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에게 대부를 부탁했어."


 해리가 시리우스와 제임스를 데리고 내려오자 리무스가 말했다. 벽난로 앞에 앉은 리무스는 근래에 보기 드문 밝은 얼굴이었다. 어떤 완충 장치도 없이 쏟아진 소식에 해리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바로 뒤에 다가온 시리우스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끌어당기자 해리는 시리우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을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보고 있는 제임스를 발견했다. 슬쩍 눈을 다른 곳으로 굴리자 이번엔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있는 초록색 눈과 마주쳤다.


 해리는 시리우스를 손을 슬쩍 잡에 제 몸에서 떼어냈다. 

 시리우스는 해리를 흘긋 쳐다보다가 곧 팔짱을 끼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긴장하고 있던 해리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왜 저런 반응이지? 누가 봐도 별로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의 태도였다. 


 해리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그래서라니?" 하고 되묻자, 시리우스는 조금 더 성의 있는 질문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우리의 차세대 마루더는 이름이 뭐지? 설마 아직도 못 지은건 아닐 테고."

 "그래, 맞아. 나도 그게 궁금했어."


 리무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제임스가 어서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에드워드 리무스 루핀이야." 


 리무스는  통스와 작명을 하다가 어떤 이름들을 후보에 올렸는지, 성 뭉고 병원에서 힐러가 통스와 리무스 부부에게 어떤 진단을 내렸는지, 어떻게 에드워드의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 말했다. 릴리는 성뭉고 병원에 들르기 전에 어떤 전조 증상이 있었는지 통스에게 질문했고, 통스는 생각이 나는데로 대답하다가 잘 모르겠을때는 리무스를 쳐다봤다. 그러면 리무스는 통스의 임신 초기에 힐러에게 들었던 말과 실제로 통스의 행동 변화를 비교해가며 설명했다. 릴리는 늘 그렇 듯 모범생의 자세로 그 설명을 들었고, 제임스는 의외로 자리를 뜨지 않고 성실하게 들었다. 


 '내가 그 애의 대부가 된건?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고?'

 

해리는 멍하니 앉아서 두 부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 해리의 어깨에 툭 기대오는 사람이 있었다. 


 "졸려?"


 시리우스가 해리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질문이지? 어째 본인이 졸리다는걸 알아달라는 건가. 해리가 피식 웃자 시리우스의 눈썹이 슥 올라갔다. 왜 웃는데.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웃었는데? 그냥…, 피곤한가 해서. 해리가 작게 속삭이자 시리우스가 해리의 어깨에 얼굴을 문지르며 웅얼거렸다. 응, 피곤해. 그러니까 네가 쟤네 좀 다 내쫓아. 


 그때였다. 


 "안 그래도 갈거니까 그만해라."


 쑥 뻗어져나온 손이 시리우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해리의 어깨에서 시리우스를 제거한 제임스는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지 시리우스를 발로 차서 밀어내고 본인이 그 자리에 앉았다. 

 

 "제임스!"


 릴리가 제임스를 꾸짖자, 제임스는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항의했다. 눈앞에서 기만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리핀도르로서 어떻게 참고 넘어가냐고 되묻자 릴리는 제임스를 쏘아보다가 해리에게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해리."

 "으음…."


 "어디다 사과를 하는거야."


가만보면 끼리 끼리 만났다니까. 바닥을 구른 시리우스가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제임스도 크게 반성하고 있어."

 "반성은 무슨."


 릴리가 해리에게 거듭 사과하자, 제임스는 입을 일자로 다물고 어깨를 으쓱였고, 시리우스는 다시 빈정거렸다. 


"저꼴을 보고도 반성을 한거라고 판단했다면, 이젠 너도 가망이 없는거야, 릴리 포터."


'엉망이네.'


해리는 슬쩍 눈을 굴리다가 일어나서 시리우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안 괜찮은 것 같아."


오러 훈련에서 반사신경을 기르기 위해 하루에 수십번 굴러본 바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빈혈이 있는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자 보기와는 달리 악력이 강한 손이 그를 붙잡아왔다. 


"또 저런다, 또."


 제임스가 힐난하자 시리우스는 보란 듯이 해리의 뒤에 섰다. 그런다고 네 멀대같은 몸이 가려지는 줄 아냐고 제임스가 따지자, 시리우스가 해리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매달렸다. 제임스가 헛웃음을 터트리고 주먹을 움켜쥐자, 릴리가 제임스의 뒷덜미를 잡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리무스는 "시간이 늦었으니 우린 이만 가볼게." 하고 말했다. 차분한 인사에 해리도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통스는 웃음기를 숨기지 않은 채, "재미난 구경이었어. 또 놀러올게." 하고 인사했다. 

 

 벽난로가 타오르기 전에 제대로 맞인사를 한 사람은 해리와 릴리 뿐이었다. 제임스는 릴리의 손이 떨이진 틈에 지팡이를 뽑아서 시리우스에게 헥스를 날렸으나, 해리의 프로테고에 막히고 말았다. 은빛 방어막이 빛나자 상황을 눈치챈 릴리가 제임스의 지팡이를 빼앗았다.   


 "우리도 이제 가볼게."

 "다음에 봐."

 "해리...언제든 집에 돌아와도 되는거 알지?" 

 "얼른 꺼져."


 불꽃이 타오르면서 릴리와 제임스도 사라지고나자, 시리우스는 지체없이 손을 움직였다. 한손은 해리의 허리를 감싸고 한 손은 턱을 붙잡아 들어올려 자신을 보게 했다. 한 점의 의문도 없이 맑은 녹색 눈을 바라보면서 시리우스는 아까 물었던 질문을 다시 물었다. 

 

 "졸려?"


 많이 졸리면 자러가고.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해리는 은근한 어조를 읽었다. 입술을 살짝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시리우스가 고개를 숙였다. 부드럽게 겹쳐친 입술이 촉,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가 다시 닿았다.


"으음…."


 살짝 감쳐물고 애틋하게 떨어지길 반복하던 키스는 점차 짙어졌다. 해리가 시리우스의 목에 팔을 감자, 시리우스가 해리의 다리를 받쳐들고 안아올렸다. 


"흐…."


제임스가 있었을 때 어쩌면 꽤 노력하고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정도로 계단을 오르는 동안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


 "블랙 군, 사람이 말을 하면 집중 하는 척이라도 해주게나."

 "또 집중 안 하지?"

 "당분간만이라도 조심 좀 해."


 요즘 시리우스는 저런 종류의 말을 자주 들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에게 관심을 요구했지만, 최근들어 그 정도가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들어보면 도대체 왜 저런 것들에 신경을 써야하는건지 싶은 일들이 대다수였다. 예언자 일보의 금발 머리 기자가 시리우스의 외모와 그의 가문, 그의 바람직하지 못해보이는 정치 행보에 대해 떠들어 대는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로 왜 걱정을 가장한 경계 어린 시선을 받아야 하지? 


 그가 정치적인 일에 간섭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간섭하기 전에 똑바로 하면 될거 아닌가. 비효율적인 체계를 바꿀 생각은 안 하고, 성과가 안 나자 책임은 폭탄 돌리듯 여기저기 미뤄 놓고, 업무 분장은 뭐같이 해놓고서 몇마디 반박좀 했다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는 꼴이라니. 순간적으로 죽음을 먹는자들이 왜 세상을 뒤집어 엎고 싶어하는지 공감할 뻔 했다. 


"크리스마스 휴가는 본래 몇명을 제외하고 일주일간 주어지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 걸 다들 알고 있겠지." 


 제일 웃긴 건 저거였다. 무디는 소수의 당직자를 제외한 모두에게 크리스마스 휴가가 주는 원칙을 거울처럼 뒤집어서 올해는 소수에게만 크리스마스 휴가가 주어지고, 나머지는 근무나 대기명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가는 그 해 어둠을 먹는 자들을 저지하는데 활약한 사람들에게 주어졌고, 시리우스는 당연히 그 명단에 들어있었다. 


 휴가 소식을 전해들은 시리우스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해리가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을 수 있을까?'였다. 마음을 전하기 전에 맞은 시리우스의 생일 때, 해리는 그에게 직접 만든 스니코스코프를 준비했었다. 붉은 보석이 박힌 은장도 모양의 넥타이 핀이었다. 위험을 감지하면 붉은 색 보석이 뜨겁게 달아오를거라고 했다. 그리핀도르의 검이 생각나는 모양인데 금색이 아닌게 아쉬워서 왜 금색을 고르지 않았냐고 투덜거리듯 물었다. 


 '그래도 역시 이쪽이 더 잘어울리는 걸.'

 

 원래 선물은 주는 사람이 고르는 거라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내놓으라고 했었지. 당연히 다시 돌려주지 않고 품에 잘 챙겨넣었다. 넥타이는 매지 않아도 넥타이핀은 제복 가슴 포켓에 늘 꽂아둘 수 있으니까.


 다시 내놓으라고 먼저 손을 내밀었던 해리는 시리우스가 한번 그의 손에 들어온건 절대로 다시 돌려줄 수 없다고 딱잘라 말하자 슬금슬금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 모습을 본 시리우스는 심란했다.


'모르는게 틀림 없어.'


그가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알면, 해리는 저렇게 안심한 듯 웃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떤 선물을 줄지, 또 어떤 선물을 받게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는데 자꾸 쓸데 없는 말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이를테면 어느 가문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다거나, 어느 가문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할 거냐고 묻는 말이나, 크리스마스에 특별히 할 일이 있냐고 묻는 말이나. 적당히 대답해주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앞에 있는 탁상을 쾅 내리쳤다. 


 "블랙."


 눈 앞에 갈색 머리의 남자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서른 중반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시리우스를 쏘아보고 있었다.  


 "태도를 고치는게 좋을 거다."


 누구나 너의 오만함을 언제까지나 눈감아주진 않을 테니까. 남자는 제법 근엄하게 충고하고 자리를 떠났다.  


 어디서 보긴  한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말투며, 태도며, 꼭 어디 높으신 분 같은데. 적당히 사회적으로 응대하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봤는지 생각해보려는데 신경이 온통 다른 곳으로 쏠려있어서인지 기억이나기는커녕 방금 본 인상마저 흐릿해졌다. 갈색 머리. 남자. 깐깐함. 밥맛. 


시선을 내리자 가슴 포켓에 넣어 둔 은장도모양 넥타이 핀 겸 스니코스코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그걸 그에게 건네주던 해리가 떠올랐다.


 '해리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제임스가 아니고, 오러 1팀이 아니고, 죽음을 먹는자가 아니어서 시리우스는 무시하고 시계를 쳐다봤다. 해리는 오늘 아침 오랫만에 시리우스와 출근 시간이 맞았다. 전날 밤 늦게 잠들어서인지 답지 않게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포터 특유의 부스스한 머리카락 덕분인지 잠결에 구르다 둥지에서 떨어질뻔한 나뭇잎이 잔뜩 묻은 아기새 같기도 했다. 


 늘 아슬아슬하게 막아뒀던 감정이 한번 둑 위로 넘쳐흐르고나자, 한순간 한순간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그렇게 어려워졌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사방으로 부스스하게 일어선 머리카락사이로 손을 넣어 동그란 머리통을 껴안았다. 굴곡을 따라 쓰다듬자, 해리가 그의 품속에서 꾸물거렸다. 수색꾼 출신답게 유연한 해리는 시리우스가 모닝키스를 하기도 전에 빠져나갔다. 전날 많이 먹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아침을 거르고 가려는 걸 정색하고 붙잡아서 토스트를 입에 물려줬는데... 그걸론 지금 쯤 출출하지 않을까? 머리를 써야하는 직업이니 당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오늘은, 잘하면.


 '같이 점심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분침이 12를 가르키는 순간, 시리우스는 벌떡 일어났다. 


"시리우스 블랙!"


그를 제외한 블랙 가문 직계가 사라져도 세상에는 그를 번거롭게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시리우스는 더는 그런 사소한 것들에 일일히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그 자신답게 살아도 해리는 그를 좋아해주니까.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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