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2


켄타의 경우→

아, 이건 좀 아닌데.

켄타가 느낀 가장 처음의 감정은 이것이었다. 물에서 볼썽사납게 허우적거리다가 나온 사쿠라이는 켄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머리를 몇번 털고 바로 자리에 누웠다. 자기가 생각해도 쪽팔려서 그러나 싶어 켄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정신차리고 빨리 자, 네…, 그게 둘의 마지막 대화였다. 물론 켄타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눈 앞에 아른거리는 사쿠라이의 하얗고 탄탄한 놈에 이상할 정도로 몸에 열이 올랐다. 이러는 이유는 전부다 몸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켄타는 억지로 감기지도 않는 눈을 꼭 감고 양을 셀 뿐이었다.


“오케이 컷. 여기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어제는 어제라는 듯 그 다음날 아침의 사쿠라이는 평소와 같았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를 했고, 로케 장소에 가서 꼼꼼히 모든 것들을 확인하고, 로케장에서 만난 어르신에게 잘했으며 완벽한 영상들과 인터뷰들을 따냈다. 그런 사쿠라이를 보며 나도 정신차려야지, 중얼거리며 켄타도 오늘은 이죽거림 대신 묵묵하게 일을 하는 것을 선택했다.

마지막 로케까지 끝낸 사쿠라이와 켄타는 차에 올라탔다. 숙소로 돌아가 짐을 싼 후 밤늦게 비행기를 타 도쿄로 돌아가야했다. 미친 스케쥴에 켄타는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사쿠라이와 둘이 이곳에 더 오래 있는 것 보다 낫겠다 싶어 켄타는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


“돌아가서 짐 싸기 전에 뭐 드셔야하지 않겠어요?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드셨잖아요.”

“…어. 난 들어가서 파일 옮기고 있을테니까 편의점에서 뭐 좀 사와. 알아서.”


사쿠라이는 켄타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말을 끝냈다. 오늘도 로케장소에서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켄타야 이것저것 꽤나 주워먹었지만 사쿠라이는 아니였다. 괜찮다며 적당히 거절하거나 몰래 가방 안에 주신 것들을 넣고는 맛있다며 웃어보였다. 그러니 켄타의 저 말은 내가 배가 고파서 죽겠으니 우리 뭐 좀 먹자! 가 아니라, 사쿠라이를 향한 걱정이었다. 근데 저걸 또 저렇게, 내가 미친놈이지. 켄타는 꿍시렁거리며 사쿠라이가 건내는 지갑을 받았다. 지갑을 건내받은 짧은 순간 사쿠라이의 손가락과 오노의 손가락이 맞닿았다 떨어졌다.


“……저,”

“알아서 사와.”

“……, 아 네.”


그게 아니라- 라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차갑게 앞만 보고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사쿠라이에게 굳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무슨 상관이겠는가. 저인간이 밥을 먹든 말든, 기분이 좋든 안좋든, 살짝 닿았던 손 끝이 너무나도 뜨겁든 말든. 전부다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어제 좀 그런거 가지고 이렇게 짜증을 내나 싶어 켄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돌렸다. 손끝에서는 사쿠라이의 뜨거운 온기가 맴돌았고, 조금 거친 것 같은 사쿠라이의 숨소리가 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타는 애써 모든 것들을 무시했다. 그래달라는데 굳이 말을 안들을 이유도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아예 자신을 편의점 앞에 내려준 사쿠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 숙소로 향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종일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랬다고 이렇게 거리를 두나 싶어 켄타는 괜히 서운했다. 엥 방금 자기가 뭐라고 그랬지. 서운? 그게 아니였다. 이 감정은 서운한게 아니라 사쿠라이의 싸가지없음에 놀란 것과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을 향한 원망이었다. 대강 먹을 것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 켄타는 대강 던져주고 샤워나 해야지 싶었다. 물론 밖에 있는 탕에는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샤워기 물줄기라도 맞고 싶었다.

다녀왔다고 습관적으로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 라던가 아니면 인기척이라도 내주는게 인간으로서의 도리 아닌가, 중얼거리며 켄타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노트북이 내는 소리가 안쪽에서 들렸다. 일을 한다고 해도 좀, 싸가지가 많이 없네. 켄타는 봉투를 달랑거리며 안쪽으로 향했다.


“시골이라 그런가 안에 뭐 별게 없더라구요. 걍 대강 사왔으니 알아서 드,”


켄타의 원망 섞인 중얼거림은 이내 멈추었다. 돌아가지 않는 사고에 켄타는 그대로 봉투를 떨어뜨렸다. 분명 노트북 앞에 앉아서 싸가지 없는 눈매로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사쿠라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노트북 앞에 사쿠라이는 누워있었다. 잠에 든 건가 싶었지만 잘거라면 바로 앞 쇼파에 누워서 자지 저렇게 탁자 밑에 거친 숨을 내쉬며 누워있을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누워있는게 아니라 쓰러져있다는 것이겠지. 켄타는 젠장, 중얼거리며 사쿠라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피디님! 사쿠라이 피디님! 야! 정신 좀 차려봐!”

“으윽,”


켄타가 사쿠라이의 몸을 살짝 들었지만 사쿠라이는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까 자신이 느낀 뜨거움이 맞았나보다. 사쿠라이의 온 몸은 불처럼 뜨거웠다.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신음소리만 내뱉는 사쿠라이는 굳이 체온계로 열을 재지 않아도 38도는 넘는 것 같았다. 며칠 내내 야근을 하고, 어제 심지어 머리도 말리지 않고 잠에 들어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켄타는 어쩌지, 짧게 생각하다 일단 겉옷을 벗고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빠르게 깐 켄타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 정도 차이나는 사쿠라이를 힘겹게 부축했다. 이 몸의 체력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건지 짧은 거리를 옮겼을 뿐인데에도 온몸에 땀이 났다. 자기와 헤어진지 30분 정도였으니 어림잡아도 20분 전에 쓰러진 모양이었다. 꼴을 보니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노트북에 영상을 백업시켰겠지. 진짜 징글징글하다. 켄타가 혀를 쯧 차며 땀범벅이 된 사쿠라이의 와이셔츠를 벗겼다. 땀을 닦아내고 약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추워….”

“네네. 그러시겠죠. 가만히 계세요.”


미련한 것도 정도가 있지. 켄타는 급하게 적셔온 물수건으로 사쿠라이의 몸을 닦아내렸다. 어제 보았던 하얗고 탄탄한 몸에 살짝 굳었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며 켄타는 사쿠라이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바지도 벗겼지만 차마 팬티에까지는 손을 대지 못하겠었다. 대강 사쿠라이에게 잠옷을 입힌 켄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태니 돌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 누구한테 이야기를 해야하지. 아니 일단 약을. 앞머리를 흐트러 뜨리며 무엇부터 해야할지 생각하던 켄타의 손목을 뜨거운 무언가가 잡았다. 놀란 켄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깼어요? 정신이 들어? 당신 바보야? 아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던가 대체 인간이 얼마나 미련하면,”

“…가.”

“네?”

“감기, 옮…아. 멀리, 떨어, 져….”


켄타는 그제서야 오늘 하루종일 사쿠라이가 자신을 마주치지도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묘하게 입을 가리고 말한 것도, 가까이 가면 피했던 이유도 다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였구나,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켄타의 몸에 갑자기 열이 올랐다. 뭐야 진짜 옮은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오른 열어 켄타는 당황해하며 일단 사쿠라이가 잡고 있는 손목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붙잡고 있는 사쿠라이의 손 힘이 너무 쎄서 그럴 수 없었다. 가란거야 말란거야.


“저는 감기 같은거 잘 안걸리니까 걱정말고. 일단 쉬어요. 약 사가지고 올게.”

“……아프면, 안, 돼.”

“안아프다니까요.”

“아프면, 말, 안하잖, 아……. 사토시.”

“……에?”

“그게, 더, 아픈, 데….”


사쿠라이는 그 말을 뱉어내고 다시 색색거리며 잠에 들었다. 아마 말하는 순간에도 제정신이 아니였을 것이다. 그러니 저런 말을 뱉어내는 것이겠지. 켄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열이 올라 어지러웠다. 왜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사토시라는 이름에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었다. 벌떡 일어난 켄타는 아까 집어던진 겉옷을 주워입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필요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의 자신은 정신이 나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야 당신이 뱉어낸 그 이름이 사토시라는 것에 서운하고 괜히 울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 말이 될 테니까.


당신이 찾은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미련해 죽겠었으니까.


오노의 경우←

“네네. 상황 정리 되면 말해주세요. 죄송해요. 네.”


오노는 일단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전화를 끊었다. 켄타에게서 온 전화였다. 출장을 갔다가 돌아올 날이었는데 연락이 없길래 기다리고 있던 차에 켄타가 연락이 왔고, 별 일 없었다는 말을 기대했던 오노의 손이 떨리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 사쿠라이가 아프다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늘 자신에게 있어서 완벽한 사람이었다. 일도, 생활도, 건강도 전부다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 그러니 사쿠라이가 아픈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보아왔을 땐 없었다.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열이 이렇게 끓으니 비행기도 못탈 것 같다고, 누구한테 연락을 해서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 해야하는지를 물어보는 켄타에게 오노가 더듬거리며 사람들의 이름을 뱉어냈다. 켄타는 알겠다며 걱정하지말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지만 오노가 걱정을 하지 않을리 없었다. 괜히 자신의 몸이라 고생을 하는 켄타에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사쿠라이가 걱정 되었다. 다들 퇴근하여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손톱을 물어뜯는 오노에게 두고간 것이 있어 다시 스튜디오에 온 마모루가 다가갔다.


“야노군. 안가고 뭐해?”

“아, 마모루.”

“뭐야 무슨 일 있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오노에게 마모루가 걱정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마모루에 오노는 표정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걱정스럽게 다가온 마모루에게 오노가 입을 열었다.


“아프다고 해서. 아는 사람이. 근데 뭘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많이 아프데? 지금가면 되는거 아니야?”

“내가 갈 수가 없어서…. 열이 많이 난다고 해서…. 일단 전화를 돌리라고 말했고….”

“야노군. 진정해.”


횡설수설거리는 오노의 어깨를 마모루가 붙잡았다. 오노는 그러던지 말던지 계속해서 정리 되어지지 않은 말들을 뱉어냈다.


“평소에 절대 아픈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감기라니 대체, 나 때문에…. 내가 출장 갈 일만 안만들었어도…. 내가, 내가 나빠서,”

“야노 켄타!”

“잘못되면, 어떡해!”


오노는 고개를 들어 마모루를 바라보았다. 오노의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도로록 흘러내렸다. 처음보는 켄타의(오노지만) 우는 모습에 마모루가 당황하며 오노의 어깨를 더 세게 잡았다. 모두노래의 마지막 방송이 될 뻔했던 스페셜 라이브 때 웃으며 의미모를 눈물을 한방울 흘린 것은 보았지만 이 눈물은 그 눈물과 달랐다. 진짜 울고 있었다. 마모루가 급하게 소매로 오노의 눈가를 닦아주었지만 오노는 한번 터진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계속 흘렸다. 걱정이 되었다.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자신 때문이었다. 영상을 날려먹은게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피하기 바빠서, 속으로는 불평해서, 그 일 때문에 사쿠라이가 출장을 가게 되어서, 자기 때문에, 전부다 자기 때문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며 자기 때문이라고만 중얼거리는 오노에 마모루는 한숨을 쉬며 오노의 어깨를 세게 잡고 자기를 보게 했다.


“야노군. 야노군이 일부로 그 사람 아프게 했어?!”

“…흐윽.”

“근데 왜 그렇게 굴어. 평소답게 바보가 감기나 걸리고 웃기지도 않는다고 말을 해 차라리!”

“…….”

“자존감 낮은거 너랑 진짜 안어울려.”


마모루의 말에 오노는 고개를 들었다. 마모루의 눈은 진심이었다. 마모루가 켄타에게 유일하게 배우고 싶은 것이 바로 높은 자존감이였다. 늘 자신있고 당당한 야노 켄타.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 보였다. 자기가 만든 어둠 속으로 자신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마모루가 진지한 얼굴로 오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신차려. 누가보면 그 아프다는 사람 네가 일부로 그런 줄 알겠다. 못가는 이유는 안물어볼테니까 제발 그만 울어.”

“…그래도, 걱정이,”

“걱정을 하는거랑 네가 그렇게 무너지면서 우는거랑은 상관 없어.”


마모루의 말에 오노는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히끅 거리며 눈물을 닦아내는 오노에 마모루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놓아주었다.


“야노군이 왜 갑자기 이렇게 변했나 궁금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였구나.”

“…어?”

“지젤에 그 여자분 좋아할 때도 이랬어?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나 보구나?”


오노는 마모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자신이 진짜 켄타가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몸이 바뀌고 켄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모루가 지금 말하고 있는 지젤의 여성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러니 지젤에~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말리 아니라 앞의 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그 말. 오노의 사고가 굳었다. 좋아해? 누가 누구를? 내가, 사쿠라이 피디님을? …감히? 오노가 가만히 서있자 마모루가 왜그래?하고 물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런거.”

“뭐가?”

“내가 그 사람을 좋아, 하는거. 말도 안돼. 내가, 내가 뭔데. 나 따위가.”

“…….”

“감히 그럴 수도 없는 사람,”


오노는 말을 하다가 강하게 자신을 잡는 마모루에 말을 멈추었다. 마모루의 얼굴은 그 어느때 보다 굳어 있었다. 갑자기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마모루에 오노가 아파, 라고 작게 말했지만 마모루는 굳은 얼굴을 풀지 않고 오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누구야.”


그 한마디에 오노는 마모루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뭐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구냐는 그 한마디에 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해야해, 해야해 라고 머리가 말하고 있었지만 무섭게 불을 내는 마모루의 눈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나는, 누구인가.

사쿠라이를 좋아하는 것은 누구인가. 감히 예전이 자신이었다면 그럴 수 없을터인데 지금 이렇게 감정이 요동치는 이유는, 내가 내가 아니기 때문일까.


켄타의 경우→

사쿠라이는 조금 무거운 몸을 느끼며 눈을 떴다. 결국 쓰러졌었나, 중얼거리며 사쿠라이는 한숨을 쉬었다. 주변이들에게 몸 관리를 잘하라고 잔소리 할 상황이 아니었다. 바보같기는. 그렇게 당황해서. 사쿠라이는 한숨을 쉬었다가 이내 자신의 이마에 차가운 것을 느꼈다. 물수건? 사쿠라이는 물수건을 더듬거렸고 이내 옆에서 느껴지는 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바로 옆에서 이불도 펴지 않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자고 있는 켄타가 보였다. 오노의 위에는 약과 물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손에는 젖은 손수건이 들려져있었다. 누가보아도 밤새 간호를 해준 모양이었다. 사쿠라이는 그런 켄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늘 도망만 치던 켄타가 바로 눈앞에서 자고 있었다. 차갑게 굴어도 늘 내 곁에 있어주는 너. 그런 너에게 다정한 말 하나 해줄 수 없는 바보같은 나. 사쿠라이는 손을 천천히 들어 조심스럽게 켄타의 볼을 쓸어내렸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네가 눈을 뜨면 또 할 수 없겠지. 나는 그런 인간이니까. 사쿠라이가 쓰게 웃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너에게 이렇게.

한참 동안 켄타를 보던 사쿠라이가 그제서야 밀려오는 여러가지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몇시지, 사쿠라이가 휴대폰을 더듬거리면서 집어들었다. 비행기를 탈 시간은 고사하고 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 대체 어떻게 일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 사쿠라이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런 인기척에 켄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곤히 자고 있어야 할 사쿠라이가 앉아있는 것을 본 켄타가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일어났어요? 봐봐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면 되지 미련하게 뭐하는 짓인데요.”

“지금 일이 어떻게 진행 된건지 말을 해,”

“지금 일이 중요해요? 아, 열은 내렸네.”


켄타는 사쿠라이가 무어라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사쿠라이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켄타의 손이 느껴졌다. 켄타의 향 또한. 사쿠라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켄타를 멍하게 보던 사쿠라이는 아차 싶어 켄타를 밀어냈다.


“너도 감기 옮고 싶어? 떨어져.”

“아주 감기 옮으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래요? 아까전부터. 됐네요. 일단 열도 내렸으니까 뭐 좀 먹고 약 한번 더 먹고 자요.”

“비행기는? 연락은? 일정,”

“네네. 어쩌피 일어나지도 못해서 비행기는 못탔고요, 국장님한테 연락해서 상황 설명했고 국장님도 일단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일정은 그 뒤에 조정하면 된다고 하셨고.”


켄타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하며 사쿠라이를 억지로 눕혔다. 아직까지 몸에 힘이 다 돌아오지 않은 사쿠라이는 오노에 의해 다시 자리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누운 사쿠라이의 목 끝까지 이불을 다시 덮어준 켄타는 옅게 웃었다.


“죽 데워올테니까 먹고 좀 자요. 일하다 죽겠네 죽겠어. 산재처리 당하는게 꿈인가봐요.”

“간호해주는 사람 치고 입이 험하네.”

“간호 당하는 사람 치고 피디님도 그렇게 달가운 편은 아니거든요.”


실없는 말을 하는 사쿠라이에 켄타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사쿠라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개망했네. 이제 애들 아프면 뭐라고 말도 못하겠다.”

“그러니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어요. 내일 이 이야기 들은 애들이 얼마나 웃을지 너무 기대돼. 거기 없는게 속상할 정도네요.”

“그러는 너도 지금 웃고 있는데?”

“제가 원래 좀 웃는 상이라.”


시덥지도 않은 말을 주고 받던 둘은 퍽 편해보였다. 켄타는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붉어지는 귀를 숨기느라 마음이 급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아예 오프가 된 사쿠라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오노도 본적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왜인지 마음 한구석이 뻐근했다. 나만 아는, 사쿠라이 쇼. 켄타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문장에 고개를 저었다. 제발 정신차려 새끼야.


“이렇게 일이 아니고 너랑 있는 것도 처음이네.”

“…그러게요. 지긋지긋하셔서 어째. 별로 좋아하지도 않잖아.”

“그건 너겠지. 너 나 되게 싫어하니까.”


사쿠라이의 말에 켄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말은 자기는 아니라는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못괴롭혀 안달인 사람이 저러니 이상했다. 먹인 약이 정신적으로 혼란을 주는 약이였나 싶어 약을 확인하려고 하는 켄타를 사쿠라이가 불러세웠다.


“네가 나를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렸었거든.”

“…상, 상사를 편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어요.”

“나한테는 더 그러잖아. 눈도 안마주치고, 말만 하면 사시나무처럼 떨고.”

“그러게 좀 잘해주지 그랬어요.”

“그러게. 나도 내가 싫네.”


사쿠라이는 그렇게 말하며 빙글 웃었다. 아직까지 약기운이 다 떨어지지 않아 사쿠라이는 자신이 뱉어내는 말들을 인지할 수가 없었다. 아까 전 자신의 앞에 잠들어있던 켄타가 계속 생각났다. 내가 쓰러져있는 사이 너는 내 생각만 했겠지. 나를 위해 내 옆을 지켰고 눈을 뜨자마자 내 생각을 했겠지. 아주 오래 전에부터 숨겨왔던 감정들이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단 한순간 네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유로. 그런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 더이상 참울 수가 없었다. 너에게 다가가면 넌 나에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시 너와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몸이 앞섰다. 말이 앞섰다. 결국 너에게 이렇게 무너지나보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위기라는 것에 압도된 켄타 또한 마치 약에 취한 것 처럼 어버버 거렸다. 사쿠라이가 손을 뻗어 켄타의 손을 잡았다. 뜨거운 사쿠라이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켄타가 입을 열었지만 사쿠라이의 목소리에 말을 뱉어낼 수 없었다.


“나 좀 좋아해줘. 지금처럼 장난도 치고, 시덥지도 않는 말도 하고,”

“…….”

“내 걱정도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도 하고, 나랑 같이 있다는걸 의식해줘. 내가 너무 못되게 굴어도, 그냥 나를 용서하고 늘 나를 봐줘.”

“……무슨 말을 하는,”

“네가 내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


사쿠라이의 눈이 살짝 풀려있었다. 열이 다시 오르기 시작한 것인지 사쿠라이의 목 주변이 붉게 피어올랐다.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며 옅게 웃고있는 사쿠라이에 켄타는 어버버 거리며 사쿠라이를 바라보았다. 사쿠라이의 다른 손이 켄타의 뺨에 닿았다. 이러면 안되는 것을 알지만, 너는 나를 거절하지 못하겠지만, 분명 열이 내리고 다시 눈을 뜨면 후회하겠지만 약기운이라는, 열 때문이라는 핑계로 저지르고 싶었다. 감기라도 옮을까 말도 못붙였지만, 그런 마음과 가장 정반대인 행동이었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삐뚤어진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에게 지금이라면 솔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를 다시 한번이라도 좋으니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사쿠라이의 뜨거운 손을 켄타는 피하지 못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사쿠라이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몸을 일으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쿠라이에 켄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아까 느꼈던 뜨거움보다 더욱 뜨거운 것이 켄타의 입술에 다가왔다. 그게 사쿠라이의 입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입술이 닿기 전 사쿠라이는 켄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네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

“이제 그만 기다리고 싶어.”


그 말을 끝으로 사쿠라이와 켄타의 입술이 맞닿았다. 뜨거운 느낌에, 알 수 없이 밀려오는 여러 감정들에 켄타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눈을 감았다. 손을 들어 사쿠라이의 옷깃을 꼭 잡았다. 그 입술에, 분위기에, 사쿠라이에 취해 켄타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당신에게 반해 말렸다고.



오노 사토시가 아니라, 야노 켄타가.



당신이 사랑한다 말한 사람은 오노 사토시일테지만.

사쿠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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