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 : https://819fav.postype.com/post/668343/




아이돌 보쿠토 X 작가 아카아시




일본에 도착해 짐을 찾아 나가자 공항에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정상 연예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인 비연예인들과 패키지여행 다녀오기, 보쿠토가 일본을 떠난 후 일본에서는 보쿠토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다. 평소에도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했던 보쿠토였기에 역시 보쿠토답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사람들에 관심에 응답해 기자들이 보쿠토를 취재하러 나온 것이다.


아카아시는 새삼 보쿠토가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그 현장을 서둘러 빠져 나와 택시를 탔다. 혹시 꿈은 아닐까? 아직까지도 보쿠토의 온기가 손에 남아있는 것 같은데…, 아카아시는 보쿠토와 닿았던 손을 내려다보며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프긴 한데. 그리고 그런 아카아시를 보고 있다는 듯이 라인 알림음이 울렸다.


「집에 들어가서 연락 줘. 보고싶다. - 보쿠토 코타로」


아카아시는 자신의 볼을 꼬집던 손을 놓았다. 다행히도 꿈이 아니었다. 아카아시는 집에 도착해서 「도착했어요. 보쿠토 씨는요?」 라고 답장을 보냈고, 그 날부터 보쿠토와 아카아시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아카아시도 보쿠토의 번호를 알게 된 이후로 둘은 전화통화도 자주 했다. 10일 간의 짧은 휴가를 끝내고 활동을 재개한 보쿠토였기에 자주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잠깐잠깐 연락을 하는 동안에도 최대한 애정을 담은 라인을 보내거나 통화를 했다. 


둘 사이의 연락이 뜸해진 건 보쿠토가 속한 그룹이 신곡을 발표하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아카아시가 새로운 작품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관심 가는 소재와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 두 가지가 충분히 충족된다면 아카아시는 작품 집필을 시작했다. 이번 신작의 소재는 아카아시로서는 당연했다. 타지로의 여행,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같은 나라 사람, 그리고 사랑.


「아카아시, 미안해. 답이 늦었지? 우리 이번에 신곡 발표한 거 들어봤어? 곧 콘서트도 한대!」

「미안해요, 답이 늦었죠. 들어봤어요. 노래 정말 좋던데요. 잠깐 쉴 때마다 계속 듣고 있어요. 화이팅해요.」

「늦어서 미안, 아카아시. 고마워! 글은 잘 쓰고 있어? 시간 될 때 알려줘! 목소리 듣고 싶어.」

「지금 될 거 같은데 가능해요?」

「늦게 봤어!! 진짜 미안해.. 얼굴 정말 보고 싶다..」


약 한 달 정도 데이트 없이 연락만 주고받는 둘에게서 '연락 늦게 봐서 미안해'와 '보고 싶다'는 둘 사이 연락의 기본 문구였다. 약 이 주 정도는 글을 쓰는데 정신없이 몰두하느라 보쿠토의 늦은 연락에도 '바쁠 텐데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아카아시지만, 작품 속에서 행복하게 설렘을 느끼며 사랑하고 있는 인물과 달리 현실에서는 보쿠토를 볼 수조차 없는 자신을 마주하자 아카아시는 작품에 따른 스트레스와 별개로 다른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보쿠토는 역시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여행에서 다녀온 이후 아카아시를 보지 못해 굉장히 스트레스가 쌓여 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기분을 대중에게 그대로 보이면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보쿠토는 최대한 그 스트레스를 무대에서 풀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아카아시를 못 본지 한 달이 넘었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보쿠토를 위해 부끄러워하면서도 보내준 아카아시의 사진을 보며 보쿠토는 화보촬영을 위한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어, 아카아시 케이지 아냐?"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사진을 띄워놓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보쿠토의 메이크업 담당인 시로후쿠 유키에가 그 사진을 보고 아카아시의 이름을 내뱉었다.


"아카아시 알아?"

"응, 유명한 작가잖아. 나 완전 팬이야. 보쿠토 아는 사이야?"

"응, 잘 알고말고."


내 애인인데, 보쿠토는 뒷말을 삼켰다. 어머, 웬일이야! 시로후쿠는 혹시 보쿠토를 통해 아카아시를 만나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불가. 나도 지금 못 보고 있는데."

"이번에 작가 사인회 하는 거 같던데, 거기라도 어떻게 안 될까?"

"작가 사인회…? 아카아시의? 어떻게 신청하는 거야, 시로후쿠, 어떻게 가?"


평소처럼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던 보쿠토는 시로후쿠의 말에 몸을 휙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조금 흥분한 보쿠토의 모습에 그녀는 말을 잘못 꺼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글쎄, 선착순 아닐까…?"


아카아시의 작가 사인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보쿠토는 사인회가 열리는 날짜에 있는 스케줄을 최대한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그 날에는 기획사 사장님과 밥을 먹는 등 비공식적인 약속들뿐이었으므로 보쿠토는 특유의 행동력으로 그 날을 깔끔하게 비워놓았다. 물론 아카아시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서프라이즈로 준비해야지. 아카아시의 사인회 일주일 전,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라인을 보냈다.


「아카아시!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 돼? 같이 밥 먹자!」

「가능할 거 같아요. 좋아요.」


핸드폰이 근처에 있었는지 아카아시에게서도 답장이 빠르게 왔다. 사인회에 깜짝 방문으로 인사하고 저녁에 밥 먹는 거야. 완벽해! 보쿠토는 하루하루 시간이 더욱 빠르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며 매일 밤 소원을 빌었다.


오랜만에 보쿠토로부터 만나자는 내용의 라인을 받은 아카아시 역시 무척 기뻤다. 보쿠토와의 연애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아 받는 스트레스는 작품 속에 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담당자는 읽더니 주인공의 스트레스가 꽤나 현실적이라며 혹시 요즘 연애해? 라고 아카아시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작품도 거진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담당 출판사에서 작가 사인회가 가능하냐며 문의가 왔다. 보쿠토도 바쁜데 나도 더 바빠져야 리듬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아카아시는 평소라면 수락하지 않을 작가 사인회 요청에 오케이를 했다. 수락을 한 다음 날 아카아시는 괜히 했나? 하고 조금 후회하긴 했지만, 사인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오히려 설렘이 더욱 커져만 갔다.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을 직접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날 저녁 보쿠토도 만날 수 있다. 아카아시는 뒤풀이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고 출판사에 말해놓은 뒤 매일매일 그 날만을 기다렸다.




-




아카아시의 사인회 당일, 도쿄에서 가장 큰 서점에서 열리는 사인회였다. 한 500명 정도 선에서 자르려고 해요, 담당자의 말에 아카아시는 500명이나 올까 하는 걱정은 속으로 혼자 삼킨 뒤 네, 하고 대답했다. 사인회가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가자 아카아시는 담당자를 따라 사인회 장소로 이동했다. 엘레베이터로 꽤나 높은 층까지 이동한 뒤 내리자 아카아시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자리, 그리고 줄을 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카아시가 모습을 보이자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담백하고 깔끔한 문체와 더불어 잘생긴 외모로도 유명한 아카아시 케이지였다. 수많은 여성 팬들 사이에서 몇몇 있는 남자 팬들, 그리고 그 중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보쿠토 코타로가 있었다.


서점이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7시, 아카아시의 사인회는 오전 11시 예정이었다. 정보를 알려준 시로후쿠와 평소 아는 작가들 등 여러 사람들에게 문의해본 결과, 아카아시처럼 인기 많은 작가일 경우 최소 서점이 문을 여는 그 시간에는 도착해 있어야 한다고 보쿠토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당일 새벽 4시에 스케줄을 모두 끝낸 보쿠토는 선글라스와 모자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오전 6시 30분 정도부터 서점 근처를 돌아다녔다. 보쿠토 눈에는 그 시간에 서점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아카아시의 사인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전 7시, 서점 문이 열리고 보쿠토의 예상이 맞았던 듯 많은 사람들이 아카아시의 사인회 장소를 향했다. 부족한 잠 때문에 근처 카페에서 잠깐 졸던 보쿠토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서점에 들어갔다. 500명까지만 받는 아카아시의 사인회, 보쿠토의 노력이 통했던 듯 보쿠토는 340번대의 번호를 받고 아카아시를 기다렸다. 아카아시가 저 멀리서 등장하자 보쿠토는 방방 뛰며 박수를 쳤다. 목소리를 내면 들킬 수 있으므로 최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인회 처음인데… 정말 감사합니다."


정확히 오전 11시에 등장한 아카아시는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인회를 시작했다. 길게 끄는 것 없이 바로 사인회를 시작하는 아카아시를 보며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글답다고, 아카아시답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글은 그 사람을 그대로 담아내는 법이니까. 내 애인 멋있어…, 하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보쿠토를 누군가 뒤에서 톡톡 쳤다. 내가 누군지 알았나? 보쿠토는 긴장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만약 자기 때문에 아카아시의 사인회에 차질이 생긴다면 보쿠토는 미련 없이 이 장소를 뜰 생각이었다. 아카아시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앞에 자리 많은데 앞으로 좀 가주실래요?"


결연한 보쿠토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이미 아카아시의 사인회에 와서 아카아시를 영접한 팬들의 눈에 올 거라 생각지도 않는 보쿠토는 들어오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보쿠토는 빈 자리가 없도록 앞 사람 바로 뒤에 줄을 서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어느새 300명의 팬들을 만나고 있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거나, 길게 적은 편지를 전해주거나, 이거 맛있어요! 라며 맛있는 걸 전해주는 팬들 한 명 한 명에 아카아시는 감사함을 얼굴에 감추지 못했다. 낯을 가리는 아카아시는 어느새 없었고, 팬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고 얘기를 나누는 그 순간을 즐기는 아카아시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여성 팬들 사이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남성 팬들의 존재 역시 아카아시는 인지하고 있었다. 300여 명의 팬들을 만나면서 이미 서너 명의 남성 팬들을 만난 아카아시였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도 아카아시는 보쿠토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얼른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생각을 하며 다음 팬과 만나기 위해 이전 사람에게 사인을 해주다 얼굴을 든 아카아시였다.


"아카아시, 나 왔어."


그 눈과 다시 한 번 마주쳤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아카아시는 순간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보쿠토 씨…? 보쿠토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아카아시에게만 자신의 눈이 보이게끔 했다. 지금까지 두 번 마주했던 그 느낌, 아카아시는 아무래도 보쿠토를 만날 때마다 느낄 모양인가 하고 생각했다. 주위에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오직 보쿠토만이 아카아시의 시야에 들어왔다. 보쿠토는 손을 뻗어 펜을 쥐고 있는 아카아시의 손을 잡았다. 옆에서 경호원이 보쿠토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하자 그제야 아카아시는 주위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제가 아는 분이에요."

"아카아시, 인기 진짜 많다! 완전 멋있어."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아, 얘기는 조금 이따 하고. 이름이 뭐에요, 보쿠토 씨?"


아카아시는 보쿠토와 길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자신의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는 담당자와 보쿠토의 뒤에서 아직 기다리고 있는 100여 명이 넘는 팬들이 보여 얼른 현실과 타협했다. 이름? 나 보쿠토잖아. 아카아시의 물음에 보쿠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카아시는 환하게 웃으며 Dear. 뒤에 뭐라고 쓸까요? 라고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보쿠토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약간 고민을 했고,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카아시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보쿠토의 말을 들은 아카아시는 볼이 조금 붉어진 채로 그대로 적었다. 아카아시가 보쿠토에게 책을 건네자 보쿠토는 그대로 옆으로 빠졌다. 자신의 붉어진 볼을 손바닥으로 살짝 두드린 아카아시는 다시 팬들에게 집중하겠다는 듯이 팬들과 마주했다.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를 빤히 쳐다보며 아카아시의 사인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500여 명의 팬들에게 사인을 모두 해준 아카아시는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난 후 사인회장을 빠져 나갔다. 보쿠토도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으므로 미리 약속한 곳에서 매니저를 만나 차에 탑승했다.


"어때, 재밌었어?"


종잡을 수 없는 보쿠토의 행동에 매니저는 반 포기한 듯이 보쿠토에게 물어보았다. 보쿠토의 물론이지, 최고였어! 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매니저는 차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예약해둔 식당으로 가는 거지? 응, 부탁해. 


오랜만에 아카아시와 하는 저녁식사, 보쿠토는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해 놓았다.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향하는 길,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사인을 다시 한 번 보고 그 책을 자신의 품에 꼭 안았다. Dear. 나의 코타로, 보쿠토가 부탁한 자신의 이름이었다.




-



보쿠토의 깜짝 등장에 사인회가 끝난 이후로도 아카아시는 멍하니 있었다. 오늘 수고했다고 말하는 담당자의 말도 듣지 못해서 무시할 뻔 했다. 사인회 꽤 재밌지? 라는 담당자의 질문에는 오늘 같은 이벤트가 있다면 매일매일 하겠어요, 라는 대답은 속으로 한 채 "네, 재밌네요."라고 겨우 짧게 대답할 수 있었다.


원래는 사인회를 마치고 출판사 직원들과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미리 참여하지 못한다고 얘기해 놨기 때문에, 아카아시는 집에서 조금 휴식을 취한 뒤 보쿠토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유명한 쉐프의 레스토랑이었다. 연예인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개인실 예약이 용이하다는 것을 어디서 들었었던 것 같다.


사인회에는 편하게 입고 오라해서 캐주얼 룩을 입고 갔지만, 어쩐지 오랜만에 보쿠토씨와 만나는 이 약속에는 격식을 차리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최대한 멋있게 준비를 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카아시는 사놓고서도 잘 입지 않았던 세미정장을 꺼내 입었다. 보쿠토 씨가 당황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제일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리고… 이걸 주려면 정장이 나을 테니.


아카아시의 걱정과 달리 보쿠토 역시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길에 세미정장으로 갈아입은 채, 레스토랑에서 아카아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얼른 보고 싶다. 아까 봤지만 또 보고 싶어. 주머니에 든 작은 상자를 옷 위로 만지작거리던 보쿠토는 문 앞에 누군가 서는 기척이 들리자 긴장한 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보쿠토 씨…?"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카아시였다. 캐주얼 룩을 입고 있던 아까와 다르게 멋지게 세미정장을 입고 온 아카아시에 보쿠토는 한 번 더 반했다. 아까는 귀엽더니 지금은 멋있어! 아카아시는 방 안을 둘러보며 보쿠토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카아시가 방에 들어와 앉자,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예약 받은 요리들을 빠르게 두고 나갔다. 이제부터는 둘만의 시간이다.


"보쿠토 씨도 정장 입고 왔네요…?"

"응, 아카아시 진짜 멋있다."

"보쿠토 씨도 멋있어요. 나의 코타로 답네요."


아카아시의 기습 공격에 보쿠토는 어쩔 줄 모른다는 듯이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컵에 채워져 있던 물을 마셨다. 아카아시, 그런 거 어디서 배운 거야! 반칙이야! 보쿠토 씨가 저를 외롭게 하는 동안 공부 좀 했어요. 투정부리듯이 말하는 아카아시에 보쿠토는 씩 웃었다.


"사인회 무사히 마친 거 축하해."

"보쿠토 씨 덕분이에요. 사인회 같은 것도 해보고…."

"그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카아시가 그렇게 말해주니 되게 좋네."


한 달여 만에 만나는 두 사람이었지만 잠깐의 정적도 없이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한 달 간의 근황부터 곧 어떤 스케줄이 있는지 까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둘은 앞으로 더 데이트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보쿠토는 그룹으로 새롭게 발매한 앨범이 일본 전역에서 대히트를 쳐 전국 콘서트를 할 계획이며, 아카아시 역시 약 2년 뒤 발간 예정인 책을 위해 시간을 쏟느라 바쁠 예정이었다. 서로의 바쁜 스케줄을 확인한 둘은 약간 침울해졌다. 한 달 만에 보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서로 말은 안 하지만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아카아시! 근데 나 정말 너 좋아하거든."

"…알아요."

"아카아시랑 계속 붙어있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그런데 역시 아까 보니까 아카아시는 너무 인기가 많고!"


보쿠토 씨가 할 말은 아닌데요, 라는 말을 아카아시는 속으로 삼켰다.


"그래서 내가 이걸 준비했어! 짠!"


보쿠토의 오른 손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작은 상자였다. 아카아시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보쿠토는 그 상자를 열었다. 반지였다. 보쿠토는 오늘을 위해서 가장 심플하면서도 멋있는 반지를 고르는데 2주를 투자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카아시를 쳐다본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표정에 약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카아시였다. 너무… 일렀나? 아카아시의 표정을 읽은 보쿠토는 당황하며 상자를 올려놓은 손을 자기 쪽으로 가져오고 있었다.


"어…, 너무 일렀나, 아카아시? 미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아,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음…."


반지를 자신 쪽으로 다시 가져가는 보쿠토를 보고만 있던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반지를 든 쪽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테이블 아래에서 조금 뒤적거리더니 같은 색의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아카아시…?"

"보쿠토 씨 인기 너무 많아서 제 거라는 표현 해두려고 샀는데, 보쿠토 씨도 살 거란 생각은 못 했네요."


쑥쓰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는 아카아시에 보쿠토도 이 상황을 이해하고 역시 얼굴을 붉혔다. 아카아시! 우리 완전 운명 인가봐!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를 보쿠토에게 건넸고, 보쿠토 역시 아카아시에게 자신이 사온 상자를 건넸다. 둘이 사온 반지의 디자인은 조금 달랐지만 그것만은 명확했다. 서로 상대방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가장 편하게 끼고 다닐만한 반지를 사왔다는 것. 서로에게 선물 받은 반지를 각자의 손가락에 끼는 둘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카아시,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제가 할 말이에요, 보쿠토 씨."


아카아시의 대답을 들은 보쿠토는 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카아시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주저 없이 아카아시의 이마, 볼, 코에 차례차례 입을 맞췄다. 그리고 기대하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아카아시의 눈빛에 응하듯 아카아시의 입술에도 입을 맞췄다. 앉아있는 채로 보쿠토의 입맞춤에 응하던 아카아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보쿠토의 뒷목을 감싸며 더욱 적극적으로 입맞춤에 호응했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해서 만지지 못했던 시간들을 채우듯이 둘의 입술은 서로를 빠르고 정확하게 탐했다.


“이럴 줄은 알았어, 아카아시?”

“하아, 이건 조금 예상 가능했네요. 식사는… 포장할까요?"

"…좋은 생각이야, 아카아시. 우리 집으로 가자."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한 번 더 보쿠토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둘은 반지를 낀 손끼리 마주잡은 채 서둘러 레스토랑을 나왔다.



.

.

.



그리고 2년 뒤, 아카아시의 신간이 발간되었다. 제목은 <우연과 인연의 사이>, 이번 책 역시 발간되자마자 일본 전역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전국대회 진출에 실패한 심정을 탁월하게 담아내 전 작품이 호응을 얻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작품을 관통하는 책의 첫 줄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어떻게 그런 첫 줄을 쓰게 됐나요? 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아카아시는 “4달 전 쯤, 저랑 제 연인이 서로에게 프로포즈 할 때 했던 말이에요. 같은 말이요, 약속도 안 했는데 말이에요.” 라고 대답했고, 이 역시 대중들에게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우연히 만났으나 서로를 필요로 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카아시는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서로의 프로포즈 멘트는 그것에 딱 어울렸다.


“모든 인연에 이유 없는 인연은 없어요. 당신과 내가 지금 함께 하는 건 그래야 하기 때문이에요.”








*

모 아이돌의 일화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이큐 / 트위터 @jw819_

정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