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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 온 것 같은데 혹시 어디 계세요?]

[저도 거의 도착했어요 ㅎㅎ]


날이 참 화창했다.



“저 분이신가….”


당근하기 딱 좋은 날씨라고 해도 될 만큼.

골목 귀퉁이에 서서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는 여자를 딱 보자마자 강한 삘이 왔다. 저 사람이구나, 내 첫 구매자. 어느새 애물단지가 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토끼 모양 솜인형을 옆구리에 걸쳐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조카가 오래 전부터 구하려 했던 토끼 인형인데, 이미 판매 중단된 지 오래라 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차에 당근에서 발견하고 만세를 외쳤다던 구매자 사연을 다시 한번 떠올리자 왠지 모를 뿌듯함이 올라온다. 새 상품까진 아니더라도, 워낙 애지중지 했던 덕에 상태는 최상이었다.


“긴 머리에 흰 티, 청바지….”

“혹시,”



가까이 가자 고개를 슬쩍 든 여자가 내 인상착의를 중얼거렸다. 동시에 눈이 마주치고 여자는 아, 하면서 살짝 굽히고 있던 등을 바로 세웠고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토끼 인형을,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한참 기다렸네!”



주려고 했다.

토끼 인형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여자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아채고는 제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에?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엑, 비슷하게 요상한 소리를 내자 여자는 아무렴 괜찮다는 얼굴로 그래도 완전 늦지는 않았어요, 하고 웃으며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당근거래 신종 사기 같은 건가? 그쪽은 나한테 돈 주고, 나는 그쪽한테 인형 주고. 잘 쓰세요, 잘 쓸게요, 하면 끝날 거래 아니였냐고. 졸지에 시작된 손잡고 달리기가 대략 1분 30초 만에 끝났다. 최근 운동을 좀 게을리했더니 그새 체력이 떨어진 건지,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한참이나 몸을 굽힌 채 허벅지를 짚고 헥헥거리고 있다 고개를 슬쩍 돌렸다. 왠지 체지방율 최저를 찍을 것 같은 여자는 예상외로 체력이 좋은 건지 팔짱을 딱 낀 채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정면을 응시했다.


“아니, 저기..!”



간신히 숨을 고른 뒤 몸을 일으켜 뒤늦은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지만 분위기가 요상하다. 왠지 큰 소리 내면 안될 것 같은 묵직한 분위기에 뒷말을 삼킨 채 여자의 시선을 따라갔다.


“옆은 누구?”



여자와 마주하고 선 또 다른 여자가 턱 끝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제가 누구냐면요. 당근마켓에 올린 제 유년기 추억이 깃든 토끼 인형을, 꼬옥 필요로 하는 구매자에게 넘기고 거래 마무리하려고 했던 닉네임 용토끼,


“내 여자친구.”



네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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