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은 오래가지 않고 그 모든 것은 한낮의 꿈에 불과했을까.

한 날은 저 멀리 바다라는 곳에서 찾아온 어느 영물의 말로 부 터 그들의 불행이 시작 되었다.

"용왕께서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서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저희 신하들은 하루하루를 시름을 앓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도 선군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고 혹여나 선군이라면 무슨 방도가 있으실까. 도움을 얻을 수 없을까 싶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만약 용왕님이 그리 되신다면... 앞으로 용궁은 살아갈 희망은 없습니다!! 제발..제발 도와주세요!!!"

그 영물이 돌려 말하긴 하였으나 그것은 필히 초만녕의 영기(靈氣)를 달라는 소리였다.

묵연은 그 소리에 초만녕을 붙잡고 소리쳤다.

"안 돼요..!!"

"괜찮다. 그 조금 영기를 나누어 준다고 해서 큰 해가 되지 않아."

물론 보통의 초만녕 정도의 영물이라면 그러했지만 본래 초만녕은 태어날 때 부 터 영핵이 약했고 그로 인해 영기를 조금만 다른 이에게 넘겨주어도 그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영물이 말하는 용왕의 상태에서 건내달라고 부탁하는 영기의 양이 필히 '조금'은 아닐 테지만 구태여 초만녕은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럼에도 묵연이 초만녕의 소매를 붙든 손을 놓지 않자 결국 초만녕은 손에 힘을 실어 그의 손을 떼어 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짝!!

생각 보다 어린 묵연의 손아귀의 힘은 강했고 그로 인해 그만 실수로 묵연의 뺨을 때려버린 초만녕은 저를 향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묵연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 거리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리곤 이내 엄한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며 묵연을 향해 소리쳤다.

"남을 돌보지 않는데 어떻게 나를 돌볼 것이며 나만을 돌보고는 결코 남을 구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손 놓거라!"

하지만 묵연은 한사코 그를 놓지 않았다.

결국 초만녕은 그의 손아귀에서 금빛 물결을 일렁 거리며 천문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곤 그손을 놓을 때까지 천문으로 그를 채찍질 하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묵연은 기절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고 그렇게 기절한 묵연을 뒤로 한 채로 초만녕은  그 자라 형태를 한 영물의 뒤를 쫓았다.

.

.

.

"비켜!"

"하... 하지만..."

초만녕은 주위가 소란스러워짐에 따라 자연히 눈을 떴다.

어젯밤 일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미친듯한 두통에 더해 그는 아직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갑작스럽게도 초만녕의 몸에 한기에 돌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정신을 차린 그는 습관적으로 침상 옆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없었다. 

늘 익숙했던 그림자가

어제까지만 해도 늘 곁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고 고집을 부리던 그였는데...
초만녕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급하게 일어나려했다.

그러나 그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고 그에 한번 미간을 찌푸린 그는 저의 다리를 한번 내려다 보곤 머리부터 온몸이 새빨개지다 못해 홍당무가 될 뻔하였다.

새하얀 피부와 대비하여 솟아난 울긋불긋한 붉은 반점들은 어젯밤의 정사를 대변했다.

묵연이 초만녕의 허리를 따라 입술을 지분대면 초만녕은 그에 맞추어 짤게 떨어댔고 그가 이어 허벅지와 은밀한 골짜기 사이로 내려왔을 때는 그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묵연의 뜨거운 숨과 신음 사이로 저는 환희에 젖어 들었고 초만녕과 그는 수없이 정을 나누었다.

... 하지만 그런 회상을 하기도 무섭게 갑자기 처소의 문이 소란스럽게 열리더니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그리고 아리따운 여인이 들어와 바닥에 주저앉은 그를 내려다 보았다.

여인은 경멸인듯 혹은 분노인듯 질투인듯 복잡한 감정을 담아 부들부들 떨어대며 기어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런 더러운... "

더러워?

초만녕은 그녀의 말에 머리를 세게 맞은 듯 온통 머리가 새하얘졌다.

분명 자신이 못났고 못생겼으며 뭐 하나도 내세울 만한 게 없는 존재인 것은 초만녕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럽다니.

그는 이런 쪽으로는 단 한 번도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물론 이런 욕을 들어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 묵연, 답선군 마저도 저를 향해 '더럽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늘 그를 뼈까지 씹어먹지 못해 안달 난 그였지만 그의 식해 저 깊은 곳에서도 언제나 초만녕은 머리를 굽혀서는 안 될, 그 누구도 더럽히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다.

하나 이 순간 초만녕은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여인, 추동은 그제야 화려한 가면을 내버려 두곤 그 독사 같은 얼굴을 드러내 친히 초만녕의 손톱 하나하나를 뽑았다.

피가 낭자했고 들려오는 것은 오직 소름 끼쳐대는 살점이 뽑혀 나가는 소리 뿐이었다.

.

.

.

황제는 그날 이후 홍련수사를 들락거리지 않았다.

한 날 황후, 추동은 그제야 이 미친 황제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고는 한껏 교태를 부려가며 입을 열었더랬다.

"연아... 이제 그 용궁의 왕자는 죽여도 되지 않을까?"

"뭐?" 그 순간 멍하게 풀려있던 답선군의 얼굴 위로는 살기가 드리워졌다.

"폐... 폐하..! 아니 연아... 내말은... "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묵연은 환히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추동... 괜찮아. 끝까지 얘기해 봐라. 그래... 이참에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나 해보자. 본좌가 어찌하면 좋겠다고...? 응?"

추동은 그제야 다시 부드러워진 답선군을 보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나갔다.

"연아... 용궁의 왕족의 씨를 남겨 둬서 좋을 건 없습니.. 아니 없어... 이참에 후환을 싹 없애 버리는 게 좋... 좋을 것 같아... "

"흠... 그리고?"

"그... 그리고... 감히... 황제의 옥체에 손을 댄 것에 엄히 죄를 물어 그 왕자는..."

"추동, 얼마 전 본좌가 홍련수사에서 발을 뗐을 무렵... 누군가 왕자의 몸에 손을 댔더군." 추동이 말을 다 잇기도 전 묵연은 그녀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그... 그건!! 감히 그 왕자가 폐하의 옥체에 손을 데었고 그... 그래서 소첩이 벌... 벌을 내린 것이지않습니까...!"

"그래서... 분명 폐하께서도 잘하셨다고...!" 추동은 팔다리가 사시나무가 될 듯이 떨어 가면서도 한낱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날 좋아한다. 그는 절대로 '은인'을 버리지 못할 거야!

"그래... 내가 그랬다고... " 마침내 묵연이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추동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는 밝게 웃으며 입을 떼려 하였다. 

하지만.....

".... 본좌는 달갑지가 않아."

".... 그래. 본좌는 달갑지가 않더군."

"...! 폐하!"

그와 동시에 묵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 쳤다.

"여봐라! 당장 황후를 산채로 기름통에 쳐 넣어라!"

그렇게 추동은 시위에게 끌려가면서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폐하..!"

"페하..!!!"

하지만 무정한 답선군은 그녀에게 티끌만큼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마지막 발악인 양  소리를 쳤댔더랬다.

"---"

.

.

.

"폐하...! 저는 폐하의 진짜 은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폐하의 진짜 은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칼을 뽑는 답선군의 머릿속에 수천번도 끊임없이 추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답선군은 광기로 물든 얼굴을 하고 서는 맥도를 사방으로 휘둘러 대었다.

"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사방이 온통 비명소리로 가득 찬 가운데 오직 홀로, 답선군만이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폐하께서 그리도 증오해 마지않으시던 그 왕자가!! 폐하의 은인입니다.."

"뭐....?"

"그 용궁의 왕자,  초 비 , 초. 만. 녕 !!"


"묵미우!!! "

그 날카롭고도 애처롭기도 한 그러나 아련하기도 한 목소리에 묵연은 정신을 차리고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만녕, 그였다.

분명 일어설 힘도 없이 한없이 비틀거리기만 하던 그였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묵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온통 새빨개진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주변에는 온통 토막이 난 인어의 시체 몇구와 구석에서 벌벌 떨어대며 인어 몇몇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순간, 묵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입은 전혀 그런 것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잘도 나불대었다.

"하...! 이제야 그 고운 목소리를 들려주시는군. 그래. 역시 인어들은 직즉에 족쳐 죽였어야 했어."

"묵미우!! 당장 멈춰...!! 안 그러면..!"

그 말이 답선군의 무언가를 건드렸는지 그는 초만녕을 행해 성큼성큼 걸으며 소리쳤다.

"안 그러면 왜?! 저번처럼 네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내 심장을 파헤칠 건가?! 응?!! 그럴 거냐고!!"

묵연은 결국 초만녕의 코앞까지 당도해 그의 검이 든 손을 거칠게 붙잡고는 저의 심장에 가져가 대며 으르렁 거렸다.

"어디 말해!! 말해보라고!! 응!? 초만녕, 날 죽이고 싶나?"

"난...! " 

초만녕은 있는 힘껏 그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전에 묵연의 심장을 살짝 스쳐 그힘으로목소리만 겨우 돌아온 그가 답선군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대답해. 넌 나를 살린 것을 후회하나?"

그 말에 초만녕은 시선을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광기 어린 그 자안에 맺힌 핏방울이 뺨을 타고 마치 눈물인 양 흘렀다.

"아니. 넌 내가 밉겠지. 원망스럽겠지... 그리고 그날! 날 살릴걸 후회하겠지!!! 그래서 내 심장을 갈라 그 피를 갈아 마시고 평생을 저주하고 싶을거야...? 안그래..? 응? 초만녕...? 그렇다면 당장 나를 죽여!!! 내 살을 가르고 내 심장을 으깨버리라고!!" 그렇게 말하며 묵연은 억지로 초만녕의 손을 잡아 저의 심장 사이로 검을 한없이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한 방울의 눈물이 톡 하고 떨어졌다.

그리곤 이내 애처로울 듯이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너는...묵연... 너는 그렇게 내가 미우냐." 

"......."

"난... 난...제기랄!!!"

묵연은 그제야 초만녕의 손을 놓아주었고 거칠게 뒤를 돌며 그곳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나 들려 오는 그의 목소리에 답선군은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네게 야박했다."

"뭐...?" 묵연은 몸을 돌렸다.

아스란히 비춰오는 달빛에 은빛 검이 반짝 거렸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너를 원망하지 않겠다."

푹... 

검날이 심장을 파고들어 심장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크게 들려왔다.










판타지와 동양풍을 좋아하고 중벨을 좋아하는 독자 1호. 읽을만한 책이 없어서 내 취향대로 글을 적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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