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덤블도어의 동의를 구한 해리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해그리드에게 아라고그와 작별할 기회 있을 것이란 걸 조금이라도 빨리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불쑥 솟아오른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해리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다가갔다. 해리를 발견한 샤를루스가 벌떡 일어나 손을 뻗었다.

“저를 보러 온 거예요?”

해리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샤를루스를 피하는 사이, 해그리드는 연회장을 나가고 있었다. 커다란 머핀과 냄비보다 큰 돌 케이크를 먹던 그의 식성을 생각해볼 때, 해그리드는 평소의 반의 반도 먹지 못한 것 같았다.

해리는 샤를루스의 머리를 눌러 다시 자리에 앉히고 해그리드를 쫓아 연회장 문을 나섰다. 복도로 나오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해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해그리드는 벌써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소리쳐 부르면 해그리드는 기다려 주었겠지만 해리는 시선이 모이는 걸 원하지 않았다. 만일을 대비하여 아라고그에 관한 이야기는 비밀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해그리드...”

해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은데. 3학년 수업은 점심 이후에 있다. 다른 교수님에게 말을 전해 달라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가 기억하기로 3학년 오전 수업은 슬러그혼 교수의 마법약 수업이었다. 소문을 좋아하는 그에게 말을 전달해달라는 위험을 자초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수업시간까지 기다리면 해그리드가 점심 식사마저 거를지도 몰랐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해리는 다시 연회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포터. 잠시 전달할 말이 있는데.”
“아직 식사 중인데요."
“다 먹은 거 같은데?”

샤를루스는 들고 있던 포크로 식판을 두드렸다. 식판에 메인 요리가 다시 생겼다. 분명히 아까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까지 먹는 걸 보았는데. 해리가 추궁하는 눈빛을 보내자 샤를 루스가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성장기라서요. 설마 밥을 굶으라는 징계를 내리시려는 건 아니겠죠?”
“.....”

샤를루스의 불퉁한 표정이나 비꼬는 말투는 불의 잔에서 해리의 이름을 나왔을 때 론의 반응과 비슷했다. 사무실 접근 금지령을 내린 것이 바로 전날이었고, 아침 중 해리는 샤를루스를 의도적으로 밀어냈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식사를 마치면 내 사무실로 오렴.”
“다 먹었어요. 지금 가요.”

해리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자 샤를루스가 포크를 바로 내려놓았다. 해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


“거기 앉으렴.”

사무실에 들어선 해리는 양피지를 소환했다. 지팡이를 휘두르자 양피지 위에 빛무리가 지나갔다. 샤를루스는 테이블 옆 소파에 앉아 해리가 하는 걸 지켜봤다. 해리는 깃펜을 움직여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 내리며 샤를루스에게 물었다.

“해그리드를 알고 있니?”
“그럼요. 그 앤 그리핀도르의 유명인사인걸요.”

루베우스 해그리드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해그리드는 신입생 때 기숙사 최고의 악동 순위에 올랐는데, 한눈을 팔며 복도를 돌다가 그의 몸에 부딪힌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에게 지팡이를 겨누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더해 기숙사 방에서 문제가 되는 애완동물을 기르다가 사감실에 불려 가는 것을 샤를루스는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해리가 종이를 접어 샤를루스에게 건넸다.


“이걸 그에게 전달해주겠니? 되도록 조용히.”
“이게 제 징계인가요?”
“아니, 개인적인 부탁이야.”


쪽지를 받아들이던 샤를루스의 손이 멈칫했다. 징계가 아니라는 건 사무실 금지령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었다. 샤를루스는 쪽지를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이걸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래.”

샤를루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찻잔을 소환한 해리가 깜짝 놀라 물었다.

“가려고?”

해리의 물음에 샤를루스가 손에 든 쪽지를 흔들었다.

“급한 거 아니에요? 식사 도중에 불러낸 거 보면.”
“그렇긴 한데...”

더 눌러앉아 있다 갈 줄 알았지. 해리가 뒷말을 삼켰다. 샤를루스는 그리핀도르의 악명높은 장난꾸러기였지만, 해리는 위즐리 형제를 믿는 만큼 샤를루스의 성품을 믿었다. 기숙사에 가는동안 쪽지를 펼치거나 없애버리지는 않을 터였다. 장난꾸러기인데 믿음직스럽다니. 자기가 생각하고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샤를루스를 바라보는 해리의 눈에 따뜻한 빛이 깃들었다.

“다음에 봐요, 스위티.”

샤를루스는 장난스럽게 인사를 하고 정말로 문을 닫고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수 색이 선명하게 우러난 홍차와 레몬 타르트가 놓여 있었다.

“음… 식사 후 바로 디저트는 좀 그렇지…”

해리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지팡이를 성의 없이 휘적였다. 어쩐지 차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

연회장에서 샤를루스는 해리를 볼 때마다 그를 붙잡아 어제의 결정-사무실 금지령-을 번복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해리는 샤를루스를 밀어내며 그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서운한 마음에 입맛도 뚝 떨어졌다. 상큼한 레몬향도 그의 마음을 풀어주지 못했다. 샤를루스가 결국 식사를 마치기로 마음먹을 때 해리가 샤를루스를 찾아왔다. 할 말이 있으니 다짜고짜 따라오라는 말에 샤를루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포크로 접시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직 식사 중인데요.
설마 밥을 굶으라는 징계를 내리시려는 건 아니겠죠?

조금 심술을 부렸다. 샤를루스가 차가운 반응을 보이자 해리는 당황한 눈치였다. 해리가 입술을 달싹였고 샤를루스는 눈을 반짝이며 해리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해리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듯 시선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해리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샤를루스는 자기가 한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버릇없게 굴고 잘못한 건 자신 쪽인데 왜 해리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식사를 마치면 내 사무실로 오렴.

해리가 한참만에 중얼거리듯 말하자 샤를루스는 바로 식기를 내려놓았다.

샤를루스는 해리의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해리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해리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 샤를루스는 손에 든 쪽지로 경례를 하며 장난스럽게 인사했다.

사무실을 박차고 나온 샤를루스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가던 길에 샤를루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맞은편에서 머틀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우닝 머틀’이라고 불리는 저 계집에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울었다. 기숙사도 다르고 학년도 달라서 그동안 엮일 일이 없었던 그녀는 샤를루스와 마주친 바로 전날, 샤를루스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또 무슨 일이죠?”

머틀이 날카롭게 말했다.

“이제 저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힐 셈인가요?”

그녀의 말에 샤를루스는 차갑게 웃었다.

“도대체 너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사람이 있기는 해? 네 망상 속에서 말고 현실에서 말이야.”


*

머틀은 학생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두꺼운 안경과 여드름이 난 피부, 그리고 무슨 말만 하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 심통 맞은 표정를 짓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생들은 그녀에게 다가와서 수업과 관련된 지시사항을 전달해 주었다. 머틀과 그들은 친구라고 부르기 애매한 사이였다.

아침 수업이 끝나고 머틀은 서랍에 넣어둔 검은색 가죽 표지의 다이어리를 만지고 있었다. 다이어리를 주인에게 돌려주며 무슨 말을 건네면 좋을까 상상하고 있는데 올리브 혼비는 하기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틀에게 다가왔다. 꼭 하기 싫은 과제를 하는 떠맡은 사람 같았다.

‘포터 교수님의 수업이 취소됐어.’

혼비가 말했다. 오, 말했어. 멀리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오후 수업은 마법약 수업이야.’ 말을 마친 혼비는 매정할 만큼 빠르게 몸을 돌렸다. 언뜻 수고했다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혼비는 거만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고 다른 학생에게 그녀에게 동전을 건넸다.

뭐야. 퀴디치 내기도 아니고. 머틀은 신경질 적으로 짐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서랍 속 다이어리를 집어 드는데 서러운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다. 마법약 책을 챙기기 위해 기숙사에 들어가는데 휴게실에 모여있던 학생들은 여느 때와 달리 흥분한 상태였다.

‘포터 교수님 수업이 휴강인 건 아쉽지만… 이번 수업은 ‘아모텐시아’를 배울 차례야.’


‘내일이면 못난이 머틀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아도 될걸.’

‘정말… 포터 교수님이 부탁하지만 않았어도, 그 음침한 애한테 말을 거는 일은 없었을 텐데.’

‘교수님은 그 못생긴 애 어디가 좋다고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 거지?

‘아무렴 어때. 아모텐시아를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하아..’

그녀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다가 서로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무도 머틀이 기숙사에 들어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머틀은 왜 친하지도 않은 학생들이 그녀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보 같은 교수가 어설프게 동정을 베풀었고 결과는 최악이었다. 차라리 듣지 못했으면 좋았을걸. 머틀은 마법약 책을 챙겨 들고 도망치듯 기숙사를 뛰쳐나왔다. 계단을 올라 철갑옷을 지나고 레번클로 학생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몸을 웅크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이름에 머틀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내뱉었다.

‘멍청한 포터!’

한번 흘러넘친 감정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증오와 분노의 감정에 불을 지폈다.

‘잘난 체하는 위선자! 정말 싫어! 당신따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야, 너.’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다시 한번 말해봐.’

*

전날의 기억에 머틀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포터 교수의 사무실을 본 순간 누군가 머틀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증오의 말을 내뱉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악에 받쳐 저주의 말을 내뱉다니. 기숙사 방이나 화장실이 아닌 복도 한복판에서.

그만큼 그 교수가 잘못한 거지.

머틀 기분 나쁜 감정을 모두 포터 교수의 탓으로 돌렸다. 그녀의 표정이 더욱 표독스럽게 변했다.

“남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면서. 포터가 사람들은 다 그런가 보죠?”

머틀이 비꼬자 샤를루스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그러나 샤를루스는 고개를 휙 다른 곳으로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험하게 굴어서 미안해. 사과할게.”

샤를루스의 말에 머틀이 의심스럽다는 듯 그를 쏘아봤다. 옆얼굴에 닿는 따가운 시선에 샤를루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다시 머틀 쪽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포터 교수님에 대해 계속 그렇게 말하면,”

“교수님께 이르기라도 할 건가요? 하, 좋으시겠네요. 포터는 포터 편을 들테니까!”

머틀이 샤를루스의 말을 끊었다. 샤를루스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뱃속부터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게 느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샤를루스의 손에는 해리가 그에게 건넨 쪽지가 들려있었기에 그는 주먹을 움켜쥘 수 없었다.

“뭐야.”

“싸움인가?”

아침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못난이 머틀이랑 포터가 싸우는 것 같은데?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머틀이 고개를 숙였다.

샤를루스는 인상을 찌푸리고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남학생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뭘 봐.”


샤를루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흉흉한 눈빛을 보내자 복도에 멈춰서 그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학생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틀은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만 울어, 머틀. 네가 원하는 대로 사라져 줄 테니까.”

샤를루스가 망토를 펄럭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머틀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

사소한 계기로도 기다렸다는 듯 다투기 시작하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학생들이었지만, 일단 빈스 교수의 수업이 시작되면 두 기숙사 학생들은 휴전을 맺곤 했다. 점심 후 따뜻한 햇살에 단조로운 유령 교수의 목소리가 더해지면 학생들은 기숙사에 관계없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앞줄에 앉아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하던 몇 명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자리 잡은 하품을 하다가 꼿꼿이 앉은 채로 잠을 자는 기술을 선보였다. 뒷줄에 앉은 학생들은 대놓고 엎드려서 숙면을 취했다. 어떤 형태로든 수마에 못 이겨 잠에 든 학생들이 대다수인 교실에서 리들은 평소와 같은 자세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오리온은 기지개를 켜다가 리들의 교과서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글씨가 교과서 두 면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엇나간 흔적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맞춰 쓴 글씨는 리들이 한순간도 잠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네가 정말 사람이냐…” 오리온이 질린 듯이 말했다.

“어떻게 그 수업을... 차라리 독학을 하고 말지.” 아브락사스도 리들의 교과서를 보고 중얼거렸다. 아무리 O.W.L을 준비해야 하는 학년이 되었더라도 마법의 역사 수업은 맨 정신으로 듣고 있을만한 게 아니었다.

“시험을 출제하는 건 책이 아니라 교수님들이야.” 리들이 담담히 말했다.

오리온과 아브락사스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빈스 교수는 수업 중 호그와트의 비밀장소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빈스 교수는 물증이 있는 사실만을 다루고 근거 없는 가십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가 흘리듯이 언급한 장소에 대해 알아보려면 저녁을 일찍 먹고 도서관에 가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

저녁 이후, 리들은 예정대로 도서관에 가서 호그와트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적당히 골라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각 책의 목차와 색인을 확인했지만 그가 찾는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러 책들을 직접 읽으면서 필요한 정보를 모아야 할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고있다.


며칠 전 리들은 그를 은밀히 쫓아다니는 여학생 앞에서 물건을 하나 떨어뜨렸다.

살리자르 슬리데린은 순수혈통이 아닌 마법사들을 싫어했다. 그는 호그와트 내에 자신의 후계자만이 열 수 있는 비밀의 방을 만들었고, 지금껏 누구도 그 방을 발견하지 못했다. 리들은 비밀의 방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어느 시대에나 특별한 사람이 한 명쯤 존재하기 마련이다. 후계자의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면, 지금껏 비밀의 방이 나타나지 않은 건 그 방을 찾는 접근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뱀의 언어를 할 수 있던 살리자르 슬리데린. 그가 내세운 조건은 ‘순수혈통’. 후계자의 적들은 ‘순수혈통이 아닌 자’. 그렇다면 비밀의 방을 찾기 위해 필요한 건 ‘순수 혈통이 아닌 제물’.

아직 가설에 불과하지만, 실험해 볼 가치는 있었다.

검은색 가죽 표지가 소리 없이 복도에 내려앉았다.


노을이 지면서 책장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리들은 읽고 있던 책들을 정리해 책장에 꽂아 넣었다.

도서관 입구에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기다리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나타나지 않을 모양이다.

리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안경을 쓴 여학생이 급히 책상 아래로 무언가를 숨겼다.



*

오후 수업이 끝나자 해그리드가 해리를 찾아왔다.

“오늘 밤 12시인 거죠?”

해그리드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덤블도어는 마법부의 호출로 며칠간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아라고그를 금지된 숲에 데려가는 일은 해리의 몫이 되었다.

“조용히 빠져나올 수 있겠니?”

이럴 때 투명망토가 있으면 좋으련만. 해리는. 투명 마법을 쓸 수 있었지만 아직 3학년밖에 되지 않은 해그리드에겐 무리였다. 기숙사를 나오기만 하면 해리가 그에게 투명 마법을 걸어줄 수 있겠지만... 해그리드라면 들키지 않을까.

“절대로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할게요.”

해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해그리드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해리는 이미 들키면 수면 마법을 걸면 될까-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자정 무렵 해리는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향했다. 덤블도어가 부재중인 호그와트는 해리에게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둠 속 기숙사 문이 열리고 해그리드가 나왔다. 해리는 무언 마법을 걸어 막을 형성했다.

“너를 본 사람이 있니?”
“아니요.”

해그리드가 대답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에 해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기숙사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주위는 고요했다.

“따라오렴.”

해리가 먼저 걸음을 옮겼고 해그리드가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러나 아라고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녀를 빨리 만나고 싶어 하는 해그리드가 종종 해리를 앞서갔기에 해리는 보폭을 늘려야 했다.

3층 복도 끝에 다다르자 해리가 해그리드의 어깨를 붙잡았다.

“놀라지 마. 덤블도어 교수님은 필요한 조치를 하신 것뿐이니까.”

해리의 말은 석화 마법에 걸려있는 아라고그를 보고 놀랄 해그리드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해리의 말을 들은 해그리드는 무언가 안 좋은 상상을 했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교수님, 설마…”
“쉿.”

해리는 해그리드의 어깨를 짚은채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았다. 지팡이의 불은 끈 상태였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릴뿐, 복도는 고요했다.

‘이상하다…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해리가 지팡이를 꺼내 불을 밝혔다. 벽장을 열고 마법으로 아라고그를 들어서 복도 바닥에 사뿐히 내려놓자, 해그리드가 재빨리 아라고그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지만 상처는 없었다.

“이만 움직이는 게 좋겠어.”

해리가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 해그리드에게 건넸다.

“석화 마법을 푸는 데 사용할 약이야. 네게 맡겨둬도 되겠지?”
“물론이죠.”

해그리드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해리가 빙그레 웃으며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주문을 읊었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거미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해리와 해그리드, 그리고 아라고그가 금지된 숲으로 향했다.


*


루모스.


지팡이에 은은한 빛이 나와 구를 이뤘다. 겨울을 닮은 은회색 눈동자가 금지된 숲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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