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너네 집이니까 내가 나간다고!”

기어코 사달이 났다. 나는 널 붙잡았고 너는 나를 뿌리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봤다.

“아, 누가 너 나가랬어? 그 말이 아니잖아.”

“아니면 뭔데? 사람 불러놓고 드라마나 보잖아, 계속”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나 맞는 말도 아니었다.

“네가 늦길래 잠깐 보고 있던 거라니까?”

“내가 왔으면 꺼야지 그럼!”

“거의 다 끝났다고 했잖아, 그것도 이해 못 해줘? 애새끼처럼 왜 그러는데!”

언성은 높아졌고 우리의 단조롭지 못한 연애도 다시 흔들렸다. 걔는 내가 던진 말에 버튼이 눌렸고 나는 뒤늦게 직감했다.

“애새끼? 아, 그래. 애새끼라서 나 만나는 것도 힘들었겠네. 그래, 너 좋아하는 드라마나 평생 보고 살아!”

오늘로만 스물 하고도 여덟 번째 싸움이라는 거.

 

“개자식, 문이라도 살살 닫고 가던가! 문짝 떨어지겠네.”

저 지긋지긋한 강지현이랑 이 지긋지긋한 레퍼토리는 대체 한 번도 변하지를 않는다. 늦지를 말던가. 처음엔 미안하다고 온갖 알랑방귀는 다 부린다. 팔 한쪽에 매달려서 강아지 마냥 비비적거리기도 하고 괜히 손깍지도 낀다. 뻔한 결말을 향하는 드라마에 빠져서 걔한테 눈길 한번 안 주면 그때부터 우리의 싸움은 시작한다. 걔는 고작 그 짧은 시간 동안 삐져서 TV를 꺼버린다. 내가 버럭 소리치면 걔는 애인한테 화낸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저렇게 나가고야 만다. 오자마자 갈 거면 보고 싶다고 오긴 또 왜 와. 먼저 연락해보라지, 내가 받아주나.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엔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내 다짐은 스물여덟 번째 물거품이 되는 중이다. 다이얼을 눌러 강지현에게 연락을 걸었다.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가 이기지 못하고 먼저 연락하면 걔는 자기 삐졌던 것도 잊고 치킨을 두 마리씩이나 사서 다시 집에 들어왔다. 우리는 공감도 하지 못할 아주 뻔한 로맨스 드라마 한 편 틀어놓고 치킨을 뜯었다. 나는 항상 걔가 쓰는 접시 위에 다리 4개 올려주고 퍽퍽한 가슴살만 먹었다. 강지현 걔가 옆에만 있으면 물을 마셔도 탄산음료 같고 맨 밥을 먹어도 달았다. 나는 흙을 주워 먹어도 맛있을 거라고, 조화로움 하나 없는 뻔한 로맨스 드라마처럼 생각했다.

 



괜히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전화도 안 받는 강지현, 문자도 안 읽는 강지현, 어두워진 게 언젠데 아직도 집에 안 들어오는 강지현. 폰을 꺼뒀나 했더니 그냥 내 연락만 씹는 건가 보다. 피드에 새 사진이 아주 줄줄 올라오다 못해 다른 사람이랑 얼굴 맞대고 사진까지 올렸다. 이게 진짜 헤어지고 싶어서 작정했나. 엄지에 온갖 화를 다 담아서 댓글을 남겼다. 이건 진짜 너무했다.


내일 자기 생일이라고 같이 있자던 사람이 누군데. 늦게 와서 짜증만 부리고 간 게 누군데. 그래도 내가 먼저 사과하겠다는데 사과도 못하게 하고 있는 게 누군데. 애꿎은 허공만 걷어찼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타이밍 좋게 들고 있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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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의 알림창을 내리자마자 속이 뒤집힐 뻔했다. 내 댓글에는 대꾸도 안 했으면서 생전 처음 보는 애한테 하트나 날리고 답글이나 달아준 강지현. 가만히 안 놔둔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입이 꽉 막혔다.


내 잘못 아닐 때도 싸우기 싫어서 먼저 사과하고 기분 풀어주는데 고작 드라마 하나 때문에 연락도 안 받고 보란 듯이 즐거운 걔가 미웠다. 기념일은 꼭 챙겨야 한다고 무슨 기념일마다 시간 비우라고 했으면서 학원 시간 겨우 빼서 기다렸더니 다른 사람이랑 얼굴 맞대고 찍은 사진이나 올리는 걔 때문에 속상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랑 선물도 샀는데 걔한테는 내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서 우울했고 꽃 선물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대서 꽃다발까지 준비했는데 이러는 강지현 때문에 눈물이 고였다.


입술을 꽉 깨물고 휴대폰 전원을 껐다. 불에 녹은 초가 케이크에 뚝뚝 떨어졌다. 꽃은 이미 시들했고 손까지 베여가면서 포장했던 선물 상자는 그 옆에 주인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사이에 낀 나는 하나도 조화롭지 않았다.




매번 뻔한 로맨스 드라마나 매일 똑같은 현실이나 상처받을 사람은 상처받고 울 사람은 운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하게 됐다. 매번 우는 사람은 나였고 그래도 걔를 계속 좋아하는 게 나였다. 그리고 걔가 아직도 나를 좋아하길 바라는 것마저 나였다. 코끝을 스치는 짭짤한 냄새가 신호라도 되는 양 누군가 다급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답답한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나는 우리의 마지막을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아직은. 걔가 나를 좋아하고 내가 걔를 좋아하는 지금은. 나는 걔를 잊을 용기가 없어서, 몇 부작인지도 모르는 이 로맨스 드라마는 아직 끝을 보지 못해서, 그리고 기어코 치킨 두 마리 사들고 뛰어온 강지현이 너무 밉고 다정해서.


걔를 노려봐도 소용은 없었다. 걔는 웃으면서 나를 안았고 나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끝까지 나를 다독이면서 웃어주는 걔 때문에 나는 진이 빠지게 울었다. 아직 너와 나 사이에는 남은 게 많았고 우리는 언제든 조화롭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는 조화롭지 못하게 행복했고 너와 나의 포옹에서는 조화롭지 못하게 고소한 간장 치킨 냄새가 맴돌았다.

 





카카오톡 10개의 안 읽은 메시지 20. 8. 7.

강지현 왜 폰 꺼뒀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지금 가고 있어.

나 때문에 너 많이 못 놀았잖아.

보고 싶은 거 못 보고

어차피 내 생일 되면 같이 하루 종일 있을 거니까

...그래서 일부러 연락 안 했어.

질투 좀 해달라고 그런 것도 맞는데

내가 너무 심했어.

미안해.                           오후 11:39

 





강지현 님이 @yujin_0409 님의 댓글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최유진 yujin_0409 보고 싶어.

  강지현 love_cherry   @yujin_0409 나도.

  강지현 love_cherry   @yujin_0409 치킨 사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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