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상도 못한 정체



구름이 해를 가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어두컴컴한 하루, 평소처럼 ‘Forest’에 놀러 와 커피를 마시던 민규는 오늘도 종알종알 손님들이 들려준 가십거리를 형호와 우림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근처에 살인사건 난 거 알아요?”

“살인사건? 집에 티비가 없어서 몰랐네”

“50대 아저씨인데, 목이 물어 뜯긴 것처럼 찢어져있었대요. 근데 시체엔 피가 거의 없었대요. 마치 뱀파이어한테 빨아 먹힌 듯이!”

“… 에이, 형 뱀파이어가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

“이상한 싸이코인 거지! 형호 형도 조심해요. 우림이 너도.”

“너야 말로 조심해. 조그마해가지고.”

“아, 짜증 나 진짜.”

“두훈이 형은 언제 돌아와요?”

“곧 올 거야. 잠깐 가게 좀 봐줘. 형님 짐 들어주러 갔다 올게.”

“네에~”


*


형호에게 가게를 맡기고 꽃시장에 다녀온 두훈은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는 어두컴컴하고 스산했다. 두훈은 우산을 어깨와 목 사이에 끼고 양손 가득 꽃들을 들어 주차장과 멀리 떨어진 본인의 가게로 향했다. 평일 애매한 시간대에 날씨도 날씨인지라 길거리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두훈은 우산에서 나는 빗소리에 맞춰 휘파람을 불며 걸었다. 그때, 한 남성이 조용히 두훈의 뒤를 따라왔다. 두훈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휘파람을 불며 걸을 뿐이었다.


“저기요.”

“네?”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어? 감사합니다. 꽃다발 위에 올려주세요. 제가 지금 손이 없… 큭!”


남자는 두훈이 떨어뜨린 꽃 한 송이를 건네는 척 두훈의 목을 붙잡았다. 두훈은 저항했지만 남자의 힘이 월등하게 강했다. 손에 있던 꽃들은 바닥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었다. 강하게 조여 오는 손아귀 힘에 숨을 쉴 수 없었고, 두훈의 목은 남자의 긴 손톱에 상처가 나고 있었다. 비 냄새와 함께 풍겨오는 은은한 두훈의 향기로운 피 냄새에 남자의 눈은 더 빛났다. 두훈의 힘이 빠질 때쯤 남자는 두훈의 목에 이를 박아 넣었다. 피가 빠져나가는 서늘한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지며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형님!”


갑자기 풍겨오는 두훈의 피 냄새에 형호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감히, 누가 배두훈을 해친단 말인가. 전속력으로 달려간 길에선 알 수 없는 뱀파이어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두훈이 보였다. 형호는 그대로 뱀파이어를 발로 차 두훈과 멀리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로 남자의 얼굴을 잡아 벽에 던져버렸다. 형호는 그 어떤 때보다 분노에 차있었다. 두훈의 피를 마신 뱀파이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희열로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다시 쓰러져있는 두훈에게 달려갔다. 형호는 온 힘을 다해 막았지만 광분한 뱀파이어를 막기는 힘들었다.


“제기랄!”

“저 피! 저 피를 마셔야 해!”

“꺼져, 이 개새끼야!”


점점 형호가 힘으로 밀리고 있을 때, 저 멀리 빗속에서 익숙한 빵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를 가진 늑대, 아니 늑대인간이 나타났다. 늑대인간은 빠른 속도로 달려와 형호를 공격한 뱀파이어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뱀파이어의 피는 비처럼 쏟아져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형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뱀파이어의 가슴에 손을 박아 넣어 심장을 뽑았다. 형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훈에게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늑대인간의 등장에 형호의 경계심은 배가 되었다. 또 두훈을 공격할까 싶어 쓰러진 두훈을 끌어안고 경계태세를 풀지 않았다.


“혀, 형! 저 우림이에요!”

“뭐?”

“봐봐요!”


늑대인간의 형태를 풀고 나타난 얼굴은 형호가 너무 잘 아는 동생, 우림의 얼굴이었다. 그제야 형호는 빗속에서 나는 은은한 빵 냄새를 맡았다. 정말 우림이었다.


“너, 너 왜 늑대인간이야?”

“왜냐뇨….”

“아니, 난 늑대인간 냄새 맡지도 못했는데? 넌 빵 냄새만 났단 말이야!”

“저도 형 꽃냄새만 나서 뱀파이어인 거 몰랐어요….”

“… 일단, 돌아가자. 형님 상태도 봐야 해.”


두훈을 업은 형호와 우산을 든 우림은 말없이 길을 걸었다. 그들 사이에는 긴 침묵만이 가득했다. 예로부터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서로를 혐오했다. 때문에 그들은 수백 년간 싸우고 가까이 있기를 꺼려했다. 정체를 몰랐을 때는 형호와 우림은 정말 좋은 형, 동생이었지만 정체를 알게 되니 머쓱하기 짝이 없었다. 서로 침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가 못 참고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형.”

“우림아.”

“엇…. 형 먼저 말하세요.”

“어, 어어…. 그, 나는 말이야. 늑대인간에 대한 편견 막 이런 거 없다. 그냥, 넌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고….”

“저, 저도! 뱀파이어에 대한 편견 없어요. 막 더럽게 피 빨아먹는 존재라고 생각 안 해요!”

“… 그렇게 생각했구나.”

“아뇨! 아니에요!”

“그래….”

“진짜예요!”

“하하….”


둘은 서로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지으며 바라보았다. 최대한 어색한 미소를 짓던 우림이의 표정이 갑자기 점점 굳어졌다.


“형, 두훈이 형 안색이 점점 안 좋아져요.”

“뭐? 아 제기랄!”


형호와 우림은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가게에는 갑작스럽게 뛰쳐나간 우림이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굴리는 민규가 있었다. 민규는 형호와 우림이를 보고 환히 웃었다가, 형호 등에 업혀있는 두훈의 상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형호는 다급히 가게 위층의 집으로 들어가 두훈을 침대에 눕혔다. 두훈은 점점 몸이 차게 식고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형호는 다급하게 냉장고를 열어 혈액팩 여러 개를 가지고 왔다. 형호를 위해 뽑아놨던 두훈의 피를 여기에 쓸 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형호는 혈액팩을 두훈에게 연결하고 약초들을 갈아 먹인 후 조용히 경과를 지켜봤다.


“무슨 일이야? 두훈이 형은 왜 이러는 거고! 너랑 형호 형은 왜 피투성이야? 어디 다친 거야?”

“저랑 형호 형은 하나도 안 다쳤어요.”

“네가 말한 싸이코랑 싸우다 왔다.”

“뭐? 그게 말이 돼요?”

“말이 되니까 이 꼴이지.”


점점 좋아지는 두훈의 안색을 보고 형호는 한시름 놓았다. 지친 듯 의자에 털썩 앉은 형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우림이는 수건을 여러 개 가져와 형호에게 건네고 자신의 머리를 털었다. 민규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황당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한테 자세히 설명해줄 사람?”

“… 나중에 해줘도 돼요?”

“아니, 난 지금 듣고 싶은데.”

“정신머리 없다. 집에 가라 너네.”

“내가 어떻게 가!”

“… 형 쉬세요. 민규 형은 제가 데려갈게요.”

“뭐? 아니! 이거 놔 고우림! 이거 놓으라고!”

“형호 형, 내일 봐요.”


우림은 민규를 질질 끌고 문 밖으로 나섰다. 민규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힘으론 우림을 이길 수 없었다. 두 동생들이 나가니 집이 한층 조용해졌다. 그저 두훈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집에서 형호는 생각에 잠겼다. 너무 많은 일이 휘몰아쳤다. 갑작스러운 뱀파이어의 습격과 두훈의 부상, 그리고 우림이가 늑대인간이라는 사실까지.


“돌겠네….”


형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이 끔찍한 비와 피 냄새를 지우고 싶었다.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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