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간만에 운동을 빼먹은 날이다. 일주일에 5일 밤을 육체를 단련하는 가치로운 시간으로 보내왔지만 웬일인지 어제는 낮부터 ATP의 비정상적인 증폭으로 하드한 홈트레이닝을 했다. 그래서 밤에는 타버린 재가 되어 꾸벅꾸벅 정신을 못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헬스장에서 메이트와 시시덕대며 운동하기 싫다는 담소를 나누다, 어느새 코인노래방이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둘 다 적잖이 빡빡한 하루를 보낸 통에 번갈아 가며 하품을 해댔지만 노래방을 생각하니 핫식스 마신 학생처럼 각성 상태가 되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살금살금 헬스장을 나와 차를 탔다. 

해는 진작 자취를 감춘 오후9시 반, 깜깜한 공기를 마주하니 해방감이 들었다. 

차분하지만 묘하게 들떠 있는 밤공기를 마시면 가슴이 뛴다.


dynamic


아무도 쫓아오지 않지만 괜히 어디로 도망가는 것 같고, 그러니 더 스릴 있는 이 밤이 영원할 것 같다.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변신하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솟구치는 건 순전히 이 캄캄한 하늘이 뿜는 미지의 세계 덕분이다. 밤은 드워프나 ET도 놀라 자빠질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형광초록색의 말랑한 식량을 지구별에서 채집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신비로운 시간이다. 

상상을 할 때만큼은 인간이 정한 24시간이나 주기의 법칙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저 같은 공간이어도 밝을 때와 어두울 때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는 하늘의 마술이 신기할 뿐이다. 

나는 은하계를 부지런히 쏘다니는 운석의 부스러기보다 훨씬 조막만 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밤이 대단한 것은 안다. 하루 끝에 걸터앉은 시간으로 이루어져서, 더 애처로운 어둠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준 것이 없는데, 이 재미있는 암흑은 그날도 나에게 진귀한 선물을 주었다. 

시간들이 떠드는 향을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장난기 많고 시끌벅적한 시간들이 제각기 바삐 움직이는 설렘의 향기를 느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자기들끼리 휙휙 지나가서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내 코를 스치는 재잘거림이 많기 때문에 그 향이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밤과 밤을 이루는 모든 것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내가 죽으면 밤공기 한 알 한 알을 장례식장에 꼭 초대해야지. 

나를 위한 마지막 밤의 축제가 열리는 걸 보아야 이승을 미련 없이 떠날 거다.  




얼렁뚱땅 김제로의 진지하고 코믹한 이야기

김제로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