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5 Remind 그밤 오이이와 온리전 배포본 무료 발행합니다



평생 남의 편인 줄로만 알았던 그 녀석의 호칭이 바뀌는 건, 순간 일어난 아주 작은 소동 탓이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그날의 기억 속에서 나오라는 듯 반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이와이즈미는 자연스럽게 옆자리로 엉덩이를 붙이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얼버무리는 제 말에 녀석이 볼을 잔뜩 부풀린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특히 저 자신을 한정으로 일어난 일들에 관해 나오는 녀석의 버릇이었다. 손가락을 들어 빵빵해진 볼을 푹 찔렀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방안을 유유히 유영한다. 그도 잠시, 녀석의 볼은 도로 부풀었다.


“그때 생각나서.”


부풀었던 볼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홀쭉해진다. 언제? 묻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결점 하나 없는 녀석의 피부는 당시를 회상하던 때와 변한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게 보이기까지 하다. 괜스레 꽁한 기분이 자리잡는다.


“몰라.”

“에, 그게 뭐야?”


바짝 엉덩이를 붙이고 얼굴까지 들이미는 녀석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와이즈미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껏 약올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정작 약올리기가 주특기였던 건 녀석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약올리는 행동에 굉장히 서툰 편이었다.


“네가 알아서 맞히든지, 말든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 알려주지 않으리라. 지금은 남편이지만 그 당시에는 남의 편처럼 굴던 녀석에게, 오이카와에게 할 수 있는 복수였다. 정작 복수의 대상은 이게 약올리기인지, 복수인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남의 편




“그래서 이와이즈미는 정말 결혼 생각 없는 거야?”


없다고 네 번 말했다. 속으로 되뇌던 말이 입밖으로 나오려 안간힘이다. 이와이즈미는 오른쪽 어금니를 꾹 깨물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겨우 눌러 삼켰다. 카페에서 흘러 나오는 배경음악을 억지로 입안에서 곱씹었다.


“이와이즈미는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그랬어. 맞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결혼 안 한다는 애가 제일 먼저 한다고.”


하아……. 역시 친하지도 않은 대학 동기끼리 모인 자리는 달갑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건 그나마 가깝게 지내던 동기가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전해주기 위해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내가 깼네!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하니까.”


이 자리의 주인공이 재빨리 대답한다. 제 눈치를 살살 살피는 모습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와이즈미는 축의금이라도 두둑하게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정도가 적당할까. 그래도 친했고, 학기 내내 같이 다녔으니까…….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적당히 친한 사이에 축의금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요? 라는 게시글을 떠올렸다.


“어? 이와쨩!”


그래, 어쩌다 만난 거야? 갑자기 결혼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잖아.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갖가지 물음에 동기가 난처한 얼굴을 하던 찰나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듯 가벼운 목소리에 곰곰이 생각하던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돌렸다.


“너 뭐야?”

“뭐긴. 나도 오늘 약속 있어서 왔는데.”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 환하게 웃으며 제 앞으로 걸어온다. 눈앞의 녀석을 보면서 순간 얘가 왜 여기 있지, 싶다가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동기들은 녀석을, 제 소꿉친구인 오이카와 토오루를 알지 못했다. 정확히는 녀석이 이와이즈미의 소꿉친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소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온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비록 과는 달랐지만. 녀석은 그간 학창 시절 현 내에서 인기인이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려는 듯 과내에서, 아니 교내에서까지 모두가 알아 주는 미남에 속했다. 아마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통통 튀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선이 느껴지는 성격이지 않을까, 이와이즈미는 좀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기 중 하나가 꺼낸 말들을 떠올렸다. 왜 청첩장을 나눠주는 이 자리에서까지 녀석의 이름이 나왔을까. 익숙한 이름이 나왔을 때 이와이즈미는 그저 관심 없다는 듯 턱을 괴고 다른 생각하는 척 시치미를 뗐다.

살아온 날들의 절반 이상을 인기 있는 남학생의 소꿉친구로 산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것도 예쁘장하면서 잘생긴 오이카와의 소꿉친구로 산다는 건, 여러 에피소드에 시달리게 되어 더욱 피곤했다. 그렇기에 이와이즈미는 대학교에 진학할 당시, 우리 학교에서 서로 아는 척은 하지 말자고 선언했다. 오이카와는 내심 서운한 눈치였지만, 그간 주변 여학생들에게 시달린 그녀의 고충을 알았던 탓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이와이즈미는 편하게, 시달리는 것 없이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랬는데. 왜 이제 와서 아는 척이지? 그것도 동기들이 가득한, 곧 결혼해서 청첩장을 나눠주기 위해 만난 이 자리에서. 하, 귀찮아지겠네. 일회성으로 생각했던 만남이었기에 녀석과의 사이를 해명해야 하는 이 상황이 꽤나 골치 아프게 느껴졌다. 녀석은 내 소꿉친구고, 학교에서 아는 척 안 한 건 다른 과이기도 하고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 이와이즈미는 제 앞까지 당도한 교내 인기인이자, 소꿉친구인 오이카와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당황한 듯한 얼굴의 동기들에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녀석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여기는…….


“이쪽은 내 남편 오이카와야.”


순간 정적이 흐른다. 시끄럽기만 했던 카페의 배경음악은 뚝 끊긴 듯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어? 어?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야? 이와이즈미는 그제야 제 입에서 무슨 단어가 나왔는지, 그 단어가 누구를 지칭했는지 인지했다. 아니, 아니! 이게 아니라! 놀란 듯 멍하니 저와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동기들에게 해명하려 손을 뻗으려던 찰나였다. 따뜻한 무언가가 어깨를 감싸는 게 느껴진다.


“맞아요.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


어깨를 감싼 것은 오이카와의 커다란 손이었다.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모습에서 당황한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잡은 어깨를 끌어당겨 더욱 밀착한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밀어내려 팔에 힘을 주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야,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얘들아, 이거 절대 아니야!”

“이렇게 짓궂다니까. 언제까지 숨기려고 했어? 내가 잘못했다니까.”


내가 미안해. 이제 화 풀어, 자기야. 응? 어깨를 감싸던 손이 자연스레 허리로 내려간다.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으며 저를 향해 웃는 얼굴이 낯설다. 그래, 이 미소에 뭇 여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오이카와 군은 여자 친구가 없는 거냐고 설렜었지.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냐고, 왜 이러는 거냐고 당장이라도 정강이를 발로 차야 속이 시원할 지경인데.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말들 뿐이지만 이상하게 녀석의 미소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제야 만족한 듯 오이카와가 환하게 웃는다.

홀린 게 틀림없다. 이 얼굴만 믿고 학창 시절을 보냈던 놈한테 홀린 게 분명하다.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



“아팟, 아파!”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기에 이와이즈미가 택한 곳은 오이카와의 넓은 등판이었다. 있는 힘껏 손을 들어 팡팡 내리쳤다. 이제는 몸을 움찔거리며 등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쓴다. 재빨리 몸을 돌린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손목을 잡았다. 잡힌 팔을 빼내려 힘을 주었지만 좀체 놓아줄 생각을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는 가볍게 빠져 나왔을 텐데. 괜스레 기분이 나빠진다.


“아파! 이와쨩 손 진짜 매워!”

“그러니까 왜 거기서 그렇게 얘기했냐고!”


자연스럽게 오이카와의 손에 이끌려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났지만 이와이즈미의 휴대 전화는 편하지 못했다. 카페에서 나온 직후 녀석의 차 조수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집으로 가는 거지? 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의 모든 상황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이와이즈미는 녀석에게 항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집에 도착하고, 기사 노릇하느라 힘들었다며 쉬었다 가겠다는 녀석을 보자 그제야 흩어진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휴대 전화는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액정 속에는 카페에 남은 동기들로부터 온 메시지가 가득했다.


“이거 보여? 어쩔 거냐고!”


이렇게까지 휴대 전화가 불이 난 적은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뜨겁다 못해 계속 울려대는 휴대 전화를 녀석의 면전 앞에 드밀다 탁자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메시지는 결혼을 앞둔 동기의 왜 자기한테까지 숨겼냐며 내심 섭섭한 마음을 토로한 내용이었다.


“내가 뭘?”

“거기서 왜 그런 말을 해서!”

“먼저 한 건 이와쨩이잖아.”

“그건 그때 애들이 남편 얘기 하다가 나도 모르게!”

“수긍한 것도 이와쨩이지.”


평소와 다르게 맞는 말만 한다. 어느 정도의 말싸움을 이기는 건 언제나 자신이었는데. 게다가 오이카와의 표정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이 툭 나온 모양새였다. 탁자 위 휴대 전화는 지쳤는지 조용했다. 하아. 녀석의 뻔뻔한 태도에 이와이즈미는 깊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지 않았다.


“너는 정말 내 편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왜 자신이 그런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이와이즈미는 나오는 대로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생각도 없이 나지막이 푸념했다. 학교 다닐 때 너 좋다는 여자애들 때문에 얼마나 피곤했는데. 개중에 나랑 네 사이를 오해해서 나한테 심하게 대했던 애들도 있었지. 기억은 나? 따지는 걸 한참 들어주다 내가 반박하려고 할 때, 넌 그 단면만 보고 걔 편 들었잖아. 오죽하면 하나마키랑 마츠카와가 날 위로했겠어.


“넌 그저 재미로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난감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허공을 맴돌며 원망하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로 향한다. 원망 어린 눈빛은 금세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굳어진 얼굴 속 미묘하게 뒤틀린 듯한 표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보는 것이었고,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 또한 낯선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말에 무슨 뜻이냐고 대꾸하려 했지만 딱 붙은 입술은 좀체 떨어질 줄을 몰랐다. 흐르는 침묵이 어색하다. 늘상 장난스러운, 짓궂은 얼굴이었던 녀석의 표정도 어색했다.


“친구들한테는 나중에 연락해. 해명을 하게 된다면 내가 대신 할 테니까.”


녀석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평소와 같았으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손을 비는 시늉이라도 할 텐데. 몸을 일으킨 오이카와가 벗어 두었던 겉옷을 챙겨 현관으로 나선다. 어쩐지 말을 덧붙이기가 어려운 뒷모습이었다. 이런 적은 녀석과 친구가 된 뒤로 처음이라, 이와이즈미는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었어. 지금도 그렇고.”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 내일 보자. 신발을 신고 뒤를 돌아 제 눈을 빤히 응시하고, 다시 등을 돌린다. 녀석이 나가고 문이 천천히 닫혔다. 녀석이 갑자기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또 왜 이런 반응인 건지. 해소되지 않은 의문들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



 

“……너 뭐야?”

“뭐가?”


그렇게 오이카와가 돌아간 뒤, 울려대는 휴대 전화에 해명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녀석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 다시 덮어 두고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그리고 겨우 일어나 다음 날 출근을 했고, 녀석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먼저 연락할까 생각하다가도, 간혹 떠오르는 그날의 스킨십이 발목을 잡았다. 어깨 위에 있다가, 언제 자리잡았는지 허리에 둘러졌던 녀석의 커다란 손. 그게 뭐라고 툭하면 떠올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며칠간 연락의 부재는 녀석을 야속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결국 주말이 될 때까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살고 있긴 했지만.

직장인에게 황금 같은 주말이었다. 지난 주에는 친하지도 않은 동기들에, 엎친 데 덮친 격 오이카와의 돌발 행동까지 모든 기가 소진해 집에 머무를까 싶었다.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휴대 전화가 울렸고, 발신인은 고등학교 동창인 하나마키였다. 보너스를 받았는데 쓸 사람이 없다며, 나오라고. 여자 친구 없는 거 티 내냐 물으니 조용히 하고 나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와이즈미는 어쩔 수 없이 외출 준비를 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데려다주려고 왔지.”


그렇게 약속 장소로 가려고 나왔는데, 여태 연락 한 번 없던 녀석이 집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건 무슨 상황일까. 그것도 대뜸 데려다주겠다며. 왜 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야속한 감정이 사르르 녹는 기분일까. 뭐 해? 안 타고. 나 팔 떨어져. 녀석의 목소리를 듣자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감정이란 건 이렇게 쉽게 녹을 수 있는 거구나. 조수석 문을 열고 서 있는 모습이 목적지가 어디인지, 누구를 만나는지 간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마키가 오이카와도 부른 건가. 여태 연락 한 번 없다가 대뜸 와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당할 노릇이었지만, 또 너무나 오이카와다운 것이었다. 고집 꽤나 있는 녀석의 성격은 조수석에 앉을 때까지 문을 잡고 있을 게 뻔했기에 이와이즈미는 어쩔 수 없이 오이카와의 뜻대로 따랐다.

이와이즈미가 조수석에 앉은 후, 자연스럽게 핸들을 쥔 오이카와는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평소 같았다면 재잘거리며 저를 약올리거나, 회사에서 있었던 웃긴 이야기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녀석의 입은 요지부동 열릴 줄을 몰랐다. 근래에 보는 녀석의 행동들은 죄다 낯설어,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이와이즈미는 차창 너머 쏟아지는 햇빛에 반짝이는 녀석의 머리칼을 흘긋거렸다. 밝은 갈색의 머리칼이 반짝여 더욱 밝게 보인다. 녀석의 성격과도 비슷한 색, 그리고 그 색을 닮은 눈동자. 반듯한 콧날과 학생 때부터 꾸준히 립밤을 발라 관리한 반들반들한 입술까지. 녀석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 보면서 그간 스쳤던 여학우들이 왜 그의 미모를 찬양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오이카와는 잘생겼다. 그때의 스킨십이 떠올라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뭐 묻었어?”

“어?”

“빤히 보길래.”


아차. 화르륵 얼굴로 퍼지는 열감을 느끼며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응? 되묻기에 먼지 같은 거 붙었었는데, 네가 살짝 움직여서 떨어졌어. 빠르게 변명을 해 버렸다. 흐응, 그렇구나. 다시 운전에 집중하는 녀석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키지는 않았구나 안심했지만, 순식간에 얼굴 전체를 덮은 열감은 좀체 식을 줄을 몰랐다. 이와이즈미는 잔뜩 달아오른 열을 식히는 데에 집중하느라 옆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장소에 도착하자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다. 뒤에서 이와쨩, 하고 부르는 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못 들은 척 뒤꽁무니를 보였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자 얼굴에 몰려있던 피가 아래로 순환하는 기분이 들었다. 요동치던 심장도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곧이어 차 문이 닫히고 잠그는 소리까지 들린다. 녀석이 차에서 내렸을 게 분명해서 이와이즈미는 약속 장소인 카페로 빠르게 걸었다. 왜 오이카와의 눈을 마주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어째서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걸까.


“어. 왔냐?”

“맛키, 안녕.”

“네가 어떻게 알고 왔냐.”

“왜 나는 안 불렀어? 너무해.”


언제 따라왔는지 녀석은 바로 제 뒤에 서 있었다. 이와이즈미 네가 불렀냐? 하긴, 너희 둘이 세트니까. 서로의 물음과는 하등 상관없는 말을 하더니 익숙한 듯 자리에 앉는다. 어떻게 알고 왔냐니? 하나마키가 부른 게 아니었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테이블의 빈자리가 채워진다. 하나마키가 앉고, 그 맞은편에 오이카와가 섰다. 순간 누가 녀석을 이곳으로 불렀는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고 어디에 앉을지에 대한 고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와쨩. 여기 앉아.”

“그래. 왜 서 있어, 나 광합성하게 햇빛 가리지 마.”


요즘 비타민 D가 부족하단 말이야. 어서 앉으라는 듯 손을 휘두르는 하나마키에 이와이즈미는 어쩔 수 없이 오이카와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그 옆으로 냉큼 녀석이 앉는다. 이와이즈미는 어쩌다 자신이 오이카와 옆에 앉는 것조차 의식하게 됐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의식하지 않은 것들이 하나둘 수면위로 떠오르자 혼란스러웠다. 나한테는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일들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너 얼굴이 왜 그러냐.”

“어? 뭐가?”

“얼굴이 왜 그러냐니. 말이 이상한데, 맛키?”

“뭐래, 얘는.”


그거, 이와쨩한테 실례되는 말이야. 제법 단호하게 말한다. 별안간 뜬금없는 녀석의 반응에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의 시선이 오이카와에게 향한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싶어 입을 떼려는 순간, 하나마키를 향하고 있던 녀석이 몸을 틀어 저를 마주한다. 그리고 손을 올려 그간 잠을 못 자 푸석해진 얼굴에 손을 올렸다.


“조금 푸석하긴 하지만, 그래도 예쁜데.”

“풉.”


너무 놀라면 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렇구나. 마시던 음료가 코로 역류했는지 황급히 잔을 내려놓은 하나마키가 급하게 티슈를 찾는다. 이와이즈미는 녀석에게 잡힌 얼굴을 빼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거렸다. 얘가 지금 뭐라고…….


“노망났나.”


잠 못 잤어? 피곤해 보여. 일찍 들어갈래? 묻는 목소리가 다정하다. 마치 자신을 진짜 아내처럼 대했던 그날과 같이. 잠잠했던 심장이 눈치없게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곁눈질로 하나마키를 바라보자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귀 근처로 검지손가락을 들어 원을 크게 만든다. 그것도 꽤 여러 번.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이와이즈미가 황급히 녀석을 밀어낸다. 제법 힘을 주어 밀었음에도 녀석은 살짝 몸을 뒤로 할 뿐, 더 이상 물러나지 않았다.


“너, 너 왜 그래?”

“뭐가?”

“너 뭐 잘못 먹었어? 왜 그래?”

“내가 뭘. 이상하네, 이와쨩.”

“아, 밥맛 떨어져.”


그냥 혼자 궁상이나 떨라니까 너희는 여기 있든지. 잔에 남은 음료를 한 번에 들이킨 하나마키가 쫓기든 일어선다. 양심껏 계산은 했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은 채. 이와이즈미는 하나마키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걸 알면서도 잡을 수도, 따라갈 수도 없었다. 눈앞의 소꿉친구 때문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만 하고 있는 이 녀석 때문에.


“그래.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하지.”


가볍게 숨을 내쉬고 툭 내뱉는 목소리가 담백하다. 이와이즈미가 대꾸할 새도 없이 녀석이 입을 열었다.


“이제 네 편인 거, 티 좀 내 보려고.”

“뭐?”

“그때 말했잖아.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고.”


그때. 그때라면 분명 녀석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던 그날일 것이다. 내가 화를 냈고, 갑자기 태도가 바뀐 오이카와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던 그때인데…….


“나는 단 한 번도 이와이즈미 편이 아닌 적 없었어.”

“…….”

“그래서 이제 티 좀 내 볼까 해.”


이와쨩이 알 수 있게. 녀석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호선을 그린다. 여태껏 들어왔던 철없던, 가벼운 목소리와는 다른 무게감을 실은 낮은 저음. 눈치없게도 요동치는 심장은 기세를 더한다. 쿵쿵, 귓가에서 맴도는 심장 소리가 설마 이게 두근거림인가, 싶은 의심까지 하게 만들었다.


“맛키도 갔는데 우리도 일어날까? 이와쨩, 피곤해 보여. 많이.”


의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녀석을 상대로 두근거림을 느끼다니, 내가 왜 이러지. 이와이즈미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녀석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오이카와의 미소에 무장 해제가 돼 버린 걸까. 어쩌면, 녀석의 태도가 바뀌었던 그날부터이지 않을까. 이와이즈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익숙함이라는 흙에 덮인 묵은 감정들이 싹을 트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떨리는 심장 박동은 기분 나쁜 것이 아니었다.


*



내 편이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니. 항상 내 편이었다는 건가? 그런 것치고 오이카와는 늘상 이와이즈미를 약올리기에 바빴고,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남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뜬금없이 나타나 제 신경을 살살 긁기 일쑤였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아는 척하지 말자는 제 간곡한 부탁에 그 간섭들은 따로 이와이즈미를 찾아와 뱉어냈지만.

항상 내 편이었던 오이카와. 생각해 보면 녀석의 태도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었다. 녀석을 좋아하는 여학생과 작은 마찰이 있었을 때, 사건의 단면만 보고 오해했던 오이카와는 저를 찾아와 사과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녀석이 보기 싫어 며칠을 피해 다녔을 때, 추운 겨울날 제 집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녀석의 첫마디는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배려는 이기적인 것이었다고, 그때 그 여자애 편을 들지 않았으면 이와이즈미가 곤란해질 것 같아 섣불리 판단하고 행동했다고. 녀석을 지나쳐 집으로 들어가려는 제 외투 소매를 조심스럽게 잡고서 말했던 때를 기억한다. 오해는 녀석이 한 게 아니라 저 자신이 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던 날. 그 작은 소동을 뒤로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어쩌면 서운하게 느껴졌을 제 부탁을 두말없이 들어줬던 오이카와. 그는 이와이즈미의 편이 아닌 적이 없었다.

하나마키와의 약속이 흐지부지된 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푸석해 보이는 제 눈두덩을 쓸면서 그는 푹 자, 이와쨩. 다정하게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간질거리는 마음에 그의 눈을 마주하는 대신 주변에 시선을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홀로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과거의 일. 여학생과 작은 소동이 있었을 때, 처음 보았던 다른 이를 감싸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을 때. 나는 왜 그 일을 지금까지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고 있고, 왜 그렇게까지 배신감을 느꼈을까. 그 당시에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위로했을 때, 저 자식 짜증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멍하니 생각하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로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자신이 슬쩍 눈물을 흘렸던 날이기도 했다. 괜찮지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 제 손을 잡아 주었을 때, 그제야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과거의 일들과 현재의 일들. 배신감, 눈물, 낯설게 느껴지는 그의 모든 것들, 요동치는 심장 박동, 두근거림. 비슷하면서도 상반되는 그날의 감정들이 겹쳐졌을 때, 비로소 무장 해제된 이와이즈미의 마음속 해묵은 감정들이 싹트고 줄기를 뻗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와이즈미 편인 거, 이제 티 좀 내 볼까 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이카와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이와이즈미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편이라는 게 그런 뜻이 아닐 텐데. 종일 제 옆에서 시중 들듯 배 안 고파? 목은 안 말라, 이와쨩? 필요한 것들을 물으며 귀찮다고 느껴질 정도로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가신 귀찮음이 아니라 그를 타박하지 않았다.


“너, 좀 귀찮아.”

“응,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걸까. 직장인에게 황금 같은 주말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양 손 가득 식재료가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 오이카와는 빠르게 주방을 점령했다. 그는 이와이즈미가 만족할 정도의 아침상을 차려냈고, 복스럽게 먹는 제 모습에 턱을 괴고 씨익 웃었다. 귀엽게 먹는 게 늘 보기 좋아, 이와쨩.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은 채. 그 한마디에 사레가 들려 다급하게 물을 찾았을 때, 미지근한 물을 손에 쥐여주는 그의 웃음은 가식 하나 없는, 어릴 적 보았던 저만 느낄 수 있는 해맑은 것이었다.


“편이라는 게 이런 뜻인가?”

“응?”


식사를 마치자 재빨리 고무장갑을 사수한 오이카와 덕에, 이와이즈미는 배를 두둑히 채운 후에도 그 어떤 노동도 없이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려온 그가 제 손에 잔을 쥐여 주었을 때, 이와이즈미는 내심 궁금했던 것을 꺼내놓았다. 제 속에서 꿈틀거리는 묵은 감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인지했지만, 최대한 그에게 들키지 않으려 조심히,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이렇게 네가 내 시중 들듯이 하는 거. 이게 내 편인 거야?”

“음…….”


오이카와는 대답 대신 자세를 고쳐 앉고 이와이즈미가 깔고 앉은 방석을 제 쪽으로 끌었다. 그 기척에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지만, 그보다 먼저 허리에 닿는 커다란 손에 둘의 사이는 벌어지지 않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카락, 그보다 조금 밝은 오이카와의 눈동자. 예쁜 갈색의 눈동자를 온전히 제 눈에 담아보는 게 얼마만인가. 다시금 요동치는 심장 박동에 슬쩍 시선을 돌릴까 고민도 했지만, 그보다 녀석의 예쁜 눈동자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 그 고민을 거두었다.

한참 녹색 눈동자를 응시하던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고개를 떨군다. 이렇게 보려니까 떨려서 오래 보지도 못하겠네.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게 아닌가…….”

“어?”

“나름대로 좋아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건데.”


이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피어나는 감정을 숨기고자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그런 유치한 행동은 이제 하지 않는다. 깊은 숨을 내뱉자 어깨 언저리가 간질거린다. 마음까지 간질거리는 기분이다.


“난 아직도 서툰가 봐. 이와쨩 앞에서는 항상 이렇게 되네.”


슬며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한다. 내 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다정한 시선이 맞닿는다. 촉촉하게 물기 어린 눈망울이 유난히 더 반짝여 보인다. 쿵쿵. 울리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이와이즈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와쨩은 내 생각 많이 해?”

“어?”

“나는 많이 하거든.”


가끔 바쁘게 일하다가 문득 생각나. 차를 타고 가다가 신호에 걸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생각나는 건 이와쨩이더라. 밥 먹을 때에는 이와쨩은 밥 먹었을까 생각하게 되고. 더우면 덥다고 생각나고, 추우면 춥다고 생각나고. 그날도 그랬어. 약속 장소인 그 카페로 가는데 유난히 높은 하늘이, 유달리 도드라져 보이던 초록색 나뭇잎이 이와쨩을 생각나게 하더라. 같이 보면 좋겠다. 같이 있으면 좋겠다, 하고. 그렇게 생각하다 카페로 갔는데, 정말 이와쨩이 있었어. 친구들 사이에서 턱을 괴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 그 카페로 가는 내내 생각났던 그 모습 그대로.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먼저 인사했는데, 이와쨩이 나를 그렇게 소개해 줘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순간 억누르고 있던 욕심이 튀어나왔나 봐.


“이와쨩이 곤란해질 걸 알면서도 욕심을 부렸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져서.”


아차 싶었는데, 이와쨩이 날 바라보는 눈을 보고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던 마음이 조금은 확신으로 변했어. 적어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조심스럽게 생각했어. 담담하게 뱉는 목소리였지만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랬는데, 과거의 일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지.”

“아, 그건…….”


그날의 일이 꽤 깊게 자리잡고 있는 줄은 나도 몰랐는데. 조금은 변명하듯 대답하려 하자 오이카와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한 목소리와는 달리 맞잡아 오는 손에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 손을 덮은 커다란 손이 따스했다.


“깔끔하게 고백하고 내 마음을 보여줄까 싶었는데, 내가 이와쨩 편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마음을 이와쨩에게 고백하는 건데, 깔끔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수는 없지. 표현하기에 버겁고, 조심스럽고, 무거운 감정인데. 낮게 실소를 터뜨리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릴 적 소꿉친구의 모습이 아닌, 남자의 모습이 다시금 보이기 시작한다. 제 손을 덮은 커다란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잡은 손에 힘이 실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마저도 서툴러서 이렇게 엉성하게 해 버리고 말았지만.


“이제 이와쨩 옆에서 이와쨩 편만 들고 싶어.”

“…….”

“남편이 너무 빠르다면, 남자 친구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깊은 흙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씨앗이 싹을 트고, 줄기를 뻗어 비로소 작은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따뜻한 흙속에서 싹을 틔우기 위해 긴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린 씨앗은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도 네 생각 많이 해. 지난 주에는 뜬금없이 나는 네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먼저 연락할까, 찾아갈까 망설이느라 하루의 몇 시간을 네 생각으로 보낸 적도 있어. 물을 마시다가도 생각나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이건 네가 좋아하겠다 싶어서 또 생각나고.

터진 꽃봉오리가 만개한다. 홀로 인고의 시간을 견딘 꽃은 그 무엇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래도 괜찮을까?”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소꿉친구에서 남자 친구가 되어 버린 그가 더할 나위 없이 말갛게 웃는다. 빨갛게 물든 귓볼이 설렘을 말해 준다. 베시시 웃는 녀석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제야 살짝 풀어진 분위기에, 그가 잡은 손을 놓고 제 몸을 끌어당긴다. 따스한 체온이 약간의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녹게 만든다. 고백하기 직전에 했던 것처럼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그가 숨을 깊게 내뱉는다. 아, 정말 좋다. 좋아해, 이와쨩. 줄곧 말하고 싶었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친구들한테는 나중에 연락해. 해명을 하게 된다면 내가 대신 할 테니까. 정말 그의 말처럼 되어 버렸다.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말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동기의 결혼식에는 당당하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후에 결혼식에 가게 되었을 때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동기들 사이에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비밀리에 결혼하고 입학했다는 소문이 넓고 얕게 퍼졌다는 사실을. 그 덕에 동기의 부케는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이와이즈미 대신 오이카와가 받게 되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받은 부케를 흔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와이즈미는 그보다 더 풍성한 부케를 던졌다. 부케의 주인공은 하나마키였다.


*



살면서 줄곧 ‘이와쨩, 그럼 안 돼~’ 제 신경을 살살 긁으며 남의 편만 드는 줄 알았던 소꿉친구가 말 한마디로 인해 남편이 될 줄이야.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던 이와이즈미는 녀석을 약올리는 것을 뒤로 하고 자꾸만 제 품으로 파고드는 오이카와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래, 알겠어. 나도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확인 받고 싶어하는 그는 제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날처럼 말갛게 웃었다.


“너 평생 내 편이지.”

“응. 평생 이와쨩, 하지메 편이지.”


그때도, 지금도. 이와이즈미는 그 웃음을 좋아한다. 그의 말처럼 평생 좋아할 것이다. 품에 파고들다 고개를 든 녀석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밝은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입술에 닿는 따스한 감촉을 느끼며 이와이즈미는 생각했다. 나 역시 너처럼 평생 네 편일 거라고.

 



생각보다 금방 내릴 지도 모르겠네요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만에 쓴 급암 소설인데 많이 부족한 게 잘 보여서 민망하네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내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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