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애정이 고팠던 거라면, 무수한 결핍이 한데 모아져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거라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어떡하지.


알람이 울리기 전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있었다. 게으른 편일지는 몰라도 내 뇌는 그리 게으른 편은 아닌 지 정확히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쯤에 정신이 번쩍 들곤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려고 하니 어제의 여파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반도 채 떠지지 않았는데, 이 이상으로 눈을 뜨는 건 무리였다. 온몸이 찌뿌둥하여 몸을 이리저리 비트니 옆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늘은 아저씨가 옆을 지키고 있었다.


팔베개를 해주고 있어서 그런가, 불편한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게 꿈은 아닐까하고 아저씨의 볼을 콕 눌러보는데,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볼이 꾹 들어가며 아저씨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 계속 아프지 않게 볼을 콕콕 찌르니 결국엔 아저씨가 내 검지를 잡고 이로 살짝 물었다.



“잘 잤어?”

“…응. 아저씨는요?”

“팔 저려서 못 잤어. 좀 무겁더라.”

“머리에 들은 게 많아서 그런가….”



눈도 채 뜨지 못한 채로 푸스스 웃던 아저씨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이거 너무 좋아. 어렸을 때 아빠가 재워준다고 머리를 쓸어내려주면서 재워줬었는데, 그게 그렇게 잠이 잘왔다. 지금도 그래.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서 다시 달콤한 잠에 빠질 것만 같다. 



“저 학교 가야 하는데….”

“못간다고 해.”

“안 돼요.”

“왜.”

“학생이니까 학교를 가야죠.”



아저씨의 품에서 벗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좁은 침대에서 불편하게 잔 탓에 온 몸이 찌뿌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서 자는 건 무리라니까. 시간을 지체하다간 학교에 늦을 수 있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가서 칫솔을 입에 물었다.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는데, 마주한 얼굴은 더욱 가관이었다. 무슨 붕어도 아니고. 붕어눈깔에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부은 건지. 누가보면 라면이라도 먹고 잔 줄 알겠네.

양치를 하고 있는 중, 뒤이어 화장실에 들어 온 아저씨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선반에서 새 칫솔을 꺼내고 아저씨의 손에 쥐여주니 치약을 묻혀 입에 문 아저씨가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이 마주치자 푸흡하고 웃더니 긴 머리칼을 따라내려와 허리에 팔을 둘렀다.



“누구세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러게 왜 울어.”

“다 누구 때문인데요.”



거울로 나란히 서서 양치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치 동거하는 커플처럼 보이는 게 이 행복이 영원히 깨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이겠지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아저씨가 학교까지 태워다주겠다는 걸 극구 사양했다.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뭐하러 차를 타고 가냐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엔 아저씨의 고집에 이기지 못해 차를 타고 학교 앞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오니 신호 받은 것만 빼면 2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차를 타고 학교를 오는 동안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아저씨와 맞잡은 손에는 땀이 삐질삐질 했다. 



“감사합니다.”

“잠깐만.”



감사하다고 얘기를 하곤 황급히 손을 빼내어 차에서 내리려하니 아저씨가 손목을 잡는다. 잡힌 손목에 아저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입술에 촉하고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이따 데리러 올게.”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부끄러워져 어버버하고 있으니 아저씨가 잠금을 풀어주었다. 안 가면 늦을 텐데. 아저씨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내렸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얼른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계단 앞에 멈춰 섰다. 혹시나 갔을까 하고는 오르막이 있는 계단 앞에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의 차가 그대로 있었다. 조수석 창문을 열고 핸들 쪽에 상체를 기대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샐죽 내가 좋아하는 눈웃음을 짓던 아저씨가 입모양으로 이따 보자고 얘기를 한다.

저 아저씨는 진짜 사람 떨리게 하는데 뭐 있다니까.










불행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데리러 오겠다는 말이 내 심장을 간지럽게 만들었으며 기대하게 만들었다. 근데 시간은 어찌나 안 가던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지루했다. 하루종일 아저씨랑 있고 싶은 건 욕심일까. 그렇겠지.

어찌저찌 느릿하게 가던 시간이 가고 학교를 마쳤을 때였다. 종례를 마치기 무섭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학교 앞



데리러 오겠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학교 앞에 와있다는 문자였다. 이게 아저씨 번호구나. 교실을 빠져나오며 중앙복도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속 고민을 했다. 뭐로 저장을 해야 하지. [아저씨] 라기엔 너무 딱딱해 보이고, [스나 린타로] 라고 저장하기엔 친구도 아닌데 버릇없어 보이고. 교문 앞까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스나 아저씨] 라고 저장을 했다.

교문을 지나쳐 나오니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에 아저씨의 차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니 조수석 창문이 서서히 내려가고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차 앞에 완전히 다가섰을 때, 열린 창문 틈으로 뒷좌석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보고는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한테 인사해야지.”

“안냐떼요.”

“어..?"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는 건, 다름 아닌 아저씨의 아들이었다. 일단 인사를 하길래 같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긴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차에 타는 것도 까맣게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뭐해 안 타고. 차에 타지 않냐고 묻는 아저씨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오늘 유치원 오전 수업밖에 없다고 해서 데리고 있었어.”

“아…….”

“압빠, 압바.”

“응.”

“나 누나하테 갈래.”



아저씨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카시트에서 팔을 쭈욱 뻗고 꼬물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저씨를 꼭 빼닮은 얼굴이 팔을 허공에 아등바등 뻗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아저씨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안돼.”

“왜여.”

“누나가 싫어해.”

“왜 시러해여.”

“…저 싫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

“야.”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아저씨를 바라보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저씨랑 아저씨를 빼닮은 아이의 대화를 지켜보는 건 나름 재미있었다. 나 예뿐 누나랑 안즐래. 계속되는 아이의 어리광에 아저씨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이를 바라본다. 와, 살벌하다. 내가 다 무섭네. 혹시 아이가 겁을 먹진 않았을까 하곤 뒤를 돌아보니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풉-.



“왜 웃어.”

“…그냥요. 저 뒤에 가서 탈게요.”

“싫어.”

“압바 시끄더.”



결국 푸하하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저씨도 결국 아들한테는 꼼짝 못하는구나. 차에서 내리려 조수석 문을 여는데 아저씨가 혼잣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누굴 닮아서. 이를 아득바득 가는 듯한 아저씨가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누구 닮았는지 알 것도 같다. 자리를 옮겨서 뒷좌석에 앉으니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서 눈을 마주치는데 배시시 웃던 아이의 눈매가 예쁘게 접히는 게 꼭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집 눈웃음이 보통이 아니네.



“아가 몇 살이야?”

“네쟐.”

“그렇구나아~“

“나 아가 안니야, 이토쨩 머싯는 이름이떠.”

“그래?”

“웅. 뜨나 유이토. 이토쨩 이르미야 머디찌.”



아직 발음이 완벽히 되는 건 아니지만,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스나 유이토. 예쁜 이름이네. 멋있다고 볼을 쓰다듬어주니 아이가 검지를 제 조막만한 손으로 덥석 잡는다. 그리곤 내 손가락에 촉 입을 맞춘다. 만족스러운지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 아이의 해맑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달까. 주위에 어린아이가 없던지라 그저 마냥 귀여웠다. 아, 이런 동생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외동인지라 가끔가다가 친구들이 형제자매 얘기하는 걸 들을 땐 마냥 부러웠다. 치고받고 싸운다한들 외롭지는 않을 테니.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순 있을 테니까.

내 손을 꼬옥 잡고 자신의 볼에 살살 문지르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어디선가 탁탁 소리가 들리길래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룸미러로 우리를 아니꼽게 보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운전석에 삐딱하게 기대어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던 아니 정확하게는 째려보고 있던 아저씨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는지 표정이 구겨져있었다. 그 시선이 꼭 내 손을 잡고 있는 작은 손에 가 있는 듯하기도 했다.



“압바 부릉부릉해. 이토쨩 배 꼬르륵해여.”

“간다, 가.”

“아저씨, 근데 저 알바 가야 하는데….”

“못 간다 해.”

“여섯 시까지라 시간 맞춰서 가야해요.”



이 아저씨는 못 간다고 하라는 게 참 쉽다. 일개 알바생인 주제에 저녁 먹는다고 늦으면 쓰겠어. 가뜩이나 편의를 봐주시고 계신대. 한 차례 거절의사를 밝히니 이번엔 옆에서 나를 붙잡는다.



“누나 가디마아….”

“누나 가야 해요. 안 가면 혼나.”

“시러 누나랑 밥머글래. 누나 가디마…….”



곧 울 것처럼 보이는 눈망울에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어쩜 저리도 서글프게 바라보는지. 여기서 한 번 더 거절을 하면 진짜 울기라도 할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사장님, 제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그런데 오늘 하루 쉬어도 될까요..?] 문자를 보내고 얼마 있지 않아서 답장이 왔다.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냐는 사장님의 답장에 그런 건 아니라고 그냥 대충 사정이 생겼다고 둘러댔다. 그러니 잘 해결하고 내일 보자는 사장님의 답장이 왔다. 후, 왠지 거짓말을 해서 죄송했지만 별수 없었다. 이 부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어려운 건 없을 테니. 가요, 가. 내 승낙에 우는 얼굴을 지우고 배시시 눈웃음을 짓는 아이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시동을 거는 아저씨의 웃는 눈매가 룸미러로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닮아 소름이 오소소 돋을 뻔했다.










아저씨가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주먹밥 가게였다. 설마? 눈치가 빠른 나는 간판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아저씨 친구가 하는 가게가 여기라는 것을. 가게를 들어가기 전부터 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아저씨 친구를 만난다니.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온갖 잡생각이 들고 걱정이 되어서 얼음장처럼 서 있으니 아저씨가 허리를 숙여서 내 얼굴을 살핀다.



“왜 그래."

“…여기 아저씨 친구 가게죠.”

“응.”

“그.. 괜찮아요?”

“뭐가.”

“저희.. 막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죠..?”



내 말에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던 아저씨가 가게 안을 슬쩍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 어때. 내 머리를 가볍게 흐트리던 아저씨가 뒷좌석 문을 열어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아저씨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발버둥을 치더니 내려달라고 한다. 그 힘에 이기지 못한 아저씨가 아이를 내려주니 내게 와서는 다리에 찰싹 붙는다.



“누나랑 손자블래.”

“누나랑 손 잡을 거야?”

“웅!”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무장해제되는 기분이었다. 진짜 천사가 따로 없었다. 나중에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는 또 얼마나 예쁠까. 허리를 조금 숙여서 아이의 손을 잡으니 뒤에서 아저씨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아이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콩 쥐어박고는 우리를 지나쳐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섰을 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사람들도 북적이는 게 맛집인가 싶었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인데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었다. 어서오이소~ 성큼성큼 어딘가로 걸어가는 아저씨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웬 덩치가 큰 사람과 인사를 한다. 아, 저 사람이 아저씨 친구분인가.



“갑자기 연락도 없이 뭐고.”

“저녁 먹으러 왔어.”

“혼자?”

“아니.”



보시다시피. 일행이 있다는 뉘앙스에 남자는 옆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내게 시선을 둔다. 나를 보는 눈에 무수히 많은 물음표가 따르는 게 보였다. 왠지 부담스러웠다.



“누고?”

“나중에 설명할게.”

“땀쫀.”

“오, 리틀스나 왔나.”



저보다 한참이나 큰 남자를 목이 꺾이게 올려다보던 아이가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남자는 맑게 웃으며 아이를 안고 부둥부둥 해주었다. 리틀스나, 니는 갈수록 애비 얼굴 판박이가. 남자가 아이의 볼따구를 살짝 꼬집으니 아이가 아야하며 자그마한 손으로 자기의 볼따구를 매만지는 게 보였다. 그러다 나에게로 팔을 뻗는다. 누나하테 갈래. 갑자기 나에게로 쏟아지는 여섯개의 시선에 당황하여 어버버하다가 아이에게 팔을 뻗어서 품에 안았다. 아이가 품에서 떠나자 비어있던 손이 민망한 듯 관자놀이를 긁적이던 남자가 비어있는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친구가 하는 가게라 자주 왔던 건지 주문을 할 때도 항상 먹던 걸로 달라고 했다. 4인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내 앞에 앉아있는 아저씨의 표정이 심히 좋지가 않아 보였다. 그니까 그건 왠지,



“누나가 먹여조.”

“내가 먹여줄 땐 지가 알아서 먹겠다고 떼쓰더니.”



아마 질투가 나서겠지. 나한테 아들을 뺏긴 것 같아서려나. 나름 귀여운 아저씨의 질투에 웃음이 나왔다. 진짜 아들바보가 따로 없네. 그런 아저씨의 마음을 모르는지 아이는 밥을 먹는 내내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한창 바삐 돌아가던 가게가 한적해지고, 아저씨 친구가 빈자리에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아저씨를 바라보던 남자는 아저씨의 불만가득한 눈빛이 닿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밥을 오물거리고 먹던 아이를 한번 보고 다시 아저씨를 보다가 마지막 시선은 내게 오래 닿아있었다. 그리곤 이내 다시 아저씨에게로 옮겨졌다.



“니 지금 질투하나.”

“내가 왜.”

“니 눈깔에서 곧 레이저 나올라칸다.”



친구의 말에 아저씨가 남자를 사납게 째려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서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오물거리며 밥을 먹는 아이를 보곤 물이라도 마시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심히 언짢은 표정을 하고선 삐딱하게 바라보는 게 꼭 질투를 하는 거 같아서, 그래서 귀여웠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던 우리가 시끌벅적 해진 건 밥을 다 먹은 아이의 폭탄발언 때문이었다. 그 큰 주먹밥 하나를 다 해치운 아이가 물을 마시다 말고 입을 뗐다.



“압빠.”

“왜.”

“나 결심해떠.”

“뭘.”

“이토쨩 누나랑 겨론할래.”



아이의 말에 3초 동안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그러다 동시다발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저씨 친구는 뭐가 그리 웃긴지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까지 웃으셨고, 나 또한 아이의 깜찍한 발언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딱 한 사람 빼고. 유이토의 말에 아저씨의 한 쪽 눈썹이 들썩이며 표정이 구겨졌다. 눈빛으로 한 대 치겠다는 말이 지금이랑 딱맞아 떨어졌다. 계속해서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아저씨 때문에 먹은 게 체할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언짢은 얼굴을 지워내고 온화하게 바뀌어 눈매를 살살 접는 아저씨가 아이를 바라보더니 입을 뗐다.



“너 누나랑 결혼 못해.”

“…왜여?”

“누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순진하게 왜냐고 묻던 아이가 아저씨의 말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상처를 받은 것처럼 곧 있으면 뿌엥 울기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을 보다가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맞잖아’라며 여유로이 웃어보인다. 그에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 부채질을 하다가 아저씨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흥미롭다는 듯 아저씨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뭔가 알겠다는 뉘앙스로 고개를 끄덕여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러모로 불편했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이는 먼저 차에 올라탔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달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울다가 지쳐서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나온 아저씨가 카시트에 아이를 앉혀서 벨트를 매주더니 잠깐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가게 앞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문득 아저씨의 학창 시절이 궁금했다. 친구랑 있을 땐 또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머리를 쓸어넘기며 미간을 찌푸리는 아저씨도, 웃으며 친구의 명치를 살짝 치는 아저씨도, 차에 있는 나를 흘깃 바라보는 아저씨도, 다 너무 좋았다. 이 정도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은데.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리 깊이 빠질 수 있다니. 세상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늦은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집 앞에 도착하고 운전석을 살짝 젖히던 아저씨가 몸을 틀더니 아이의 자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까는 이를 바득 갈면서 기싸움 하기 바쁘더니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라고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귀엽지.”

“네. 동생 삶고 싶어요….”

“이렇게 자고 있는 거 보면 천사같아.”

“…응. 너무 예뻐요.”

“응, 예뻐.”



아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아저씨를 바라보는데 언제부터인지 턱을 괴곤 나를 보고있었다. 갑자기 맞닿은 시선에 공기가 답답해져 부채질을 하다가 창문을 내리려하니 손목을 잡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크게 뜨니 올곧은 시선이 나를 담아낸다. 애 감기 걸려. 아, 그랬지. 봄이라고 해도 아직 밤공기는 쌀쌀하니. 게다가 바로 어제까지 열감에 고생하던 아이였으니까. 버튼에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잡힌 손목을 놔주지 않던 아저씨 때문에, 계속해서 진득하니 맞춰오는 시선으로 인해 부끄러웠다. 아저씨의 눈을 피해 요리조리 시선을 돌리는 나를 알아챘는지 피식 웃던 아저씨가 손을 풀고는 깍지를 잡아 껴왔다. 진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곤히 잠든 아이 앞에서 이러는 게 나를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건 상관 없다는 듯 깍지를 낀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부드럽게 매만지던 아저씨가 아이에게 시선을 옮기곤 입을 열었다.



“질투 나더라.”

“…그쵸. 아무래도 종일 너무 저한테만 붙어있어서….”

“아니, 말고.”



아저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박거리고 있으니 피식 웃는다. 자꾸 너 독차지하려고 하잖아. 아…. 그런 의미였구나. 잠깐, 그렇다는 건…….



“내 아들이어도 뺏기는 건 싫어.”

“…….”

“확실히 해. 나야, 얘야.”

“…무슨 질문이 그래요. 어린 애도 아니고.”

“잔말 말고. 대답은.”

“그야….”



당연히 아저씨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니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웃는다.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적인 사람, 질투도 할 줄 아는 사람. 이러니 안 좋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싫어할 틈을 주면 좋을 텐데.

시간이 갈수록 아저씨에 대한 마음이 커져만 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저 말에 의미부여 같은 걸 해도 될까. 지금은 아저씨를 향한 마음이 내 쪽으로 더 기울어 있을지라도,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평행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은 밤이었다. 달이 참 밝은.






여기까지는 끄적여놨던지라 약간 수정만해서 빠르게 올려봅니다...

다음화부터는 조금 느리게 굴러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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