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속 한줄기의 빛이 바로 너였다. 우리의 첫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고, 그것을 아는 건 창섭뿐이었다. 창섭에게는 현식이 필요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창섭의 고객이 현식의 가장 비참한 죽음을 원했기에. 그랬기 때문에 창섭은 그렇게 현식에게 접근했다.

 

“형, 사랑해.”

“나도 사랑해.”

 

  모든 것이 쉬웠다. 우연을 가장해 다가가 마음을 얻어 사랑을 속삭이게 하는 일 따위는 창섭의 주전공이었다. 창섭에게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을 홀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에 넘어오지 않는 목표물은 없었고,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으며 허울뿐인 사랑을 속삭이는 일이었다. 

 

이번 의뢰는 단순하면서 까다로웠다. 연인으로 접근해 자신이 원할 때 살해하는 것. 꽤나 거액의 보수가 걸린 일이었고, 창섭은 흔쾌히 의뢰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 그의 연인 행세를 한지 일 년이 지났을 무렵, 그의 아지트 팩스로 도착한 단 한 줄의 편지가 도착했다.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간결하면서도 이 지긋지긋한 임무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

 

 

 

  임현식. 창섭이 곁에서 지켜본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이상한 사람이었다. 금세 곁을 내줄 것처럼 굴다가도 어느 순간이 오면 선을 그었다. 연인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창섭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전까지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한 번이라도 창섭을 가져보려 애쓰던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그는 항상 웃기만 하며 창섭과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간결한 한 문장을 받은 창섭은 답지 않게 종이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바라던 임무의 끝이 왔는데 전혀 상쾌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너무 많은 정을 줘버린 탓이었을까.

 

“감정은 사치야.”

 

  밀려오는 묘한 감정에 창섭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배를 빼 물며 중얼거렸다. 그에게 인간에게 드는 감정은 사치였다. 사람의 목숨으로 돈을 버는 그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죄악과 같았으니까.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러면 돼.”

 

  뽀얀 연기가 밀폐된 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여갔다. 그것을 빤히 보면서도 창섭은 피우던 담배를 마저 태웠다.

 

 

 

-

 

 

 

“자, 이거.”

“초콜릿?”

 

  밸런타인데이잖아. 현식에게 작은 상자를 내민 창섭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에 마주 웃은 현식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까만 초콜릿이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현식이었지만 상자를 열자 풍겨오는 진한 단내에도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었다.

 

“고마워.”

“하나 먹어봐.”

 

  창섭의 요구에 현식이 창섭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그의 흰 피부가 더 희게 보였다. 죽음의 향이 풍겨오는 기분이었다. 아니, 느낌뿐이 아니라 사실이겠지.

 

“그럴까.”

 

  말과는 다르게 현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어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창섭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좀 이따 열어봐.”

 

  상자를 열려는 창섭의 손을 잡은 현식이 웃으며 창섭이 준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진한 단내가 코끝을 스쳤다. 향을 숨길 때는 더 독한 향을 풍기라고 했었던가. 현식의 머리에 오래전 창섭의 말이 스치듯 지나갔다.

 

“형.”

“응?”

“사랑해.”

 

  마지막까지 현식은 웃으며 그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그의 마지막 웃음을 바라보면 창섭을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점점 무너져가는 그의 몸을 빤히 바라보던 창섭이 자신의 손에 들린 상자를 바라보았다. 진득한 불안감이 창섭의 발아래를 휘감아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설마…

 

  상자에 들어있던 건 작게 접힌 종이 두 장과 통장이었다. 그것은 창섭에게 아주 낯익은 종이였다. 창섭이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창섭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숨을 한번 고르며 감정을 추스른 창섭이 한 장의 종이를 더 넘겼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손에 들린 종이를 던지고 현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의 온기를 더 품을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늦었다. 점점 식어가는 현식을 품에 안아 든 창섭의 눈에 눌러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방 창문을 타고 햇빛 한줄기가 타고 들어와 방 안을 비췄다.

 

[제게 마지막 사랑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짤막한 한 문장이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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