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시발

아 시발!!!!

방금 진짜 존나 무섭고 소름 돋아서 뒤지는 줄 알았네.
미친놈아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경고도 없이 훅 해버리냐.

공포영화도 시발 시작하기 전에 임산부 및 노약자, 심약한 사람은 존나 조심하라고 경고해준다고 해적새끼야 내가 놀라서 심장이라도 멈추면 너 살인이라고.

아아아아아아 시발 아예 짐작도 못하고 있던 뜬금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랑 연결되는 점이 제일 소름끼쳐 으아아아아아

칼리파 수수께끼 그거잖아. 시발 진짜 기억 조작하는 뭔가가 있다는 거잖아. 아니 시발 그 경고속의 무언가가 실재하는 위협이라는 거 이렇게 빨리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황마저 속수무책인 상대한테 뭐 어쩌라는 거야. 경고한들 의미가 있긴 해?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 시바.

일단 하비하비 열매 말고, 기억을 조작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하비하비 열매는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을 모든 사람에게서 지우는 효과니까.

자기가 스스로에게 한 짓을 잊어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근데 샹크스 팔 잘릴 때 바다에 있었잖아. 바다에서 열매를 쓰는 거 가능해?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기억이 조작된 건가? 아니면 나오고 나서? 루피의 기억도 조작한 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시팔 그건 샹크스도 모르겠지.

그리고 더 무서운 게 있다. 샹크스가 기억이 조작당하기 전에, 조작당할 거라는 걸 깨닫고 자기 팔을 잘랐다면 말이야. 그 때 움직일 수는 있었다는 거잖아.

그런데 눈앞의 기억조작능력자를 죽이는 게 아니고 자기 팔을 잘라?

샹크스 사황이잖아. 이 세계관 최강자 중 한 명이잖아. 왜 그때 그런 판단을 한 거지? 설마 기억조작하는 인간이 사황보다 물리적으로 쎈 건 아니겠지?

“샹크스는 그 자를 럼주라고 불렀어. 럼주를 조심하라고. 마주치면 숙취로 안 끝날 거라고 했지.”

…아니 잠깐만.

왜 하필 럼주인데? 팔 하나 잃어버리고 기억도 안 나는 현상을 숙취보다 무서운 거 정도로 표현하는 거야? 너무 빈곤한 표현력인 거 아냐?

“…그래서 나와 단 둘이 만나야 하는 용건이 이거야? 그… 럼주에 대한 경고? 아니면 내가 럼주에 대해서 뭘 아는 지?”
“장관은 럼주라는 단어 평소에 안 쓸 거 아냐? 평소에 쓰는 단어로 불러.”

아.
검색.
그렇지.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자가 있다면 특정한 키워드로 검색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나는 내가 평소에 자주 쓰는 어휘가 무엇이 있는지 고민했다. 머릿속으로 말하는 거 포함하면 시발일거 같은데.

“진통제…?”

내 말에 에이스는 잠시 침묵했다.

“음… 그래. 진통제구나. 장관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가…”
“됐고. 진통제 관해서 물어보려고 온 거면 나도 아주 최근에나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거라 어쩌다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계기 정도밖에 할 말이 없어.”
“그거에 대해서도 듣고 싶지만… 진짜 용건은 이 걸 보여주려고 온 거야.”

에이스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려고 시도하더니 약간 인상을 썼다.

“음. 장관.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종이 좀 꺼내줄래?”

수갑 끼고는 잘 안 되는데. 에이스가 말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궁금해서 뒤질 것 같았으므로 그 말을 따랐다.

구깃구깃한 종이는 여러 번 접힌 신문의 한 페이지로 보였다.

“이게 뭔데.”
“펼쳐봐.”

펼치자마자 나는 사진 속, 존나 행복하게 쳐웃고 있는 젊은 가프와 눈이 마주쳤다.

뭔데 이게. 몇 년도 신문이지. 잠깐만. 가프 왜 정장 차림이야? 어울리지도 않는 나비넥타이에.

그리고 가프 옆에 같이 웃고 있는 여성은 웨딩드레스 차림이었다.

…응?

“장관은 이 여자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아니. 가프가 결혼했었는지도 지금 처음 알았는데. 하긴 자식이 있으니까 당연한가…?”
“기사 내용, 읽어봐.”

나는 쪼끔 당황했다. 사진이 거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어서 기사는 몇 줄 안 되지만… 어… 뭐 읽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소리 내서 읽는 건 자신 없는데.

“그…”
“왜. 안경이 없어서 그래?”
“음… 비슷해. 어쨌든. 읽어줄 수 있겠어?”
“어렵지 않지.”

에이스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는 바람에 나는 당황했다. 아니, 내가 들고 있는 걸 읽어주려면 그래야겠지만…

침대에 신발 신은채로 발 올려놓지 말라고 시발. 존나 신경쓰여. 가정교육을 어떻게… 아니… 생각해보니 가정교육 안 받았구나. 미안하다. 내가 참아야지.

에이스가 신문 기사를 읽었다.

“가프 중장과 드라세나 준장의 결혼식에, 해적들 난입하다. 영웅 가프와 흑룡 드라세나 준장이 연애중이라는 소식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결혼을 발표하여 전 바다가 충격으로 출렁였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진행된 결혼식에 로저해적단을 비롯한 신세계의 유명 해적단들이 난입하였는데, 그들은 놀랍게도 축하하기 위하여 온 것이니 싸우지 않겠다며 같이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해적들이 입힌 피해는 적지 않았는데 부서진 테이블은 총 31개…”

나는 그동안 사진을 찬찬히 보았다.

젊은 센고쿠는 여기서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치고 있었다. 하긴, 해군 영웅 결혼식에 해적들이 웃고 술 마시고 그게 또 사진으로 찍혀서 전 세계로 퍼지려고 하고 있으니… 빡칠만 하네.

그래도 센고쿠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유쾌한 순간을 박제한 것 같았다.

“…해적이 해군 결혼식을 축하하다니 신문 1면에 나올 만하네.”
“그치? 참석한 사람은 물론이고, 참석하지 않은 사람도 못 잊을 결혼식이었을 거야.”

그러게. 원작에서 오다가 안 풀어준 설정을 이렇게 보고 있으니 쫌 감회가 새로웠다. 그려지지 않은 모든 장면에서도 시간은 흘러가고 사건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모든 인간에겐 부모가 있고 그 부모들에겐 나름의 러브스토리가 있겠지. 루피 엄마는 어떤 인간인지 또 궁금해지네. 드래곤하고 언제 어떻게 만났을까?

“그런데 이렇게 큰 사건을, 이 결혼식을, 지금에서야 처음 알게 된 거 이상하지 않아?”

어…
…어?

“가프 할배는 자기는 결혼한 적이 없다고 했어.”

어느 날 집에 가니 모르는 애가 있어서, 엄마가 누군지 짐작도 안 가는 애를 기르게 되었다고 했지. 에이스의 목소리가 약간 가라앉았다.

“가프는 누굴 부정할 사람이 아니야.”

거짓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나는 에이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신문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냥 기억을 못하는 거야. 결혼식도, 이 사람도.”

가프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누구도 이 여자를 몰라. 사진도 있고 이름도 있는데, 존재했다는 걸 증명할 수가 없어.

“레일리 씨는 처음엔 이 사진이, 잘 만든 가짜신문이라고 생각했대. 왜냐면 자신에게도 결혼식에 참석한 기억 따위 없으니까.”

가프에게 자식이 없었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로 끝났을 거야. 에이스가 말했다.

…드래곤.

뜬금없게도, 나는 예전에 가졌던 의문이 생각났다. 드래곤은 왜 혼자 이름이 튀는 걸까? 가프–드래곤–루피에서 드래곤만 좀 이상하잖아. 어디서 따온 거지?

그 의문이 지금 풀렸다. 그 이름은 엄마한테서 따온 것이었다. 그게 유일하게 남은 증거였다.

에이스는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나 말야, 평생 동안 로저를 원망했거든. 특히 자수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더욱.”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이 잡듯이 포트거스 D. 루즈를, 엄마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는 거 알 텐데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죽었을까? 해적왕이라며? 어쨌든 그만큼 강한 사람이면 엄마 옆을 지켜줄 수 있었잖아. 최소한 내가 태어날 때까지. 그러면 엄마는 그렇게 힘들게 나를 지키지 않았어도 되는 거 아냐? 그러면 내가 태어나면서 엄마를 죽이지 않았어도 될 거 아니냐고.

“레일리 씨도 로저 체포 소식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대. 루즈와 잘 살 줄 알았더니 왜 체포된 건지. 처음엔 해산했던 해적단들 불러 모으려는 장난인 줄 알았다더라.”

그래서 찾아갔더니 로저가 이 신문을 줬대. 누구 한 명이라도 이 여자에 대해서 기억하냐고. 우리 모두가 참석한 결혼식이라는데, 왜 아무도 모르냐고.

“…원피스를 가진 자가 여태까지 한 명도 없었다면 그 전설은 어떻게 전해져 오던 걸까? 사실 이미 여러 사람이 가졌었고, 다만 그걸 기억 못하는 것뿐이라면?”

원피스를 가졌던 사람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면, 모든 사람들이 원피스에 대해 다시 잊어버리지 않을까?

“로저는 이 신문을 자신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고, 해루석 철창 안으로 보호받기 위해서 들어갔다고 했어. 무엇인지 몰라도 이 사람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것이 악마의 열매 능력이라면 철창 안에는 닿지 않을 테니.”

죽을 생각이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이건 실험일 뿐이라고 했더라. 근데 더 무서운 게 뭔 줄 알아? 에이스가 물었다.

어… 더 무섭고 싶지 않은데요. 지금 알게 된 것들이 제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사실들이었으면 좋겠는데요.

그렇지만 내가 아니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에이스가 말을 잇는 것이 빨랐다.

“이 신문을 우연히 다시 보기 전 까지, 로저랑 대화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없었대. 레일리조차 로저가 불치병이라서 자수했던 거라고 기억하고 있던 거야.”
“…아니야?”
“원피스를 한 번 손에 넣었던 사람이 불치병으로 죽을 리가 없잖아.”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질병이라도, 최소한 건강할 때로 신체를 돌려주는 열매 능력자를 찾으면 아프지 않게 살 수 있는데. 에이스의 말에 나는 납득했다. 

그렇지. 뒤로뒤로 열매도 있고. 그 뭐냐. 쥬얼리 보니도 사람 신체나이 막 바꿀 수 있고. 누구 나 치료해줄 사람? 하고 명령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그럼 뭐야 시팔.

로저를 이 세상에서 잊히게 만들진 못했지만 대신 그가 왜 죽음을 택했는지를 조금씩 조작했다는 건가? 진통제가? 그럼 레일리는 확실히 진통제 먹은 인간인거고?

점점 노답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렇지만 방금 이야기는 중요한 단서를 알려줬다.

“…진통제는 완벽하지 않은 모양이네. 먹어서 사라진 줄 알았던 고통도 계기만 있으면 다시 돌아온 거 보면.”

그렇다면 샹크스도 어떤 ‘계기’가 있다면 그 날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정확히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관.”
“응?”
“…이 사람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질까? 보여준다면, 떠올릴 수 있을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니, 소용없을 거야.”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없었던 존재가 되는 것.

이건 이미 아는 능력이다. 하비하비 열매.
하비하비 열매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지워진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떤 계기로 인해 되살아 날 리가 없다.

인생에 너무너무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있다면, 사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그 인간을 떠올리는 단서가 될 테니까.

결혼사진만 봐도 되돌아올 기억이면, 이미 수천 번 수백 번 떠올렸을 것이다.

“절대로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완벽하게 잊어버렸다는 것만을 확인시켜주는 일이 될 걸.”

에이스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소용없더라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낯선 사람으로 느껴지더라도, 그래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닐까? 절대로,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는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라. 할배가 그 이후로 아무하고도 결혼하지 않은 거. 아주아주 깊은 무의식 속으론 이미 결혼했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르잖아.

에이스의 목소리는 점점 가라앉았다. 거의 울겠군.
나는 다시 신문을 보았다. 사진 속의 둘은 아주 행복해보였다.

슈가에게 당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가프 부인에 대해 모를 리가 없으니까. 누가 나한테 야 최신화에 루피 할머니 나옴 하고 스포 했을 거라고.

뭐 애초에 시간대가 맞지 않지만. 슈가 이전의 하비하비 능력자에게 당한 걸까? 그런데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인형인 채로 죽으면 영영 돌아올 수 없나?

아예 다른 열매능력자에게 당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어느 쪽이든 기억이 돌아 올 희망은 없었다. 해적왕에게, 나는 당신을 지울 수 있노라고 협박한 인간이 저지른 짓이니.

“나는 이걸 가프에게 알려주는 게, 괴롭히는 거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더 큰 문제지. 지금 가프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기억해.”

이 문제에 대해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주 절박해져서 주위 따위 신경 쓰지 않게 되어버리면? 이 세계 전체가 멸망할 수도 있어. 내 말에 에이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장관은 어떨 거 같아?”
“응?”
“장관이 누군가를 잊어버렸다면.”
“뭐 누가 당신 뭐 잊어버렸다고 말해주기 전까진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하겠지. 그런 말 들어도 전혀 기억 안 나는 사람이라 아무 느낌도 안 들 거고.”

하비하비 열매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니까. 위화감조차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아, 로빈 누님이 잠시 지워질 때는 갑자기 로빈 누님만 없는 원피스 세계에 빙의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인간일거야, 하고 생각하게 되려나?

이 생각이 들면 바로 로빈누님 인형이 되었나보다 하고 역으로 알겠네.

“장관은 자신이 잊어버린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그걸 어떻게 알아. 잊어버렸어도 뭐 잊어버린 거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텐데.”
“기억과 상충되는 기록이라든가, 내 손으로 썼는데 전혀 모르겠는 내용 같은 거 본 적 없어?”

음… 없는데. 기억과 상충되는 기록을 봤다는 건 이미 처리했던 과거의 보고서들을 다시 꺼내서 확인해 본 적이 있단 거잖아? 오늘 처리해야 할 것도 밀려있는데 그런 짓 할 시간이 어디 있어.

내 손으로 쓴 거라면… 음.

“없어도, 지금 확인해보자. 지금 다시 읽으면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띌 지도 모르잖아. 난 일기 같은 거랑 거리가 멀어서 확인할 수단이 없단 말이야.
“…유감이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있긴 했는데 누가 태워버렸거든. 내 말에 에이스가 눈을 깜박였다.

“태워? 누가? 왜?”

나는 잠시 고민했다.

“…스팬다인이.”
“누구?”
“이 몸의 아버지.”
“어… 왜 태운 건데?”
“나도 몰라.”

정상결전 끝나고 생사를 헤매고 있을 떄 내 방을 뒤져서 태웠다는 것만 전해 들었지. 내 말을 듣고 에이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런 거래?”
“모른다니까. 그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물어볼 생각은 안 했어?”
“…마주치면 물어보려고 했어.”

그런데 내가 깨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면회신청을 안 하더라. 내 말에 에이스는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음. 사이가 엄청 안 좋아?”
“죽었다 살아났는데 보러 오지 않을 정도로는 나쁘진 않아. 아마도.”

에이스는 내가 스팬다인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걸 캐치한 건지, 아니면 그냥 더 궁금하지 않은 건지는 몰라도 더 캐묻지는 않았다. 무언가 생각할 게 생겼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스팬다인 진짜 도움이 안 되네. 왜 태운 거냐.

뭐, 수첩이 없어도 큰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원피스 원작에 대한 기억을 적어놓은 거니.

내가 만화책을 읽은 것은 빙의 전의 일이다. 하비하비 열매로는 절대로 그 영역의 기억을 조작할 수 없을 것이다. 원피스의 모든 인간이 인형이 되어버린다 할지라도 빙의 전의 기억은 안 바뀔 테니. 빙의 후의 기억만 바뀌겠지. 원피스 캐릭터만 없는 원피스 세상에 스팬담이 되다니 뭐 어쩌자는 거지, 하고.

디테일은 많이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주요 등장인물 이름 정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에피소드 순서대로 쓸 수 있다.

그 명부가 있는 한 원작에 있던 캐릭터를 잊었는지 아닌지는 쉽게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흠. 지금 바로 이름만 쭉 써놓고 만난 기억이 있는 캐릭터는 체크 표시 해둘까. 그럼 나중에 기억 못하는 체크표시보자마자 잊어버린 거 바로 확인 가능하겠지.

뭐 이 방법으로는 이름 없는 엑스트라로 등장했거나, 원작에 아예 등장 안 했던 인간들을 확인 할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원작에는 안 나왔던 인간들에 대한 자필 일기를 써야하나. ‘닥터 커틀릿이 오늘도 진통제를 안 줄 거라며 나를 협박했다.’ 뭐 이렇게.

음…

근데 그거 봐도 닥터 커틀릿을 잊어버렸다는 거 깨닫기 어려울 거 같은데.

아니, 그 뭐라고 할까. 커틀릿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건 아닌데 말이야.

‘당신에겐 당신이 기억 못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하면 허어억! 아내라니, 내가 결혼했다고? 어떻게 결혼했던 걸 잊을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보 이상해! 하겠지만
‘당신에겐 당신이 기억 못하는 주치의가 있습니다.’ 하면 허…? 어… 뭐,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마주치는 사람을 다 기억해…이럴 거 같다고.

그 기록 봐봤자… 닥터 커틀릿? 뭐야 이 처음 보는 이름은. 존나 웃긴 이름인데. 근데 내가 쓴 글씨잖아. 어…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거 보니 금방 짤린 놈인가보네. 하긴 진통제 안 준다는 놈이니까 내가 바로 바꿨겠지. 하고 물 흐르듯이 위화감을 못 느끼고 넘어갈 거 같단 말이지.

하긴 그렇게 따지면 뭐 잊어버렸다는 거 깨달으면 충격적일 관계의 인간이 지금 나한테 뭐가 있겠어.

터포키? 터포키 잊어버리면 어떠려나.

당신에게는 당신이 기억 못하는 보좌관이 있습니다…!

음. 역시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은걸.

그래도 터포키를 그냥 보좌관이라고 축약하기는 좀 그렇지. 뭐랄까 사실상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잖아. 하루에 16시간 이상 봤던 인간이 기억 안 나는 거라고 하면 좀 심각성이 느껴지겠지.

…새삼 터포키새끼 퇴근 안하는 거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드네. 직장상사랑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말이 돼? 이야 이정도면 내가 없어졌다간 터포키는 몇 년간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수준이 되겠는데.

뭐…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터포키 없을 땐 어떻게 혼자서 일했는지 몰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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