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후시구로 생일에 맞춰 못 끝낼 줄 알았는데 어떻게 끝냈습니다…

후시구로 생일 기념이라고 쓴 거지만 후시구로가 이래저래 원치 않는 행위를 당합니다(…). 저 이래저래 원치 않는 행위들로 인해 하편은 성인향으로 공개하므로 유념해 주세요. 미성년자 분들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합시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후시구로가 귀신샌드 사이에 끼어 몸도 마음도 고생합니다. (생일인데 미안…)

*평범한 현대AU, 이타도리 유지+스쿠나 쌍둥이 설정




후시구로 메구미가 근처 파출소로 좀 와 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밤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어느어느 서의 누구누구 순경입니다’ 같은 인사말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을 때면 매번 어김없이 심장께가 서늘해진다.

그러나 통화 중 무심코 달력을 올려다본 덕에, 후시구로는 그럴 만한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밖에선 동물들, 안에서는 쌍둥이들과 정신없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벌써 동지가 내일이었던 것이다.

경찰의 짧은 설명이 이어진 후, 통화의 상대방은 이타도리 유지로 바뀌었다. 파출소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실제 지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후시구로, 이번엔 진짜 별일 아니야.」 유지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후시구로는 크게 믿지는 않았다. 이 쌍둥이들이 치는 사고의 스케일은 보통 사람의 잣대로 재어선 안 된다. 그래서 후시구로는 일단 기다리고 있어, 라고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사람을 이 시간에 불러내기나 하고…….

외투와 지갑, 스마트폰만 챙겨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걸음을 내디딘 직후, 후시구로는 문득 길거리의 가로수들이 알록달록한 전구를 두른 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쌍둥이들은 파출소의 긴 의자 위에 부루퉁한 채 앉아 있었다.

“이번엔 또 뭐냐?”

거두절미하고 묻자, 동시에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후시구로는 단번에 부정했다.

“너희, 연말 데이트는 누구랑 할 건지 정할 시기잖아.”

“아니, 그건 맞는데.”

유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바람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순경 한 명이 힐끗 이쪽을 돌아보아서, 후시구로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우선은 나가서 얘기하자.”

후시구로는 데스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젊은 순경이 기다렸다는 듯 말없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얼굴이 이미 후시구로의 눈에 익었다. 그도 그럴 게, 쌍둥이들은 하루에 무려 세 번씩도 불심검문에 걸리는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불심검문 열 번에 한 번쯤은 기어이 경찰서나 파출소에 불려갔다. 이러니 무엇이 더 놀랍겠는가. 후시구로는 내밀어진 서류에 기계적으로 이름을 적었다. 귀가 조치를 밟는 데는 못 해도 이십 분쯤 걸릴 터였다.

 

마침내 파출소를 나섰을 때에는 벌써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아, 밤 되니까 춥네.”

이타도리가 어깨를 움츠리며 외투의 후드를 얼른 뒤집어쓰려는 참이었다. 그 후드를 후시구로가 재빨리 붙잡았다. 봐주지도 않고 확 끌어당기는 통에 이타도리가 어어어,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가던 스쿠나가 그예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이번엔 무슨 일인지 설명해 봐.”

후시구로가 서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눈가에는 피로가 맺혀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초지종을 듣지 않고 넘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전에 택시부터 부르고.”

지금 얘기하라니까.”

후시구로의 어조가 한결 강해졌다. 덩달아 손에도 힘이 들어갔는지, 이타도리가 후시구로, 이것 좀, 하며 눈치를 본다. 스쿠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는 이타도리 유지의 목이 얼마나 졸리고 있는지는 지나가는 날파리만큼도 관심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얄팍한 외투를 걸친 후시구로 메구미가 추위 속에 버티고 서 있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까 말하는 걸 보니 벌써 짐작한 것 같던데.”

하지만 스쿠나는 스쿠나다. 후시구로 메구미 외에는 그 무엇에도 별반 관심이 없는 주제에, 그는 후시구로가 자기에게 무언가 바랄 때면 꼭 말꼬리를 돌리며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후시구로가 약이 오르거나 애달아할수록 그는 집요하리만치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담뱃갑부터 찾는 스쿠나의 모습을 보니, 또 한차례 딴청을 피울 속셈이 뻔히 보였다.

“너……!”

“내가, 내가 설명할게, 후시구로.”

결국 유지가 나섰다. 언제 목이 졸렸냐는 듯 후드를 붙잡은 후시구로의 손을 단번에 떼어낸 유지가 스쿠나와 후시구로 사이를 가로막듯이 섰다. 그 의도적인 행동에 막 담배를 물던 스쿠나의 눈썹이 움찔거렸으나, 유지는 뒤통수에 꽂히는 날카로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태연했다.

“별일 아니라니까. 이번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어. 우린 원래 툭하면 경찰한테 오해받잖아, 무슨 얘긴지 알지?”

오해를 받는 건 사실이다. 적어도 이타도리 유지는 자주 오해를 받는다. 스쿠나는 대개의 경우 오해가 아니라서 문제지만. 달래는 듯하면서도 단호한 유지의 목소리에 후시구로는 일단 한발 물러섰다. 유지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후시구로의 양 팔꿈치를 감싸듯 팔을 잡았다. 상냥한 손길이었지만, 그 두 손에 힘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즉시 꼼짝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후시구로는 알고 있었다.

“알겠으니까 이거 놓고 말해.”

“아니, 안 그러면 때릴 거잖아. 그것도 맨날 나만.”

유지가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팔은 계속 붙잡은 채였다.

 

그러니까, 유지가 설명하기로는 이랬다.

“그게, 후시구로가 생각한 그걸 오늘 정하려고 하긴 했거든.”

유지가 입을 떼자마자 후시구로는 미리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나 다를까였다. 죽는 날까지 서로 양보하지 않을 이 쌍둥이들의 연례행사― 예상한 대로 그 문제가 다가왔던 것이다.

연말에 다다르면,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일을 계획하기 마련이다. 친구,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풍경은 조명이 켜져 있는 곳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밤은 길고 날이 혹독할수록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머무르고 싶은 욕망은, 이 이례적인 관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12월 말에는 후시구로의 생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문제는, 후시구로는 한 사람인 데 비해 이 쌍둥이들은 언제나 그랬듯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하물며 후시구로를 원만하게 공유할 만큼 − 애초에 한 사람을 둘이 공유하는 게 가능한가, 같은 원론적인 의문은 차치하고 −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 상대다. 오히려 그 반대, 세상에 단둘이 남아도 협력은커녕 기어이 한쪽의 끝을 보고 말 악연에 묶여 있는 게 바로 이 쌍둥이였다. 그러니 이런 시기일수록 후시구로를 양보하고 싶지 않은 건 쌍둥이들의 당연한 심리였다. 연말이 아니더라도 어쩌다 상대가 후시구로를 혼자 차지하기라도 하면 그 즉시 속이 뒤틀리는데, 후시구로의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셋이 같이 보내게 될 바에는 차라리 어느 쪽도 후시구로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쌍둥이들은 결단을 내렸다.

한 해의 연말만큼은 승부를 봐서, 이긴 상대에게 후시구로와 보내는 시간을 내어주기로.

물론 결단을 내린 것치고 진 사람이 정말 깔끔하게 포기한 일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아무튼 이는 쌍둥이들이 맺은 최초의 조약이었다.

그래서, ‘조약’에 따라 쌍둥이들은 12월이 올 즈음이 되면 항상 ‘승부’ 준비에 들어가게 됐다.

이때의 ‘승부’를 무엇으로 결정하는지는 매해 달라졌다. 다만 초반에는 거의 예외 없이 육탄전이었다. 깔끔하고 단순하여 쌍둥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여파로 매년 연말연시 시즌만 되면 쌍둥이가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부상을 입게 되자, 후시구로가 폭발했다. 의사에게서 유지의 얼굴에 거의 영구적인 흉터가 남을 것이라는 소견을 들은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 정작 당사자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 .

게다가 쌍둥이가 한번 진심으로 맞붙으면 주변의 기물 역시 적잖은 피해를 입는 것도 후시구로의 분노에 단단히 한몫을 했다. 해가 갈수록 경찰이 추산하는 손해액이 점점 늘어났던 것이다. 참다못한 후시구로는 급기야 병실에 장도리를 들고 찾아와, ‘너희가 두 번 다시는 날뛰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한번 더 손봐 주겠다’고 선언했다. 쌍둥이는 놀란 한편 내심 감동했다. 그토록 브레이크가 나간 후시구로는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시구로가 들고 온 장도리는 병원 직원이 발견하기 전에 쌍둥이가 얼른 빼앗아서 숨겼는데, 그건 지금도 스쿠나의 옷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후시구로의 분노가 인상적이었던 만큼 차마 육탄전을 또 벌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다음엔 결코 경고 수준으로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해서 그다음 해 겨울, 두 사람은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연말의 후시구로를 차지하는 데에 있어 겨우 동전 던지기 같은 걸로 승부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결국 두 사람은 몇 가지 안을 놓고 제비뽑기를 하기로 했다. 제비를 뽑는 건 후시구로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한 해는 사격 협회의 체험장으로 빔 라이플을 쏘러 갔다. 입사立射로 60발을 쐈고 그해의 승부 결과는 무승부였다. 그 이듬해는 어처구니없게도 토익 시험이 뽑혔다. 알고 보니 후시구로가 쌍둥이 몰래 슬쩍 집어넣은 제비였다. 유지는 문자 그대로 코피가 터지도록 공부했지만, 결국 그해의 승리는 근소한 차로 스쿠나가 가져갔다. 허나 그해 역시 진 사람이 결과에 순순히 승복하진 않았다. 그럴 거면 대체 왜 승부를 벌이는 거냐고 후시구로가 물었으나 대답을 적당히 얼버무린 기억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도 12월이 왔다. 쌍둥이들은 결연히 승부처를 골랐다. 이번엔 제비뽑기에 의지하지 않았다. 또 토익 시험을 치르는 건 양쪽 모두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이 고른 곳은.


“……파친코에 갔다고?”

넌더리를 내며 후시구로가 물었다. 유지가 겸연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치만 승부인걸.”

“승부를 운으로 결정하냐?”

“아냐, 이것도 나름 실력이라니까.”

“실력? 너 묘하게 우리 아버지랑 똑같은 소리를 한다……?”

후시구로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유지는 우물쭈물하다 스쿠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스쿠나는 휴대용 재떨이를 찾는 척을 했다. 도움이 안 되는 형제였다.

“아, 아니, 아무튼. 일단 끝까지 들어봐. 그래서 파친코를 하러 가긴 갔는데…….”

유지가 다급히 말꼬리를 돌렸다. 후시구로는 찌푸린 얼굴을 하고서도 유지의 말을 가로막진 않았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일시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한 줌의 구슬이라도 더 손에 넣기 위해 열중하던 쌍둥이가 어둠에 휩싸인 건 정확히 밤 10시 21분의 일이었다. 방금까지 온갖 기계음으로 귀가 따갑던 가게 안이 완전한 적막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도 몇 초간뿐이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암흑에 뭐야, 라며 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직 사위가 컴컴한데도 몇몇이 섣부르게 일어나 움직인 통에 쌓여 있던 구슬 박스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너 뭐야, 잠깐, 점장 어딨어, 움직이지 마! 따위의 단발적인 고함이 여기저기서 어수선하게 울려퍼졌다.

잠시만요, 정전인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오늘 일진이 글렀다는 걸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개중에는 스쿠나도 있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신경질적으로 번득였다. 느닷없이 기계의 전원이 나가 버린 상황이 그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그는 발치에 걸리는 의자며 쌓인 구슬 박스 따위를 발로 걷어차며 나갔다. 쏟아져 널브러진 구슬 더미에 누군가 손을 뻗었다가 스쿠나의 발에 밟혀 비명을 질렸다.

지진도 없었는데 웬 정전일까. 유지는 참을성 있게 몇 분 더 기다렸지만, 전원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고는 욕지거리를 하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선 환전이나 교환이 힘들 것 같습니다, 라며 직원 몇몇이 쩔쩔맸다. 그쯤 되니 유지도 오늘 승부는 파투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가게 입구로 다가가 기계에 부은 돈을 어쩔 거냐며 항의하는 동안, 쌍둥이는 미련 없이 가게를 빠져나왔다. 스쿠나가 들으라는 듯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간판 불빛과 온갖 네온사인으로 화려해야 할 바깥도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의아해하며 일단 큰길로 걸음을 돌렸다. 어두운 거리 가운데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보이는 연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얼마간 나아간 뒤에야 쌍둥이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거리에서 승용차가 전봇대를 들이받은 바람에, 일대가 전부 정전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후시구로가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그래서라고 해도 뭐, 그 뒤엔 별거 없는데…….”

유지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거기선 글렀다 싶어서, 일단 막차 타고 다른 데로 가서 괜찮은 파친코 가게를 찾아보려고 했지. 근데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갑자기 경찰이 우릴 부르는 바람에…….”

“…….”

후시구로는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유지는 이제 별 의미 없이 뺨을 갉작이고 있었다. 그 왼손의 오그라든 새끼손가락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면 반쯤 잘려나간 것처럼 보이는 그 손가락은, 어릴 적 스쿠나가 집에 불을 낸 바람에 입은 화상의 흔적이었다. 얼굴엔 큼직한 흉터에 왼손 새끼는 반쯤 오그라붙어 있으니 누군가 야쿠자 따위로 의심하는 것도 사실 아주 황당한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유지에 비하면 훨씬 말끔한 생김새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야쿠자임을 확신하며 피해 다니는 저 스쿠나와 함께 있었다면.

스쿠나는 택시가 늦게 온다며 툴툴거리고, 유지는 춥지 않으냐며 자기가 걸친 외투를 벗어 후시구로의 어깨에 한 겹 더 둘러 주었다. 그것을 거절하는 대신, 후시구로는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어 입을 열었다.

“그럼…… 올해는 결국 못 정한 거냐?”

“응?”

유지가 반문했다.

“도중에 무산됐으니까 누가 이기고 졌는지도 못 정한 거잖아.”

“아, 그렇지. 근데 뭐, 사실 정했어도 어떻게 될지는…… 후시구로도 알잖아.”

유지가 외투를 여미다 말고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자 스쿠나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올해는 승부를 못 냈으니까 그냥 혼자 지내겠다,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후시구로 메구미.”

“어느 모로 봐도 그게 타당하잖아.”

후시구로가 반박했다. 그러자 몸을 감싼 외투가 별안간 그의 몸을 조였다.

“후시구로, 나랑도 같이 보내기 싫어?”

유지가 눈을 또렷이 뜨고는 물었다. 그 바람에 후시구로의 입에서 얼결에 본심이 흘러나왔다.

“아니, 너랑만이라면 괜찮긴 한데…….”

“그 녀석하고는 괜찮다고?”

그 말을 놓칠 리 없는 스쿠나가 사납게 몸을 돌렸다. 이쪽을 쏘아보는 눈초리엔 살기마저 등등하다. 움찔한 후시구로가 본심은 어쨌건 뱉은 말을 수습하려던 사이, 멀리서 택시 한 대가 등을 밝히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렇게 된 거 우린 그냥 둘이서 갈까?”

외투를 단단히 여민 손을 풀지 않은 채 유지가 웃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후시구로의 목덜미에는 그만 식은땀이 맺혔다. 유지의 제안은 담백하고 솔직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동시에 스쿠나에 대한 도발임을 후시구로는 모르지 않았다. 길 가장자리 쪽에서 서 있던 스쿠나가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누구 맘대로.”

“후시구로 마음인데?”

외투에 감겨 있던 한쪽 손목이 우악스레 끌려가 잡혔다. 물론 스쿠나의 손이다. 후시구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올해도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후시구로는 둘에게 거의 납치되다시피 택시에 태워졌다. 혹여라도 내리지 못하도록 쌍둥이가 뒷좌석 양쪽에 앉았다. 키는 후시구로가 조금 더 클지 몰라도, 두께나 무게로는 월등히 앞서는 쌍둥이들이다. 남자 셋이 앉기엔 비좁은 좌석 가운데서 후시구로는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행선지는 웬일로 쌍둥이네 집. 이 녀석들이 서로를 마주치기 싫어 웬만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아는 후시구로로선 행선지의 의외성조차 불안에 확신을 더할 뿐이었다. 그러나 별 도리가 없었다. 마치 수갑처럼, 쌍둥이가 자기의 손을 한쪽씩 꼭 붙잡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후시구로는 유지, 하고 이타도리 유지의 이름을 불렀다.

“응?”

다정한 어조로 유지가 대꾸했다. 그러나 어조와 달리 후시구로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는 한결 더 힘이 들어갔다. 유지는 형제에 비하면 극히 상식적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시구로와 단둘이 있을 때에 한했다. 원수 같은 쌍둥이 형제와 알력 다툼을 벌일 때면 그 역시 무섭도록 완고해졌다. 이래선 가망이 없다. 후시구로는 유지라도 설득하려던 걸 포기했다.

“……아니, 아냐…….”

할 말을 애써 삼키는 후시구로의 옆얼굴에 스쿠나가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 계속 (뒤편은 성인한정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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