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는 빠르게 길을 달렸다. 마부석에 마부 일을 해본 적이 없던 사용인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불안하게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배운 적 없다고 해도, 오랜 시간 옆에서 보다 보면 대충 할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다.

미셸라의 저택에서 10년여간 일했던 사용인은 며칠 간의 연습 끝에 제법 그럴듯하게 마차를 몰 수 있게 되었다.

마차의 뒷좌석에는 며칠째 굶었을 여자들을 위한 물과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도착했어요, 에이카.”

“정말 고마워요.”

 

에이카는 예의 없는 행동을 용서해달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미셸라에게 숙이고는 마차 문을 열고는 뛰어나갔다.

미셸라가 사용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려와 그를 뒤따라 갔다.

‘마차가 굉장히 높은데……. 어떻게 저리 쉽게 뛰어 내려갈까?’

미셸라는 에이카의 활동적인 모습에 감탄하며 수용소를 바라보았다. 코에 들어오는 역한 냄새에 본능적으로 미셸라는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마님, 괜찮으시겠어요? 아니면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양손에 물과 음식을 든 사용인, 하티가 미셸라를 말렸다. 고개를 저은 그는 어깨에 힘을 주고는 천천히 수용소를 향해 걸어 나갔다.

에이카는 숨겨져 있는 땅굴로 머리를 비집어 넣어 순식간에 수용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셸라와 하티가 편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커다란 쇠문을 안쪽에서 열었다.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미셸라, 하티, 천천히 따라와요.”

 

굉장히 안달이 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쏟아낸 에이카가 수용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소체! 나 왔어요!”

“이 답답한 것아,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여기 여자들 다 죽게 생겼다고! 다 네 탓으로 돌릴 거야!”

“미안해요, 정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에이카가 감옥의 열쇠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에이카를, 갇혀 있던 수많은 여성이 재촉했다.

뒤늦게 들어온 미셸라는 열악한 환경에 경악했지만, 그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하티와 함께 창살 사이로 우선 물을 나누어 주었다.

여자들은 고맙다는 말을 빼먹지 않으며 물을 들이켰다.

그 사이 사무실에서 열쇠를 가져온 에이카는 하나씩 문을 열었다. 대부분 비쩍 마르고 수척해 보이는 여자들이 우르르 수용소 밖으로 몰려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마당에 나와 햇빛을 보는 여자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몇몇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미셸라, 힘든 일 시켜서 미안해요. 혹시 밖에서 음식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도 이 문들 다 열고 나갈게요.”

 

미셸라와 하티는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이고는 옷 소매를 위로 끌어 올리며 밖으로 나갔다.

에이카는 마지막으로 소체가 있던 감옥의 문을 열었다. 소체는 에이카를 확 끌어안았다.

 

“정말 고마워.”

“낯간지럽게 왜 이래요. 얼른 나가서 뭐라도 좀 먹어요. 그러다 죽어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교도관들이 안 오는 거니?”


에이카는 소체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아마 이들은 일주일을 숨겨두었던 음식으로 간신히 버텼을 텐데, 소체는 그마저도 양보했을 것이 뻔했다.

 

“남자가 사라졌어요.”

“뭐라고?”

“말 그대로예요. 남자가 완전히 멸종해버렸다고요. 황당하겠지만, 사실이에요. 이제 이 세상에 남자는 없어요.”

“말도 안 돼. 그런 일이 있을 수가.”

“그래서 교도관도 사라진 거고, 황제도 사라졌고, 전부 다 사라졌어요. 제국이 난리가 났다고요.”

“그러니?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기쁜지 모르겠구나.”

“소체!”

“너도 내심 기뻐하고 있잖니?”

“……그건 그렇긴 하죠.”

 

에이카가 깔끔하게 인정하고는 배시시 웃었다. 소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카락이 짧아졌구나?”

“네. 남자들이 사라져서, 너무 기뻐서요.”

“너답다. 그럼 나의 이 민머리는 남자가 사라질 것을 미리 기뻐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그렇게 치죠, 뭐.”

 

마당으로 나오자, 수많은 여자가 마당에 널브러져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체가 나온 것을 확인한 소체의 동료가 후다닥 뛰어와서는 그의 품에 물과 음식을 안겨주었다.

 

“맨날 우리 먹으라고 양보하지 말고 언니도 좀 먹어요!”

“그래, 그래. 알았다. 이 잔소리꾼아!”

 

호탕하게 웃은 소체가 에이카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에이카는 빵의 종이 포장지를 벗겨내고 물과 함께 그걸 소체에게 주었다.

소체는 속이 상하지 않도록 천천히 그것을 먹었다.

 

“황녀 전하께서 함께 도와 이 난관을 극복해나갈 인재를 찾는대요. 이거 완전 소체 이야기 아니에요?”

“나?”

“소체는 천재잖아요. 글도 잘 읽고, 이야기도 잘 짓고, 세상 돌아가는 방식도 잘 알고! 경제랑 교육이랑 전부 다 잘 알잖아요.”

“그래, 내가 좀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범죄자를 받아주기나 하겠니?”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예요? 애초에 소체는 억울하잖아요.”

 

소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빵을 먹었다. 그러더니 이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에이카에게 속삭였다.

 

“너도 함께 황궁으로 가면 나도 가마.”

“내가요? 내가 왜요.”

“너는 몸을 잘 쓰잖냐. 검도 잘 쓰지 않니?”

“옆에서 보기만 한 걸 가지고요?”

“황궁엔 황녀님을 지켜줄 호위기사가 필요하지 않겠니?”

“호, 호위기사? 기사요?”

 

에이카가 눈을 반짝였다. 기사라니. 내가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상상도 해보지 못한 호칭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누군가 나를 기사님이라고 불러주는 거야. 에이카 님, 기사님! 세상에. 심장 멎겠다.’

에이카의 반응을 예상했던 소체는 혼자서 난리 치는 그를 보며 낄낄댔다.

 

“네 반응을 보니 당장이라도 황궁에 튀어가겠네.”

“놀리지 마요.”

“같이 온 여자는 누구니?”

“미셸라예요. 귀족 부인이었대요. 우연히 만나서, 도움을 받았어요.”

“흠…….”

 

소체는 풀고 있었던 머리카락도 하나로 틀어 묶은 채로 최선을 다해 여자들을 돕고 있는 미셸라를 살펴보았다.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인걸?”

“무슨 예언가예요?”

“내 말은 틀리지 않아.”

“음, 근데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에이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내었다. 그리고는 소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죠. 세상에 절반이 비어버려서 갈 곳은 많으니까, 함께 가요. 여기 모든 여자들 다 같이.”

 

소체는 굳은살이 배긴 에이카의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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