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너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너의 집 마르티네스 저택의 정원사 중 한 명인 보니타의 한숨이 요즘 들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아…."

"보니타, 고민 있어?"

"깜짝이야. 둘째 도련님."

네가 갑자기 말을 건 탓에 보니타의 어깨가 움찔하고 한껏 위로 솟았다가 여상하게 내려왔다.

"한숨을 막 쉬고!"

"아유, 고민은요. 별일 없답니다~."

보니타가 그리 말해도 네게 큰 설득력은 없다. 기껏해야 네 형 또래─그러니까, 네가 보기에도 이 사람은 아직 어른 같지 않다는 말이다─인 여자아이가 어두운 낯이니. 너는 며칠째 그런 얼굴로 일하는 보니타에게 드디어 말을 걸었다.

"나한테만 말해봐! 비밀로 해 줄게, 보니타."

"둘째 도련님도 차암…. 괜찮대두요."

"…정말로 말 안 해 줄 거야?"

너는 보니타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보니타는 난감해하는 듯하더니 결국 네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큰일은 아닌데… 며칠 전부터 누가 화단의 꽃을 파헤쳐요. 새로 심으면 다음 날 정원사들이 없는 시간에 파헤쳐 놓고, 그래서 새로 심으면 또 파헤쳐 놓더라고요."

그의 말에 너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으아…. 완전 큰일 아니야?"

너에게는 제법 큰일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매일같이 너의 책상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놓아서 네가 매번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귀찮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보니타는 그것을 며칠째 하고 있는 셈이지 않은가.

"괜찮아요. 다시 심으면 되고. 언젠가는 멈추지 않겠어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네게 웃어주는 보니타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미소에 오히려 너는 그가 조금이라도 덜 피곤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힘든 일을 하고도 괜찮다고 웃는 얼굴이 아닌, 정말로 기뻐서 웃는 얼굴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편이 건강한 매력이 돋보이는 보니타에게 훨씬 잘 어울릴 터다.

"내가 범인을 찾아줄게, 보니타!"

"네? 둘째 도련님이요?"

"응, 나만 믿어!"

너는 주먹을 쥐고 네 가슴을 한 번 퍽 소리 나게 쳤다. 조금 아픈 것도 같았다. 이런 식으로 네가 부러 보니타의 앞에서 멋진 체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네가 눈앞의 정원사, 보니타에게 연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라, 정말요?"

네 말에 보니타가 히죽 웃었다. 그 미소가 너를 기쁘게 만들고 의욕을 돋웠다.

"그렇다면 저도 도울게요! 둘째 도련님 혼자만 고생시킬 수는 없죠!"

보니타가 눈썹에 힘을 주어 힘차게 웃으며 팔을 걷었다. 이건 네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었다. 네가 멋지게 범인을 잡아 보니타의 귀찮은 일을 없애주고, 보니타는 기쁘게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네가 생각하던 청사진이었으나, 보니타는 그리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니타를 좋아하는 네게 보니타의 말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보니타와 둘이서만 무언가를 조사하다니, 이런 기회가 네게 또 올까. 그래서 너는 냉큼 그 제안을 승낙했다.

"좋아! 보니타, 잘 부탁해."

네가 손을 내밀자, 보니타는 장갑을 벗고 네 손을 마주 잡았다.

보니타의 말에 의하면 꽃이 파헤쳐지는 곳은 어머니의 방에서 곧장 내려다보이는 화단인 모양이었다. 요 며칠간 매일 밤마다 파헤쳐졌지만 보니타─와 다른 정원사들─가 파헤쳐진 것들을 치우고 새 꽃을 심어놓은 덕에 꽃을 파헤치는 난폭한 짓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화단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리만치 꽃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우와, 이건 무슨 꽃이야?"

너는 화단 앞에 바짝 다가서 꽃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작고 구불거리는 꽃잎이 잔뜩 모여 작으면서도 풍성한 형태였다.

"이건 메리골드라는 꽃이에요. 마님이 이 꽃을 좋아하시니까 이쪽 화단에 심으라고 주인님께서 지시하셨거든요."

"그렇구나. 이것도 예쁘다!"

듣고보니 네게는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엄마'라고 불렀던 너의 모친은 가을이 되면 화단 가득 달리아를 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3개월 전에 새로 이 집에 새롭게 온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을 네가 알 턱이 없으니 말이다. 너는 돌아가신 엄마가 좋아하는 달리아를 볼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화단이 비어있는 것보다는 어떤 꽃이든 심어져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흐음…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나 동물이 뭐가 있을까?"

너는 괜히 친어머니가 사 주었던 브로치를 매만지며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았다. 메리골드는 달리아와 달리 가까이 앉자 달콤한 향기가 훅 끼치는 꽃이었다.

"동물이라면 작은 동물이 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

너는 화단의 규모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르티네스 가 저택의 정원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었지만, 파헤쳐지는 것은 ─과거에는 너의 친어머니가 사용했던─어머니의 방에서 잘 보이는 화단뿐이었다.

"우리 집에 말이야, 섰을 때 이 정도 크기가 되는 동물이 들어오진 못하겠지?"

너는 보니타를 보며 손으로 어깨 정도의 높이를 표현했다. 그러자 보니타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네. 그 정도의 동물이 들어올 구멍은 없어요. 그리고 그런 동물이 들어왔다면 이 저택의 정원사 모두가 알았을 거예요."

하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자그마한 고양이가 들어왔어도 정원사 중 한 명의 눈에 띄었을 텐데, 일어섰을 때에 네 어깨까지 오는 동물이 들키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 때, 고민하며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네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너는 손가락을 치켜들며 작게 소리쳤다. 어머니가 마르티네스 가에 들어올 때 데려온 개가 이 정도 크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의 개가 범인일지도 몰라! 가 보자, 보니타!"

"네? 아, 좋지만…. 저는 일하는 중이라서 정원 밖으로는 갈 수 없거든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둘째 도련님 혼자 다녀오실래요?"

곤란해하는 기색이 서린 보니타의 대답에 너는 "치잇." 하고 입을 댓 발 내밀었다가, 금세 입을 집어넣고는 표정을 갈무리해 웃었다.

"금방 다녀올게! 일 열심히 하고 있어야 돼?"

"네, 다녀오세요!"

보니타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고 저택 안으로 들어온 너는 어머니의 개를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생각해보니 너는 어머니의 개가 평소에는 어디서 무어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가끔 너와 동선이 겹칠 때면 늘 네가 먼저 다가갔지만, 개는 네가 불편한지 네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질 때마다 달음질쳐 도망갔다. 그 탓에 너는 그 개가 평소에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는 것이 개를 더 불편하게 하는 일 같아서 굳이 개의 일과를 파악해두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 넓은 저택에서 개 한 마리를 찾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마르티네스 가의 저택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것은 아니었으나 그 규모가 어린 너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크고 넓은 곳이었고, 정원을 돌아다니기까지 한다면 훨씬 더 넓은 범위를 뒤져 찾아야만 했다.

"저기…."

그래서 너는 우선 지나가던 사용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의 개 있잖아,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

"마님의 강아지요? 으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알았어. 고마워!"

사용인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개를 찾기 위해 다른 사용인에게 그런 질문을 몇 번이나 반복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네게 개의 위치를 안다고 대답한 사용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냐고."

너는 짧게 불평하다가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용인들이 모른다면 어머니께 여쭤보면 되는 일이 아닌가. 개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어머니가 이 시간에 어디에 계시는지는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너는 잰걸음으로 서재로 가 무거운 문을 밀어 열었다. 서재에는 마르티네스의 선조들부터 너의 아버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은 도서가 가득 모여 있었다. 어른도 사다리 없이는 꺼내어 읽을 수 없는 위치까지 빽빽하게 책이 꽂힌 책장들 사이에서, 너의 어머니는 책장에 꽂힌 책을 살피고 있었다. 너는 그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높여 어머니를 부르려다가, 서재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면 안 된다던 아버지의 말에 걸음소리도 죽여 모친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

"어머, 포말하우트. 무슨 일인가요?"

어머니는 너를 보자 허리와 무릎을 숙여 앉으며 너와 시선을 맞춰주었다.

"어머니의 개 말이지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너는 ─너의 짧은 인생동안 열심히 배웠지만 여전히 어려운─ 경어로 말하기 위해 양손을 맞잡고 조금 꼼질거렸다.

"마리랑 놀고 싶어서 찾아온 건가요? 이렇게 귀여울 데가…."

네가 개에게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에 다 놀라기도 전에, 어머니는 흡족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손길로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무척이나 따스했다.

"그렇지만 마리는 지금 내 방에서 자고 있답니다."

"아……."

너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몸을 일으키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잠든 것을 보고 나온 지 제법 되었으니 지금쯤은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네요. 같이 가 볼래요?"

"앗,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가 반색하자 어머니도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요. 마리가 일어나 있으면 좋겠네요."

너는 어머니가 오신 뒤 처음으로 그의 방에 가 보았다. 너의 친어머니가 쓰던 그 방에 친어머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가구들은 엇비슷한 위치에 있었지만, 네가 기억하는 방은 그곳에 없었다. 그러나 쓸쓸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방금 막 잠에서 깬 것처럼 보이는 개, 마리가 발톱과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를 잘각잘각 내며 너와 어머니에게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일어나 있었네요. 다행이죠?"

개가 다가오는 것을 본 어머니는 너를 웃는 낯으로 내려다 보았다. 그 웃음에서 너는 어머니가 좋은 사람임을 새삼스레 느꼈다.

"네, 그럼 …마리랑 조금만 놀다 와도 괜찮으실까요?"

네가 손을 내려 마리를 쓰다듬자 마리는 네 손에 고개를 비볐다.

"그렇게 일일이 허락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포말하우트. 나는 포말하우트가 나를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아,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어른이시고, 제가 존중하고 존경해야할 분이 아니신가요. 너는 그리 말하려고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으나 어머니의 미소가 어쩐지 아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너는 그 말을 삼켰다. 지금의 얼굴이 더 슬픈 미소가 된다면 너 자신도 슬퍼질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서랍장 근처로 다가서더니 가장 높은 층의 작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네게 건네주었다. 그가 건네준 것은 말린 고기처럼 보였다.

"마리가 좋아하는 간식이랍니다. 이게 있으면 마리랑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마리랑 안 다치고 잘 놀 수 있겠죠, 포말하우트?"

너는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가자, 마리."

네가 손에 간식을 든 탓인지, 마리는 평소와 달리 너를 열정적으로 따라왔다. 다음에 정말로 마리와 놀고 싶을 때가 생기면 어머니께 간식을 빌려달라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니타! 마리를 데려왔어!"

"마리요?"

네가 뛰어가며 손을 흔들자 꽂을 관리하던 보니타가 허리를 펴며 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엄마의 개! 이름이 마리래!"

"개한테도 이름이 있구나…."

네가 마리를 데리고 화단 근처로 간 순간이었다. 마리는 작게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화단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연신 기침만 해대었다.

"어라?"

"응? 꽃가루… 때문인 걸까요?"

"개도 꽃가루 때문에 기침을 해?"

"그런가 봐요."

마리를 화단으로 데려온 덕분에 개도 꽃가루 때문에 기침을 한다는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마리는 화단을 망칠 수 없다는 사실 두 개를 알게 되었다.

"……그럼 누구지?"

너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마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일단 마리랑 같이 들어가셔서 식사하시는 게 어떠세요? 곧 저녁 시간이잖아요."

"앗, 벌써?"

머리를 열심히 써서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밥 먹을 때가 되어서 배가 고팠던가 보다.

"으음…. 우선은 그렇게 해야겠지…."

"너무 기죽지 마시고요. 범인은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보니타가 화단의 흙을 발로 문지르며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응원에 너는 힘을 얻는다.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것도 같다.

"…응!"

 

* * *

 

"그래서, 마리가 한 짓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마리를 사용인에게 맡긴 너는 가족 모두가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네가 가자 이미 모두가 모여 있어, 네가 앉기 무섭게 사용인들이 음식을 내왔다. 식탁 위에는 잘 익은 호박이나 요리사가 공들여 조리한 버섯 요리, 반질반질하게 기름이 흐르는 칠면조 등이 올랐다.

"그런 일이 있었나. 서둘러 범인을 잡아야겠구나."

"그래서 마리를 데려갔던 거군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슬며시 눈치를 보자 어머니는 괜찮다는 듯이 네게 웃어주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마리가 다친 것도 아니니까요. 대신 다음부터는 나한테 미리 말해줄래요?"

그의 용서에 너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건 정원사들이 알아서 할 텐데, 네가 나설 필요는 없지 않겠어? 그럴 시간에 글을 한 자라도 더 읽는 게 어때, 포말하우트."

네 형 볼프강은 네게 그리 말한 뒤 아스파라거스를 썰어 입에 넣었다. 너도 짧게 "우…." 하고 불만을 표현한 뒤 브로콜리를 먹었다.

"루이텐은 관심 없어?"

너는 방향을 돌려 네 동생 루이텐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는 아무래도 채소를 먹고 싶지 않은 것인지 포크로 브로콜리를 이리 밀고 저리 밀다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나도 별로… 관심 없어."

어머니 또한 루이텐이 접시를 뒤적거리는 것을 보았는지 그를 불렀다.

"루이텐, 채소가 먹고 싶지 않다면 고기를 썰어줄까요?"

"……저 이제 그만 먹을래요…."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듯 굴던 루이텐은 포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그런 루이텐을 말리지도 못하고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도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루이텐이 자리를 뜨기 무섭게 볼프강 또한 냅킨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형제 중 식탁 앞에 남은 것은 너뿐이었다.

"어어…."

"…포말하우트는 어떻게 하겠나요? 더 먹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묻는 어머니가 왠지 무척이나 쓸쓸해 보여서 너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이 주세요!"

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어려운 이야기를 뒤로하고 어머니가 한가득 썰어준 칠면조를 우물우물 씹었다. 어째서인지 그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나 정말로 안 자고 감시할 수 있다니까? 믿어 줘!"

"그래도 안 돼요, 둘째 도련님. 일찍 자고 쑥쑥 커서 멋진 어른이 되셔야죠~."

너의 어깨를 보니타가 꾸욱 눌렀다. 밤사이에 화단을 헤집어놓는 범인을 잡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

네 입이 앙다물렸다. 키가 커서 멋진 어른이 되면 보니타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얼른 보니타의 고민을 해결해주고픈 마음도 있었다. 물론 수평을 이루는 천칭의 한쪽 접시에 졸음이 올라오는 탓에 너는 결국 포기하고 잠에 들기로 했다.

"범인이 이제 그만둬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좋을 텐데 말이죠. 그럼 둘째 도련님, 안녕히 주무세요."

보니타는 너를 방 앞까지 데려다 준 다음 인사했다.

"보니타도 잘 자…!"

너도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로 들어갔다. 내일은 보니타가 새로 꽃을 심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다.

 

* * *

 

"일찍 일어나셨네요?"

"또 누가 화단을 파헤쳐 놓은 거야?"

걱정에 일찍 눈을 뜬 네가 경악하며 화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보니타는 난감하다는 듯 웃으며 너를 보았다.

"네에. 또 누가 이렇게 만들어뒀네요. 차암……."

보니타와 다른 정원사들은 누군가가 마구 파헤쳐놓은 메리골드를 한쪽으로 치워놓은 뒤, 새롭게 꽃째로 구해온 메리골드를 심느라 바빴다.

"나도 도울게!"

"아, 안 돼요~. 저 그러면 진짜 주인 어르신이랑 마님께 혼나요!"

화단에 들어가 꽃을 심으려는 너를 보니타가 온몸으로 만류했다.

"그렇지만 돕고 싶은데, 어라."

화단의 흙 속에 반쯤 파묻힌 무언가가 하얗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보니타, 잠깐만 놔 줘. 나 저것만 주울게!"

"저거요?"

네가 보는 곳을 따라 보니타의 고개─에 따라서 몸 또한─가 돌아갔다. 보니타가 너를 만류하는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너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주워들 수 있었다. 흙을 털어내고 확인한 물건은 네 엄지손가락만한 길이를 가진 브로치였다. 하늘색 배경에 가문의 문장이 하얀색으로 양각된 브로치로, 가장자리에 흠집이 나 있었다.

"이건…."

네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브로치는 네 친어머니가 형제들에게 선물한 액세서리이기 때문이었다. 친어머니가 직접 공방에 의뢰해 만든 물건이라고 들었으니, 이런 브로치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형 볼프강, 동생 루이텐 밖에 없었다. 너는 브로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네가 아무리 어려도 이 브로치가 여기에 떨어져 있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너는 우선 브로치에 묻은 흙먼지를 꼼꼼히 털어낸 다음 품에 챙겨 넣었다.

"…보니타."

"네, 둘째 도련님."

네가 ─물론 자각하지 못한 채로─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보니타 또한 조금 진중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

보니타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보니타의 시선이 네게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침묵을 개의치 않았다.

"가 볼게. 내일 봐, 보니타!"

너는 뒤돌아 저택으로 뛰었다. 달리든 달리지 않든 네가 생각하는 진실은 변하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너는 달렸다. 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달려도 머리가 맑아지지 않았다. 어째서 이 브로치의 주인은 그런 짓을 했을까? 왜 화단을 헤집고 싶을 정도의 고민을 너에게는 말해주지 않았을까? 어째서…….

너는 볼프강의 방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 뒤 문을 두드렸다. 볼프강은 생각보다 빨리 방 밖으로 나왔다. 그는 네가 온 것이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가 네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형. 나 형한테… 말해야만 하는 게 있어."

"그래? 뭐길래."

볼프강의 눈썹이 한 번 더 꿈틀거렸다. 너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다시 볼프강에게로 얼굴을 들었다.

"형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안 돼?"

"안 될 건 없지. 들어 와."

볼프강은 흔쾌히 너를 제방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평소에는 그다지 그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공부를 위한 도구가 제대로 갖추어진 방 안으로 들어서니 볼프강과 너의 나이차이가 느껴졌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방 안까지 들여보내 달라고 했는지 들어볼까."

볼프강은 방문을 탁 소리 나게 닫으며 네 눈을 들여다보았다. 원래도 날카로운 그의 눈이 한결 더 날카롭게 서 있었다. 너는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꼼지락거리다가, 힘겹게 입을 떼었다.

 

* * *

 

형제들이 자리를 뜬 식사자리, 부모님과 너만 남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포말하우트도 입맛이 없나요?"

네가 굳은 얼굴을 한 채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자 네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네게 물었다.

"으응, 그런 건 아닌데…."

너는 음식이 남은 접시 위에 포크를 누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형이랑 루이텐 중에 화단을 망쳐놓는 범인이 있는 것 같은데… 누군지 잘 모르겠어서요……."

"둘 중에요?"

어머니가 작게 놀랐다. 너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형제 중에 범인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나요, 포말하우트?"

아버지가 너와 어머니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너는 말을 이어갔다.

"친어머니가 형이랑 저랑 루이텐한테 선물해주신 브로치가 화단에 떨어져 있어서요…."

"아아…."

작게 탄식한 어머니는 슬며시 너의 손을 잡았다. 네 손등을 다 덮은 어머니의 손이 따스했다.

"혼자 고민이 많았겠어요."

"……."

"아버지가 혼내마. 식사 마저 들어라."

"……네."

너는 어머니가 덮은 손을 들어, 이번에는 네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다음 날, 아버지는 너와 형제들을 모두 응접실로 불러 모았다. 응접실에는 창문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응접실의 분위기는 더없이 차가웠다. 아마 응접실의 테이블 위에 놓인 회초리가 그 분위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내가 너희를 불러모은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을 거다."

소파에 앉은 채 소파 앞에 너희 형제를 나란히 세워놓은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요며칠간 화단을 망가뜨린 사람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범인은 자백하도록 해."

아버지의 말에 볼프강은 입을 꾸욱 다물었고, 너는 맞잡은 양손을 더욱 힘주어 쥐었으며, 루이텐은 내리깐 눈을 이리저리 굴려 시선만으로는 응접실의 바닥을 다 쓸듯 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셈이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한층 엄해지자 너와 루이텐이 어깨를 움츠렸다. 아버지의 옆, 손님용 소파에 앉은 어머니는 그런 형제들을 불편한, 동시에 염려하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던 볼프강은 그제야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내었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버지."

그가 꺼낸 말에 너와 루이텐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볼프강. 네 짓이라는 말이지."

"예."

짧은 대화가 오가는 것으로 응접실은 빙판 위가 되었다. 너는 어찌나 손을 세게 쥐었는지 손끝이 저리는 지경이었다.

"네가 잘못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볼프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곧 테이블 위에 놓인 회초리를 집어들었다.

"당신, 때릴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당혹감을 싣은 목소리로 급히 아버지를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리 가까이 서라, 볼프강."

"당신."

볼프강이 결연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다가서는 순간, 루이텐이 뛰쳐나와 볼프강의 몸에 달라붙었다.

"…!"

짧은 시간에 양옆이 빈 너는 눈을 끔뻑였다. 루이텐은 눈을 질끈 감고 볼프강의 허리춤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루이텐, 이게 뭐하는 짓이냐."

아버지가 엄한 목소리로 루이텐을 불렀다. 평소라면 기죽은 티를 내며 물러날 아이였지만, 오늘은 꼼짝도 않고 제 맏형의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 너는 루이텐의 질끈 감은 눈에서 그가 느끼는 공포를 느꼈다. 잠시 그렇게 형을 끌어안고 있던 루이텐은 입을 열었다.

"형이 한 거 아니고, 제가 했어요……."

너는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 * *

 

" …형, 루이텐이 요즘 화단을 파헤치고 다니는 것 같아."

"……."

네 말을 들은 볼프강은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려보았으나, 볼프강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너는 화단에서 주웠던 브로치를 꺼내 볼프강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화단에서 주웠는데, 형 브로치에는 이런 흠집이 없으니까 루이텐이 흘린 것 같아서."

"루이텐이 그 근처에 갔다가 떨어뜨린 걸 수도 있잖냐."

"그러기만 했다면 화단 안 쪽 흙에 파묻혀있는 게 이상하잖아! 흙바닥에 떨어뜨리면 소리가 안 나니까 잃어버리고 그대로 모르고 있던 거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추리가 틀렸을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지만, 어쩐지 볼프강의 반응이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네가 미간에 힘을 주고 눈을 뜨자 말없이 너를 내려다보던 볼프강은 한숨을 내쉰 뒤 어깨의 힘을 뺐다.

"그 녀석, 들킬 줄 알았다…."

"응?"

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도 알고 있었어?"

"알고 자시고… 첫날 나한테 들켰어."

볼프강은 자신의 책상 앞에서 의자를 빼서 다리를 꼬고 앉은 뒤,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려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너는 얼떨떨한 감정을 담아 볼프강을 봤다.

"걔가 그 짓을 처음 한 날, 정원을 산책했거든. 그러다가 봤어."

"왜 안 말렸어?!"

네가 언성을 높이자 볼프강이 네 쪽으로 흘긋 시선을 주었다.

"당연히 말렸지. 그런데 걔가 '형은 집에서 엄마 흔적이 사라지는 게 괜찮아?' 하고 묻는 거야."

볼프강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너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니까 엄마의 흔적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 새어머니의 메리골드를 모두 파헤쳐놓았단 말이야?

"형도 안 괜찮아서 숨겨준 거야?"

입 밖으로 간신히 나온 질문은 그 정도였다. 매일 메리골드가 파헤쳐져서 새어머니가 슬퍼하시면 어쩌려고 했어? 새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뭐야? 너는 진실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는 아니어서, 그저 착잡했다.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루이텐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거든."

네 마음을 정확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었던 너는 작게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보니타한테 티 안 나게 도와달라고 했었어."

"보니타한테…?"

상상치도 못한 이름이 볼프강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보니타도 루이텐의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이야? 너는 보니타가 네게 보여주었던 미지근한 태도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형제와 좋아하는 사람까지 전부 자신을 빼고 공유하는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에 서운해질 뻔했지만, 너는 그것에 계속 서운해하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루이텐이 화단을 그만 망가뜨렸으면 좋겠어. 그렇게 한다고 루이텐의 슬픔이 줄어들 것 같지도 않고, 거기다가 어머니까지 슬퍼하시면 어떡해."

"흐음."

"그, 그리고! 보니타나 다른 정원사들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고!"

"음?"

네가 소리를 낮추어 외치자 볼프강이 눈썹을 꿈틀하고 움직였다. 의아함과 가소로움을 담은 눈짓이었으나, 너는 그 의도를 읽지 못했다.

"내가 아버지께 대신 혼나면 루이텐도 느끼는 게 있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형이 왜?"

"잘못을 따지자면 못 말린 잘못도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혼나고 치우면 걔도 안 할 거 아냐."

볼프강의 무심한 듯한 태도가 너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도 않았으므로 그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네가 식사자리에서 화단을 망치는 범인이 나나 루이텐 중에서 한 명인 것 같으니까 혼내달라고 말해봐. 그러면 아버지가 우리 형제 다 모아놓고 혼내시겠지."

"……그렇게 해볼게."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석연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네 마음 한구석에 잠든 마리를 스무 마리는 올려놓은 것 같았다.

 

* * *

 

루이텐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까지 하며 뭉개지는 발음으로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거긴 엄마 꽃을 심는 데잖아요…. 다른 꽃 심지 마아……."

코를 훌쩍여가며 말하는 루이텐의 눈가를 볼프강이 닦아주었다. 그러자 루이텐은 아예 볼프강의 셔츠에 고개를 대고 눈물을 찍었다. 뒤에 서 있는 탓에 볼프강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알 것도 같았다. 루이텐이 울먹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집에서 엄마가 사라지는 거 싫어……."

말을 마친 루이텐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제 눈물을 닦아주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볼프강도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루이텐의 울음에 난감해하는 것은 볼프강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슬며시 회초리를 내려놓은 뒤 한숨을 쉬었고, 어머니도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한 채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를 잊고 싶지 않아…."

너는 걸음을 내디뎌 루이텐을 끌어안았다.

"루이텐."

"……."

"너는 어머니가 싫어?"

루이텐이 긍정한다면 어머니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와 루이텐은 이미 상처받았고, 지금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이 더 크게 상처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루이텐이 느리게 대답했다.

"새어머니가 좋아…. 그래서 더 미워…. 나는 엄마를 잊고 싶지 않은데……."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누군가가 좋아서 오히려 그 사람이 더 밉다는 감각은 네가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고였다. 하지만 그 말이 네가 루이텐의 슬픔과 분함에 공감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도 엄마가 좋아. 하지만… 우리가 엄마를 좋아하는 방식이 새어머니를 슬프게 하는 거라면 싫어."

그래서 너 또한 루이텐─과 이 대화를 듣고 있을 어머니─에게 진심을 말했다. 그것이 네가 루이텐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루이텐이 이렇게 크게 울고, 슬퍼할 줄 알았다면 형이 말한 방식이 아니라 직접 루이텐에게 가 그만두라고 말하는 게 좋았을 텐데. 동시에 너는 너와의 대화를 위해 무릎과 허리를 숙여준 어머니를 떠올렸다. 식사를 깨작거리던 형제들을 신경 써주는 사람임을 기억했다. 네 손을 잡아오던 온기가 아직 마음에 남아 있었다.

네게 안겨 있던 루이텐은 너를 밀어내고 어머니에게 향했다. 그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슬펐어요…?"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루이텐은 곧장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

"잘못했어요……."

"괜찮아요, 루이텐, 어머니는 괜찮아요…."

어머니가 다시 큰 울음을 터뜨린 루이텐을 마주 안고 등을 두드리며 달래 주었지만 그가 울음을 그치는 데에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 * *

 

"어머, 포말하우트."

"앗, 어머니!"

너는 정원에서 산책 중인 어머니를 보고는 곧장 그쪽으로 뛰어갔다. 어머니는 마리와 함께 산책 중인 모양이었다.

"포말하우트도 산책 나왔나요?"

"네! ……같이 산책하실래요?"

"엄마는 좋죠. 마리도 기뻐할 거예요."

네가 용기 내어 권유하자 어머니는 기쁜 듯 웃으며 승낙했다. 어머니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공연히 짖은 건지는 몰라도 마리가 왕왕 짖어댔다. 적어도 싫은 눈치는 아닌 것 같다. 너와 어머니는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 이야기에 웃기도 하며 정원을 거닐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은 붉은 잎을 나무에서 떨어뜨리다가도, 너와 어머니의 뺨을 장난스레 스치고 지나갔다.

화단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화단은 구획이 나뉘어 달리아가 반, 메리골드가 반 심어져 있었다.

"보기 좋죠? 루이텐의 이야기를 듣고 둘 다 심는 게 좋겠다고 아버지와 이야기해봤거든요."

"예쁘다!"

화단의 꽃들은 바라보는 너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루이텐도 좋아하면 좋겠어요."

너는 그리 말하며 씨익 웃었다. 보라색과 노란색은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볼프강과 어머니는 모르겠지만 루이텐과 어머니는 확실히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건네주시는 음식을 받아먹거나, 어머니를 마주치면 먼저 달려가 인사를 하고는 다시 멀어지곤 하는 모습을 네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는 볼프강도 언젠가는 어머니와 살갑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 그리고 마리와 산책을 즐긴 너는 어머니와 마리를 먼저 집으로 들여보냈다. 조금만 더 걷다가 돌아갈까 하던 찰나, 저택 뒤쪽에서 보니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보니타에게 일이 잘 해결된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그쪽으로 뛰려다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멈추어 섰다.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

볼프강의 목소리였다. 너는 발걸음 소리를 죽여 슬며시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었다.

"주인님은 엄하시니까, 솔직히 잘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아버지나 어머니가 널 자르려고 하셨다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거야."

형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루이텐을 도와줘서 고마웠어."

"별말씀을."

"……."

"왜 그런 눈으로 보고 있어?"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테고."

"아하하, 응. 네 마음대로 해."

보니타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볼프강의 고개가 보니타의 얼굴로 내려갔다. 내려간 고개는 보니타의 뺨에 입술을 한 번 찍어 누른 뒤, 느릿하게 올라왔다. 너는 그 뒤의 두 사람을 더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벽 뒤로 숨고 양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러니까, 루이텐이 한 짓을 숨기는 일을 형이 보니타한테 부탁한 이유는…. 보니타가 그걸 들어줬던 이유는……. 너는 그대로 걸음을 돌려, 저택 안으로 뛰어갔다….


icon: https://twitter.com/9yunzz1

파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