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가 끝나고 나온 여주가 앞에 주차해놓은 익숙한 차를 발견하고 문을 열겠지. 어, 이 비서님? 운전석에 나재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비서가 있어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단 올라탔어.





“회의가 길어지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아아- 맞아. 이 비서님 휴가 잘 다녀오셨어요? 어땠어요?”


“하...”





여주의 질문에 깊은 한숨을 쉬는 이 비서. 앗, 왜 그러시지. 뭐가 잘못됐나?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신호가 걸려 차를 정지시킨 이 비서가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김여주씨.”


“ㄴ, 네?”


“저 좀 살려주세요.”





갑작스러운 이 비서의 구조요청에 여주가 당황하겠지. 왜, 왜요? 뭔데요? 어디 아프세요? 곧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물으니 이 비서가 지금은 괜찮은데 이대로라면 곧 아플 것 같다고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며 여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신호가 바뀌어 차를 출발하면서 이 비서가 입을 열겠지..





여주가 회사에 찾아가 이 비서에게 메모를 남겼을 때, 그때 직원에게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원래 이 비서하고 알던 사이고 꼭 할 말이 있다는 말과 함께 메모를 꼭! 전달해달라고 한 게 회사에 얘기가 퍼지게 된 거야. 근데 그게...





“그러니까, 저랑 이 비서님 소문이 났다는 거예요?”


“네.”





직원은 이 비서님을 찾는 사람이 왔었는데 무슨 할 말인지는 몰라도 정말 간절해 보이더라. 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여주가 헤어진 전 애인이고 이 비서를 붙잡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회사까지 찾아왔다고 퍼진 거지.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최 비서가





“이사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이 비서님 오래 사귄 여자친구 분 계셨다는 거?”


“그건 또 무슨 헛소리지.”


“아, 이사님도 알지 못하도록 철두철미하게 연애 하셨나보네요!”





역시 이 비서님은 일도 사랑도 깔끔하게 하시네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님이세요. 그럼 나재민 살짝 미간 찌푸리면서 최 비서 쳐다보겠지. 대체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듣고 와서 얘기하지? 누구보다 이 비서랑 제일 많이 붙어있는 사람이 나재민인데 그 말을 믿겠어? 또 그게 사실이라도 그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걸 신경 쓰겠어.





눈치 없는 최 비서. 나재민이 쳐다보는 게 계속 얘기해보라는 뜻인 줄 알고 동료들에게 들은 얘기를 주절주절 말해주겠지. 원래 소문은 사소하고 쓸데없는 거에서 부푸는 거니까, 관심 없어서 한귀로 듣고 흘리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재민.





“근데 최근에 좀 다투셨나, 헤어지셨나... 여자친구 분이 회사까지 찾아오시고 메모까지 남기고 가셨다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전날 여주와 했던 대화가 떠오르겠지.





‘이사님 출장 가신다는 건 제가 깜빡 잊어버렸지, 연락은 또 안 되지. 그래서 회사에 갔더니 약속 안 잡으면 못 만난다고 하고.’


‘이사님한테 메모 남기면 또 전달이 안 될 것 같아서 이 비서님한테 메모 남기고 왔다니까요.’





평소 이 비서가 여주 보는 것도 아까워서 집에도 못 들어오게 하는 나재민인데, 회사에 여주가 이 비서의 구 애인이라는 소문을 들었으니 얼마나 눈이 돌아가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이 비서는 회사에 출근을 했겠지.





근데 오자마자 다른 직원들이 이사님이 이 비서님 출근하시면 바로 오시라고 하셨다고 말해 주는거야. 그래요? 하고 들어가려다가





“저 휴가 다녀온 사이에 별일은 없었죠?”


“저희는 별일 없죠. 이 비서님은... 아니, 아닙니다.”


“?”





고개 한번 갸웃거리고서는 노크를 하고 전무실로 들어가겠지. 어, 이 비서 왔어? 웃으면서 이 비서를 반겨주는 나재민. 근데 웃는 게 뭔가 이상해. 묘하게 소름끼친달까.





“아침부터 저를 왜 그렇게 보시는지 물어도 될까요?”


“어어, 아니야. 반가워서 그래. 휴가는 잘 다녀왔어?”


“네. 덕분에 편하게 쉬고 왔습니다.”


“그래. 편하게 잘 쉬었나보네. 근데 휴가 가있는 동안 연락이 안 되더라?”


“혹시 저 없는 동안 최 비서가 실수를 했나요?”


“어어, 아냐. 최 비서도 나름 열심히 했어.”





간신히 얻은 휴가라서 그동안 방해 받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서 나재민과 최 비서 연락처 잠시 차단했었어. 이사님 옆에서 잘 보필할 수 있다고 자기만 믿어 달래는 최 비서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휴가에 정신이 팔려 애써 흐린 눈으로 판단한 것도 제 탓이지 뭐. 속으로 후회하고 있는데 나재민은 계속 웃으며 쳐다보다가 넌지시 얘기를 꺼내겠지.





“이 비서는 본인 편하게 쉬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퍼진 소문은 어떻게 책임질 거야?”


“소문이요? 무슨 소문 말입니까?”


“우리 여주씨가 네 전 애인이라고 회사에 소문났더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문이네요.”





그치. 말도 안 되는 소문이지? 그렇게 전무실에서 나온 이 비서. 제대로 와전된 소문 정정하려고 했지만 소문이 퍼지는 건 쉬워도 가라앉히는 건 어렵지.





“그럼 그 소문 때문에 이사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막 갈궈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제 맘이 더 편하겠죠.”


“......예?”


“평소처럼 욕이라도 하시면 모르겠는데 계속 저만 보면 웃으신다고요!”





이렇게 이사님께 욕이 듣고 싶은 건 처음입니다. 이후로 이 비서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친절한 미소로 답하는 나재민 때문에 이 비서만 죽을 맛인 거야. 눈치백단 이 비서가 그 미소의 뜻을 모르겠어? 역으로 눈치 주는 거잖아.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아닙니다.”





이 비서도 며칠째 그런 상황이라 답답함에 여주에게 말을 한 거였어. 다 말하고 나서야 괜히 말했나 싶은 거지. 소문이 가라앉을 때까지 제가 버텨볼게요. 그냥 김여주씨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고 넘어가주세요. 하는 거지





“그래도 저 때문에 생긴 일인데...”


“김여주씨까지 나서게 되시면... 괜히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어요.”





이 비서의 말이 바로 이해가 되는 여주. 여주랑 이 비서가 엮인 소문만으로도 그러는데 여주가 직접 나서게 된다면... 이 비서 진짜 해외로 발령 날지도 몰라. 여주 입술만 뻥끗 거리다가 힘내세요 이 비서님. 작게 한마디 하면 네. 감사합니다. 하는 대답이 들려오겠지.






***






“ㅇ, 이 비서님.”


“네. 김여주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잠시만 계세요. 금방 끝내겠습니다.”





붉어진 여주의 얼굴, 떨리는 목소리와 갈 곳 잃은 눈동자. 그리고...





촤르르륵- 찰칵,찰칵.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여주를 찍고 있는 이 비서.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창피함에 여주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물으면 이사님이 시키셔서요. 여주와 반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 하는거지. 회의가 꽤 길어져 점심은 둘이 먹어야겠다는 이 비서의 말에 그냥 따라왔는데





“제발 그만요... 이제 그만 찍으라고요...”


“네. 이제 다 찍었습니다.”





시킨 음식이 나오자마자 갑자기 카메라를 들더니 여주를 찍는 거야. 이따 나재민한테 보고하면서 보여주려고. 뭐, 사진이야 찍을 수 있지. 근데 그게 대포 카메라면 말이 좀 달라지지. 또 여주가 놀란 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야.





“여주씨. 이건요? 이것도 여주씨가 입으면 예쁠 것 같은데.”


“네? 아뇨. 저는...”





회의가 끝나고 온 나재민. 그대로 여주랑 백화점에 들르더니 여러 벌의 원피스를 고르며 여주에게 권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이걸 왜 사주지? 나 옷 많은데? 잠깐 숨을 돌리던 여주가 혼자 중얼거리니





“다음 주에 열리는 A기업 회장님 생일 만찬에 같이 가시기로 하셨다면서요.”


“제가요?”


“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생각을 해보는데 엊그제 나재민이 너무 지나가듯이 물었던 게 생각이 나.





‘여주씨 저 아는 사람 다음 주에 생일파티 한다는데 같이 갈래요?’


‘생일파티요? 제가 같이 가도 돼요?’


‘네.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그냥 가볍게 가서 축하만 해주고 오면 되거든요. 맛있는 거 먹고.’


‘어, 그럼 그래요.’





아는 사람이라며. 부담 갖지 말라며. 가벼운 생일 파티라며! 내가 요새 너무 그러려니 하고 넘겼나, 이사님의 스케일을 나는 감당을 못하는데. 여주가 뒤늦게 안 가면 안 될까요? 하며 이 비서에게 말해보겠지.





“그러기엔 이미 파트너를 대동해서 가신다고 전달해버려서요.”


“그 사이에 다른 파트너를 구하는 건...?”


“김여주씨. 이사님과 쓴 계약서를 잊으신 건 아니죠?”


“기억하고 있죠. 알고 있어요.”





처음부터 그런 자리였다고 말했으면 간다고 안했을 거예요. 저도 부담스럽다고요. 계약서를 쓸 때만 해도 여주는 가벼운 친목 모임 정도로 생각했거든. 게다가 회장 생일 만찬이면 고위급 인사들도 올 텐데 그런 자리를 내가 어떻게 가냐며 우는 소리로 얘기하니





“아, 그런 거라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


“개인적으로 여는 만찬 자리라고 하셨거든요.”





김여주씨가 생각하시는 그런 무거운 자리는 아니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편하게 다녀오세요. 여주의 걱정도 약간 섞어 말해주는 이 비서에게 감동 먹은 여주가 이 비서님... 하고 쳐다봤어. 그럼 여전히 무심한 눈빛으로 여주를 보고서는





“그리고 만약 그런 큰 자리였으면 제가 반대했을 겁니다.”


“네?”


“괜히 김여주씨가 엮어봤자 좋은 거 하나도 없으니까요.”


“...예?”


“둘이 뭐해?”





나 빼고 사이좋게 속닥거리고 있네? 나재민의 말에 이 비서 바로 슥- 다가가더니 김여주씨가 아까 찍은 사진 좀 보여 달라고 하셔서요. 몇 개는 지워달라고 하시길래 이사님한테 허락 받아야 된다고 얘기하는 중이었습니다. 들고 있던 카메라 화면을 보여주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겠지.





저기요. 이 비서님. 님 도덕적인 사람이라면서요.





“여주씨 옷은 이렇게 사면 되겠죠? 어때요?”


“뭘 그렇게 많이... 아, 그게 아니지. 이런 거 필요 없다고요!”


“왜요? 내가 사주고 싶은데?”


“이런 거 그만 사주기로 했잖아요! 그 전에 받은 옷들 중에 골라서 입고 가면 되죠!”


“그때는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한 거죠.”





이제는 상관 없잖아요. 보관할 곳이 부족하지 않을텐데? 아닌가? 앞으로 채울 거 생각하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하나. 갑자기 얘기가 왜 거기로 튀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사를 가더라도 제가 가야죠. 그리고 지지 않는 김여주.





“그러고 보니 이사님이 집 알아봐준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어요?”


“......”


“이 비서님? 왜 눈을 피하세요?”





ㅅ, 사진 찍어드릴까요? 빠르게 말 돌리며 카메라를 드는 이 비서. 아, 싫어요! 그럼 이제 그만 찍으라며 여주가 팔을 올려 얼굴을 가리겠지. 이사님 얘기 다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눈빛으로 얘기해도 나재민 계속 다른 곳만 보며 딴청을 피우는거야.






***






털썩, 집으로 돌아온 여주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대자로 드러눕겠지. 가볍게 점심 먹자고 해서 나간 거였는데. 아, 기빨려. 힘들어.





'괜히 김여주씨가 엮어봤자 좋은 거 하나도 없으니까요.'





찝찝한 마음에 계속 이 비서가 한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던 여주. 이 비서는 나재민을 옆에서 보필하는 사람이니까, 그 말은 나재민을 생각해서 한 말이라고 이해를 하는 거지.





가진 것이 많은 이사님. 그런 사람이 가진 게 하나도 없는 나랑 엮이면 당연히 잃을 게 더 많고 괜한 말이 떠돌 수도 있으니까. 여주가 그 말에 기분이 상했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어. 이 비서가 그렇게 말한 걸 이해해. 옆에서 오래 보필한 사람으로서 걱정하는 거니까.





“...치, 그래도 좀...”





그래도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거야. 한참을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여주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겠지. 초콜릿이 어디에 있더라? 선반을 열어 찾던 여주.





“아, 여기 있네.”





나재민이 출장을 다녀오며 초콜릿을 사왔다고 했는데 그게 위스키 초콜릿인거지. 여주가 젤리, 캬라멜, 초콜릿 같은 간식을 좋아하는 거 알아서 사온 거였거든. 대신 한꺼번에 먹지 말고 한두 개씩만 먹으라고 경고를 했었는데





“그래도 이 조그마한 거 몇 개 먹는다고 내가 취할까?”





여주는 원체 술을 안 좋아해서 지금까지 자기 주량이 얼마인지도 몰랐거든. 이때까지만 해도 나재민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얼마나 클지 예상도 못한 채 야금야금 초콜릿 포장을 까서 먹는 거야. 그리고 여주는 그 초콜릿에 완전히 져버렸어. 초콜릿 몇 개에 취기가 올라왔고 조금만 쉬자- 하며 소파에 눕는거야.





“여주씨-”





퇴근한 나재민. 해맑은 목소리로 여주를 부르며 들어왔는데 들려오는 대답이 없길래 다시 한 번 여주를 불러보려다가 소파에 누워있는 여주를 발견하겠지.





“......여주씨?”





누워만 있으려고 했는데 결국 잠에 들어버린 여주. 나재민은 왜 여기서 자고 있지? 생각하다 앞에 있는 테이블에 흩날려져있는 포장지를 보게 됐어. 아이고... 하더니 닫혀있는 초콜릿 상자를 열어 여주가 몇 개를 먹었는지 확인해보겠지.





“......몇 개 안 먹었는데?”





이거 먹고 취해서 자고 있는건가? 소파가 좁은 것도 아닌데 왜 몸을 웅크려서 불편하게 자는 걸까. 그러면서 자고 있는 여주 보느라 본인도 불편한 자세로 쪼그려 앉겠지. 색색- 거리는 숨소리도 귀여워하며 지켜 보다 편하게 자라고 여주를 조심스레 안아 들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혀주는데





“어, 여주씨 일어났어요?”


“...이사님 페로몬....”


“아, 아. 미안해요. 거둘게요.”





으응- 그 말에 여주가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칭얼거리는 거야.





“너무 진하지만 않으면 돼요.”





저 이사님 페로몬 좋아요. 여주를 보고 느낀 감정이 살랑거리며 퍼지니 당연히 기분 좋을 수 밖에 없지. 







그 모습에 나재민 1차 충격. 아니, 이런 말을 갑자기? 그리고 또 여주가 아직까지 나재민 앞에서 편하게 페로몬을 다 푼 적이 없거든. 어차피 다른 오메가들보다 향이 약하겠지만 여주는 감추는 게 버릇이 된 거라, 근데 지금은...





“...여주씨 술 마시면 경계심 다 무너지는구나.”





여주가 안 들리도록 혼잣말로 말하고서는 여주에게 앞으로 그 초콜릿 먹을 때 딱 2개씩만 먹으라고 당부하겠지. 여주가 네에- 하며 늘어지듯 대답하는 거야.





“근데 이사님. 있잖아요-”


“네-”


“아까 백화점에서 거절한 거 정말 필요 없어서 그랬어요.”





맨날 집 아니면 알바만 하는데 제가 그런 원피스를 입고 어디를 가겠어요. 안 입을 옷 사는 것도 낭비예요 낭비. 취기는 남아있지, 또 자다 깬 거라 뭉그러진 발음으로 조잘조잘 얘기하는데 나재민 그것도 귀여워서 실실 거리며 웃겠지.





“네네. 알겠어요. 그러니까 저 상처받지 말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 자리에서 또 나재민은 여주 마음 약하게 하려고 시무룩한 척을 했던 터라 여주가 지금 하는 말의 뜻을 단번에 이해했어. 여주는 고개를 끄덕이겠지. 아, 진짜 여주씨. 사람 달래주는 것도 이렇게 귀여워서 어떡하지. 이래서 여주씨를 누구한테 보여주기 싫은 거예요. 다 욕심낼까봐. 입 밖으로 못 내뱉을 말, 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빙긋 웃겠지.





“네. 알겠어요. 상처 안 받을게요.”





그렇게 대답하니 여주가 손을 뻗어 나재민 머리를 쓰다듬는 거야. 멀뚱히 쳐다보니 아까 이렇게 해달라면서요. 그 말에 나재민 푸훗, 하고 웃겠지. 아까 백화점에서 애견 유모차를 타고 가는 강아지를 마주쳐 인사 했거든. 아이, 예쁘다- 하며 쓰다듬고 가려는데





‘여주씨 저 좀 서운하네요.’





뜬금없는 말에 여주가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니





‘지나가는 강아지도 그렇게 예뻐하면서...’


‘...예?’


‘왜 나한테는 그렇게 안 해줘요? 나도 여주씨한테 예쁨 받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아니. 그, 강아지 예뻐하는 거 가지고 이러는 거예요?’


‘.....내가 강아지 같이 굴어야 하나?’


‘저는 강아지가 좋은 거지 개 같은 남자는 싫어요.’


‘아- 여주씨한테 예쁨 받기 정말 어렵네요.’





이사님은 참 서운해할 것도 많다- 하며 넘어갔거든. 근데 뭐 까짓것 머리 쓰다듬어 주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또 지금 아니면 못 그럴 거 같아서 한 행동이긴 해. 못 살겠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며 웃던 나재민.





“근데 여주씨. 저는 강아지가 아니잖아요.”





그럼 예뻐하는 방식도 달라야하는 거 아닌가?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거 같다고 생각한 여주가 시선을 내리고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데





“여주씨 자요?”





이렇게 또 바로 잔다고? 아득해지는 정신 너머로 나재민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와. 이사님 제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게요. 근데 지금은 일단은 너무 졸려서 저 좀 잘게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로 여주는 다시 잠에 들겠지. 조심스레 방에서 나온 나재민.





조금 아쉽네. 여주씨가 어떻게 할지 궁금했는데.







“얼마나 큰 보상을 주려고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만들까 우리 여주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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