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와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포는 침대 위로 올라가 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시리, 방에 다시 오니 좋아. 어젠 시리가 날 미워하는 줄 알고 많이 걱정했었거든." 

"앞으론 내 허락없이 몸 위로 올라오면 안 돼, 포."

"조심할게, 시리. 흠... 베개에서 시리 냄새가 나. 아니다, 이제 우리 냄새구나."

포가 베개의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앰브 냄새가 그렇게 좋아?"

"앰브라서 좋은 게 아냐, 시리에게서 나는 냄새니까 좋은 거야."

포가 아이 같이 해맑게 웃었다. 포가 웃으니 나도 기분 좋았다.


'저럴 땐 아직 아이같은데 어젯밤 그 키스는...'

갑자기 포가 나에게 했던 키스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포의 부드럽고 촉촉한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올 때 느낌이 생각났다.


"어, 시리. 지금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얼굴이 빨개지는 거야?"

"아... 아무 것도 아냐."

나는 불을 얼른 끄고 포를 등지고 누웠다. 

"포, 잘 자."

"시리도 잘 자."



포는 곧 잠이 든 것 같았다. 포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 오늘 이틀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포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리고 오늘 여신님이 날 이름으로 불러 주셨어. 강아지 땐 매일 불러 주시던 이름이었는데... 고작 이름을 불러 주신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쁘다니 나도 참. 하지만 여신님... 예전과 많이 달라지셨는걸. 변신 전엔 날 귀여워하시고 많이 예뻐해 주셨는데 지금은 여신님 마음을 잘 모르겠어. 그래도 아까 내 손을 욕조에 넣어 주셨을 땐 날 걱정해 주시는 거 같긴 했어...여신님이 예전처럼 날 따뜻하게 대해주시면 좋겠어...속은 따뜻하신 분인데.'




포브스는 등을 돌리고 자는 시리우스를 보며 생각했다. 

'어제 시리가 날 찾으러 다녔다니 너무 좋아. 시리도 분명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거야. 어젯밤엔 시리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너무 급하게 서둘렀어. 시리가 많이 놀랐을 거야. 이제부턴 시리가 내 몸을 원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지. 시리는 곧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포브스는 등 돌리고 자는 시리우스를 안고 싶었지만 꾹 참고 눈을 감았다. 





'아... 생각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또...'

아르테미스 여신은 시리우스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시리우스의 생각은 지치지도 않고 더 집요하게 떠올랐다. 

'앰브로시아는 마음의 병을 고치진 못하는구나. 그런데 시리우스가 앰브로시아 목욕을 잘 했을까? 이제 아프지 않겠지? 아...포브스가 시리우스 목욕하는 걸 다 봤을텐데 괜히 허락한 건가?  아참... 포브스하고 같은 방이라고 했지? 그럼 지금 같이 자고 있는 건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포브스와 시리우스가 같이 있을 걸 생각하니 여신의 질투심이 다시 꿈틀댔다. 그리고 둘이 달의 언덕에서 키스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러다가 진짜 미칠 거 같아.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어. 우유부단해서 놓친 건 다프네 하나로 충분해.' 

여신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내일 네펠라이하고 다시 얘기해야겠어. 네펠라이는 입이 무거우니까 사실대로 말해도 별문제 없겠지.' 






다음 날 포와 나는 일찍 아침을 먹고 신전으로 갔다. 사냥을 하기 위해 여신님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변신하는 법을 연습해 보기로 했다.

"간절히 원하고 집중하면 된다고 하셨어."

여신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내가 말했다. 포와 나는 눈을 감고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변신은 쉽게 되지 않았다.


"왜 안 되는 거지? 원하는 마음이 부족한 걸까?"

포가 말했다.

"그래도 계속 해 보자."

집중하고 있는데 자매들이 신전 앞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너희들 다시 친해졌구나? 자매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더니... 근데 지금 뭐하는 거야?"

레온이 말했다. 

"레온, 우리 싸운 거 아냐. 그리고 여신님이 그러시는데 우리 다시 개로 변신할 수 있대."

포가 말했다.

"정말?"

"응, 엄마도 개로 변신해서 여신님과 함께 달리셨대."

포의 말을 듣고 다른 자매들도 모여 들었다.

"자매들, 잘 들어. 간절하게 원하고 집중하면 우리도 엄마처럼 개로 변신할 수 있다고 여신님께서 말씀하셨어. 자매들도 연습해. 개로 변신하면 사냥할 때 훨씬 편하잖아." 

포의 말에 자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님, 시리우스의 자매들이 신전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응, 벌써? 시리우스도?"

여신은 네펠라이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여신은 어제 일찍 자려고 했지만 시리우스 생각을 하다가 결국 해가 뜨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네, 여신님. 지금 여신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펠라이, 나 아침에 겨우 잠들었어. 더 잘 거야. 한숨 자고 나서 너에게 할 얘기가 있으니 어디 가지 말고 대기해."

"알겠습니다, 여신님."

네펠라이는 여신에게 인사를 하고 침소를 나왔다.





"얘들아, 일찍 나오느라 수고했는데 오늘 사냥은 취소야. 이만 해산해."

네프님의 말씀에 우리 자매들은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했다. 

"사냥하고 싶은데요..."

"어제도 사냥 일찍 끝나서 오늘은 정말 신나게 달리고 싶었다고요."

"그럼, 우리끼리라도 달릴까?"

자매들은 여신님의 사냥 취소에 많이 아쉬워하더니 숲으로 사라졌다. 



나는 네프님에게 다가갔다.

"여신님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죠?"

"글쎄... 어제 오늘 몸이 별로 안 좋으신 거 같긴 해. 여신님이 걱정되는 거야, 시리우스?"

"네, 여신님은 우리 자매들을 거둬 주시고 돌봐 주시고 지금도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시는 고마우신 분이잖아요. 우린 님프님들처럼 처녀맹세를 한 것도 아닌데..."

"너 처녀맹세에 대해 아는구나."

"네, 포레이아는 처녀맹세를 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고 어제 칼리님과 타위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근데 네프님은 우리 엄마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아니. 내가 여기 오기 전에 계시던 분이라 나도 아는 게 없어."

"그렇군요. 그럼 네프님, 전 이만 가 볼게요."




'좋아하시는 사냥을 못하실 정도로 어디가 불편하신 걸까?'

숙소를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뒤에서 포가 불렀다. 

"시리, 날 두고 혼자 가면 어떡해?"

"아... 포. 난 네가 자매들과 같이 숲으로 간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시리, 어제 오늘 여신님 좀 많이 이상하지?"

"응..."


설마 나 때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걷고 있는데 길 옆으로 아름답게 핀 꽃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이 근처에 핀 꽃을 따서 목욕물에 띄우니 여신님께서 좋아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포, 너 먼저 가. 난 할 일이 생각났어."

"뭔데 시리? 같이 해."

"아냐, 포. 그럴 거 없어. 나중에 봐."

난 포를 뒤에 남겨둔 채 꽃밭을 향해 달려 갔다.


"시리..."

포브스는 혼자 뛰어가는 시리우스를 불러 봤지만 발이 빠른 시리우스는 이미 멀리 가 버렸다.




"거기 붉은 머리."

포브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히아님?"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시리우스에 관한 거야. 여기서 얘긴하긴 좀 그렇고 내 처소로 갈까?"

"네..."

시리우스에 관한 얘기라는 말에 포브스는 더 묻지 않고 히알레를 따라갔다. 




나는 꽃밭에서 여신님에게 드릴 싱싱하고 예쁜 꽃을 꺾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어.'

한움큼 되는 꽃을 손에 들고 신전으로 가려는데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리우스 님, 또 여기서 뵙네요."

"앗, 타야님."

"누굴 주려고 꽃을 그렇게 많이 꺾으셨나요?"

"여신님 방에 두려고요."

"아직도 여신님을 좋아하세요? 포브스님을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말씀만 하세요. 시리우스 님."

"지금은 없어요. 고마워요. 그럼 저 갈게요."

타야님이 웃으시며 나에게 잘가라고 손을 흔드셨다. 여신님을 빨리 뵙기 위해 나는 신전을 향해 달렸다. 




"시리우스, 무슨 일이지?"

신전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 네프님이 나를 보고 나오셨다. 

"들어가게 해 주세요, 네프님."

"여신님은 지금 주무시는데? "

"이 꽃만 여신님 침소에 두고 나올게요."

"예쁜 꽃이구나. 나한테 주렴."

"싫어요, 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

"또 고집피우는구나...그럼 조용히 들어가. 절대 여신님 깨우면 안 돼."

"네~."

나는 네프님을 바람같이 지나 여신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틀린 건가?'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이번엔 시리우스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여신의 생각은 또 바뀌었다. 어젯밤의 의지는 사라지고 시리우스와 포브스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선 여신이었다. 

그때 밖에서 시리우스와 네펠라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우스가 여신의 침소로 들어왔다. 여신은 자는 척하며 얼른 눈을 감았다. 시리우스는 여신의 방 여기저기를 둘러 보더니 병을 찾아 꽃을 넣고 물을 부었다. 여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시리우스를 바라 보고 있었다.


'여긴 왜 온 거지? 내가 무섭지 않나?'

시리우스는 꽃병을 어디에 둘까 생각하다가 여신이 누워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기 두면 되겠다. 여신님이 주무시면서 꽃향기를 맡으실 수 있을 거야.' 

시리우스는 꽃병을 여신의 머리맡에 두고 나가려다가 멈춰 섰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여신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여신은 움직이지 않고 계속 자는 척했다. 

'날 왜 보는 거지?'

여신은 이제 눈을 뜨고 싶은데 시리우스가 계속 자신을 보자 꼼짝도 못 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여신님 아프지 마세요...아... 근데 너무 아름다우시다... 만져 보고 싶어.'

시리우스는 여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응?'

여신은 시리우스의 손이 자신의 머리에 닿는 걸 느꼈다. 그래도 여신이 깨지 않자 이번엔 대담하게 손과 팔, 어깨, 목을 차례대로 조금씩 만져보는 시리우스였다. 여신은 가슴이 떨리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움직였다.


'방금 움직이신 거 같은데... 혹시 깨셨나?'

시리우스는 여신을 빤히 쳐다봤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시리우스의 숨결이 여신의 얼굴에 닿았다.

'아니네... 다행이다.'

시리우스는 가지 않고 계속 여신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 봤다.


'끄응...'

여신은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시리우스의 손이 여신의 가슴에 닿았다.

'음... 여기는 전에 핥은 적이 있지.'


여신은 점점 참기 힘들어졌다. 

'이제 그만 만지고 제발 가...'

여신은 이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손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아... 여신님의 입술... 만져 보고 싶다.'

시리우스의 손끝이 여신의 입술에 닿았다. 여신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걸 보고 시리우스가 화들짝 놀랐다.

'여신님, 혹시 깨신 건가?'

그때 여신이 눈을 뜨며 시리우스의 손을 잡았다.


"시리우스, 이번엔 네가 시작한 거야."

"네?"






여기는 아르테미스 여신님이 다스리시는 평화로운 포레이아.


GL 레즈 백합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첫 소설은 엘.컴플렉스이고, 사랑에 서툴고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연재 중 갑자기 새 소설이 떠올라 아르테미스의 견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재소설과 단편소설을 꾸준히 올릴 예정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은유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