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무스는 다소 초조한 심정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아직은 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불사조 기사단의 첩보망은 불완전했다. 볼드모트의 부활을 믿지 않는, 믿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은 아직 마법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사실을 일깨워 주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자에 대항한 활동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죽음을 먹는 자들이 대체 오늘 밤 언제쯤 이 선량한 머글본 마법사 일가의 집을 습격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부에서의 업무를 끝내고 합류하기로 한 동료가 제때 도착하지 않는다면 리무스는 죽음을 먹는 자들 서넛을 한번에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아마도 없었다. 실제로 죽어 본 적이 없으니만큼 자신의 친구들만큼 의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적어도 리무스는 그 비슷하게는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혹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그러나 파트너의 부재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혼자 있다가 쓰러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사단의 전력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당장 오늘 밤 저 가엾은 마법사들이 어찌될지는 멀린만이 아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정도 이상으로 초조해져 있던 이유가 그뿐만은 아니었으리라. 불사조 기사단의 임무는 눈을 제대로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기에 대부분의 단원들은 늘 다소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에 더해 오늘은 보름까지 고작 일 주일 남은 상태로, 리무스는 오늘 첫 번째 투구꽃 물약을 마신 참이었다. 게다가 리무스에게는 최근 개인적인 고민이 하나 더 있었다. 때문에…….

“……!”

어쩌면 소리를 인지한 것보다 더 빨리, 리무스의 몸이 홱 돌아 뒤쪽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겨눠진 쪽은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기사단원들 사이에서는 이것 또한 일상이었다. 리무스 역시 헤스티아의 얼굴을 한 마법사를 향해 겨눈 지팡이를 치우지 않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매드아이 무디의 주장으로 모든 단원이 만나자마자 시행하는 절차로, 서로만이 알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리무스는 헤스티아와는 그리 친분이 없었다. 사실, 늑대인간인 만큼 친분이 있다고 할 만한 이들이 극히 적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그래도 불사조 기사단인 만큼 껄끄러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가 확실히 알 만한 질문을 하자면 생각나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결국 리무스는 그저께 아침, 드물게도 꽤 많은 불사조 기사단원들이 함께 식사를 한 것을 떠올렸다. 

“그저께 아침, 트롤 우산꽃이를 쓰러뜨린 건 누구였지?”

불사조 기사단원들 중 그 우산꽃이를 그토록 쓰러뜨리는 것은 한 명밖에 없었다. 사실, 굳이 아침을 함께 먹은 사이가 아니어도 그리몰드 가 12번지를 몇 번만 드나들었어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일 터였다. 그러나 상대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지 익숙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리무스는 한껏 경계심을 올리며 지팡이를 좀 더 신중하게 겨누었으나 결국은 맞는 대답이 돌아왔다.

“……님파도라 통스.”

틀린 대답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리무스는 헤스티아를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상대가 자신이 아는 헤스티아와는 어딘가 ‘다르다’라고 느꼈다. 그리고 늑대인간으로서, 불사조 기사단원으로서 리무스는 이런 때에는 자신의 감을 믿는 것이 좋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재빨리 거리를 벌린 리무스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정확히는, 휘두르려던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급격하게 손목을 꺾었다. 

“잠깐! 미안해! 리무스! 나예요!”

“통스?!”

리무스는 자신이 사용하려던 주문이 엑스펠리아무스임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적어도 주문이 실패했을 때 폭발이 일어나거나 시전자를 허공으로 날려 버리는 주문은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손목을 삐끗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리무스는 아픈 손목을 주무르며 자신의 감이란 것을 저주했다. 그것 참, 믿음직스럽기도 하지. 

폴리주스 마법약을 먹었다 해도 변한 수 있는 대상은 한 사람뿐이다. 죽음을 먹는 자가 헤스티아에서 통스로 변할 수는 없다. 게다가 깜짝 놀란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자주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분명 님파도라 통스가 맞았다. 리무스의 미간이 평소보다 조금 더 깊게 패였다.

“……왜 당신이 여기에? 오늘의 임무는…….”

“헤스티아가 맡기로 했지. 나도 알아요. 하지만 마법부에서 나올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잖아.”

헤스티아는 마법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불사조 기사단 자체가 공공연히 드러나 있는 조직은 아니었으나 볼드모트의 부활에 대한 태도는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헤스티아 같은 마법사가 마법부에서 편하게 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헤스티아의 사정을 이해했다고 해서 통스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짓이었어요. 내가 당신을 의신해서 정말 위험한 마법을 발사하기라도 했다면…….”

“네에,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 요즘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것 같단 말이지. 웃는 얼굴은커녕, 하루 종일 그렇게 찌푸린 표정밖에 안 하잖아요. 살짝 놀래켜 주려고 한 건데.”

통스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다른 이가 같은 짓을 했다면 생각이 있니 없니 화를 낼 만한 일이었지만 리무스는 그쯤해서 입을 다물었다. 이 재능 있는 젊은 마녀의 성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통스는 우수한 오러였지만 다소 덜렁대는 성격이었다. 이건 통스의 무수한 악의 없는 실수들 중 하나일 뿐이며 리무스가 여기서 잔소리 몇 마디를 더 얹는다 해서 고쳐질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리무스는 잠자코 감시하던 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아무리 악의가 없다 해도 이런 사안이라면 좀 더 경고를 주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리무스가 말을 끊은 것은 더 대화를 나누는 것이 껄끄러워서이기도 했다. 아니, 그편이 더 큰 이유를 차지한다 해도 좋았다. 그리고 통스는 바보가 아니었다. 통스를 잘 모르는 몇몇 이들은 그렇게 착각하기도 하지만 바보는 최연소 오러가 될 수 없는 법이다.

“저기요, 리무스. 아무리 화났어도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해 주는 게 예의 아닌가?”

“……우리가 지금 잠복 중인 걸 잊은 것 같은데…….”

“아, 그래요? 내가 볼 땐 당신이 입을 다문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요? 나랑 얘기하기가 싫은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래요?”

이 젊은 마법사는 이렇게나 당돌했다. 리무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기 위해 지팡이를 쥐지 않은 쪽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헤스티아가 올 수 없다면 대체할 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굳이 통스가 메워야 했던 것은 어째서일까. 리무스는 통스가 자원했으리라 확신했다. 그것도, 바로 리무스 자신 때문에. 

자의식 과잉 같은 것은 아니었다. 리무스는 차라리 자의식 과잉이라고 스스로를 놀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리우스와 제임스가 함께 비웃는다 해도 감수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젊다못한 어린 마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사실과 바꿀 수만 있다면.

통스 같은 사람과 이야기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어딘가에는 그런 이상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게 리무스는 아니었다. 다만, 리무스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신이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정히 말을 건넬 만한 철면피도 되지 못했다. 

“그러면 내가……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애초에 통스. 당신은 어젯밤 임무에서 막 돌아온 참으로 아는데, 헤스티아가 오지 못한다면 본부에 남아 있는 디덜러스가 대신 올 수도 있었어.”

성마른 목소리는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리무스는 이 당돌한 마법사에게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행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이 되면 그게 옳았다는 것을 통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차라리 정나미가 떨어져 있는 편이 나을 터였다. 

리무스가 간과했던 것은, 오러라는 것은 사소한 역경에 무너져서는 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머글 출신과 결혼한 블랙가 여자의 딸인 님파도라 통스에게 있어서 리무스의 이런 반응은 사소한 역경에 속했다.

“아, 그래요. 당연히 내가 부탁했지. 왜 아니겠어요? 당신,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랑 같이 하는 임무는 다 피하잖아.”

돌려서 점잖게 지적해 더 이상의 대화를 막으려던 리무스는 통스의 직설적인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대화의 단절이라는 목적은 그걸로 달성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통스는 혼자서라도 얼마든지 떠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도 염치랑 눈치가 있는 사람인데 당신이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거면 이렇게까지 하겠어요?”

리무스는 통스의 다음 말을 듣느니 차라리 당장 죽음을 먹는 자들 열 명쯤과 혼자 싸워야 하는 상황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무스의 인생이 늘 그래 왔듯이, 상황은 리무스의 생각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통스의 목소리는 진실을 말하는 자 특유의 당당함으로 선명하게 날아와 꽂혔다.

“당신도 나 좋아하잖아. 뭐가 문제인데요!”

주로 시리우스에게서 배운 끔찍한 욕설을 뱉을 상대가 달리 없었으므로(통스를 탓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리무스는 마음 속에서 그 모든 폭언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조금만 더 당황하거나 자제심을 잃었다면 입 밖으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늑대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리무스가 가장 철저히 길러내려 한 자질 중 하나는 인내심이었기에 가까스로 그런 내면의 동요를 그대로 내뱉는 일만은 면할 수 있었다. 

문제라. 리무스는 거의 모든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나이 많은 늑대인간에게서 문제가 아닌 점을 찾는 편이 빠를 터였다. 리무스는 통스를 보며 자신의 유쾌한 친구들에게 가졌던 감정을 거의 유사하게 되풀이했다. 리무스는 자신의 떠나간 친구들에게 늘 동경과 사랑을 보내는 동시에 그들의 천성에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지금 통스를 보며 느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리의 오해대로 차라리 통스가 사랑한 것이 시리우스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리무스 루핀이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은 왜 나잇값도 하지 못하고 그 선택에 마음이 흔들려 버리고 말았단 말인가. 

감정을 숨기려다가 지나치게 딱딱해져 버린 목소리가 리무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경직된 목소리가 오히려 마음이 흔들린 증거라는 사실을, 대화하는 둘 모두 모르지 않았다. 

“문제가 뭔지는 알고 있을 텐데요.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어려울 지경인데.”

“네, 당신은 늑대인간에, 너무 나이가 많고, 너무 가난하고, 또 뭐였죠? 미안하지만 이미 다 들은 말이라 그리 새로운 맛은 없네요. 했던 말을 다시 하는 걸 보니 기억력이 나빠졌을까봐 나도 다시 말해 주자면, 상관없다고 했어요. 아니, 이만하면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젊은 오러의 눈동자는 안에서 불꽃이 타는 듯한 빛을 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실제로 붉은색이 감돌게 바뀌고 있었다. 통스는 그렇게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통스의 감정에 그 어떤 겉치레도 없다는 사실을, 리무스는 사무치게 잘 알고 있었다. 

리무스의 입술이 열렸다. 상대가 그런 사람이기에 더더욱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자신의 본심.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것은 그 감정이 아니라 지독하게 익숙한 주문이었다.

“프로테고!”

프로테고 정도야 무언 주문으로도 쓸 수 있었다. 그 편이 빨랐겠지만, 굳이 소리내어 주문을 외운 것은 다른 말이 나가 버릴까 싶어 막아 버린 것에 가까웠다. 어디선가 날아온 붉은 광선이 은빛 방어막에 막혀 사라졌다. 주문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몸을 완전히 돌리면서도 흘긋 곁눈질을 하자 통스도 이미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하기야, 자신보다 훨씬 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오러인 것이다.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뺨을 통통하게 부풀린 통스의 팔이 지팡이를 쥔 채 허공을 가르고, 주문도 없이 발현된 눈부신 마법이 밤의 어둠 사이로 쏘아져 나갔다. 

마법과 마법이 충돌하면서 작은 소음이 일었다. 보호 마법 안에 있는 마법사 일가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소리였다. 직후, 더 많은 빛줄기가 날아왔다. 확실히, 불사조 기사단의 첩보망은 불완전했다. 습격 인원이 서넛이라고? 최소한 다섯은 넘는 것 같은데. 그 자가 돌아온 이후 늘 그렇기는 했지만,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군. 

무언 주문을 외우며 문득, 리무스는 그답지 않게 그리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을 했다. 자신이 사랑한 이들은 모두가 위험해졌다는 생각.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들은 그저 그토록 위험한 시대를 살았고, 살고 있었고, 그 위험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성정을 지닌 이들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리무스가 그들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리무스는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새겨진 어린 시절 이후로 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상상에 더 익숙했다. 기대가 꺾이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는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해 온 탓이었다. 지금의 불안도 결국 그런 습관의 발로일 뿐이다. 통스는 결코 약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최연소 오러라는 타이틀은 외형을 변화시키는 재주만으로는 따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리무스는 그 비합리적인 생각을 마음 저 깊은 곳으로 쑤셔넣으며 쓰게 웃었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사내라니. 어쩌면 통스에게 돌려줄 새로운 이유가 하나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엄폐물로 쓰일 만한 나무와 지형을 고려해 잠복하고 있기는 했으나 두 배가 넘는 수의 마법사를 상대로는 작은 위안이 될 뿐이었다. 

사고와 거의 같은 속도로 무언 주문이 완성되고, 지팡이 끝을 밝히며 쏘아진다. 불사조 기사단원들에게는 익숙해져 버린 위기. 이제는 덤덤해져 버린 죽음에 대한 공포 위로 리무스는 새로운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마법사가 같은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두려움. 그 공포는 어느 순간, 옆에서 작은 비명과 함께 핏방울이 튀었을 때 극대화된다.

 이미 많은 것을 잃어 본 리무스는 상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료와 친우들의 죽음은 늘 생살을 물어뜯기는 것 같은 고통을 영혼에 선사했다. 그조차 수없이 견뎌 와야 했던 리무스에게도, 이번은 완전히 새로운 공포였다. 

그러나 리무스는, 그리핀도르였다. 누군가는 무모함이라고 부르는 그리핀도르의 용기는 다름아닌 두려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이다. 

평생 자신이 그리핀도르인 것을 자랑스럽게, 또 다행스럽게 여겨 왔지만 동시에 평생 자신이 진정한 그리핀도르라고 여겨 본 적은 없던 남자가, 그 가치를 체화하듯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 지팡이 끝에서, 지금껏 수백 수천 번 시전해 왔던 마법이, 그 수천 번 중 가장 밝은 빛으로 쏘아졌다. 

“……!”

기절 마법은 비명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날아드는 마법 줄기가 확실히 성기어졌다. 리무스는 더 이상 몸을 숨기지 않은 채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옆으로, 상처를 응급처치할 생각도 하지 못한 통스가 말없이 합류했다.

다시, 지팡이를 휘두른다. 오가는 마법의 수가 점차 균형이 맞고, 이쪽이 우세해지다가, 이내 더 이상 어떤 마법도 필요하지 않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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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를 견디지 못하게 된 죽음을 먹는 자들이 펑 소리와 함께 순간이동으로 도망친 뒤, 리무스는 그들을 추적하는 무익한 시도를 하는 대신 급하게 몸을 돌렸다. 

“통스! 괜찮아요?”

마법으로 파괴된 파편 따위가 튀면서 만든 생채기는 여기저기 있었지만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곳은 왼쪽 뺨이었다. 루핀이 황급히 상처를 살피려 들자 뺨을 감싸고 있던 통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치유사나, 몰리에게 보여 봐야 하겠지만 저주는 아닌 것 같은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투 중에는 지혈할 틈도 없었던지라 통스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그에 리무스의 얼굴이 피를 두 배는 흘린 것처럼 하얘졌다. 그 꼴을 본 통스가 그만 피식 웃었다. 

“저기요, 리무스.”

“치유 마법은 특기는 아니지만 일단…….”

“본부로 돌아가서 몰리한테 부탁하면 되니까 그건 됐고. 나 할 말 좀 하게 해 봐요.”

“…….”

리무스가 걱정이 지워지지 않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통스는 그런 리무스를 보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역시 나 좋아하는 거 다 티나니까 그냥 넘어오면 안 돼요? 어차피 오래 못 갈 것 같은데.”

“뭐…….”

리무스의 입이 반쯤 벌어진 채 멈췄다. 많은 말을 하고 싶은 얼굴로 할 말을 잃어버린 리무스를 향해 통스가 뺨을 틀어막고 있지 않은 한쪽 어깨를 으쓱했다. 

“뭐, 오늘은 좋은 거 봤으니까 봐줄게요. 그러니까 빨리 순간이동이나 해요! 나보고 하라고 할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한 통스가 자연스럽게 한 팔로 리무스의 팔짱을 꼈다. 다친 것이 팔이 아님에도 굳이 동반 순간이동을 요구하는 속셈이야 뻔했지만 리무스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한 팔을 내어준 채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아무래도 상당히 멍청해 보일 그 모습에 들려오는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리무스는 결국 가까운 미래에 통스의 말이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예지에 가까운 감각을 느끼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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