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엘은 그렇게 잠들어 있는 엘을 내려다보다가 리우루스 모르게 조용히 성을 빠져나왔다. 자신에게는 힘이 없었다. 센이 쓸 수 있었던 예지력은 지젤에게 센의 기억을 넘겨주었을 때 사라졌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었던 천사의 권능 마저도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사라졌다.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엘이 택한 방법은 자신들의 성질과 정반대에 서 있는 존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지옥의 불구덩이.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놈의 불구덩이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천국도 지옥도 결국 우리가 느끼는 감정상태일 뿐이다. 지금의 우리엘의 상태를 표현할 단어가 저 말 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 홀로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꼴이었다. 그들과 계약을 맺으면 그녀는 죽음 이후에 천사로 복귀할 수 없다. 천사가 되려면 신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그 상태는 수많은 생을 겪은 뒤에 진정으로 찾아온다. 지금 우리엘은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호오~?”

 낮은 음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우리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능글맞은 새끼를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는데.

 짝 짝 짝 짝 짝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박수 소리에 약간의 짜증이 일었다. 

 “우리 애들이 인간계로 못나가도록 지키던 분이 왜 그런꼴로 이런 누추한 곳에?”

 “……”

 “아! 드디어 타락할 마음이 든 건가?”

 “계약하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루시퍼의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마치 방금 미친 소리를 들었다는 것 마냥 눈을 크게 뜬 루시퍼가 물었다.

 “미친 건가?”

 어쩌면 미친 게 맞을 수도 있다고 우리엘은 생각했다. 악마와 계약 맺은 영혼은 구속당한다. 악마가 풀어주지 않는 한 마음 대로 환생하지 못한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엘에 대한 욕망을 멈출수가 없었다. 노예가 되어서라도 그녀를 차지하고 싶었다.

 “제 정신이다.”

 “아! 혹시 그 천사 때문인가.”

 “…뭐라고?”

 “흐음~”

 루시퍼는 재미난 걸 발견했다는 듯 낮게 웃었다. 저 잘난 웃음에 우리엘의 표정이 점점 썩어 들어갔다. 저 찬란한 금발이 무색할 만큼 그가 짖는 표정과 말들은 악마 그 자체였다. 가만히 있으면 천사로 보이는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벽안은 푸석거렸다. 아무 희망도 없는 자의 눈이었다. 죽은 생선의 눈깔마냥 낮게 가라앉은 루시퍼의 벽안을 보다가 갑작스레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낀 우리엘이 잠깐 휘청거렸다. 그 사이에 루시퍼가 우리엘의 허리를 잡고선 제 몸에 밀착시키며 예쁜 얼굴을 들이밀고 맑게 웃었다. 곧이어 들리는 음성은 차가운 뱀이 다리를 휘감아 올라오는 것 마냥 소름끼쳤다.

 “나야 좋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글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좋아서 경험하고 싶은 세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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