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나의 모든 날 - 김세정








아네모네

16화









쿵쿵. 태경은 제 걸음소리에 심장소리가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거침이 없던 태경의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은 서 관장의 비서였다. 바로 옆인 관장실의 문은 닫혀 있었고, 안에서 별안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손님이… 급하게 말을 붙이는 비서를 제치고 태경이 문고리를 잡았다.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어 젖혔고, 순간 제게 꽂히는 눈동자들을 마주한 태경의 시선이 작게 떨렸다.

 

“이게 누구야?”

 

제게 알은척을 해오는 중년 여자. 기시감의 정체를 태경이 곧 파악했다. 리조트 개관식에서 봤던, 하령의 엄마. 유진건설의 안주인인 손 여사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태경을 돌아보고 화색을 했다.

 

“이렇게 가까이는 정말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얼굴 마주본 게 교복입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얘가 정말 태경이라구요?”

“그렇다니까요, 사모님. 온 김에 인사드려, 태경아.”

 

인사가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가만히 선 채로, 태경이 비척거리며 두어 발자국 물러나는 듯 할 때였다.

 

“오빠!”

 

반대편에서 하령이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인지, 손을 닦던 손수건을 얼른 집어넣고 하령이 단번에 태경의 팔짱을 꼈고, 그 모습을 보고 손 여사와 서 관장이 동시에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태경이 아주 기분 나쁘게 대했던 게 바로 며칠 전이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들어놓고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기색 없이 반가워만 하는 건 엄연한 고의였다. 못 들은 걸로 하겠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채고, 태경은 이제 좀 어이가 없었다.

 

“뭐 하세요, 지금.”

 

태경이 서 관장을 향해 낮게 말했다. 하령이 팔짱을 낀 손을 한껏 잡아당겼다

 

“우리 약혼요. 관장님께서, 올해 넘기지 말구 진행하자구요. 오빠 프랑스 다녀와서요.”

 

태경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 안의 메모리카드가 피부에 깊은 자국을 냈을 것만 같다. 대답을 가로챈 하령 대신에 태경은 여전히 서 관장을 응시했다.

 

“태희, 하루종일 집에서 울고 있어요. 오 실장한테 들으셨을 거잖아요.”

“그래. 들었지.”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죠. 당장 판사님을 뵈러 가셨어야죠. 일을 이렇게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그리고… 태희 결혼을 먼저 수습하셨어야죠.”

“…손님 계시는 거, 안 보이니?”

“이 결혼 깨지면, 태희는 죽어요.”

 

태경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령이 태경의 팔을 흔들며 말렸고, 반대편 손으로 태경이 그런 하령을 천천히 떼어내었다. 제 딸이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더 이상 웃지 않는 손 여사가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태경을 향한 채로 말했다.

 

“반가워서 저녁이나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했더니, 오늘은 이만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관장님?”

 

그 말에 태경이 고개를 옮겼다. 저를 보던 손 여사와 시선을 맞추었다. 여전히 안으로는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않은 채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가방을 챙기던 손 여사의 움직임이 멎었다. 설마설마 하며 하령이 다시 태경을 붙잡았고, 딸아이의 매달림을 보며 손 여사는 꽤 불쾌해진 얼굴이었다.

 

“저, 김하령 씨와 약혼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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