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 말이나 소 따위를 부리기 위하여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 부자연스럽게 얽매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結 (맺을 결) : 매듭 


똑같으나 다른 최근이었다. 문법으로 따지자면 절대 틀린 말이지만 정말 그랬다. 일단 전정국이 이틀 째 출근을 안 하는 중이다. 하와이에 갔다 온 이후로 휴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휴가를 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전무다. 맞아.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회사를 쥐고 있는데 개인 스케줄쯤이야. 아주 식은 죽 이었다. 


물론 마냥 그 이유로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아니었다. 나는 전정국이 출근을 하든 안 하든 소파나 침대에 강력접착제로 붙어 있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니까. 아니 심지어 출근을 안 하면 그 무게가 배로는 늘어난다. 원래는 내가 했을 밥을 데우거나 먹고 치우는 아주 사사로운 일까지 할 필요가 없으니 아주 가만히 있는 거다.


말하자면 공기가 조금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전정국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전과 다르게 목 부분이 가렵고 무릎부터 허리, 아니 그냥 몸 어딘가가 자릿한 느낌이 들었다.



“오렌지 까 줄까요.” 



지금도 그래. 맨날 그런 것처럼 딱 입이 심심할 시간에 간식거리를 주려는 전정국을 보고 있는데 손가락이 간질거려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고개를 살짝 갸우뚱한 전정국이 다른 거? 라고 다시금 묻는다.



“어 아냐 아냐. 오렌지 좋아.”

“가져 올게요.”



멍청이처럼 입을 조금 벌리고 전정국을 바라봤다. 검은색 반팔티에 추리닝 반바지를 입은 것도 맨날 보던 모습이고, 껍질을 아주 쉽게 손으로 북북 까며 표정은 세상 지루한 것도 그대로인데 저것마저 뭔가 새로워 보여. 아주 기묘한 기분이었다.


별안간 오물거리며 접시를 내려놓은 전정국을 따라서 나도 입만 움직이고 있는 동안이었다. 커피 테이블에 나란히 놓아져있던 두 개의 휴대폰 화면이 동시에 켜졌다. 


[다가오는 금요일 귀하의 학위였던 H대 경영대학이 개편하는 의미로 행사를 열게 되었습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부디 영광스러운 행사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만들어진 의도는 행사일지언정 마구잡이로 올라오는 대화창들을 보니 그냥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과 하는 인사파티 같은 단톡 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주 딴 세계라는 말이다. 전정국과 같이 다니면서 부딪힌 일이 일절 없었으니 그저 놀랍고 낯선 기분이었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에는 지금보다 더 날 것이었던 전정국이 어차피 선배는 가만히 있으면 된 다며 단톡을 나가버린 탓에 더 신기하고 그랬다. 

“...”



전정국은 진짜 아무 표정 없이 화면을 넘기고만 있었다.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누가 봐도 쟤 읽지도 않고, 관심도 없구나. 라고 느낄 수준이었다. 그 길쭉한 손가락을 조금 멍하게 쳐다보는데 별안간 뚝 하고 누군가 잡아챈 듯 멈춘 거다. 


[와 지민이 초대 된 거야? 프사 보니까 쟨 어째 하나도 안 늙었냐]

[읽고 있나? 야 지민아 뭐하고 지내?]



뭐지 싶어서 화면을 봤더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말해서 그런 건가보다. 한 쪽 눈썹을 찡긋 올리며 혀로 볼 안 쪽을 쓸어내리는 전정국을 몰래 봤다가 진짜 절대 내 잘못이 아니지만 왠지 눈치가 보여 휴대폰을 내려놨다.



“선배 찾는데요.”

“응?”

“장민국이라는 사람이 뭐하고 지내냐고. 알아요?”



모르겠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척이 아니라 진짜 몰랐다. 솔직히 기억하는 게 신기 한 일 아닌가? 내가 대학에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전정국이 어떻게 집착했느냐, 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이 중에 있는 것 같은데.”

“어 얘! 알아!”



웬일인지 프로필 사진까지 클릭해서 보여주는 전정국의 행동에 얼핏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보니까 전정국이 등장하기 전인 일학년 때 교양이 맞아서 제법 붙어 다녔던 동기였다. 우와. 얘 진짜 오랜만이다! 약간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를 키웠다가 옆에서 나를 뚫어져라 보는 전정국과 마주하고, 



“그, 근데 엄청 친한 건 아니었는데 나를 왜 궁금해 하지? 아하하. 신기하네..”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괜히 말꼬리를 늘렸다. 그냥.. 뭔가 이러는 게 나았다. 내 모습을 본 전정국이 피식 웃는 게 보였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계속 쌓이는 숫자를 보니 어차피 그 물음은 이미 지나쳤을 테고 사실 굳이 대답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 그냥 무시해도 돼! 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갈까요.” 

“응?”

“여기요. 사람들 보고 싶지 않아요?”



어느새 다시 화면을 눈을 돌린 전정국이 의외의 물음을 내뱉었고 대답을 망설였다. 일단 기본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 솔직히 누가 먼저 우리 대학 동기였어! 라고 말하기 전에 그냥 지나칠 수준으로 초면일 애들이 태반이었다. 끽해야 한빈이 정도 겨우 기억 할 텐데 그 마저도 회사에서 마주쳐서였고 별안간 껄끄럽게 끝나 썩 유쾌하지는 못했다. 



“다들 온대?”

“그래도 꽤 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선배 핸드폰 좀요. 전정국이 뻗는 손에 아주 자연스레 넘겨주고 신기하다. 이런 거 좋아하나봐. 라고 말하며 오렌지나 먹었다. 내 핸드폰 잠금을 가볍게 푼 전정국이 무언가를 몇 번 만지고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은 걸 슬쩍 보니 아무래도 대화방을 나간건지 켜켜이 쌓여갔던 카톡 알림 숫자가 사라져 있다. 



“정국아 너 가고 싶어서?”



저런 건 별 신경도 안 쓰였고 사실 내가 궁금한 건 그런 자리를 굉장히 환영하지 않는 성격의 전정국이 먼저 가자고 한 의중이었다. 솔직히 나보다 더 과 사람들이랑 안 친하지 않나. 쟤야말로 진짜 대학교 때 나 말고 논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꼭 그런 건 아닌데. 축사 부탁한다고 연락 와있더라고요.”

“와 진짜?”

“네. 한 마디 정도는, 선배도 오랜만에 사람들 볼 겸.”

“...”

“근데 생각 없으면 굳이 안 가도 돼요.”



선배 하고 싶은 대로 해요. 하나 남은 오렌지를 내 입에 넣어준 전정국이 포크를 정리하며 나긋한 목소리를 냈다. 결국 또 마지막에는 내 선택이었다. 



“야아! 내가 안 가도 너는 가야지!”

“...”

“너 전무라서 그런가봐. 맞아. 그런 것 같다. 그치.”



생각해보니 내가 학과장이었어도 우리 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전정국이면 당장 연락을 했을 거였다. 솔직히 ‘K그룹 전무가 졸업한 학과’ 라는 플랜카드를 사골처럼 매년 걸어놔도 다들 그러려니 할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잖아. 나한테는 그저 전정국일지 몰라도 바깥에서는 굉장한 인물인 걸 자꾸만 까먹었다.



“아니죠.”

“응?”

“선배가 가야 제가 가요.”



전정국이 그렇게 말하며 불시에 촉 입을 맞춘 뒤 접시를 들고 주방을 향했다. 갑자기 얼굴에 화다닷 하고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왜 이러는지 몰랐다. 솔직히 뽀뽀라면야 예전부터 꾸준히 하던 건데 요새 더 낯 뜨거운 기분인 거다. 그래서 괜히 그럼 내가 사진 찍어줄게. 아냐. 동영상 찍어줄까? 라며 과장되게 말했다. 접시를 닦던 전정국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보조개가 들어가게 웃었다. 


단톡방을 나와 일이 어떻게 진행 되는지 몰랐지만 여전히 시끌벅적한 건 분명하다. 원래 같으면 한 자리 수인 전정국의 카톡 알림창이 하루가 다르게 백 개가 훌쩍 넘어 이젠 999라는 대화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전정국은 쳐다도 안 보고 있는 것 같다. 좀처럼 숫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선배. 오늘 나가야 되는데.”



당일이 돼서야 확인을 한 건지 비로소 깔끔해진 화면마저 행사를 알렸지만 나는 영 어리둥절했다. 왜냐면 까먹었었다. 졸려요? 내 이마를 쓰다듬는 손길에 아니이..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니 귀찮으면 안 가도 돼요. 사근사근한 말이 들렸다. 그 말에 눈을 번쩍 하고 떴다. 



“아냐. 나 씻고 올게.”



본인만 모르는 것 같은데 자리를 빛내주는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전정국이었고 별안간 내가 가야 자기가 간다던 전정국 덕분에 나도 꼭 가야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늦장 부릴 시간이 없다.



“정국아 너 진짜 전무 같다..”



내 말을 들은 전정국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웃었다. 근데 정말이었다. 누가 봐도 어디에선가 한 자리 거하게 차지하고 있는 법한 모습이었고 진짜 그런 존재였다. 물론 나한테 전정국은 전무든지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든지 하물며 백수였어도 그저 전정국일 뿐이다. 심지어 오렌지나 까주며 노닥거리는 장면이 더 익숙하다니까.. 문득 아무렴 어떠한 모습인들 결국 전정국과 함께였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달리는 차 바깥으로 익숙한 건물이 보이자 괜시리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엄청나게 오랜만에 온 학교였다. 



“다 왔어요. 선배.”



내릴까요. 전정국이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조금 세게 잡았다가 놓았다. 별안간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내리지 않겠다고 말하면 망설임 없이 차를 돌리고 다시 집으로 가겠지. 아무 이유도 묻지 않을 거야. 



“어 나 내려.”



왜냐면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으니까. 다시금 깨달아봤다. 



“사람 진짜 많다.. 큰 행사였나 봐.”

“그러게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소란스러운 모습에 놀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총장이나 학과장, 시간 많은 졸업생들만 모이는 자리 인 줄 알았는데 제법 규모가 큰 행사였는지 가장 최근 학번이 적혀있는 과잠을 입은 재학생들까지 빼곡하게 모여 있는 거다.




별안간 그 학생들의 시선이 전정국에게로 집중 되는 게 보였다. 개중에 몇몇은 저들끼리 쑥덕거리며 감탄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전정국은 포털사이트에 당당히 등록되어 있는 화제의 인물이었고, 사실상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지금 보이는 모습 자체가 멋있고 근사했다. 그냥 잘 생겨서 쳐다보는 건가? 정작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기색이지만 괜히 내가 더 의식하며 영 어색하게 움직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옷 좀 제대로 입고 올 걸. 전정국은 위아래 수트까지 갖춰 입은 것에 비해 나는 그냥 커다란 항공점퍼에 지배당하고 있는 인간 같잖아.



“선배?”



약간 창피한 기분에 전정국과 한 뼘 걷다가 내 차림새를 훑어보느라 아주 잠깐 멈춰 서있는데 얼마 안가 따뜻한 온도가 느껴졌다.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상체를 굽힌 전정국의 행동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걱정스러운 얼굴이 바로 코앞이다. 살짝 뒷걸음질을 치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심심찮은 사람들이 이 쪽을 보고 있다. 



“어..정국아. 나 아무 일도 없어.”



근데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로봇처럼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을 때였다. 내 모습을 본 전정국은 고개를 조금 뉘였다가 얼굴을 더욱 가까이에 붙이기만 했다. 

“그런가.”

“...”

“난 뽀뽀도 할 수 있는데.”



선배 생각해서 참을게요. 조금 얄궂게 웃은 전정국이 별안간 상체를 다시 일으키고 내 옆에 와서 섰고 갈까요. 라고 물은 뒤에 내가 움직이자 저도 발걸음을 뗐다. 


나도 대학생 때 저랬나. 탄식 같은 의문이 들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왁자지껄 소리치는 게 광복절 폭주족들 저리가라다. 그 젊은 패기들에게 어깨빵을 당할까 몸을 잔뜩 구부리고 걸었지만 이건 내 쫄보근성 때문이지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날리 없었다. 이 와중에도 무덤덤한 전정국이 단단하게 가로막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진짜 폭주족들이 오토바이를 끌고 와도 지루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을 전정국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의자가 아닌 맨 앞자리에 따로 나열되어 있는 의자에 이름표들이 보인다. 물론 다 초면이었지만 가장자리 의자에 ‘전정국’ 이라는 이름을 보아 어찌됐건 한 역할 하는 인간들이라는 건 분명하고, 제일 중요한 건.. 



“뭐하자는 거지..”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있을 리가 있나. 일개 졸업생인데. 그렇지만 혼잣말을 내뱉으며 주변을 훑는 전정국을 보자 기시감을 동반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어. 여기 이름표 없다! 나 여기 앉아 있어야지!..”



부러 큰 목소리로 말한 뒤에 털썩 앉아버렸다. 이러지 않으면 전정국은 이 행사장에 있는 모든 의자에 내 이름을 붙여 자기 옆에 둘 지도 모른다. 쟤라면 가능하다. 그러자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은 참는 것 같은 전정국도 자리를 잡았다. 약간의 안도감이 들어 큰 숨을 내뱉었다.


전정국은 턱을 괸 채 단상 쪽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저러지. 나 같으면 이미 청심환으로 배를 채웠을 것 같은데 진짜 아무 생각 없어 보인다. 별안간 전정국의 긴장감까지 내가 느끼고 있는 건지 내가 더 떨려서 좀처럼 눈동자를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을 때였다. 뭔가 익숙하지만 누군지 모르겠는 얼굴이 전정국에게 악수를 청했다. 앉아 있던 전정국이 수트 자켓 앞 단추를 잠그고 일어나 그 손을 맞잡고, 둘이 하는 대화를 몰래 들어보니 이번년도 경영학과 학과장이라고 소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이 분은 누구?”



경영학과 졸업생이라며 유연하게 대답한 사람은 전정국이었다. 당연히 나는 대답할 생각도 없었으니 고마울 따름 이었다.



“앞자리는 교수들이나 손님을 위한 자리인데.”

“...”

“졸업생이면 뒤에 따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아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학과장이 철저히 아랫사람 다루듯이 말을 건넸다. 전정국을 대할 때는 세상 착한 얼굴이었으면서 나를 볼 때는 영 별로인 말투였다. 뭐 딱히 기분 나쁠 것도 없어서 엉덩이를 떼려던 참에,



“아.”



막상 일어나야 될 사람은 안 일어나고 엄한 사람이 일어난 상황이 연출되었다. 가죠 선배. 나를 잡으려고 손을 뻗으려던 전정국에게 아니요! 전무님 자리는 여기가 맞습니다. 라며 급하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저도 졸업생인데요.”



그럼 뒤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전정국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조금 뉘인 채 학과장을 응시한다. 저건 사실 물음이 아니라 나는 뒤로 갈 테니까 나머지는 니가 다 해라, 라는 식의 통보라고 하는 게 더 옳았다. 물론 이건 나만 아는 것 같다.



“시간 내서 오는 졸업생들을 뒤로 보내는 건 좀 별로라고 생각하는데요.”

“...”

“뭐 대단한 손님이라도 오나보죠?”



학과장은 아주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채 몇 분의 고민할 시간을 주지도 않는 전정국은 그런 학과장을 가볍게 지나치고 가요. 라며 나를 끌어 당겼다. 물론 전정국의 말이 맞기도 했다. 안 와도 되는데 굳이 오는 사람들한테 뒷자리나 주는 건 영 예의가 아니다. 허나 나 때문에 전정국까지 뒤로 가는 것도 그다지 반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어, 정국아. 너는 그냥 여기에..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데 전무님! 이라며 급하게 잡아 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 축사 하는 거 잘 찍을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정국은 무릇 모든 상황을 아주 설득력 있고 합법적이게 자신의 뜻으로 만드니까. 그렇지만 졸업생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 판넬과 앞에 주르륵 나열 된 의자들을 보자니 눈치 보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절로 목소리가  조그맣게 나오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게 되는 거다. 



“원래 같이 앉기로 되어 있었어요.”

“응?”

“선배랑요.”

“..아.”

“그 조건으로 참석 한 건데 오니까 말이 다르잖아.”



마음에 안 들게. 전정국이 그렇게 말하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풀었다. 아아. 그랬구나.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이 한결 나아져 의자에 편히 앉았다. 



곧 시작하려는지 장내가 점점 차분해지는 게 느껴졌다. 무대에 있는 현수막 같은 거나 쳐다보며 입에 바람을 불어넣는 등의 의미 없는 행동만 하는 동안이었다. 무리지어 오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에 다가오는 것 같더니. 



“어. 야 박지민!”



저번에 전정국이 보여 준 민국이가 하며 내 이름을 외친다. 민국이 빼고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 몇몇들도 그 옆에서 손을 흔든다. 쟤네 다 이름이 뭐였지? 생각하느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너 옆에 전정국이야?”

“어? 응. 정국이.”

“와.. 진짜였네.”



정국이가 진짜라는 건가? 가짜 전정국도 있어? 무슨 말인지 몰라 의아한 눈빛을 하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 무대 위로 올라와 마이크 테스트라는 소리가 들렸다. 야야 시작한다. 이따 다시 얘기하자. 진짜 몇 년 만에 봤는데 바로 어제 본 것처럼 대하는 친화력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행사가 지루한 건 마찬가지였다. 덜 지루하게 하는 방법은 없나? 시답잖은 생각만 하며 하품만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막 다섯 번째로 입을 크게 벌리자 졸려요? 전정국의 나긋한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렸다. 헉. 다 보고 있었나봐. 조금 부끄러워  헙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와중에도 눈치 없이 나오려는 하품에 입에 힘을 주고 있는데.



“다음으로 경영학과 졸업생이자 현 K그룹 전무인 전정국 전무님의 축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모두 박수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졸리긴. 방금 잠 다 깼다. 마이크를 통해 나온 전정국의 이름을 듣고 온 정신이 번쩍 깨버렸다. 정국아 핸드폰, 핸드폰 주고가. 찍어줄게. 갑자기 눈을 반짝이는 나를 보던 전정국이 설핏 웃으며 휴대폰을 건넨다. 잘 하고 와! 제법 멋지게 응원까지 해줬다.



“지민아 너 전정국이랑 무슨 사이냐?”

“어?”



불쑥 말을 건 민국이는 잔뜩 궁금한 눈이었다. 아니 방금 상황에 무언가 느껴졌나? 고작 휴대폰만 주고받았는데? 쟤 뭐야! 



“너 전정국이랑 같이 왔지?”

“뭐야 어떻게 알아?”

“너 얘기 나오니까, 전정국이 단톡에서 말 해주던데.”



아 맞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지금 나 혼자만 굉장히 침착한 척 전혀 침착하지 않은 것 같다.



“근데 걔 좀..”



선배님 잘생겼어요!!! 민국이 목소리가 커다란 고함소리에 묻혔다. 분위기가 전환 된 게 피부로 느껴진다. 아까까지는 축 처져있던 공기가 누군가의 등장 하나 만으로 웅성거리고 들썩이는 거다. 



“안녕하십니까. 경영학과 58기 졸업생이자 지금은 K그룹 전무인,”

“...”

“전정국입니다.”



목소리가 퍼지자마자 갑자기 온 몸에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박수소리와 함성소리가 장내가 떠나가라 울리고 간간히 찰칵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일단 경영학과 개편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처음 축사부탁을 받고 꽤 고민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세대인 만큼 연륜 있는 조언을 해 줄 수도, 엄청난 고비를 겪거나 대단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휘양 찬란하게 걸려있는 플랜카드나 장식들, 커다란 무대가 익숙한 듯 전정국은 아주 여유롭고 능숙하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생기 넘치는 여러분들을 보니 대학이라는 것은 참 기대감을 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커다란 잔디밭에 모여서 놀고 씨씨도 하고 엠티도 가고, 교복입고 맨날 똑같은 등하교 하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아 물론 진짜 마음대로 하면 큰일 납니다. 학고 맞아요. 전정국의 말에 웃음소리 같은 것이 퍼졌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능숙하고 프로페셔널한, 그러니까 말하자면 본래의 전정국이 아니라 졸업생이며 전무인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다. 



“대학은 결국 모든 것의 처음입니다.”

“...”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체계와 사회생활의 첫 발걸음, 새로운 낭만의 시작이기도 하죠.”



전정국의 말을 듣자 문득 나도 대학생활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아득하지만 가깝고, 과거지만 현재인 우리의 시간. 



“저도 그랬습니다.”

“...”

“저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

“깨고 싶지 않은 환상을 만났습니다.” 



전정국의 말을 듣자마자 팔을 내리고 숨이 저절로 멈춰졌다.



“원래 처음은 어렵습니다. 저 역시 시작은 무섭습니다. 대학은, 그런 시작에 대한 공포감을 조금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

“물론 힘들 겁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투성이겠죠.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해내실 겁니다.”

“...”

“무엇이든 하세요. 꼭 공부가 아니어도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만 허용되는 충동과 반경이 있습니다.” 



전 H대학의 경영학과가 아니면 안 됐습니다. 그 선택을 한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충동과 노력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저처럼,”

“...”

“환상을 현실로 만드세요.”



전정국과 눈이 마주치자 공간이 정지되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까부터 무의식에 머릿속에 나열하고 있던 과거가 한 걸음에 현실로 바뀌었다. 희미하게 박수소리가 들리고 전정국의 숙인 상체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좀처럼 깨기 힘들다. 



“민국아. 나 정국이랑 무슨 사이냐면,”

“어?”


“처음이야 정국이. 내 처음이고,”

“...”

“마지막이야. 



그렇게 말한 뒤 벌떡 일어나버렸다. 나를 쳐다보는 민국이는 잔뜩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전정국은 저 쪽에서 누군가와 얘기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미친. 나 방금 왜 그랬지?”



화장실 칸에 들어와 머리를 쿵쿵 찧으며 자책했다. 전정국의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뱉어버린 말이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졸지에 도망 친 꼴이 되어버렸다. 미친. 오랜만에 만난 애한테.. 머리를 잔뜩 헤집다가 아냐. 이미 말했는데 어쩌겠어. 안정을 되찾고 다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여기 지민이 있는데? 진짜 정국이랑 같이 왔음]


화면이 반짝거리고 나서야 내가 전정국의 휴대폰을 가져와버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보이는 대화창에 돌연 아까 민국이랑 한 대화가 생각이 났다. 마지막에 뭐라 그랬더라? 원래 훔쳐보는 성격이 전혀 아닌데 오늘은 괜스레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몰래 대화방을 누르는 와중에도 계속 두리번거렸다. 혼자 칸에 들어와있는 주제에 말이다. 그리고 마치 그때 전정국처럼 빠른 속도로 손가락을 놀리다가, 



“...”



한 지점에서 멈췄다. 다시금 기분이 뜨거워졌다. 전정국이 뒤집은 퍼즐은 그렇듯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스스로 자리를 찾았다. 





행사가 끝났는지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조금 멍한 얼굴로 걷고 있었다. 



“선배.”



별안간 끌어당기는 힘에 어어.. 거리며 몸의 방향을 트니 심각한 표정의 전정국이 보였다. 아 맞다. 정국이 휴대폰 나한테 있었지.. 아무래도 나를 찾아 다녔는지 가슴팍을 조금 들썩이는 모습이었다. 



“어디 갔었어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까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대답이 없자 전정국의 시선이 조금 짙어지는 게 느껴졌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중이었다. 누군가 전무님.. 싸인 한 장만 해주시면 안 돼요? 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소리가 들린다. 옆을 보니 초롱초롱한 눈의 학생들이 보였다. 



“나, 저기 앉아 있을게.”

“선배.”



일 보고 와. 그렇게 말하며 전정국에게 잡힌 손을 뺐다. 전정국은 온 얼굴로 물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왜 그러냐고. 그러니까 내가 왜 이러냐면.. 



“야 박지민! 한참 찾았잖아!”

“어? 나 왜?”

“아니 술 한 잔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했지. 근데 너는 없고.”

“...”

“정국이는 너 가면 간다는 소리만 하고.” 



갈 거지? 오랜만인데? 잔뜩 기대에 찬 민국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까지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전정국을 바라보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차창 너머를 멀거니 바라봤다. 술자리에는 가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고 오 분도 안 돼서 내 앞으로 온 전정국은 내 선택을 따르려는지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미안. 나 집에 갈게, 다음에 보자. 사실 빈 말이었다. 나는 앞으로 민국이를 찾지 않을 것이다. 



“왜 안 놀고.”

“응?”

“오랜만에 친구들 만났잖아요.”

“그냥.. 어차피 친하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정문에 있는 편의점, 아무거나 먹고 싶다고 하니까 덜컥 데려가 준 고급 한정식집, 저들끼리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대학생들, 편의점 앞에 있는 강아지. 

“선배. 나 좀 봐줘요.”

“응?”



내 손을 잡아당기는 전정국. 


그 무엇도 달라진 것 없이 여전하다. 겉모습만 바뀌었다 뿐이지 모든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는 거다. 입술을 깨물고 전정국을 가만히 주시했다. 불현 듯 시야에 K그룹 전무가 사라지고 제멋대로였던 한 학번 후배가 보인다.


그때의 전정국은 조금 무서웠다. 딱 이 구도로 말했다. 선배는 못 간다고. 그 말은 한 치의 거짓 없이 진짜였다. 나는 그 뒤로 아무데도 가지 못했다. 바깥을 갈구하는 라푼젤처럼 차에만 앉아 밖을 바라봤었다. 라푼젤은 성 꼭대기 층이기라도 했지, 나는 문만 열면 나갈 수 있는 벤츠 안에서 그러고 앉아 있었다니까.



“뭐 먹고 들어갈까요.”

“...”

“아니다. 집에서 먹을까요?”



다시 만났을 때는 어땠더라. 후배에서 전무로 양상이 변했다. 보고 싶었다고, 일 년 동안 떨어져 있을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 후회한다며 나를 집에 데려다 줬었다. 물론 그 뒤로 다시 라푼젤 신세였다. 스케일이 커진 탓에 차가 아니라 집에서 바깥을 바라봤지. 어쩌면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선배.”

“...”

“나한테 화났어요?



아까부터 창밖만 보고..

비로소 모든 장벽이 걷히고 전정국이 나타났다. 내 손등을 매만지는 익숙한 살결. 그 곳부터 뜨끈한 온도와 잔잔한 간지러움이 천천히 타고 올라와 별안간 심장에 닿았다. 두근거렸다. 



“정국아.”

“네.

“나 다른 사람 불편해..”



박지민 전정국이랑 친할걸? 아니 친한 수준이 아니야. 쟤 전정국네 회사 부장이었음. 장한빈이 단톡에서 했던 말이었다. 복수심으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니 퍽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 되었다. 혹시 나 때문에 전정국에게 피해가 갈까봐. 역시나 그 말을 보자마자 진짜? 맞다. 둘이 학교에서도 맨날 붙어 다녔었지. 라며 모르는 얼굴들이 떼거지로 말을 해댔다. 



“너랑 둘이 있는 게 제일 좋아..”



그 소란에 더욱 불을 지핀 건 박지민님이 나가셨습니다. 라는 문장이었다. 아마 전정국이 내 핸드폰을 가지고 가서 한 행동이었다. 내가 나가자 저 봐. 맞다니까? 라는 말에 맞장구를 치는 말풍선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 중간에는 와 박지민이 뭔데 그러지? 대단하다. 라며 은근하게 나를 까 내리는 말들도 있었다. 전정국은 아무 말도 없었다. 


[선배 오늘 저랑 같이 갈 거예요. 아직도 붙어 다니는 중이라]

[박지민이 뭔지 궁금하면 기분 나쁘게 뒤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니들이 와서 봐]

[그렇게 얘기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니까]


날짜는 오늘. 매우 공격성이 다분한 전정국의 말에 그 누구도 대답은 없었다. 휴대폰 너머로 다들 한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전정국이 나를 어떤 식으로 만들고 있는지 지나칠뻔 했다. 



“그냥 집에 가죠.”



손에 힘을 준 전정국의 표정은 조금 굳어있었다. 이제야 밖을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정국아, 신발, 신발 좀..”



내가 엉거주춤하며 신발을 벗으려 하자 전정국이 잠깐 입을 떼고 신발을 휙휙 던져버린 뒤 다시금 입을 열어 다가왔다. 그걸 보고 나도 조금 입을 벌리니 푸스스하고 웃는 소리와 함께 내 입술을 혀로 핥으며 살금 물어댔다. 낯간지러운 감각에 몸을 뒤로 하니 내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손이 어디 가냐 묻는 것처럼 내 허리께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기고 얼굴을 조금 더 뉘여 숨을 가까이에 붙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전정국이 나를 안아 올려 입을 맞춘 까닭에 신발만 벗었을 뿐 아직 현관에 머물러 있는 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러운데 오늘따라 전정국의 몸짓이 과하게 조심스러웠다. 평소에는 쪽쪽 빠는 흡착력 있는 진공청소기 같았다면 오늘은 솔이 가득한 먼지떨이 같았다. 내 입술이 건들면 터지는 물방울이라도 되는 것 마냥 혀로 핥으며 정말 미미하게 잡아 무는 거다. 그 스스러운 행위에 나도 모르게 전정국와 닿아있는 몸을 조금 비빗거렸다. 그러자 커다란 손이 꽈악 하고 내 엉덩이를 감싸 안는다. 



“흐으..”



그 압박감에 입에서 절로 소리가 내뱉어졌다. 전정국은 그 소리마저 제 입속으로 야금야금 옮겼다. 혀를 입안 중간에 놓자 전정국이 연양하게 제 혀를 갖다대었다. 그 부드러운 질감을 소심하게 물었더니 나를 한 번 위로 올려 고쳐안은 전정국이 본격적으로 입을 가르고 혀를 집어 넣었다. 나도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한동안 내 입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전정국이 쭈웁 하고 모아 자기 입술과 내 입술을 동그랗게 모았다가 떨어트리고 내 턱 끝을 물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목선을 타고 내려간다. 



“으..정구가..”

“응. 지민아.”



승모를 잘근거리던 전정국은 곧 잘 대답까지 했다. 것도 모자라 아까부터 내내 내 엉덩이를 기묘하게 만져댔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몸을 붙여도 괜찮은 사이였다. 



“나 내려줘. 너 힘들어.”

“...”

“좀 그러면, 옆에 있는 선반에라도..” 



내 말을 들은 전정국이 얼굴을 떼고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내가 말해놓고도 부끄러워 시선을 조금 깔자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짙은 빨간색의 입술이 보였다. 이게 더 민망한 것 같다. 데구르르 굴려 다시 위로 올리자 게슴츠레한 눈모양이지만 형형한 눈동자와 정통으로 마주쳤다.


“선배.”

“응?”

“나 얼마나 좋아해요.”



항상 그렇듯 내 말을 잘 듣는 전정국이 나를 선반에 앉혀놓고 한 질문이었다. 너무 갑자기라 어? 라며 놀란 목소리를 냈다.  



“말해주세요.”

“...”

“선배 목소리로 듣고 싶어.”



조금 가엾은 빛이었다. 입술을 한 일자로 꾹 만들었다가 조심스럽게 열었다. 아까부터 내내 회상했던 과거 안에서 내 감정을 꺼내야 한다. 곰곰이 가늠 해봐야했다. 



“좋아하고 있었어.”

“응?”



나는 얽매는 줄에 걸려들었다. 전정국은 차근차근 손가락 마디부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절대 끊을 수 없지만 부드러운 끈에 나를 묶었다. 별안간 겉이 아니라 안에 있는 감정까지 칭칭 감기고 나서야 깨닫는다. 



“학교도, 회사도 다 쉬웠어. 과제도, 일도 안 해도 됐잖아.”

“...”

“그 상황이 좋은 건 줄 알았어. 그냥 편하고, 가만히 있어도 다 해주고 그러니까..”



스물한 살. 전정국이 없던 일 년. 그리고 지금의 나이. 나는 단 한순간도 편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전정국이 있어서였다. 



“근데 그게 아니었어.”

“...”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너라서 좋은 거였어.”



나를 간지럽게 하는 건 결국 전정국의 모든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는 명백한 사실이고, 유일한 진실이었다. 나는 결국 전정국이 아니면 안 됐다. 



“지금도 나는 아무것도 안 해.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

“그게.. 나는, 너처럼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딱히 잘 하는 것도 없고..”



조금 눈치를 보며 말해봤다. 왜인지 일말의 양심이 생겨서였다. 내 말을 들은 전정국이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입 꼬리를 올렸다. 



“앞으로도 그래요.”

“응?”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세상이에요.”

“...”

“내가 다 해요. 선배는 그대로 있어.”



전정국은 담백하게 말했다. 사실 아까 입을 열지 못했던 건 울음이나 뱉을 것 같아서였고 지금도 그런 기분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가 잘 할 게요.”

“...”

“선배는 나를 좋아하기만 해.”

저는 그거면 돼요. 



저렇게 말하며 웃는 전정국의 낯은 너무 솔직하고 찬연했다. 내가 너무 좋다는 표현을 말소리로만 내뱉지 않았을 뿐 온 몸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눈동자도, 온기도, 공기 마저 모두 고매하게 느껴졌다. 그걸 보다 어느새 나도 같이 웃고있었다. 모든 게 다 벅찼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아까 전정국이 열렬히 얘기하던 무대 뒤로 보인 문장이었다. 가히 대단한 자부심과 굉장한 자신감이 묻어 나오는 우리 대학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정국아.”

“...”

“내 세상이 되어줘서 고마워.”



집착은 더 한 집착을 낳는다. 하나부터 열 까지 지긋지긋한 집착의 굴레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내가 느낀 결론이자 사실이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전정국은 나를 끊임없이 굴레에 가두고 조인다.


그러므로 말할 수 있다. 누군가 나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전정국을 보게 하겠다. 나 역시 완연한 자부심과 확신을 기반하였다. 전정국은 말했다. 자기를 좋아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거야 말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도 하고 있잖아. 솔직히 그러지 않는 법조차 잘 모른다. 처음부터 까먹어 버린 탓이었다. 


나는 이 세상이 좋았다.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며 더욱 빠지고 말 거다. 단단한 매듭은 끊어지지도, 풀어지지도 않아. 갈수록 강도가 세지기만 할 것이었다. 


들린다.. 다굴 폭주족 분들의..오도바이 소리가..(방패막을 꺼내며)

일단 여러분 제가 너무 늦었죠ㅜ_ㅜ..! 제 손목 인대가 자기 여기있다고 위치보고를 해주는건지 뭔지 가끔 늘어가든용.. 근데 하필! 저번주에 또 그런일이 발생했어가지구.. 좋은일도 아니고.. 트위터에는 알렸지만 포타에까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것 같아서 미처 얘기를 못드렸어오 (사실 트위터에서 너무 많은 분들의 걱정을 끼친것 같아서 잔뜩 죄송하고 감사했다는 비하인드) 


악 독자님ㄷㄹ 저 이제 갠찮아요!!!! 인대 얘기 괜히 썼어 인대 언급금지 할게요 (무한감사)


아니 그리고 심지어 글도 엄청 안 써지는 거에요!ㅠㅠ 뭐가 문제였는지! 얼마나 수정을 했냐면 제발 이게 최종 다단계굴레.txt 진짜 파일 제목이 저거라니깐여 글쎄..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진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을 다굴에만 바친것 같네오. 오늘도 어제 새벽 두시부터 지금까지 썼어요 글쎄.. 근데 사실 마음에 안들어요. 솔직히,, 갈아 엎고 싶은데 이게 한계인것 같아요..딱히 엄청난 내용이 있느 ㄴ것도 아닌데 참으로 ,, 감을 잃었던 걸까요,,(누가알아)


쨌든 이번편은 사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 서울대 슬로건을 쓰기 위해서 정국이와 지민이를 대학에 보낸 거였다고 해도 무방합니다(지독하다진짜) 우연히 저 슬로건 보자마자 아.. 이건 써야돼. 생각 했어요. 물론 아이들은 H대를 다니지만,, 픽션,, 핀셕이닉한,,(눈치) 그리고 둘의 시작이 대학에서부터 였잖아요. 약깐.. 뭐라 그러지...대학에서부터 쭉 서사를 훑으며 정말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었어요.. 물론 .. 그다지 멋지지는 않은데.. 


아 그리고 맨 위에 보시면 굴레 뜻 보이시죠,,.  짐승을 묶는 줄이라는 뜻이잖아요..그래서 보면 글 끝에 칭칭 감았다는 표현도 한 번 넣어보고.. 완결이라는 단어 대신 줄이니까 매듭의 뜻이 있는 종이라는 한자를 써보았어요..저 약간,, 쓸데없는 변태같아요. 


그리고 여러분들 장민국 거꾸로하면 국민장->국민짱..(진짜안웃겨) 아하하! 


아니 그런데 또 말이 엄청 기네요.. 솔직히 여기서 주절주절 말하고 싶은데 자세한 얘기는 후기에서 나누는 게 참으로 좋을 것 같아요. (왜냐면 작가는 다른 분들이 썼던 후기에 못내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님들! ! 지금까지 다단계굴레와 함께해주시느라 너무 고생하셨구 너무 감사드려요. 

저는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독자님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모두 좋은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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