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전에 이미 같은 학교가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후쿠토미와의 관계가 돈독했던 것 같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잘 모르겠지만, 둘 사이에 타인이 끼어들 수 없는 유대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어도 그걸 피부로 느끼게 되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라이벌 학교의 주장이었고, 자신은 후쿠토미가 이끄는 하코네 팀의 주전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순전히 후쿠토미 탓에 로드를 시작한 자신이기에, 후쿠토미의 존재란 그렇게 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알을 막 깨고 나온 새끼새가 어미새를 인식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자신이 어둠을 뚫고 나와서 마주한 후쿠토미는 단순한 팀메이트나 주장의 의미를 넘어서는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아라키타는 그것에 대해 부정할 생각도, 다르게 포장할 생각도 없었다.
자신에게는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매달릴 것이 필요했고, 그것을 인터하이 출전으로 정했으며, 그 전에 온갖 대회에서 우승을 쟁취해 냄으로서 주의의 걱정 어린 시선들과 비난 가득한 시선들을 묵사발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2번, 후쿠토미의 어시스트 자리.
하지만 후쿠토미에게는 자신 외에도 각자 다른 신뢰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앞을 달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집어 져지를 잡아 당겨버렸던 킨조 신고와의 관계는 하코네의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단순한 라이벌에 대한 경의라고 하기엔 어딘가 달랐다.

무튼, 킨조 신고가 아라키타에게 그리 편하지 않은 상대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가능한 마주치지 않으려 했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자전거 경기부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이번엔 도피하지 않았다. 후쿠토미를 1등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해서 로드를 포기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건 자신을 로드의 길로 이끌어준 후쿠토미를 위해서도 해서는 안 될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그런 것 치고 용케 후쿠토미와 같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자신에게도 신념 정도는 있다. 진학하고 싶은 과가 없는데, 오로지 후쿠토미와 함께 로드를 타겠다는 이유 하나로 같은 학교로 진학하는 바보는 아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온 학교이기에 후쿠토미와 라이벌로 맞붙게 된다면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력을 다해 자신이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 몇 달 전까지 라이벌이었던 사람이라니? 누구라도 마음 너그러이 한 번에 받아들일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게 합리화를 시키며 아라키타는 자신은 나쁘지 않다고 몇 번이나 되뇌였다.

올곧은 인상대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 오는 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어서 인사를 받긴 하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은 없었다.

지금의 자신에게 자전거 말고는 의미 있는 게 없으니 열심히 하고 싶은데, 연습하는 내내 불편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연습 매뉴얼은 습관에 가깝게 몸에 배여 있어서 실수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지치곤 했다. 체력 관리를 한다고 하는데도 이번 환절기엔 결국 감기까지 거하게 걸려서, 선배들에게 연습금지까지 당했다.
연습금지를 당한다고 해서 진짜 연습을 안 할 리 없단 걸 알 텐데도 선배들은 그저 그 뿐이었다. 새삼 하코네가 다르긴 다르구나란 걸 느끼며 병원을 다니며 개인연습을 진행했다.


불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인지, 겨우 감기가 나아서 연습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했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로드가 날씨나 상황을 가리는 경기는 아니지만 이제 겨우 감기가 나았는데 다시 걸리면 곤란하단 이유로 연습 금지가 이어졌다.

실외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모두가 밖으로 나간 뒤 혼자 실내 연습을 하고 있는데, 드르륵-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혹시라도 중간에 리타이어 하고 돌아온 선배일까 싶어 문을 바라봤던 아라키타는 곧바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킨조였다.

“연습…금지일 텐데.”

“…예컨대, 비만 안 맞으면 되는 거잖아?”

“흠…”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어져서 아라키타는 연습을 그만두고 샤워실로 향했다. 비에 흠뻑 젖은 주제에 샤워실로 직행하지 않은 킨조에게선 비 비린내가 났다. 낙차하거나 어디 아픈 곳은 없는 것 같은데 왜 혼자 중간에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 락커룸에 들어서자, 언제-어디에서 샤워를 했는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킨조가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걸 사이는 아니란 생각에 후딱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기고 있으려니 시선이 느껴진다. 킨조와 있을 때면 종종 이럴 때가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없었어서, 뭐라고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대화가 있는 사이도 아니고, 친근하게 서로를 대하는 사이도 아닌데 뭘 바라고 이러는 걸까.

“아라키타는 말야.”

“…어?”

“좀 과하게 말랐단 느낌이 들어.”

“하?”

“후쿠토미에게 듣긴 했지만… 너무 말라서 감기에 잘 걸린다며?”

“……”

언제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걸까. 후쿠토미가 자신에 대해 킨조에게 저렇게 말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합죽이 마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기뻐해야 할지, 불편한 상대에게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화를 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라이벌 학교의 에이스였던 내가 불편하단 건 알겠지만”

“……”

“그래도 이제는 팀 메이트니까 잘 지내보자고.”

“…내, 내가 언제…”

“지금도, 나랑 눈 안 마주치잖아.”

“……”

정곡을 찔려 할 말을 잃어버렸다. 돌길의 뱀이라더니 정말이지 뱀처럼 혓바닥을 잘도 놀린다. 비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킨조를 상대로는 쉽지가 않아서. 평소 같으면 진즉에 튀어나왔어야 할 거친 말들도 모두 목구멍 너머로 다시 넘겨 버리고, 눈을 옆으로 돌리자… 어딘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마치미야랑은 안 그러면서.”

“여기서 그 새끼 이야기가 왜 나…”

“거봐, 자연스럽게 욕도 하고.”

“……”

이번에야 말로 정말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어서, 아라키타는 입술을 꾹 다물고 가방에 짐을 마구 쑤셔 넣기 시작했다. 더는 불편해서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좁은 공간에 -하코네에 비하면 좁다- 저 불편한 상대와 더 있다간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속에 든 모든 것을 게워낼 지도 모른다.

“비 아직 쏟아져.”

“근데?”

“우산은 있어?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없는 것 같던데.”

“아, 씨발…”

킨조의 말 대로였다. 오늘 아침은 다시없을 만큼 날씨가 좋았다. 당장이라도 도시락이라도 싸들고 하코네 애들을 모두 불러다가 놀러가고 싶을 만큼. 아침 날씨가 너무나 화창했던 탓에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룰루랄라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계절이 되었단 것을 잊은 자신이 바보였다.
여전히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아라키타는 부실을 나서지도 못하고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누구에게 우산을 빌릴 것인가. 빌리지 않더라도 우산을 살 수 있는 편의점까지는 어떻게 갈 것인가. 연습도 참여하지 못한 이상, 비를 맞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마치미야는 우산을 가지고 왔을까? 그 녀석은 그럴 놈이 못 된다. 비를 사발로 맞고 다녀도 감기라곤 털끝도 걸리지 않는 바보 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고 선배들에게 빌리는 것도 애매했다. 우산을 빌리거나 함께 쓰고 편의점까지 갈만큼 교류가 있는 선배가 없었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고민해?”

“…하? 그런 적 없거든?”

“됐고, 나갈 거면 나랑 같이 가.”

“뭐?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산 없잖아. 비 맞는 건 싫을 거고.”

“……”

“나 우산 있어.”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고민해 봤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단정한 얼굴로, 당당하게 우산을 꺼내든 킨조의 모습에, 아라키타는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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