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때리는 빗소리에 종이 눈을 뜬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킨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종이 주변을 둘러본다. 처음 보는 벽지와 천장. 머리에 무언가 떠오른다. 급박했던 순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한 눈을 팔았다가 그만 묵직하고 차가운 것에 가격 당한 기억. 종이 한숨을 쉰다.

 

 

“난 진짜 왜 맨날 이렇게...”

 

“이럴 거면 아저씨 말대로 좀 더...”

 

 

종이 혼잣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한지를 붙인 나무문이 있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들이 조금씩 새어 들어온다. 종은 머리를 재빨리 굴려 자신의 상황을 생각해본다. 발소리가 들린다. 종은 다시 몸을 뉘고 눈을 감는다. 그리곤 수레를 습격했던 두 사람. 동아와 미연의 얼굴을 떠올린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왜 날 데려온 거지?’

 

 

방문을 열고 동아가 들어온다. 종은 천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발소리에 동요하지 않으려 애쓴다. 발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곧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의 복부에서부터 고통이 번진다. 종이 “악!”하고 소리를 치며 몸을 일으킨다. 눈을 뜬 종의 앞에는 팔꿈치로 자신의 배를 누르고 있는 동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누운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뭐... 뭐에요 갑자기!”

 

“아. 일어났는데 자는 척 해서.”

 

“당신은 잠을 이렇게 깨웁니까!”

 

“내가 널 대우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납치범이니까.”

 

“납치범이라뇨!”

 

“그럼?”

 

“…인간들 기준에서는 납치범이지만 전...!”

 

 

말을 이어가려던 종의 입술이 멈춘다. 쉿. 누군가의 목소리가 종의 머리에 울려 퍼진다. 종의 안색이 안 좋아지면서 아까보다 더욱 동아를 경계하는 눈빛을 보낸다. 동아는 상체를 일으켜 종과 마주 앉는다.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없다. 종의 말을 기다리는 듯 보이지만 종이 말을 이어가지 않자 동아는 한숨을 쉬고 말한다.

 

 

“제 입으로 납치범이라고 인정했으면서 뭐가 아니라는 건지.”

 

“…”

 

“보아하니, 입을 함부로 열 수 없는 몸인 거 같네. 금제가 꽤 깊게 박혀 있구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그럼 말해.”

 

“…”

 

“어차피 인하가 너한테서 정보를 얻으면 좋고, 못 얻어도 나쁠 건 없다고 했어.”

 

“...?”

 

“정보를 못 얻으면 인질로 써도 된다고 했거든.”

 

“인질이라뇨... 전 그런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있겠지. 예를 들면 너랑 같이 있던 늙은이나 가족.”

 

“무슨...!”

 

“더러운 수법은 너희가 먼저 썼으니까... 우린... 생각해보니 너한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

 

“어쨌든 지금은 좀 쉬고 있어.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는 필요해.”

 

“정말 잔인하시네요.”

 

“날 흔들려는 의도면 소용없어. 난 납치범 같은 쓰레기들 말은 귀담아듣지 않거든. 화도 안나. 그럼 안녕.”

 

 

동아가 방을 나선다. 종은 주먹이 터질 듯 힘을 주지만 자신이 동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화가 난 종이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동아가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종이 하던 것을 멈추고 동아를 바라본다. 동아는 인상을 찡그린 채 종의 주먹을 바라보면 말한다.

 

 

“여기가 감옥도 아니고. 남의 집에 뭐 하는 짓이야.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로 눈 굴릴 힘도 없을 정도로 만든다?”

 

“죄송합니다...”

 

“응, 조심해.”





찝찝하고 불편한 감각. 치솟은 습도와 부담스러운 눈길들. 윤성은 그 때문에 자꾸만 시선을 이리저리 옮긴다. 그것이 남들의 눈에는 불안한 모습으로 보일지는 모르는 것 같다.

인하는 그런 윤성이 먼저 말을 꺼내길 지금까지 기다렸지만, 이제 더 시간을 지체하고 싶진 않았다. 어서 빨리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 현이 사라진 일과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윤성이 시선을 돌리다 인하와 눈을 마주친다. 윤성이 어색하게 웃고 또 다시 눈을 굴려 다른 곳을 보려 하자 결국 인하가 먼저 입을 연다.

 

 

“무슨 일을 겪으신 거죠?”

 

“그게 저도 기억이 잘... 그냥 아버지 심부름 때문에 걸어가고 있었는데...”

 

“너무 억지로 기억해낼 필요는 없어요. 일단은 몸부터 회복하시는 게 우선이니까...”

 

 

 

미사코가 윤성에게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내민다. 뜨거운 것을 먹지 못 하겠는지 윤성은 미사코가 건넨 커피를 든 채 마시지 않는다. 다시 침묵이 흐르려던 순간 동아가 방의 문을 연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동아에게로 향한다. 방 밖에서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아. 그리곤 인하를 보며 말한다.

 

 

“인하, 저 쪽은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거 같은데?”

 

“그래도 어떻게 안 될까? 둘 다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답답해.”

 

“그게, 저쪽은 입을 열고 싶어도 못 여는 몸인가 봐.”

 

“무슨 소리야 그게?”

 

 

인하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을 나선다. 방 안에는 미사코와 윤성 그리고 광과 미연이 남았다. 미연은 사람들의 눈치만 보며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다. 윤성이 잔에 입을 가져다 댄다. 역시 너무 뜨거웠는지 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잔을 내려놓는다.

 

 

“저기... 뭐라도 좋으니까 기억나는 거 없으세요?”

 

 

미연이 윤성을 향해 말한다. 윤성이 심각한 표정을 짓다 눈을 감고 기억을 되짚어 본다.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자꾸만 어둠만이 보일 뿐이다. 윤성은 한숨을 쉰다.

 

 

“그게... 정말 이상해요...”

 

“뭐가요?”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니, 들렸던 음성들은 기억이 나는데 장면이 보이지 않아요. 그냥 깜깜해요.”

 

“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되지... 아버지 심부름을 받고 걸어가고 있었다는 거,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곳에 갇혀 있어서 도움을 청하려고 밖으로 손을 내민 거 그건 기억이 나요. 장면도 생생하고요. 근데 그것 말고는 전부 까맣게 뒤덮여 있어요. 누군지 모르는 음성만 몇몇 기억나네요...”

 

“미연씨 혹시 뭐라도 아시겠어요...?”

 

“그게... 윤성씨가 수레 밖으로 팔을 뻗은 건 맞을 거에요. 저랑 동아씨가 그걸 보고 윤성씨를 구하러 수레에 접근한 거니까요... 근데 그것 말고는 저희도 잘... 저희도 그냥 저 쪽 방에 있는 그... 수레를 끌고 가던 걸 보고 수상해 보여서 쫓아가다 윤성씨를 발견한 거라서...”

 

“… 죄송해요. 도움이 못 돼서.”

 

“아니에요, 윤성씨는 납치되고 있었는데요... 저희는 나가볼 테니까 일단 지금은 푹 쉬세요. 아 참, 가족분들께는 저희가 따로 연락을 드려서 곧 오실 거에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윤성을 두고 세 사람이 방을 나선다. 윤성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한번 눈을 감는다. 여전히 기억나는 건 밤하늘보다 까맣게 보이는 장면뿐이다.

처마 끝을 따라 흘러내리는 비가 마치 작은 폭포 같다. 다행히 빗물이 튀진 않는다. 광은 다리가 아픈지 부엌으로 가다 말고 마루에 앉아 대문 너머 수추도의 풍경을 바라본다. 미사코는 광의 옆에 앉는다.

 

 

“아무래도...”

 

“네?”

 

“사람의 짓이 아닌 것 같구나.”

 

“사람이 아니라뇨...?”

 

“동아씨랑 미연씨가 데려온 저 쪽 방의 사람... 풍기는 분위기가 사람이 아닌 듯싶고...”

 

“설마요...”

 

“미사코야.”

 

“네, 어머니...”

 

“아무래도 우리가 직접 두억도에 가봐야겠구나...”

 

“어머니... 그렇게 무리하시면 다리에 안 좋아요.”

 

“난 괜찮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두억도에 잘 아는 사람도 수추도엔 이제 거의 없고...”

 

“어머님...”

 

“마음 단단히 먹자꾸나. 현이를 찾으려면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아...”

 

“…”

 

“저기...”

 

“?”

 

“그럼 현씨도 혹시... 그 사람들... 아니, 그것들한테 납치된 걸까요?”

 

“그건... 모르겠어요.”

 

“… 제가 알아볼게요.”

 

“네?”

 

“입을 안 열면 힘을 쓸게요.”

 

“아뇨, 미연씨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요. 어차피...”

 

“아니에요. 윤성씨 상태가 저런 걸 보면 지금 현씨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잖아요. 어서 빨리 현씨를 찾아야 될 것 같아요.”

 

“… 어머님...”

 

“… 우리가 선택할 방법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 미연씨에게 부탁해 보자꾸나...”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 것들 정말 사람이랑 다르더라고요.”

 

“...?”

 

“튼튼해요. 그것도 엄청.”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몸을 일으킨다. 방문이 열리고 미연이 들어온다. 종이 잔뜩 경계를 하며 미연을 바라본다. 미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미연은 자신을 경계하는 종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 방문을 닫고 종에게 다가간다.

 

 

“시간 끌어봤자 좋을 건 없어요.”

 

“…무슨 소립니까?”

 

“아는 건 다 입 밖으로 내뱉으라는 거에요. 만약 입을 계속 닫고 있으면...”

 

“그쪽 친구 분한테 말했잖아요. 전 말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할 수 있다고 해도 안 할거지만...”

 

“… 심장에서 먼 부위.”

 

“?”

 

“손이랑 발부터 부서뜨리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인간들이란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지... 누구는 인질로 삼는다고 하질 않나 누구는 부순다고 하질 않나... 어차피 전 지금 당신들을 이길 힘도 기력도 없습니다. 그냥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절 아무리 압박하고 고문해도 얻을 정보는 없습니다.”

 

“… 말은 잘하시네요.”

 

“잠... 잠깐만요!”

 

“왜요?”

 

“진짜로 하시게요?”

 

“그럼 가짜로 하겠어요? 이쪽은 의뢰인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목숨도 걱정 돼서요. 납치... 한두 번 한 거 아니잖아요. 그렇죠?”

 

“… 네.”

 

“사장님이나 동아씨는 모르겠지만... 전 그런 것에 관해서라면 당신 팔이랑 다리, 전부 못 쓸 정도로 만들 수 있어요. 사람들이 어디 갇혀 있는지만 알 수 있으면요.”

 

“아니...! 그 친구분이랑 대화하고 오시라고요! 전 말하고 싶어도 못 한다니까요!”

 

“뭐... 그건 해봐야 아니까...”

 

 

미연이 손을 풀면서 종에게로 다가간다. 꽤 겁에 질린 듯한 종이 점점 뒤로 물러난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냥 허풍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종이 본 미연은 자신을 단련시켜준 사람과 호각, 아니 어쩌면 압도할 정도로 싸운 사람이다. 방문이 열린다.

 

 

“뭐 해요...?”

 

 

인하가 방안으로 들어선다. 종의 발을 잡고 주먹으로 내려치려던 미연이 인하와 눈을 마주친다. 인하가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둘을 지켜본다. 미연이 종에게서 손을 거둔다. 종이 재빨리 이불 안으로 자신의 발을 감춘다. 미연이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쓸면서 인하에게 다가간다.

 

 

“사장님도 이 분한테 볼 일 있으세요?”

 

“네. 사실 이 집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이... 거? 라고 해야 하나요? 이름이 뭐예요?”

 

“종... 입니다...”

 

“아, 네. 종씨에 볼 일이 있을 거예요. 근데 미연씨는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일종의 협박이요. 답답해서... 제 멋대로 굴어서 죄송해요.”

 

“협박이라니 어디서 거짓말을...! 고문이에요! 제 발 뼈를 부수려고 했습니다!”

 

“아... 정보 캐내려고요?”

 

“네...”

 

“괜찮은 방법이긴 해요. 화도 풀리고 정보도 얻고. 근데 저 종이라는 걸 아무리 패도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거예요.”

 

“...?”

 

“동아가 말하기를 이 종이라는 것은 심부름꾼 같은 거 같다나 봐요. 더 윗선이 있고 그 윗선이 이 종이라는 것한테 일종의 봉인? 같은 걸 해놔서 본인이 말하고 싶어도 절대로 말 할 수 없다나 봐요.”

 

“아... 근데 그게 가능...”

 

“음... 아무래도 이 종이라는 게 사람이 아니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한테도 가능하니까.”

 

“자꾸 이 것, 저 것 무슨 물건 취급하지 마십시오!”

 

“그럼요? 당신 정체가 뭔데요?”

 

“우리도 어떻게 보면 사람입니다... 단지 당신들과 뿌리가 다르게 시작한 어사(魚思)...!”

 

“음... 그렇구나.”

 

“?”

 

“저 봉인이라는 것도 빈틈이 있긴 한 것 같네요.”

 

“아...”

 

“지금이 힘이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럼 전...”

 

“아뇨, 나가지 마세요. 미연씨도 옆에서 저 것한테 궁금한 거 좀 꼬아서? 돌려서? 물어보세요.”

 

“어... 그래도 되나요?”

 

“네. 당연하죠. 일하러 왔잖아요. 현씨를 찾을 수만 있다면야 뭐든 해야죠. 미연씨가 하려던 그 고문? 비슷한 협박도 통했다면 전 보고 있었을 거에요.”

 

“당신들 진짜...”

 

“잘 부탁드려요, 종씨. 어차피 당신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 썩 내키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 범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서 그런 거지.”

 

“부정은 안 하시네요. 사실 하기 싫으셨나 보구나?”


“그건...”


“납치해서 뭘 하는데요? 가만히 놔두진 않을 거 아니에요. 잘 먹이고 잘 재우지도 않을 거고.”

 

“…”

 

“천천히 대답하셔도 돼요.”

 

종이 잠시 머뭇거린다. 언젠가 제의 명에 의해서 자신이 수추도에서 사람들을 데려오는 인원에 차출 됐을 때부터 종의 마음에는 찝찝함이 생겨났다. 그리고 제에 대한 의심도.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출 할 수는 없었다. 두억도의 분위기도 그렇고, 제가 두억도에 살고 있는 자신의 동족 전체를 위해서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찝찝함, 제에 대한 의심, 그리고 납치된 사람들의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종이 한숨을 크게 내쉰다. 인하는 살짝 웃어 보인다.

 

 

“저는 그냥 알고 싶은 것 뿐 이에요. 우리의 목적인 현씨도 두억도로 납치됐는지. 뭐, 그런 걸요.”


“… 물.”


“네?”


“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얼마 든지요. 미연씨 잠시 종씨랑 둘이서 계세요. 종씨 때리진 마시고.”



?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는데... 일하다 엄지 손가락까지 찧였네요...

너무 피로하지만... 이번 주도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야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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