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세요.”


태신을 맞아준 건 얼굴이 희게 질린 응복이었다. 드레스룸 쪽에서 바깥을 훔쳐보는 꼬마 귀신도 겁을 상당히 먹었는지 엄지 손톱을 물어 뜯으며 울먹이고 있었다.


“경찰은 어, 이미 왔다 갔어요.”


그렇겠지. 찬이에게서 전화를 받은지 어느새 1시간이 지나 있었으니.

태신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패였다. 경찰이 다녀 갔다는 건 증거가 될만한 것들도 다 가져갔다는 뜻이었다. 지난 번 협박편지에서도 범인을 특정할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학에 한정 된 증거였다. 남들이 들으면 무속신앙에 기댄다고 비웃겠지만, 사특한 마음을 품은 경우는 그가 지니고 있던 물건에도 흔적이 남는다. 범인이 보낸 것을 자신이 직접 혹은 이경에게라도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너무 늦게 도착한 거다.


“찬이 형은 루이랑 방에 있고요….”


응복이 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고는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말을 덧붙여도 될까 고민하는 모양새라 태신은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기다려주었다. 주먹을 여러차례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 응복이 느릿하게 입을 뗐다.


“형 괜찮겠죠..?”


곰만한 응복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처음에 받았을 때는 저희 다 웃고 넘겼는데, 오늘 온 거는…진짜 이건.”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걸 보고있자니 태신은 그의 나이가 새삼 실감이 났다.


“미친놈이 우리 형 다치게 하면 어떡해요?”


자신이 정말로 귀여운 줄 아는, 하고 싶은 게 수두룩빽빽 많고 그룹을 향한 의리를 빼면 시체인데 겁도 엄청 많은 21살 백응복. 이 어리고 겁에 질린 녀석을 찬찬히 달래주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으나 방 안에 있는 이를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였다는 것에 마음이 한없이 급했다.


“걱정 말고 쉬어”


태신이 응복의 어깨를 꾹 잡아 놓았다. 그리고는 더는 지체하지 않겠다는 듯 방문을 열어 젖혔다. 침대 헤드 쪽에서 루이를 양 팔로 꼭 껴안은 채 몸을 잔뜩 옹송그리고 있는 찬이가 곧장 그의 시야에 들었다. 태신이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는 동안 응복은 방으로 따라 들어갈까 하다가 이내 문을 닫아주는 걸 택했다. 자신의 형이 매니저 앞에서만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있으리란 예감에서.


“찬아.”


침대의 빈자리에 걸터 앉은 태신이 경찰에게 전후 사정을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그를 나직이 불렀다. 그러자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찬이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매니저님.”


얼마나 세게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는지 찬이의 입술 여기저기에 잇자국이 붉게 나있었다.


“휴가신데… 불러서 죄송해요.”


태신이 상채기가 난 입술을 엄지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터지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찬이의 어깨가 위로 올라섰다 곧 아래로 축 내려갔다.


“연락 안 하려고 했는데요. 매니저님 밖에, 그러니까, 제가, 다른 사람이, 생각이 안 나고, 또 어떻게 해야, 모르겠고….”


다정하고 어른스러운 그를 보아서인지, 차분히 말을 이어보려는 노력이 무용하게도 찬이의 목소리가 빠르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든 생각들이 두서없이 튀어 나오려고 입술 안쪽에서 난동을 피웠다. 설상가상으로 안구가 축축해지는 듯하더니 이내 시야가 흐릿해져 더는 앞에 있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하라고도 하셨으니까, 연락을...그래서.”


찬이의 목소리가 차츰 줄어들다 뚝 끊겼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는지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는지 도통 알 수 없으니 더 말할 용기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찬이는 오늘 하루 쓸 수 있는 최대치의 용기를 다 써버린 상태이기도 했으니까.

태신이 입술을 앙 다문채로 쫑긋 서있는 루이의 귀를 만지작대는 찬이에게로 팔을 뻗었다.


“나한테 전화한 거 잘했어.”


저를 기다리며 홀로 떨었을 찬이를 품에 가두듯이 힘껏 끌어 안고는 잘게 떨리는 마른 등을 커다란 손으로 찬찬히 쓰다듬었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찬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터트렸다. 자신보다 겁에 질린 응복의 앞에서도 사건 경위를 묻는 경찰 앞에서도 꾹 참고 있었어서 그런지 마치 댐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흐흡-.”


어떡해요. 저 어떡해요.

여린 목소리로 연방 같은 말을 반복하는 동안, 투명한 물에 떨어진 푸른 잉크처럼 태신의 흰 셔츠에 찬이의 눈물이 퍼져나갔다.


레슨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찬이는 우선 가방을 거실에 놓고 욕실로 향하려고 했다. 연기가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도 하고 이래저래 속이 시끄러워 머리라도 감으면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루이가 찬이를 뒤따라 가다 말고 거실로 돌아가서는 가방 냄새를 맡더니 컹컹 짖어대기 시작했다. 작곡을 하다 피곤해서 커피를 마시러 거실로 나왔던 응복이 평소 답지 않은 루이의 행동을 보고는 찬이에게 가방에 뭐가 들었냐고 물었다. 그제야 선물을 받아온 게 생각난 찬이는 도로 거실로 가 학원에서부터 가져온 상자를 열었다.


“히익-!”


소리를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은 건 옆에 있던 응복이었다. 정작 상자를 연 찬이는 한참동안이나 안에 든 내용물을 가만히 응시했다. 비닐 봉지에 든 새빨간 것이 정말로 토끼인지 아니면 진짜 같아 보이는 토끼 인형인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찬이가 그것으로 손을 가져갔다.

왈!

루이가 날카롭게 짖는 동시에 손에 힘이 풀린 찬이가 상자를 놓쳤다. 상자에서 튕겨져 나온 내용물이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히는 것 같은 마찰음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딱딱하게 굳었으나 분명 인형과는 다른 촉감의 그것은 얼마전까지 살아 있었을 토끼였고.

[다음은 니 개고, 그 다음에는 네 멤버들이 될 거야. 오메가 새끼야.]

상자 안에는 아마도 토끼의 피로 쓰여진 듯한 편지가 찬이를 향해 전보다 더 노골적인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형!”


떨어지며 터진 봉지에서 피가 스멀스멀 빠져나와 제 발가락을 적시는데도 찬이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은 토끼와 같이 자신의 몸에서도 피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전부 빠져 나가버린 것 같아서.


“응복아.”


그리고 루이와 멤버들을 이 토끼처럼 만들어버릴 것 같아서,


“…미안해.”


전부 제 탓인 것만 같아서.

 


***


태신의 집은 한강이 보이는 데에 위치한 초고층 아파트로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 유명인사들이 주로 산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네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도록 해."


엘레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하고 태신을 따라 내린 찬이는 울음기를 미처 다 감추지 못한 촉촉한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둘러 보았다. 멤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현 숙소도 고급 주택이라고 유명한 곳인데 그가 산다는 이 집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로 범벅이 된채 죽은 토끼와 협박편지에 머리가 굳어버린 찬이의 생각은 거기까지가 다였다.


“코트 이리 주고.”


여전히 멍한 상태의 찬이는 그가 시키는대로 코트를 건내었을 뿐


“방은 여기.”


열려진 방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자리에서 발가락만 꼼지락대었다. 뭔가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할 거 같은데 머릿속이 온통 붉었다. 이러다가 시야까지 붉어지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하려 할 때였다.


“목욕 할래.”


태신이 두려움이라는 진흙탕 속으로 침잠하려던 찬이를 끌어 올렸다.


“네…?”


아직 발은 진흙탕 속에 담구고 있는 터라 되묻는 타이밍마저 느렸다.


“더운 물에 몸 녹이고 나면 좀 나을 거다.”


‘목욕’이라는 단어를 듣고나니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목욕이 하고파졌다. 오늘 있었던 일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해버린 찬이는 고개를 크게 위 아래로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착하네.”


태신이 그런 찬이의 뺨을 감싸 쓰다듬어주며 옅게 웃었다.



“…….”


찬이가 따뜻한 물에 턱 바로 아래까지를 푹 담구었다. 알게 모르게 계속 긴장을 하고 있었어서 그런지 물 안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노곤해지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뻑뻑해진 눈을 쉬게 해보려고 잠시 눈꺼풀을 내렸다. 암전 속에서 숨도 몇 번 깊게 내쉬었더니 이제는 정신마저 느슨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매니저의 말대로 목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단 마음도 몸도 한 템포 쉬고 나서 앞으로를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똑똑-.


“누-.”


대답하기도 전에 욕실이 달칵하며 열렸다.


“침대에 두고 갔더라.”


여전히 정장 차림인 남자가 불쑥 들어와서는 선반 위에 곱게 개킨 옷가지를 올려두는 걸 보며 찬이가 빠르게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겨 안았다.


“뭘 부끄러워 해.”

“씻고 있는데 매니저님이 불쑥 들어왔잖아요.”

“노크 한 걸로 기억하는데.”


태신이 아예 찬이 쪽으로 몸을 틀고는 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팔짱까지 끼었다.


“뭐가 재밌-.”


한쪽 입꼬리가 올라서있는 것에 한 마디라도 대들어 보려던 찬이가 문득 자신의 아래쪽을 보고는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내렸다.


“섰어?”

“제가 무슨, 아무때나 세우는 변탠 줄 아세요?"

“변태가 아니라 젊은 거지.”

“안 섰.어.요.”


반찬을 꼭꼭 씹듯이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왜 가리는데.”

"매니저님은, 왜 그렇게까지 궁금하신대요."

"네 매니저잖아. 많이 알아야 널 더 잘 보호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아무튼 서서, 가린 건 아녜요."


그건 그렇네. 섰어도 굳이 가릴 필요는 없지, 우리 사이에-. 그럼 뭘까.

말투나 표정이 능글능글했다. 혼잣말인 거 같으면서도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걸 찬이는 모르지 않았다. 뻔뻔하긴!


“그야...!"


그쪽은 옷을 멀끔히 입고있고 나는 다 벗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겠냐고. 똑부러지게, 하나도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려고 했던 찬이가 입도 다물고 살짝 벌리고 있던 다리도 오무렸다. 태신이 욕조까지 와서는 지붕을 만들 듯이 제 위를 덮었기 때문이다.


“자지 때문이 아니면.”


찬이는 그가 저를 내려다보며 감상하는 중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숱이 적고 색이 옅은 체모가 부끄러운가.”


욕실 안에 드리운 수증기 때문에 정수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새삼 진득했다. 자지, 숱, 체모, 부끄럽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들이 제 귓가에 엿처럼 쩌억 달라 붙은 것 같았다.


“대답도 안 하고”


저를 놀리는 게 분명한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옷만 두고 나가려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아래는 가려서 이런 놀림을 받게 되었다고 자책도 해봤으나 이 상황에 그닥 도움이 되는 행위는 아니었다.


“김찬.”


귀가 먹먹하고 머리는 멍해서 찬이는 그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흣-!”


태신이 고슴도치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찬이의 가슴께를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쓸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봉긋이 솟은 유두가 걸리자 찬이의 엉덩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허벅지는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더욱 꼭 맞물려지는 동시에 허리가 곧게 펴졌다.


“찬아. 들었음 대답을 해야지, 응?”


물 안으로 들어갔던 그의 손가락이 갈비뼈 사이를 유유자적 배회하자 찬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자 두껍고 딱딱한 태신의 손가락들이 빳빳해진 분홍빛의 유두를 향하여 느릿느릿 행진을 시작했다. 


"매니, 매니저님."


찬이가 갈라진 목소리로 그를 부르고는 아래를 가리지 않은 손으로는 다급히  그의 손을 잡았다. 어쩌다 보니 새끼 손가락만 겨우 붙잡은 꼴이었다.


"그래, 찬아."


잡히지 않은 손가락들이 하프를 치듯이 제 유두를 톡톡 건드리자 엉덩이 사이에 숨은 구멍이 그에 맞춰 뻐끔였다.  찬이가 붙잡고 있는 그의 새끼 손가락을 더 힘껏 그러쥐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냥….”

“그냥.”


태신이 자신의 말을 따라하며 얼굴을 더 가까이 붙이자 찬이는 도망치듯 고개를 틀었다. 얼굴에 열이 몰리고 있음을 스스로도 자각할 만큼 발갛게 뜨거워지고 있을 때.


“앗!"


태신이 손가락으로 물을 튀겨 찬이의 얼굴에 흩뿌렸다. 물기 없던 얼굴에 물방울이 튀자 그 선연한 감각에 찬이가 고개를 홱 들었다가 이내 다시 푹 떨구었다. 

언제부터.

그가 저를 너무 어여쁘다는 듯 보고 있어서 찬이는 이러다 제 얼굴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대답 마저 해야지. 찬아.”


제게 잡혀 있는 새끼 손가락마저 나머지 손가락들과 함께 물 속을 유영하며 잔잔한 파장을 만들었다. 살결에 닿는 물결의 진동 때문인지 가슴도 아랫배도 발바닥까지 간지러워지고 있었다. 찬이는 더욱 곤란한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솔직하게 털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좋아하는 사람한테 몸 보여주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냥, 그게 다예요.”

“…….”


뭐라고 또 저를 놀릴까. 고개를 물 속에 처박듯이 숙이고 있는데 어찌 된 게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어쩌면 예쁘다 예쁘다 했더니 왕자병이 중증이다 싶어 그의 말문이 막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찬이는 참을 수 없이 부끄러졌다. 그래서 잡고 있던 그의 손가락을 슬며시 놓았다.

퐁당-.


“이런 거 좋아할 거 같아서.”


분홍색의 동그란 무언가가 물 안으로 들어오더니 금새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거품을 일으켰다. 들어만 보았지 사용해 본 적도 사용할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배쓰밤이었다.


“천천히 씻고 나와.”


태신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머물다 간 곳을 본 찬이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게, 왜."


아까까지도 멀쩡히 잠을 자고 있던 아랫도리가 수면 위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변태였어.

찬이가 욕조 안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가 이내 정수리까지 물 안으로 꼭꼭 숨겼다.

보글글, 보글보글, 보르르-.

찬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거품이 되어 수면 위에서 퐁퐁 터졌다.

트위터(현 X) : @canari_whi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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