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부엉이 폭격을 받은 시리우스는 편지 뭉텅이를 죄다 그리핀도르 휴게실의 벽난로에 부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봉투에 쓰인 발신인이라도 읽어보는 성의를 보이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귀찮은 모양이었다. 불 속에서 빠르게 타들어가는 이름 중에는 제법 유명한 기자 이름도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생일날에 시리우스가 편지나 선물 공세에 시달리는 모습은 이제 제법 익숙한 풍경이었으나, 그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공적인 인물에게 받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 본래 그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상기해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긴 했다. 평소 워낙 사람이 자유분방하고 장난스런 모습만 보여 자꾸 잊게 되는 것이었지만 시리우스는 엄연한 순수혈통 블랙의 후계자였다. 어제까지는, 말이다.

 시리우스 블랙이 블랙들 중에서도 별종에 속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는 블랙이면서도 그리핀도르였고, 순수혈통주의를 배척하고 머글 태생을 두둔했으며, ‘품위 있는 순수혈통’답지 않은 행동을 일삼는 건 물론이었다. 호그와트 사상 최악의 악동인 마루더즈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건 물론이었고, 머글 물건을 만지고 사용했으며 종종 그들의 사회로 놀러나가기도 했다. 시리우스 블랙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제 가문이 싫어하는 짓은 모조리 저지르고 하라는 짓은 하나도 하지 않는 자격 미달 후계자였다.

 그러나 그가 성인이 되는 오늘까지 순수혈통 블랙이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의 이름이 ‘시리우스 블랙’이기 때문에.

 호기심과 적의, 호의 같은 감정들이 뒤섞인 시선이 어딜 가나 시리우스를 좇아왔다. 작게 수군거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아마 아침에 예언자 일보에 실렸던 기사 때문이리라. 편지를 들었던 손을 털어내고 시리우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어떤 의미로든 익숙했으나 오늘은 유독 피곤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당일이 되니 기분도 더럽고 기분이 더럽다는 사실에 또 짜증이 난다. 할 수만 있다면 종일 햇볕 아래 늘어져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올해는 생일이 평일이라는 것에 괜히 짜증부터 올라왔다.

 그럼에도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건, 오늘의 일은 시리우스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덤블도어의 도움과 부탁을 받아서.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는데, 도와주겠니?」


 이번 여름이 시작될 즈음, 푸르스름한 눈을 접으며 웃었던 현자의 머릿속 생각이 아예 짐작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시리우스는 어려서부터 마법 세계의 권력 체계와 자신의 지위를 학습했던 아이였고, 자신이 지닌 가치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 순수혈통우월주의를 실천하고 따르는 블랙 가문의 직계 장손에, 그 가문이 가장 사랑하는 이름인 ‘시리우스 블랙’을 지니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마법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데 하물며 머글옹호주의자라니!

 일개 이름 없는 사람의 결심과 행보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지만, 유명인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지침이 되고 상징이 된다. 특히나 이런 좁은 마법 사회에, 지금 같은 혼란스러운 암흑기에는 더욱 그랬다. 아마 덤블도어나 머글 태생들에게 있어 그는 준비된 선물처럼 완벽하고 가치 있게 느껴졌을 게 분명했다. 손에 쥐고 이용하고 싶은, 그런 중요한 선물 말이다.

 그러니 덤블도어가 구태여 시리우스를 따로 불러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본 것은 당연했고, 그를 이번 17번째 생일에 공론화시키고자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고작 하루 차이로 사람이 급격하게 변할 리는 없지만, 미성년자의 말은 철없는 생각이며 성인의 말은 경험과 신념에서 비롯된 성숙한 것이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시리우스는 덤블도어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블랙 가 인간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은 꽤 괜찮은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기숙사를 나서려던 시리우스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동시에 험악하게 구겨진 얼굴에서 서늘한 한기가 풍겼다.


  “뭐야.”


 몇 년 사이에 눈에 띠게 가라앉은 청회색 눈동자가 매섭게 시리우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쪽 손아귀에서는 오늘 아침 자 예언자 일보가 잔뜩 구겨져 있었다. 항상 단정하게 다니던 녀석의 모습이 흐트러졌다. 4학년 막 학기 이후로는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녀석이 기사를 보고 달려온 게 눈에 선해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한 음절 씩 으깨지듯 말이 끊겨 나왔다.


 “이젠 아주 이용당한다고 광고라도 하고 싶은가봐?”

 “그리고 넌 그 기사를 보고서도 날 찾아올 정도로 구질구질한 놈이고.”


 레귤러스가 이를 까드득 갈았다. 핏발 선 눈에는 원망이 진득하게 깔렸다. 주먹을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갔는지 신문이 좀 더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거의 폭발하기 직전처럼 아슬아슬한 모양새였다. 꾹 깨문 아랫입술에서 핏기가 사라질 때쯤 레귤러스가 짓씹듯이 말했다.


 “넌 아무것도 몰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네가 뭘 망쳤는지, 넌 아무것도 몰라.”


 비난의 색이 짙은 레귤러스의 말에 시리우스는 코웃음을 쳤다.


 “당연하지. 이제 그쪽이 어떻게 되든 내가 알 바 아니니까! 이젠 아주 남이잖아?”

 “………….”


 레귤러스가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당장에라도 시리우스를 찢어죽이고 싶은 것처럼 살심 짙은 시선이었다.


 “이기적인 새끼.”

 “그러는 너는 쓰레기 집단의 쓰레기 새끼지.”


 시리우스는 비웃음으로 답했다. 레귤러스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뒤를 돌아 그 자리를 떠났다. 들고 있던 신문을 갈가리 찢는 손길이 유독 거칠었다. 시리우스는 잠시 그 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을 걷어찼다. 바로 지척에 내리꽂히는 발길질에 뚱보 여인이 기겁해 비명을 질렀다.



§



*세베루스의 어머니(프린스 가)가 머글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을 때 예언자 일보에 그 소식이 실렸다. 블랙 가문도 역시 권세가 높은 가문이며, 심지어 당시는 전쟁기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시리우스 블랙이 가문을 나와 참전 의사가 있다는 사실 역시 예언자 일보에 실렸을 가능성이 있다. 기자가 살해당할 위험이 있으니 머글 차별 이슈에 대해서는 논하지 못했겠지만. 하지만 당시 머글 태생 측에게 열악했던 상황으로 보았을 때,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인물은 일종의 상징으로써 불사조 기사단이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면 리더가 덤블도어니까. 시리우스와 덤블도어 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건 뇌피셜이다. 실제는 시리우스가 묵인했던가 아니면 신경 쓰지도 않았던가 어땠는지는 모른다. 애초에 전부 다 뇌피셜임.
*1976년 11월 3일: 시리우스 6학년 생일이자 17번째 생일. 시리우스는 6학년 때 가족과 의절했다. 당시 레귤러스는 5학년.


미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