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펫 아래로 발소리가 묻힌다. 복도를 빠르게 통과한 동완이 검은 문 앞에 선다. 손에는 마스터키가 들려있다.

잠긴 문 안쪽으로는 서러워 축축한 공기가 가득하다. 비가 죽죽 긋는 창밖을 동경하는 모양이다. 축축한 공기로 코를 적신 동완이 군더더기 없이 방을 가로지른다. 그리고는 선호의 책상 앞에 반듯이 선다.

아랫배까지 내려가지 못한 숨이 가슴께를 부풀린다. 동완이 깔린 눈으로 책상을 내려다 본다. 손바닥으로 책상을 쓸어내리는 선호가 생각난다. 종종 심란한 얼굴로 하는 행동이다. 동완은 선호가 하는 모양새를 따라 결을 만지다가, 그대로 손을 멈춘다. 선호는 이쯤에서 미간을 찌푸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이다.

동완이 미간을 좁혀 본다. 눈 앞의 어둠이 명확해진다. 모양도 없는 것이 또렷해진다.

    “으음..”

동완은 집에 두고 온 선호가 생각난다. 동완의 침대에 누운 선호는 피묻은 거즈 뭉치를 보며 묻지 않은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 전에 뭐했어?”

동완의 물음에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후에 이어지는 선호의 말은 모두 소금 없는 크래커같았다.

꼬박 이틀밤을 들여 타임라인을 모두 짜맞췄다. 선호의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선호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다. 홀로 살아 남아 스스로를 가둔 사람이다. 독방보다 외롭고 북방보다 차가운 곳으로 저를 내몬다.

    왜?

첫번째 서랍을 헤집는다.
서랍에는 볼 것 없는 서류 몇 장이 낱장으로 들어있다. 서명되지 않은 기획서 몇 장. 몇 개의 주소지가 적힌 메모지가 한 장. 조심스럽게 메모지를 꺼내 사진을 남긴다.


동완은 며칠 사이에 놓치는 것 없이 선호의 주변을 훑어냈다. 점으로 찍힌 선호의 행적을 선으로 이었다. 뻗을 수 있는 손을 모두 뻗어 그의 과거를 헤아렸다. 하지만 그 무엇도 동완의 물음에 답해 주지 못했다.

    왜?

이 무모한 싸움에 베팅하는 이유. 승자가 없을 이 싸움을 놓지 못하는 이유. 동완은 그게 궁금했다.

두번째 서랍을 뒤집는다. 권총 몇 자루가 우두두 떨어진다. 손에 들자 묵직하다. 동완이 빡빡하게 장전되어 있는 총을 빠르게 해체한다.

    “겁도 없어.”

발가벗겨진 권총이 책상 위로 쏟아진다. 버석거리는 서류 봉투가 금세 습기를 먹는다. 그 안에는 마찬가지로 눅눅해진 종이 몇 장이 들었다. 낱장의 종이가 뭉툭한 지문을 가볍게 스친다. 얇게 부서지지 못하는 소리가 슬프다.

손끝에 딸려 나온 종이에는 흑백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그 옆으로는 정갈한 필기체가 줄섰다.

    “제임스...”

제임스.
흑백 사진을 자세히 보기 위해 핸드폰을 든다. 아는 듯모르는 듯한 제임스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뭉개진 픽셀이 동완의 눈을 교란한다. 미간을 찌푸린다.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얼굴이다.

동완의 손가락이 종이를 마저 끌어올린다. 이름으로 시작해서 학력으로 끝난 신상 명세서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크리미널 레코드.”

붉은 스탬프가 찍혀있다.

동완의 눈이 다시 종이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앳된 얼굴의 제임스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고 있다.

    “제임스...”

선호도 앤디도 아닌 제임스. 그리고 보란 듯이 자물쇠도 없는 서랍에 들어있는 서류. 동완이 손끝으로 흑백의 픽셀들을 문대본다.

    너무 쉽다.

가슴팍이 오르내린다.


누군가가 그의 턱 밑에 요행을 들이 밀고 있다.




2. Sunglasses at night


    “야 이 미친놈아!!”

씨디 플레이어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위로 스티브의 목소리가 겹친다. 이어서 에릭의 뒤집어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부엌에서 시작된 웃음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기어코 제임스의 등 뒤로 가까워진다.

    “진짜 미친놈이야 저거!!”

뒤를 돌자 휘핑 크림 범벅이 된 스티브가 서있다. 웃음을 참지 못한 에릭이 제임스의 등 뒤에서 다시 낄낄 거린다. 한 대 맞기 딱 좋다.

    “이거 어쩔거야!”
    “씻고 감 되잖어. 뭘 그렇게 씅을 내.”

눈썹 위에 있던 크림 덩어리가 눈꺼풀 위로 뚝 떨어진다. 악! 하고 비명을 지른 스티브가 에릭에게로 달려든다.

매일같이 있는 소동이다. 오늘은 이걸로 내일은 저걸로 에릭과 스티브는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인거다. 두 사람이 엉키는 바람에 사방으로 휘핑이 튄다. 이크, 하고 몸을 피한 제임스가 식탁 위의 말보로를 들고 창가로 튄다.

    “제임스! 일루 와바 얼른!”

소파 뒤에서 스티브의 목소리가 빼꼼 얼굴을 내민다. 창가에 비스듬히 앉아 아무렇게나 재를 떤 제임스가 고민도 않고 대답한다.

    “Noooop.”
    “아냐 진짜루 일루 와바! 빨리! 안 묻힐게 진짜루!!”

엉성한 한국말로 저를 부르는게 귀엽다. 나이로 치면 두 살이나 형인데도, 미국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은 한국어가 서툴었다.

    “진짜로?!”
    “어어! 진짜로! 얼른 와보라니까!”

이쯤 되면 속는 셈 치고 가줘야한다. 창틀에 비벼 끈 꽁초를 코카콜라 병 안에 골인 시킨 제임스가 엉덩이를 든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키득키득 참지 못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재밌을까. 결국 두어 발자국을 못 넘기고 크림 괴물이 튀어나온다.

    “안한다매!”

배꼽을 잡고 웃던 에릭이 오디오 볼륨을 양껏 올린다.
   
    “안 들려!!!”
 
그리고는 아직 뜯지도 않은 휘핑크림 팩을 들고 달겨든다.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된다. 음악 위로 웃음이 다시 그 위로 음악이. 이 희무끄레한 것은 이유도 없이 우습다. 배가 아프도록 웃은 세 사람은 겨우 서로의 이름만 더듬더듬 불러댄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주인 모를 손이 옷 안까지 불쑥 들어온다. 등판과 티셔츠 사이가 크림 범벅이다. 눈 앞이 하얗게 덮혀서 두손을 마구 뻗어댄다. 온 바닥을 헤집는 통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웃음이 가득찬다. 차다 못해 터져버린 웃음이 흥겨운 Brand new Cadillac을 묻어버린다.

    “에릭!! 진짜 죽일거야!!!”

스티브의 외침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지는데,

    뚝.

음악이 끊겨버린다.

     “재밌냐?”

둔한 발음.

제임스, 아니 선호가 눈가의 크림을 덜어낸다. 주춤거리며 바닥을 짚는데, 타의로 몸이 들린다. 잡힌 멱살이 조여든다. 켁켁 기침을 뱉고 눈을 뜬다. 눈 앞에는 얼굴이 붉은 주정뱅이가 있다. 갑작스러워 눈앞이 돈다. 뒤로는 에릭과 스티브의 기척이.

    “뭐하는 거에요!”

예의 바르기도 하지 우리 에릭형.

    “되먹지 못한 새끼들.”

제임스에서 선호, 다시 선호에서 되먹지 못한 새끼가 된 힘 없는 남자 아이가 다시 한 번 켁켁 기침을 뱉는다. 주정뱅이는 파랗게 질린 아이의 얼굴을 흘기더니 멱살을 내던진다. 아이의 몸이 바닥에 부딪친다.

    “차에 타!”

붉게 줄이 간 목을 문댄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 쪽에 선 에릭과 스티브의 눈이 커진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되먹지 못한 아이들을 욕하며 열린 문으로 나간다.

    “괜찮아?!”

고개를 끄덕인 아이가 몸을 일으킨다. 아직도 손가락 사이에 묻은 크림을 덜어낸다.

간악한 클락션 소리가 들린다.

    “정말로 괜찮아?”
    “응.”

그리고는 거실 한 쪽에 떨어져 있던 제 가방을 집어든다.

    “어디가!?”
    “타라잖아.”
    “가지마. 내가 신고해줄게.”

전화기를 당겨 든 스티브가 다이얼에 손을 댄다.

    “아냐, 괜찮아. 내일 학교에서 봐.”

아이의 얼굴을 살핀 에릭이, 앞머리에 붙은 크림을 덜어 내준다.

    “그럼, 낼 학교 안오면 신고할게.”
    “알겠어.”


물빠진 카키색 가방이 아이의 한 쪽 어깨로 올라간다. 어찌 할 도리가 없어진 에릭과 스티브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만 본다.

    “괜찮을까?”
    “아니.”

에릭의 얼굴이 차갑게 식는다.

3.

그 날 밤 에릭과 스티브는 대책 없이 취했다. 그렇게 취한 채로 실 없는 소리를 했다. 우리 언젠간 한국으로 돌아가겠지.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그러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서 맥주 몇 캔을 더 들이 부었고, 그대로 잠에 빠졌다.

꿈속은 온갖 잡음으로 가득했다.

    쿵쿵.

에릭은 이 소리마저 꿈속의 잡음이라고 생각했다.

    쿵쿵쿵.

깨어있음을 자각하자, 코 속에 갇혀있던 알콜이 다시 아찔하게 올라온다.

    쿵쿵쿵쿵쿵!!!!!

푹 꺼진 소파에서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밖으로 난 창에서 새벽을 무시한 빛이 들어온다. 눈이 멀 것 같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데, 다시 참을성 없는 밤손님이 문을 부술듯 두드린다.

    “shit.. 가만 안둘거야 진짜.”

깨지도 않고 누워있는 스티브가 얄밉다. 한대 쥐어박으려다, 다시 들리는 밤손님의 기척을 무시 못하고 현관 앞으로 향한다.


    쿵쿵쿵!!

그럴리는 없겠지만. 중얼거린 에릭이 한 손에 야구 배트를 쥔다. 그리고는 마른 입술을 훑는다. 아직 깨지 못한 술이 콤콤하게 뇌를 찌른다.

    “Son of bi!!.....”

에릭의 손에 들려있던 야구 배트가 뚝 떨어진다.

    “형..”

배트가 짤그락 거리며 바닥을 구른다. 굴러굴러서는 현관 앞에 선 남색 스니커즈의 앞코에 부딪힌다. 붙었다 떨어진 나무 배트에 검붉은 것이 찍힌다.

    “제임스..!”

헤드라이트가 선호의 실루엣을 밝히고 있다. 선호의 핏발 선 눈으로 눈물이 차오른다. 얼굴에는 얼룩덜룩한 것이 물들어있다.

    “형, 나 어떡해?”

에릭이 하이빔 너머로 차 안을 들여다본다. 조수석에는 힘 없이 늘어진 무언가의 실루엣이.

    “나 어떻게 해...”
    “울지마. I’ll be with you.”


그렇게 선호는 미국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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