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 가는 겁니까.”

“어디 가겠어요. CCTV 확인하러 가지. 앞에 경찰서가 있는데, 아파트 입구 쪽의 거리에 설치된 화면을 확보했다고 하니 가서 봅시다.”


CCTV라. 커크는 턱을 매만지며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술루의 뒤를 따랐다. 에디스와 헤어진 후에도 술루는 멈추거나 쉬지 않았다. 커크는 이곳의 제임스 커크를 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신기했지만 어쩌면 자신이야말로 이 세계의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 같은 건가. 혹은 유령. 그렇다면 자신 혼자 온전히 기억을 가지고 이 경계 안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뭘까.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혹은 의도가. 커크는 잠깐 멍하니 서 있는 사이, 한참 걸어가던 술루가 흘긋 뒤를 돌아보는 것을 발견하고 아. 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껏 눈썹을 들어 올린 술루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 대 치려는 건가, 몸을 살짝 움츠린 커크가 이마에 닿는 온기에 놀란다.


“아직 어디 아픈가.”

“그런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립니까. CIA라면서.”


FBI라거나, CIA라거나. 오래된 고전영화에서만 봐온 기관의 이름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재미있다. 커크는 술루의 손끝이 잠깐 제 눈썹께의 상처를 스치는 게 느껴졌다. 아파요? 술루의 표정이 조금 심각했다. 커크는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정말로,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때의 상처가 마치 꿈이었다는 듯이. 술루는 흠, 하고 잠깐 그를 바라보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전혀 다른 사람 같은 히카루 술루의 뒷모습을 보는 것 역시 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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