에, 까만 두 눈에 살아 어려 있는 인간의 빛이 눈길을 끈 탓이었다. 나이에 비해 의젓하다 못해 조숙한 자세와 표정, 눈빛. 자신이 어떤 환경에 뿌리박혀 무엇을 요구받고 있는지를 이미 깨달아 버린 듯한 조숙함.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마음 담을 곳을 찾아 하염없이 몸부림치고야 말 어리고 여린 조숙함. 그것은 마치 수국이 싱싱하게 핀 어느 여름날의 한순간이 사진 안에 고정된 것처럼, 아이가 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변함없이 이 아이의 모습으로 그 마음 깊숙이 붙박여 있을 것만 같았다. 끊임없이 탐색하고 분석하고 갈구하는 예민한 총명함과 함께.


처음 보는 어린애 사진 한 장 가지고 아주 소설을 쓰고 앉았다는 기분도 들지만, 사진 속 아이는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 낯익음이 가슴 한켠에 거역할 수 없는 애틋함이 되어 맴돌며 상념을 부르고 휘저었다.


문득 인기척을 느꼈다. 급히 걸려온 전화를 마쳤는지 카츠야가 곁에까지 다가왔다. 말도 없이 멋대로 사진을 들여다본 것이 머쓱해졌다.


“선생님과 닮았어요.”


사진을 카츠야에게 내밀며 시노하라는 안전한 선에서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카츠야는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반기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대신에 무언가 망설임 같은 빛이 그 얼굴에 아주 짧은 순간 비쳤다 사라졌다. 사진은 시노하라의 손끝에서 당겨져 빠져나갔다.


“닮았겠죠. 제 사진이니.”


대답을 마치자마자 카츠야는 자신의 사진을 펼쳐져 있던 페이지에 곧장 끼워 넣고 책을 덮었다. 그러고는 그 책을 곁의 책과 함께 추려서 책꽂이의 빈 공간에 꽂았다. 길지 않은 순간의 동작 하나하나가 방금 전의 사진에 대해서는 그 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두툼한 책의 갈피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양 옆에 이웃한 책들을 빗장으로 삼은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을 시노하라는 다시 떠올려 책을 꽂는 카츠야의 모습에 겹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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