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우클릭-'연속재생'을 누르시면 노래를 끊기지않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은 소중한구독자님의 소재으로 쓰여졌습니다. 















00월00일(수)

일어난시각: 08:30분/잠자는시각: 9시:50분

날씨 : 맑음 흐림.











어린 아이에게 이사란 무엇일까.

지각변동, 천지개벽, 날벼락, 세상이 뒤집히는 느낌과 유사하다.


12살.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던 나는 동네 개구장이에 이름을 올릴만큼 유명했다. 영웅놀이에 심취한 나는 아이들을 끌고다니며 동네를 들쑤시고다녔다. 보이는 개미구멍마다 나뭇가지를 넣어막거나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망토를 목에두르며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뛰다가 다리도 부러지길 몇번. 눈감고도 누구네집을 찾아가라하면 갈 정도로 내 동네 부산은, 땀과 피가 섞인 고향이었다. 

부산. 나는 이 곳을 점령한 성주. 나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무리에서 가장 맨앞, 놀이터에서 주운 멋드러진 나뭇가지로 돌격을 외치며 달려나갈 때의 쾌감.



그러던 어느날, 예고없는 아버지의 말씀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우리는. 간다. 서울로."


근엄한 얼굴로 단호히 말하는 아버지. 

필요한 말 이외의 더는 설명하지 않는 전형적인 경상도아버지. 

의견을 따위는 간단하게 묵살하는 아버지의 말을 통보와도 같은것이다. 가야한다면 가야하는 것.

그날 나는 처음 자지러지게 울었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쉼없이 울었다. 그러면 가지않을까.

나는알고있다. 가야할 것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혹시나 1%의 확률로 가지않을 수있다는 바람도 조금 섞여있었다.


바람은 바람일뿐. 

나의 울음에도 정한일은 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아버지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결정을 내리셨다. 그 당시 나는 즉흥적인 아버지의 결정에 많이도 미워했지만 사실, 모든것은 정해진대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어쩐지 어머니는 울어대는 나를 보며 '고추떨어진다며 그만울어라.'정도의 달램 뿐이었으니.


몇일 뒤, 금요일 서울에 올라가던날.

이사짐을 가득 싣은 차가 출발하고 뒤에 우리차가 따라가던날. 


"대장~~~~~!!"


동네아이들이 모두 나와서 차를 따라왔던 기억. 가기 싫다며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애절하게 뒷창문으로 울음섞인 소리를 토해내는 나와, 부지런히 차를 따라오던 아이들의 울음도 모래속에 먹혔다. 억울하게 좌천되어 귀향을 가는 장군처럼 애절하게 울었었다.

애절한 이별에 부모님은 슬퍼하면서도 웃고있었다. 

올라가는 내내 삐져있던 나는 창문밖을 바라보며 변해가는 바깥풍경을 보았다. 


열심히 달리고 달려 도착한 집은, 이사가기 싫다던 내 울음이 먹혀들어갈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2층집에 살고싶다던 내 꿈을 산타할아버지가 들은 것인지. 아무래도 산타는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 눈 앞의 2층집에 기분이 좋았으나, 이사한다는 사실에 화가나있던 컨셉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적당히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자존심이 강한 남자는 한번에 감정을 바꾸지 않는다는 신념을 유지했었다. 통보같은 이사를 했으니 2층은 나의방으로 해달라,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고 바람대로 2층은 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이삿짐들을 정리하던날. 여러가지 가구가 들어오고, 부모님도 바쁘고, 집에는 가구설치기사들이 쉴틈없이 뒤섞였다. 


"니엘아, 요 앞에가서 아이스크림사먹고 놀고 있어"


엄마는 나를 불러 오천원을 쥐어주며 슈퍼에 갔다오라고 했다. 그 당시 큰 돈이었지만 하루종일 이삿짐을 정리해야했기에 사람틈사이에 방해만 되는 나를 밖으로 보낸것이다. 돈을 받고 신났던 나는 방방뛰며, 슈퍼로 걸어갔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 도착한 슈퍼에서 제일 좋아하는 젤리를 샀다.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라 했지만 당당하게 젤리를 사는 내모습이 얼마나 반항적이며 당찬가. 나의 포부에 어깨가 펴진다.


우물우물.

입안에 가득차는 젤리를 씹을때면 눈이 접히게 행복했다.

슈퍼에서 산 젤리를 물고는 동네를 돌아다녔다. 타일격자무늬처럼 생긴 동네는 길을 찾기 쉬웠다. 집에서 멀어져도 내가 원하는 방향을 꼭지점으로 찍고 나아가면 집이 나왔다. 우리집과 비슷한 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집들을 보고있자니 심심하지 않았다. 젤리가 늘어지게 잡아댕기며 씹고, 씹으면서 동네구경을 했었다.

그렇게 한바퀴를 주욱 둘러 집앞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집과 마주보고선 집앞에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는 것. 나보다 몸집이 작았던 녀석은 더 작게 몸을 말고있었다. 다람쥐같다 생각했었다. 아직 이 동네에서 비슷한 또래를 본적이 없는 나는 슬금슬금 고양이 처럼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갈때 까지 인기척을 못느꼈는지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녀석. 이때쯤이면 눈치 챌만도 한데, 피카소 형아가 빙의된 마냥 그림그리는 모습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흠흠."


괜시리 목을 가다듬으며, 인기척을 냈지만 녀석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채 여전히 그림만 그렸다. 

아니,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도화지에 그리면될 것이지 나뭇가지를 쥔 손은 바닥을 헤집으며 지렁이를 만들어냈다. 


"으흠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더 크게 목을 가다듬었지만 정말 못듣는건가. 아니면 무시같은건가. 

헛기침만했는데 사투리를 들킨건가. 서울에 올라가면 따돌림받는다고 친구들이 말했었다. 사투리를 하는거를 비꼬아 놀려대거나, 때린다고 했던가 사실이던가. 서울은 역시 험난한 곳이군.

에라이. 포기하고 서서 노란 모래바닥에 그림을 그리는걸 보고있었다. 어떤걸 그린다기 보다는 선을 잇는다는 말이 어울린다. 녀석 그림은 영 젬병이구만. 나중에 친해지면 그림을 알려줘야겠다.


그림을 처다보고 있는 와중에 의문점이 생겼다.

흠. 왜 중앙의 모래는 어두운 색깔일까.

내가살던 부산 앞바다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면 이것과 비슷하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도 파도가 몰아쳐오면 순식간에 그림의 반을 먹고 사라진다. 재빠른 속도로 그려내지 않으면 그린것들이 모두 날라가기 마련.

관광객들이 바닥에 글씨를 쓰고는 사진찍기전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응?


"우나??"


중앙의 어두운 모래는 녀석의 눈에서 떨어지는 물기 탓에 물든 것이었다. 

그걸 인지한 나는 몸을 숙여 녀석에게 말걸었다. 12살의 눈물은 놀림거리의 대상. 놀려줄 참으로 고개를 숙여 녀석을 처다봤다. 나의 얼굴을 보고는, 내가 있다는걸 늦게 안 녀석은 놀랐는지 몸을 뒤로 뺏다. 

뒤로 몸을 빼면서 동그란눈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턱에 걸려서 무릎을 적셨다. 


"아냐, 안울었어.."


볼도 빨갛고 얼굴도 물기가 가득한걸.

티나게 눈물이 흐르는대도 팔을 들어 쓱쓱 문지르며 울지않았다는 대답.

어린나이의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었던 나는 고집스럽게 대답했었다.


"에이.. 울었으면서."

"안 울었어."

"울었잖아."

"안 울었어!"

"아까부터 봤는데. 니 우는거 다 봤다."

"안 울었다고오.. 안울었다고 했잖아!!"


끝까지 울지 않았다던 녀석은 나의 고집스럽 대답에 눈물을 더 쏟았었다. 어.. 울릴려고 한건 아닌데.

당황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쩔 줄을 몰랐었다. 그저 장난으로 끝날 줄 알았건만, 울지않았다며 더 크게 울어버렸다.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어정쩡한 손으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잘못한거니깐, 사과는 해야겠다면서도 망설여지는 손끝과 나의 반응에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울음소리는 부모님을 불렀다. 녀석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 동시에 나왔다.

아, 난이제 죽었구나. 머리속에서 유도장에서 날아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곧 유도장으로 가서 체력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혼나겠구나. 

아버지는 손을 높이 하늘위로 올리며 다가왔다. 손을 따라가던 눈은 하늘끝까지 따라가 햇빛에 눈을 감고 말았다. 어금니를 물어내며 다가올 고통에 예비하고있었다.



"형님, 간만입니다."


응? 나를 때릴 줄 알았던 손은 녀석의 아버지에게로 가 살포시 악수를 했다. 움츠러 든 어깨와 손이 민망했다.

사나이 강다니엘. 요즘 많이 약해진듯하다. 움츠려 든 적 없는 척, 슬쩍 어깨를 폈다. 차라리 맞는게 낫지 겁을 집어먹은 내 몸을 보여주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


"아우야, 드디어 꿈을 이룬다."


아무래도 둘은 아는 사이인가보다. 그러지 않으면 저렇게 진하게 포옹을하며 형제처럼 뜨거운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보일리 없다. 숨겨둔 큰아버지인가. 12살인생 너무 스펙타클하다. 우는녀석이 무색하게도 인사를 나누던 아버지들은 이내 우리를 처다보며 웃었다. 아이들이 크다보면 그럴 수 도 있는거라며 별 상관치 않은 모습이다. 싸운건 아니지만 어쨋든 울린건 나인데 아버지들끼리 사과하면 내가 나설 타이밍이 사라진단말이다.

진정한 사나이는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것이라고 배웠는데..


"인사해라. 아버지 어릴 때 부터 같이 지낸분이시다."

"안녕하세요."

"허허.잘생겼네. 씩씩한게 마음에 드네."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저씨는 연신 웃음이 떠나지않았다. 서울 아저씨들은 저렇게 부드러운가. 앞에있는 녀석이 부럽다. 우리아버지는 필요한말 밖에 하지 않는데. 가끔 나는 아버지가 로봇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성격이 급한 아버지는 어순이 자주 바뀐다. 마치 미국말처럼. 그럴 때마다 의심이 들곤했다. 


"니가 성운이가. 이야 많이 컸네"

"안녕하세요오오.."


우리 아버지는 녀석을 아는 듯 이름까지 불러대며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의 인사에 부끄러운듯 녀석은 아저씨 다리뒤로 숨어들며 겨우 눈만 빼내어 인사를 했다. 언제 그쳤는지 눈물은 안보이고 훌쩍이는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아버지는 나에게 녀석에게 인사하라는듯 눈빛을 주었다.


"안녕. 다니엘이다. 내는"

"..."

"성운이가 부끄럼이 많아서, 아저씨가 대신 받아줄께."


손을 쭉뻗어 인사를 받아달라는 표시를 했지만 녀석은 아저씨의 뒤로 더 숨어들었다. 아저씨는 무안한 내손을 마주잡아주었다. 부끄러움이 많다고 했다. 그런 녀석이 귀엽다며 웃는 부모님은 아무것도 못봤다. 녀석은 뒤로 숨어들면서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나 혼자만 봤다. 

꽤나 무서워서 잠깐 바지를 확인해야 할뻔 했다. 바지를 눈으로 확인하진 못하고 살짝 손으로 만져봤다. 다행이 뽀송한 원단의 느낌에 안심했다. 다 커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릴 수 없다. 


"니엘아, 손으로 자꾸 그런거 만지면 안된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바지를 만진다며 뭐라하셨다. 엄마도 로봇이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뭘하던 알고있거나, 보고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살짝만졌는데.

그렇게 부모님은 다음 저녁식사를 약속하며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누르는 손의 압박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건 녀석도 마찬가지.


인사를 하면서 멀어지는 녀석은 마지막까지 나만 보았다.

그 녀석은 진심으로 나를 무섭게 처다보았다. 약간 입으로 욕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을 보며 못본척했지만 역시나 바지가 젖었는지 확인해야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밖에서 고추를 만지면 안된다고 뭐라하셨다. 

엄마도 참, 나도 다 컸는데 부끄럽게.


그날, 정리가 덜된 2층방으로 올라왔다. 엄마는 곧 정리가 마무리 될거라며 이부자리를 정리해주셨고 나는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다. 매일쓰는 일기장에 쓸 이야기거리가 생겨서 기뻤다. 일기장 맨끝에는 작은 그림을 그렸다. 이사하는 부모님과 나. 그리고 무서운눈빛을 한 녀석도 그렸다. 눈에서 불꽃이 나오는 느낌을 살려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눈을 칠했다. 나의 자랑거리인 128색 크레파스를 꺼내고서는 녀석의 눈으로 손을 움직였다. 힘을 주어 눈의 색을 진하게 하고있었다. 책상 옆 창문을 보는 순간 고개를 숙였다. 

반대편 집, 녀석의 방도 2층이었고 나를 보고있진 않았지만,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에 제발이 저렸다.

도둑이 제발거린 딱 그모습이다. 

살짝 창가에 눈만 빼내어 녀석을 보았다. 

내가 울린탓에 눈과 입술이 퉁퉁 불어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에 불꽃을 조금 줄여서 그렸다.






-첫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Z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왔습니다. 

소재를 남겨주신 탓에 열심히 써보려고 머리를 굴리다 보니 조금 늦게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장편이 될 것 같습니다.


오타를 확인하는대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