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달리는 젊은 탐정을 상상해본다. 길디긴 검정 모직 코트를 입고 좁은 골목에 서 있는 런던 택시의 등을 타고 올라 옥상과 지붕을 밟으며 새까만 하늘을 달리는 셜록의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실제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를 찾아가기에는 매일이 바쁘고 여유가 없다. ‘일’이 아니라면 누구든, 상대가 혈연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을 낼 수 없다. 천직 덕분에 동생과 나 사이에 접점이 있다는 점은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나는 신문을 덮었다. 오늘자 데일리 텔레그래프에는 흥미로운 사건이 없었다. 이 정도면 다른 신문을 더 들추어 보는 것도 시간낭비일 듯했다. 해가 기울어 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둔 신문 더미 위로 다홍색의 눈부신 석양과 회색의 창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녁 다섯 시 이십 분이었다. 디오게네스 클럽을 나서야 하는 시각은 일곱 시 사십 분. 적당하다. 오늘은 동생이 왓슨 박사의 일로 여기를 찾아올 것이니까. 하지만 언제쯤?


나는 벽시계에서 눈길을 떼며 나를 달랬다. 기다립시다, 조만간 근사한 저녁 담소가 시작될 터이니까. 사실 그 접점이라는 것은 내가 꽤 공을 들여 만든 것인데, 동생을 말판처럼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무대장치다. 오늘 그가 날 찾아오는 것도 그 덕분인 것이다.


사람을 기다려본 적이 오랜만이라 지루함을 말끔히 씻어내기가 어려웠다. 보통은 의뢰인들이 나를 기다리는 법이니까 말이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책상 위에 새것처럼 접혀 있는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쳐다보았다.


잠시 기분 전환을 해볼까. 지금 내 손에 다시 저 신문을 펼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러자 곧바로 귓가에 첫 장을 넘길 때 들리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지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부터 떠올랐다. 연달아서는 신문지의 부드러운 촉감, 반듯한 레이아웃, 정결한 글꼴, 손에 가볍게 말아 쥘 때의 두툼하지만 여린 느낌까지.


사랑하는 내 동생, 신문조차 너를 닮았구나.


달리 더 할 일이 없어 오늘자 타임스지를 새로 펼쳐 보았다. 1면 기사는 텔레그래프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셜록 홈즈 살아나다.’ ‘소위 ‘숙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리어티와 정사(情死)하듯 런던의 거리로 추락하여 죽었던 셜록 홈즈.’


동생은 어제, 이 년 간의 의로운 삶을 정리하고 펠멜 가에 있는 나의 집을 떠났다. 그러나 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왓슨 박사가 프러포즈를 하겠다던 레스토랑을 알려주었으니 어제 저녁에는 반가운 그를 만나러 곧장 그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숨죽여 지내던 지난 이 년 간 셜록은 자신에게 마구잡이로 덤비는 소위 ‘천재’와 그의 범죄 조직에 대해 극도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천혜의 요새를 딛고 서서, 성벽을 타고 뻔히 오르는 상대의 대가리를 구둣발로 밀어버리는 것 같은 긴장감 없는 나날을 흘려보냈다. 프로젝트의 마지막 무대였던 세르비아로 떠나기 전 셜록은 내 방의 긴 소파에 모로 누워 지도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이런 놈들은 제가 멍청한 줄도 몰라. 그따위도 모르는 인간들하고 싸우는 게 지겨워. 지겹다 못해 존이 떠오르는군. 적어도 그 친구는 내 앞에서 솔직하기라도 했어.’ 셜록의 그 말은 영국 범죄망 소탕 프로젝트의 완수를 앞두고 나름 왓슨 박사를 그리며 말한 회고담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오그라드행 비행기에 셜록을 태워 보내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도 지금과 같은 석양을 보았다. 셜록의 자살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문제’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던 그날 이 방에서도. 그때 나는 동생에게 조금 놀란 상태였다. 죽은 듯 잠적하여 런던의 범죄를 뿌리 뽑아달라는 나의 정치적 제안에 그가 순순히 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애당초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동거인은 소중한 법이니까. 런던 한복판에서 온갖 보복 범죄에 노출되어 살고 있던 왓슨 박사는 최적의 인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말하면 존 왓슨을 위해서 마이크로프트를 견디겠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그가 한 번쯤은 싫다 말할 줄 알았다. 나와 연락하고 함께 숙식하며 나의 영향권 안에서만 지내야 했으니까. 나를 거절하지 못하는 삶을 환영할 것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셜록은 그 모든 것에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그날 방 안을 메우던 황금빛 사양(斜陽)이 동생의 담담한 얼굴 위를 가로질렀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독일의 붉은 상공을 가르고 쉬이 떠나버리는 세르비아행 국적기를 보면서 나는 동생에게 까닭 모를 섭섭함까지 느끼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셜록이 열 살이었고 내가 열일곱 살 무렵이던 시절, 셜록에게는 두터운 책을 반듯이 세워 성을 짓는 취미가 있었다. 그 성에는 해자는 없었지만 단단한 도개교가 있었고 낮은 성벽만큼 커다란 문이 세워졌다. 그는 매번 앞뒤표지와 책등이 검푸른 빛으로 양장 제본된 전집 오십여 권을 정성스레 뽑아 그 성을 만들었는데, 성문만큼은 꼭 화려하게 금박이 입혀진 붉은 양장본을 찾아 세웠다. 셜록은 그 성 안에 아늑하게 엎드려 누워 성경이나 런던 전화번호부, 채링 크로스발 기차 시간표 따위를 읽고는 했다. 서재의 문설주에 기대어 바라본 그의 청회색 눈은 커다란 창으로 펄럭이듯 비껴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영롱하게 빛났다. 마치 영원히 잠들지 않을 것처럼 또렷했다.


그럼에도 몇 번은 그 안에서 엎드려 잠든 것을 내게 들키기도 했었다. 나는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어린 동생이 드러낸 것들을 바라보았던가. 흩어진 머리카락과 길고 하얀 목덜미, 그 위로 짧게 난 갈색 체모, 즐겨 입던 빨갛고 하얀 체크무늬 셔츠의 목깃. 훌쩍 커 버려 통이 큰 청바지를 대충 입혀 놓은 것 같은 길고 마른 다리. 나의 시선은, 옅은 숨소리에 맞추어 오르내리는 그의 상체부터 가끔 움찔거리는 가지런한 발가락까지를 몇 번이나 훑었다. 불행히도 책으로 올린 성벽이 동생을 나로부터 지키고 있었다. 충동이 생겨났다. 책을 치워버리고 싶은 충동, 넘어뜨리고 싶은 충동. 혹은 청년시절이 그렇게밖에 느낄 수 없는 어떤 감동. 그러다 몇 분이 지나면 질식할 듯한 긴장감에 벅차 나는 쪼그려 앉았던 상체를 가까스로 천천히 일으켜 얇은 담요를 찾아주었었다.


그때 그 경험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느닷없이 찾아왔던, 짧고도 길었던 나만의 경험이라고. 그러나 셜록은 우리 집을 벗어나 기숙학원에 입학한 뒤부터 나를 부쩍 경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어린 나의 동생은 그 책의 숲에서 한 번 혹은 몇 번을 잠들지 않은 채 나의 행동을 훑었던 것이었겠지. 그래서 나는 어느새 성인이 된 그가 나와의 긴 동거를 흔쾌히 택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결벽을 느꼈다, 돌이킬 수 없는.




“마이크로프트!”


단단하고 급한 그 부름에, 내쉬던 나의 숨이 가볍게 떨렸다. 정면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드디어 그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저벅저벅 발소리에 불이 켜지듯 타임스지의 1면 기사가 다시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 그렇지. 타임스지를 읽으려고 펼쳤었지. 꺾인 목을 빳빳하게 세운 신문 위로 긴 그림자가 걸렸다.


비에 맞은 모직 코트 냄새가 났다. 한 시간 전쯤 내가 이곳에 들어와 앉았을 때 잠깐 비가 내렸었다. 아마도 그때의 비일 것이다. 그래, 우산을 챙길 리가 없지. 가까이서 그의 손목시계가 똑딱거렸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래, 셜록. 기다려.”


나는 자세한 설명 없이 손짓으로 건너편의 의자를 가리켜 주었다. 하지만 제 딴에는 사안이 급하니 그는 분명 그대로 서 있을 것이었다. 역시, 셜록은 내 앞에 버티어 선 채로 말했다.


“얼마나?”

“이 기사만 읽을게.”


나는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자세 그대로 펼쳐놓은 타임스 1면의 활자에 눈을 맞추었다. 물론 내용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거의 동일한 추측성 보도였다. 그러나 나는 계속 신문을 읽는 척했다. 내 동생이 안달증이 난 모습이 정말 반가웠으니까.


나는 상상했다. 활판 인쇄된 신문의 글자와 문장 사이의 좁거나 넓은 틈을 뛰어다니는 조그마한 나의 동생을 상상했다. 안달이 난 작은 셜록이 그곳에서 달리고 있었다. 아래로 움푹 파인 u 위를 길쭉한 다리로 훌쩍 지났고 가정집 담벼락 위 쇠살을 닮은 j도 쉽게 뛰어넘었다. 새삼스럽지만 그의 가늘고 날쌘 다리는 나의 자랑이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작은 셜록이 달리다 말고 잠시 우쭐거렸다.


귀엽기도 하지.


하지만 네가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구나. 내 동생, 네가 달리는 모습은 어떻지?


“젠장, 더?”

“셜록, 말을 좀 더 조심해야지.”


동생의 목소리에 영상이 급히 흩어졌다. 조그만 동생은 신문 위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허공을 때리듯 신문을 탄력 있게 흔들어 보였다.


“제발, 마이크로프트, 빨리.”


이 정도면 그의 재촉은 충분했다. 급격히, 도근도근하던 내 심장이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타임스지를 도로 접어 책상 위에 올렸다. 계속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였다. 내 낮은 시선이 닿고 있는 책상머리로 반듯이 뻗어 둔 셜록의 긴 손가락이 보였다.


나는 맨손이 되면 강박적으로 지팡이 혹은 우산을 찾는다. 단단한 것을 쥐고 싶다. 나는 팔걸이에 올려 둔 손을 몇 번 힘주어 쥐었다 폈다. 니스 칠을 한 목재 팔걸이로 손톱이 가볍게 긁혔다. 아, 단단한 것을 쥐고 싶다.


나는 눈을 내리깔아 셜록의 손가락을 훑으며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목을 한쪽으로 기울여 뻗었다.


“말해보렴.”

“책임져.”

“세상에.” 


격의 없는 동생의 말에 격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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