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는 분류 폭력을 당한 그 시기로 보고 있다. 인터넷 연재를 하다 인기를 끌면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포맷은 그대로 유지되나 이런 저런 이유로 비주류로 내던져지기 시작하는 그 즈음 말이다. 여기서부터 소소한 문제가 생긴다. 

1. 이 분류 폭력이 시작된 게 대충 2005년 이후인 건 기억하는데 이게 정확히 언제 촉발되었는지는 자료가 없어 애매하다. 게다가 확실하게 심화되다 못해 개판이 된 건 2000년대 후반인가 2010년 쯤부터일 거다. 이 일이 꾸준하고 지속적인 폭력이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2. 이 시기의 정확한 기록을 구할 수가 없다. 특히 조아라에서 아마추어들에게 만연했던 폭력을 입증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알다시피 조아라는 과거 베스트 기록을 몇 개월 지나면 파기해버리고 당사자가 습작으로 돌려버리면 당사자 아니면 못 찾는다. 게다가 워낙 오래 된 일이라 당시 실제로 피해를 입었던 아마추어 작가들의 회원정보가 남아있긴 할지조차 의문이다. 고로, 기억과 증언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3. 로맨스 판타지라고 명명되고 난 이후 웹소설로 포맷이 전환되어버린 이후를 4세대라 보고 있느나, 내가 휴지기를 가졌기 때문에 이 부근은 가급적 건너뛰려한다. 물론 대표작 몇 개는 보긴 했지만 라이브로 연재를 같이 달리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 많아서 최대한 분량을 줄이려 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별 수 없다. 도우우움......

4. 페미니즘이 일상 속으로 들어온 2016년 이후부터를 5세대로 보고 있다. 하지만 4세대에 대한 미흡함이 있으니 이 시기부터를 5세대로 분류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자세히 설명을 덧붙여주길 바란다. 시비 거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들어보려는 거다. 오해 말아달라.



3세대 : 분류폭력

애매한 부분은 고지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3세대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러니까... 대충 2005~2010년 사이다. 2세대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연재의 장이 인터넷으로 이동하게 되며 이전에 비해 연재 환경이 많이 바뀌게 된다.

우선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버렸다. 이게 안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접촉이 너무 어려워 하늘 위 존재처럼 떠받들여지던 시절엔 작가가 성범죄를 저지른다거나 표절이나 도용을 해도 문제 제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젠 그렇지만도 않다. 예술계, 그 안에서도 문학계 미투를 보면 이 동네도 이런 문제가 유서 깊다는 게 감이 올 거다. 비꼬는 거 맞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연재 환경에 있어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현실에서 드러내면 백안시하게 되는 저열한 욕망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대리만족을 독자가 점점 더 당당히 요구하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며 당연히 이런 대리만족 욕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워지는 기류로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헌터물에서 힘의 크기로 사람의 급을 나눈다거나 로판에서 주인공의 계급이 기본적으로 귀족을 채택하고 자신의 계급을 내세우며 막 대하는 하녀나 시종을 내리 찍는 형태의 일명 '사이다'들이 이 시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사이다가 왜 사이다가 될 수 없는지는 다른 분들이 다뤘을 거 같으니 일단 건너뛰겠다.

이 시기의 출판이라는 게... 인터넷 연재로 어느 정도 인기를 끌면 출판사에서 컨택이 오거나 작가가 컨택해서 출간하는 식이었는데 웃기는 점이 한 번 1권을 발행했으면서 인기가 계속 유지 되지 않으면 도중에 연중시켜버리는 일이 빈번했다. 냉정히 말해 소설이라는 건 진행할수록 독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패턴이 어느 정도 발생하게 되는 게 당연한데도 말이다.

이유는 바로 이 책을 파는 대상이 독자보다는 대여점에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재미를 위해 어떤 내용이든 인기 있는 소설을 책으로 발행하면 기본적으로 몇 만 부는 팔린다고 계산속이 서니까 일단 책을 뽑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출판사가 점점 더 내용에 관심을 안 기울이고 아무거나 막 뽑아댔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문장 = 문단인 모양새다. 요즘도 카카페와 문피아 등에서 내용물 불리기 용으로 많이 쓰고 있는 걸 보여주는데 이게 출판물로도 확인되는 게 이 시절이다. 정말... 개인적으로는 진심으로 싫어하는데, 문단을 나누는 것도 소설에 있어서는 장치다. 연출이나 다름 없단 말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무조건 가독성이 높아지냐면 그것도 절대 아니고 오히려 시산이 분산되다보니 문맥이 덜그럭거리는데 왜 그렇게 애용하는지 모르겠다. 

집중력을 억지로 끌어올려서 읽게 만드는 소설은 최악이다. 이게 유난히 심한 소설은 아무리 재밌어도 읽다가 도중에 놓게 된다. 특히나 소설의 분위기가 진지해졌는데 대사와 한 줄 짜리 문장으로 페이지가 가득 차면 그 헐렁하기 짝이 없는 밀도가 집중력을 외려 떨어트린다. 이 부분을 고려하는 작가가 왜 이렇게 드문지 모르겠다. 쓰는 거 자체는 이해하는데 너무 남발하지 좀 말자. 아무리 요즘 소설은 책이 아니라 액정화면을 통해 본다고 가독성 가독성을 외치는 건 이해하나 한 줄 띄기는 가독성이 아니다... 

그리고 문단만이 아니다. 내용도 그렇다. 괜히 양판소란 말이 이때 나온 게 아니다. 뭐 하나 히트치면 그걸 그대로 따와서 자기복제 or 열화복제한 획일화된 시놉시스가 성행하고 출판사가 편집을 제대로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타, 비문, 맞춤법이 틀린 채로 나오며(이 부분도 요즘 그대로다. 망할......) 인기가 좀 시들해진다 싶으면 가차없이 연중시켜버렸다. 

그러니 자연스레 출판사와 작가 사이의 감정의 골도 깊어졌는데 뭐 대단히 잘 팔리는 작가라도 막 대하기는 별 반 다를 바 없었다. 홍정훈 작가의 '월야환담 시리즈' 얘기다. 월야환담 채월야가 엄청 팔렸는데 정산해주기 싫어서 얼마 안 팔린 것처럼 줘야할 인세도 떼먹은 주제에 후속작을 요구하니 작가가 수상히 여겨 출판사를 찾아갔을 때 벌어진 일이 도시전설로 내려오는데... 정산 보여주기 싫어서 컴퓨터를 때려부셨다는 전설이 있다. 10년도 더 전의 얘기다.

당시 계약했던 출판사가 디앤씨 미디어다. 작가와 출판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제와서는 당사자들 말고는 모르겠지만 정산 떼먹은 건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고도 잘 나간다. 디앤씨미디어, 파피루스, L노벨, 시드노벨, 잇북, 디앤씨북스, 디앤씨웹툰, 블랙라벨클럽 다 같은 회사다. 괜히 문체부에서 먼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운영하겠다거나 법률 제정을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정산 떼먹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유구하니 말이다. 그러니 관련 이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그리고 IMF 사태 이후 확 늘어난 대여점 사업이 2010년까지는 성업했지만 가정마다 컴퓨터를 두게 되고 P2P 서비스가 퍼지게 되면서 야금야금 불법 다운로드가 퍼져나가게 된다. 영화로 대표되어 알려져있지만 소설과 만화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친구라고 있던 인간이 너무 자연스럽게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사용하는 걸 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장르 소설 안에 게임 요소가 흔해진 걸로 확인할 수 있듯, 재밌는 게임도 많이 나와서 굳이 소설이 아니어도 되는 상황이 서서히 오기 시작한다.

이 모든 일들이 맞물려서 환장의 시너지를 뿜으며 대여점과 함께 장르소설의 몰락이 3세대와 함께 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이런 환장의 시기, 여성 주인공들의 판타지가 딱 타겟으로 머리끄댕이 잡혀서 끌려나온다. 이게 언제 시작했는지는 애매해도 여성주인공 판타지로 아마추어가 연재를 시작하면 초반에 꼭 한번씩은 나오던 말이 있었다. '뭐야 주인공 여자네? 왜 여자야.' 이런 코멘트 말이다.

먼저 이걸 알아둬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장르소설에 있어 여성 독자와 남성 독자들이 작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물론 미친 사람도 둘 다 공평하게 섞여있긴 한데(진심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여성 독자층은 작가에게 돌직구로 못된 말을 하진 않는다. 작가님 재밌다, 이 부분 좋다, 자기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나름 정제해서 예의 차려 얘기하거나 약간 과장과 과몰입을 첨가해 주접을 떤다. 약간 팬심으로 하는 주접인 걸 알아서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여성 독자층의 코멘트들을 보다 남성 독자층이 코멘트를 보면 '와 이런 애들 속에서 창작을 해요? 대단하네.'가 튀어나온다. 기본이 반말인 것도 이놈들은 뭔가 싶은데 여성 캐릭터와의 연애 서사,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나오면 디비지고 서사에 있어 주인공이 조금이라도 손해보는 거 같으면 호구 취급이다. 19금으로 가면 더 솔직한 멘트들이 나오는데 괜히 국내 동인에 있어 남성향이 호흡기 달게 된 게 아니라고 해야 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그리 막 대하는데 애정으로 연명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제정신 박혔으면 손 턴다.

이런 식으로 독자층에 따라 작가에게 보이는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기 때문에 초기에 판타지라면서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게 싫다고 징징대는 댓글이 남의 소설에 붙으면 '그럼 니가 안 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정중하지만 싸늘한 댓글이 달려서 처음엔 별 영향이 없었다. 그런데 대리만족형 장르소설들이 점점 더 양산화되면서 독자층의 흐름이 서서히 바뀌게 된다. 

대리만족형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무언가를 주인공이 가지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구조 때문에 독자는 자신을 강하게 이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게 안 맞는 독자들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지적을 하는 목소리를 냈어도 당시엔 이게 반영이 안 됐다. 

출판사가 출판할 작품을 고르는 경향을 보면 확실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듯, 그렇게 장르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대리만족의 유형이 딱 정해졌다. 바로 '나만 잘 나가서 남들이 모두 우러러 보는 20대 남성' 타입으로 말이다. 게임처럼 레벨업을 반복해 도드라지게 강해지고, 주인공에게 별 생각 없어도 주변의 이성 캐릭터들이 구애하고, 끝에 가선 신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되는 시놉시스가 그렇게 딱 고정되어 양산화되어버린다. 

이 유형이 완성되는 걸 기점으로 시놉시스의 변화가 사라지고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 다뤘듯 한 장르 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즐거움이 단 한 종류로 한정되면 다른 즐거움도 추구하던 독자들의 입장에선 실망스러움을 감내하고 계속 소비를 해야할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대리만족형 모험물의 특성이 여성 주인공의 작품에도 바로 유입되긴 했지만 남성을 타겟으로 나왔던 소설만큼 노골적이진 않았달까, 황녀물 같이 새로운 코드로 진화해나가며 베스트란에 여성주인공작품들이 상단을 계속 차지하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성주인공 판타지는 로맨스 서사가 늘긴 했어도 로맨스 장르화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기어코 남성 독자층이 자신을 이입하기에 거부감을 느끼니 여성주인공의 판타지가 로맨스 소설이랑 뭐가 다르냐며 꼴 보기 싫다고 디비졌다. 농담이면 차라리 좋겠는데 진짜 그랬다. 여성주인공 판타지가 싫답시고 이들이 한 짓거리가 정말 기가 막히는 게... 아마추어 작가가 여성주인공 판타지 소설을 쓴다고 아마추어 소설에 몰려와서 코멘트로 싸움 걸어대고 이 게시판 저 게시판에서 여성주인공물은 새로운 장르 이름 달고 꺼지라고 싸움 걸어댔다. 

누군가 싸움을 받아주든 아니든 상관 없었다. 싸움을 받아주면 소요가 발생하는 걸 꺼려서 작가가 습작 걸고 누군가 안 받아줘도 상처 받아서 습작 걸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읽던 소설들이 증발해서 텅텅 비어가는 선호작의 수를 보며 이를 갈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결국은 하도 여기저기서 난리고 아마추어들이 숨어들어서 판 자체가 줄어드니 우리가 그냥 새로 장르명을 파서 나가는 게 낫지 않냐는 온건파가 나왔고 그렇게 제시된 게 '로맨스판타지'였다. 강경파인 사람들은 판타지에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안 된다, 이름에 로맨스가 붙어버리면 로맨스 소설이랑 유사해지게 될 거다, 새로 이름 단다고 해서 취급이 나아질 리도 없다, 여기에 동의 안 하는 사람도 결국은 로맨스판타지로 내쫓길 거라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로맨스판타지는 그렇게 명명되었고 강경파가 예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다. 그러니 이 당시를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로판이 자연발생한 것처럼 말을 하면 치를 떨기 마련 아니겠는가. 맞은 사람은 기억하고 때린 사람은 기억 못한다는 말이 딱이다.


3세대의 대표작으로는 얼음램프, 실버문, 금발의 정령사, 천연악녀, 실험실의 왕녀님, 헤센 공작가의 매맞는 아이, 패스파인더 정도를 꼽겠다. 

2005년 발행된 최서완 작가의 '얼음램프'도 그렇고 2006년에 발행된 사이딘 작가의 '실버문'도 그렇고 어디까지나 로맨스는 덤이라는 게 여성주인공 판타지소설에서는 메이져였다. 그러다 로맨스 서사가 진한데 히트를 친 게 2008년 발행된 문정 작가의 '헤센 공작가의 매맞는 아이'와 2009년 발행된 김동희 작가의 '폭군의 비' 정도인데... 이 와중에 '폭군의 비'는 2권으로 연중했다. 김동희 작가의 '폭군의 비'가 미완임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에 올린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현재 로판과 유사한 로맨스 서사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준비된 체력이 소진되었으니 일단 여기서 끊고 다음 글에선 4세대에 대한 경향성만 후르륵 훑고 본격적인 5세대 얘기를 하고 싶다. 체력과 기력의 충전이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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