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을 떴을 때 오비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쿼터 침대 위에 있었다. 눈에 익은 풍경들이 캄캄한 밤 속에 잠겨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는 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라면 핏기없는 얼굴은 눈물로, 와들와들 떨리는 몸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서는 나는 죽었는데, 나는 왜, 너를 실패해서, 아나킨, 미안해, 아나킨… 하고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모습을 들켜 당장 메디컬 베이의 폐쇄병동에 격리되었을 테니까.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들끓었던 감정이 여직 이어지고 있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과호흡 때문에 흐윽, 흑, 우는 소리를 내며 오비완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왼팔을 가린 속튜닉의 소매를 신경질적으로 걷어냈다. 팔 안쪽, 팔꿈치에 가까운 위치에 주삿바늘에 찔린 듯한 흉터가 남아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오비완은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흐느꼈다.

자신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돌아왔다. 또 한 번. 끔찍한 실패를 저지르고서.

오비완 케노비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 걸까. 포스의 의지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 자신이란 말인가. 자신은 이다지도 나약하고, 무지하고, 어리석건만. 포스의 뜻이 무엇이든 자신은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터였다. …실제로 이미 실패했고.

불행한 회귀자가 겨우 호흡을 갈무리해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 갑자기 열리지 말아야 할 쿼터의 문이 열렸다. 보조 조명 하나조차 켜져 있지 않아 새카만 어둠 속을 익숙하게 살금살금 들어오는 인영을, 오비완은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키가 제 몸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작고 마른 어린아이. 외로움과 불안함에 흔들리는 아홉 살의 파다완. 어린 눈동자와 지친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았다. 자신의 마스터가 지금 시간에까지 깨어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아나킨이 먼저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오비완. 그게…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오비완과 아나킨이 마스터-파다완 관계를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 낯설고 냉담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는 자주 자신의 마스터가 지내는 쿼터로 몰래 들어와 바닥에서 잠을 자곤 했었다. 오비완은 지금도 제 파다완의 포스가 불안하게 일렁이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굳이 아나킨의 포스를 읽지 않아도 미아처럼 겁먹은 표정과 태도에서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어린 아나킨은 자신의 마스터가 저를 버릴까 두려워 매번 이렇게 자신에게 매달렸었다. 아니, 어쩌면 어른이 된 후에도 그랬지. 이 가엾은 예언의 아이는 이렇게나 애착에 약했다. 오비완은 자신들의 관계를 확신 받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제 파다완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달려가 아이의 몸을 끌어안고 나는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언제나 너와 함께 하며 네가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줄 것이라고 달래주고 싶었다. 아나킨. 마스터 케노비가 자신의 파다완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게 되면, 너는 아마 깜짝 놀랄 거란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돌아가렴.”


그러나 그런 일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더는 용납할 수 없구나.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네 쿼터로 돌아가.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그땐 나도 내 선에서 묵인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었나? 오비완은 다시 사납게 가빠지는 숨을 애써 참아내며 생각했다. 제다이답지 못하게, 스승답지 못하게 제 파다완에 대한 애착을 참지 못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었지? 첫 번째 삶보다도 엉망이었다. 자신은 죽었고 아나킨은 시스가 되어 홀로 남겨졌다. 홀로. 외롭게. 오비완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을 이불 밑에 집어넣어 숨겼다. 아나킨은 스승에게 이 정도로까지 문전박대를 당한 건 처음이라 대꾸도 못하고 놀라 굳어있기만 했다. 그 모습에 너덜너덜한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오비완은 고개를 획 돌렸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케노비.”


한참만에야 돌아오는 대답이 쓸쓸했다. 사원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는 목소리에 묻은 슬픔을 지워내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서글픔과 원망, 수치스러움과 분노, 외로움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아이의 리빙 포스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굳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제 쿼터의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오비완은 독약이 핏줄을 타고 들어 왔던 흔적을 꾹꾹 눌렀다. 이번에는 잘 될 것이다. 제 욕심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나킨이 제 이기심 때문에 애착으로 힘들어하다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나킨은 행복해져야 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 * *




마스터 케노비는 자신의 파다완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물려준다. 지식, 검술, 화술, 그 이외에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전부. 코러산트 사원에서 마스터 케노비보다 제 파다완의 교육에 헌신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워낙에 독특한 성정의 스승을 두었던 데다가, 미처 기사로서 성숙할 시간을 가지지도 못하고 제자를 들여 깊이 염려하고 있던 카운슬은 이제 안심한다. 아나킨과 함께 수업을 듣는 파다완들은 때때로 진심을 담아 말한다. 우리 마스터도 너희 마스터처럼 나를 신경 써주시면 좋겠어. 보통 마스터들은 파다완보다는 임무나 본인 수련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니까. 물론 그게 제다이의 길이긴 하지만 말이야. 스카이워커. 넌 좋겠다. 제다이가 그렇게 아낌을 받는 일은 흔하지 않을 거야. 이것도 선택 받은 자라 그런 건가? 시샘 섞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아나킨은 속으로 조소를 금치 못한다. 자신의 마스터는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신경을 쓰는 것도 오직 가르치는 행위에만 한정되어 있을 뿐이고, 자신이 다른 파다완들- 심지어는 정식 나이트들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을 성공시켜도 티끌 같은 기쁨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오비완 케노비는 언제나 냉담하다. 자신의 파다완에게만.

오비완이 아나킨에게 철저하게 선을 그으면 그을수록 파다완은 마스터가 자신에게 주지 못하는 것을 갈구한다. 애착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적어도 다른 마스터들이 자기 파다완을 아껴주는 만큼만이라도 내게 애정을 가지면 안 되나요? 그게 그렇게 힘들어요? 나이트 승급 시험이 가까워졌던 어느 날 아나킨은 참다못해 소리친다. 의중을 알 수 없는 청회색 눈에 울컥한 아나킨은 스승의 침묵에 돌아버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충동적으로 그를 잡아당겨 마스터의 입술을 탐한다. 치기 어린 뜨거운 입술과 놀라서 굳어버린 붉은 살덩이가 뒤엉킨다. 파다완의 서툰 입맞춤은 도발이고 고백이고 탄원이다. 아나킨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매달리다 입술을 떼어내면서 차라리 오비완이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제다이 오더에서 제명시켜주길 바란다. 그러나 매정한 스승은 무엇을 참는 건지 굳은 얼굴로 노려보다 아나킨의 곁을 떠날 뿐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킨은 나이트 자격을 받는다. 아나킨은 마스터 케노비가 거부하여 결국 마스터 요다가 잘라준 자신의 파다완 브레이드를 옛 스승에게 건넨다. 오비완은 그것을 외면한다. 오비완은 이제 스카이워커는 자신의 파다완이 아니니 함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카운슬에 여러 번 상기시키며 옛 파다완을 피해 다닌다. 아나킨이 필사적으로 보내는 연락과 메시지들은 읽히지도 못한 채 삭제된다. 오비완은 진심으로 이것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포스가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나쁘지 않게 삶을 견뎌내고 있다고 믿는다. 매일 밤 초조하게 앉아 이번에는 잘하고 있다고, 자신이 아나킨을 망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내비칠 수 없는 제 마음을 살해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서 무스타파에서 아나킨과 재회했을 때 오비완은 영혼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또 무엇을 잘못한 걸까? 오비완은 이번에는 차마 아나킨을 베지 못한다. 그는 아나킨의 라이트 세이버가 스치고 지나간 자신의 배를 힘겹게 부여잡고 주저앉아 저를 감싼 화염의 열기를 느낀다. 숨 쉬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눈앞이 몽롱하게 흐려진다. 죽어가는 오비완 케노비 위로 원망 어린 말들이 떨어진다. 마스터. 내가 그렇게 싫었어요? 


“당신은 나보다는, 길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을 더 사랑했을 거야. 안 그래요?”


오비완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올린다. 아나킨은 자신의 옛 스승이 왜 저를 올려다보며 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타오르는 용암 사이에서 저렇게나 시리고 슬픈 낯을 하는 연유를 알 수 없다. 화를 내거나 저주를 하지 그래요. 당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제자가 이젠 시스가 되어서 돌아왔잖아요. 아나킨은 말을 토해낼 때마다 독약을 토해내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입을 열 때마다 목 안 쪽이 토혈을 할 것처럼 고통스럽다. 그는 붉은색으로 빛을 발하는 검을 사랑했던 스승에게 겨눈 채로 짓씹듯이 말한다. 할 말 없어요?


“네 잘못은 아무것도 없단다, 아나킨.”


그러니 울지 말렴.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아나킨은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지켜보게 되든 간에, 아마 이것보다 더 끔찍한 유언을 듣게 될 날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비완 케노비의 눈이 감긴다. 지친 몸이 무스타파의 땅 위로 쓸쓸하게 고꾸라진다.




* * *




세 번째 회귀에서 오비완은 여왕과 나부에서 탈출한 후 타투인으로 가지 않는다. 스승을 설득해 타투인보다 발각의 위험은 조금 더 크지만, 물자를 구하기가 보다 용이한 아우터 림의 어느 행성으로 향한다. 이전의 방법과는 달랐지만 어떻게든 임무를 성공시킨다. 비록 이번에도 콰이곤 진의 장례를 지켜봐야하긴 했지만 그래도 타투인에 남겨진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안전해질 거란 사실이 오비완 케노비의 유일한 위안이다. 제다이에게 발견되지 않은 아이는, 예전보다 더 오랜 기간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사랑하고 부족함 없이 사랑받으며 자라게 될 것이다. 오비완은 몇 번의 생을 거쳐도 사랑스럽고 안타까운 아이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영특하고 반짝이는 아이이니 그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어리석은 스승 곁에서 매일 외로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진짜 가족의 곁에서 평화로운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고작 10년이 지났을 때 오비완은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대치한다. 은밀하게 팰퍼틴에 대한 증거를 모으고 있던 마스터 케노비는 예상하지 못한 기습에, 그리고 차마 꿈꾼 적도 없는 재회에 아연실색한다. 고작 열아홉에 불과한 남자는 새까만 시스의 의복 위로 호기심이 담긴 금빛 눈을 하고 있다. 오비완이 정말로 평생을 그리워했던 모습과 똑같은 얼굴. 머리카락. 자세. 표정. 걸음걸이. 검을 쥐는 손의 모양. 움직일 때의 사소한 습관. 말투. 그 모든 것이 그리움 속의 그것과 일치하는 가운데 그의 눈빛만이 다르다. 

마음이 요동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포스 센서티브로서는 평범한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제다이로서의 정도正道만 걸어온 오비완은 수년간 착실하게 시스 훈련을 받은 포스의 화신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아니 로드 베이더는 몇 번의 합을 나눈 후 춤을 추듯 가뿐하게 움직여 오비완의 심장에다 붉은 세이버를 박아넣는다. 당신, 제다이지만 아름답네요. 마지막 순간 천진하게 속삭이는 소년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비완은 이번 생에서는 아나킨에게 그를 사랑하고 있었단 말조차 전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서럽다고 느낀다.




* * *




세 번의 죽음을 거치고 깨어난 오비완은 이제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침대에 앉아있었다. 세상엔 아침이 찾아온 것 같았지만, 지금 자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커녕 ‘이번의’ 제 상태를 확인할 의지조차 없었다. 모든 것은 포스의 계획이 아니라 장난이었나. 제다이라면 가져선 안 될 냉소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피곤한 눈가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던 오비완은 문득 갈증을 느꼈다. 몇 번을 죽고 몇 번을 되돌아오는- 엄청난 일들을 겪으면서도 새삼 목마름 같은 사소한 욕구를 느낀다는 게 모순적인 것 같아 우스웠다. 

그렇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못난 육신은 생리적 욕구를 느낀다는 거지. 한심하긴. 스스로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물 주전자가 있는 테이블 위로 걸어가려던 오비완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우뚝 멈춰 섰다. 이상하게 시야가 낮았다. 오비완은 미간을 좁히고 그제서야 방의 풍경을 살폈다. 주변을 관찰하느라 고개를 돌리자 오른쪽으로 땋아 내린 파다완 브레이드가 움직임을 따라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파다완 시절의 버릇으로 무심코 브레이드를 당기며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오비완의 손이 굳었다. -브레이드가 아직 짧았다. 


“잠깐만.”


갈증을 해결하지 못해 아직 까끌한 입에서 불안함 섞인 탄성을 뱉어내며 오비완 케노비는 물 주전자가 있는 곳이 아니라 거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착해보려고 애썼지만 오비완 자신도 모르게 발이 빨라져 거의 뛰는 것에 가까운 태도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과 회귀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젠 더 충격받을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포스에게는 아직 그를 경악시킬 방법이 여러모로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오비완이 들여다본 거울 안에는, 열셋은 될까 싶은 앳된 소년이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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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회귀에서야 (연작 기준) 현재 시점에 다다른 오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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