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or HATE?

W. 몸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더 남았는데. 줘도 되나?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게요.”

 

흔들리는 지훈의 눈과 시선을 맞춘 민규가 지훈에게 다가갔다. 살며시 고개를 틀며 지훈의 입술 가까이로 다가간 민규가 지훈의 입술 앞에 멈춰서 이야기했다.

 

“저번에 스캔들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하죠.”

“...”

“내가 사실, 여자 앞에선 안 서.”


외설적인 소리와 함께 지훈의 입술을 가볍게 빨아들였다. 텁텁한 밀가루가 살짝 감돌았다.

 

“그리고 하나 더.”

 

아롱거리는 눈망울을 하고는 저를 바라보는 지훈의 허리를 감으며 바짝 붙은 민규가 말했다.

 

“딱 알겠어. 지금 이지훈씨 생각. 내가 이래뵈도 검사 출신이라서. 촉이 좋거든.”

“개소리 하지...”

 

민규가 눈물길이 내린 지훈의 오른뺨에 입술을 쿡. 찍어냈다. 테러가 있을 적,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탓에 얼굴에는 텁텁함이 닿지 않았나보다. 그저 울음 때문에 붉어진 뺨은 말랑함만을 온전히 전해주고 있었다. 눈가 근처부터 다시 입술까지 눈물길의 흔적을 따라 입술을 눌러주니 지훈의 말간 얼굴이 더 도드라졌던 건 기분 탓인가.

 

“내 말이 틀렸어요?”

 

지훈의 코 끝에 한 번 더 쿡. 지훈이 제 시선을 피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민규가 지훈의 입술을 또 다시 핥아올렸다. 우으응. 지훈이 밀려들어온 혀를 밀어내며 무어라 웅얼거렸지만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했다. 틈이 없었다.

 

민규가 그런 지훈의 두 뺨을 조심스레 감싸고 하얀 이마 위로 입술을 묻으려는 순간, 지훈이 까치발을 들고 민규의 아랫입술에 키를 맞췄다. 한 번 더 말소리 없이 소란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내 말이 맞지?”

“맞아...씨발.”

 

이번엔 떨어진 민규의 두 뺨을 잡아내린 지훈이 제 키를 한껏 높여 다시 키스하고, 그런 지훈의 허리를 감아 힘을 주어 제 아랫배를 지훈에게 밀착시켰다. 얼추 키가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더욱 키를 높이려고 아등바등 발 끝을 세우는 지훈을 느끼고 민규는 입술을 핥짝거리는 와중에도 웃었다.

 

다급하지 말자는 뜻인지, 천천히 하자는 뜻인지, 입술을 떼어내고는 군데군데가 벌게진 지훈의 얼굴에 또 다시 쿡쿡. 턱, 코 끝, 눈, 이마. 입술이 궤적을 찍어낼 때마다 지훈은 민규의 어깨를 잡은 손을 움찔거리며 붉어진 눈두덩이를 꾸욱 감아낼 뿐이었다. 민규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찡긋 거리던 눈을 뜬 지훈이 민규에게 물었다.

 

“혼자, 그렇게 감질나게 굴면.”

“...”

“재밌어?”

 

그리고는 평소 언쟁을 할 때 보이던 ‘이의원’의 눈을 하고는 민규의 목에 훅, 팔을 걸어 꼿꼿하던 민규의 허리를 숙여냈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찍어내듯이 입술을 내리는 지훈과 그런 지훈에게 기울어진 민규. 조용해진 의원실 안을 유일하게 소란스레 울리던 건, 금색 글씨로 정당당 창당 50주년 기념이 적힌 괘종 시계의 틱, 틱, 틱, 틱. 초침 소리와 그 사이를 매꾸던 연인의 소리.

 

서로의 입술을 감쳐물 때마다 들이닥치는 민규가 힘에 부치는 지, 자꾸만 뒤로 젖히는 지훈의 고개를 민규가 부드럽게 감쌌다. 지훈이 바툰 숨을 다시 몰아쉬기도 전에, 팔을 뻗어 지훈의 허벅지를 감아내 들어올린 민규가 그대로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 그쪽으로, 으, 가면...”

 

하얀 커텐이 쳐진 창틀에 몸을 기댔다. 한낮의 볕이 의원실로 한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민규는 다시 지훈의 뺨을 손아귀에 쥐어냈다.

 

“미, 친.. 놈아. 들, 흐으, 키면...”

“들키면 뭐. 징계밖에 더 먹겠어?”

 

고개를 돌리면 자신의 정면에 들어차는 창 밖 풍경에 조용히 소리를 뱉은 지훈이 제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리고는 사력을 다해 민규의 허리춤을 잡아내고는 가슴팍에 고개를 숨겨묻었다.

 

“왜.”

“흐, 아으...”

 

민규의 가슴팍 앞에서야 제 숨을 올곧이 토해내면서 지훈이 버텨냈다. 제 몸을 유일하게 덮고 있는 하얀색 와이셔츠는 이미 잔뜩 구겨져 지훈의 둥그런 어깨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기에 몸을 더 말고 파고드려 애썼다.

 

“왜, 숨을까. 자꾸.”

 

민규가 지훈의 고개를 들어 다시 제 어깨에 얹혔다.

 

“보이면... 하으, 어떻,”

“네가 보지마, 그럼.”

 

민규가 들춰올리는 허리는 멈추지 않으면서 천천히 지훈의 안경을 벗겨냈다.

 

“네가 보지마. 그럼 되지?”

 

툭. 지훈의 안경이 정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뿌옇게 흔들리는 시선. 하얀 볕이 커텐에 녹아들어 따뜻하고, 바깥 풍경은 얼룩 같이 남았을 뿐 지훈에게 그 어떤 이미지도 주지 못했다. 얼룩. 얼룩 같은 거야. 긴장감에 잔뜩 힘을 주던 몸을 풀어내고는 자연스레 민규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제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틱, 틱. 늙은 괘종시계가 자신의 시간을 하나 둘 흘려보내고. 휘이, 작게 열린 창문 틈으로 어느새 커다란 공기 더미들이 바람 골목에 들어선 듯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을 대고 눕지는 못하고 좁은 소파에 모로 누워 몸을 비볐다. 지훈을 안 쪽으로 눕힌 민규가 지훈의 가득 껴안고 눈을 감았다. 둘이 자긴 좀 좁네, 여기 싱글 사이즈구만. 민규가 중얼거렸다. 피곤하니까 입 좀... 제발... 기운 빠진 목소리를 뱉은 지훈이 제 허리 사이로 떨어진 민규의 팔을 더 끌어당겼다.

 

새벽의 으슬함에 잠이 먼저 깬 것은 지훈이었다. 아직도 제 허리를 둘러안고 있는 민규의 팔을 천천히 떼어낸 지훈이 소리 없이 옷가지를 정리해 의원실을 빠져나왔다. 아우... 좁아... 여기... 어느새 지훈이 일어난 공간으로 민규가 그제야 등을 대고 몸을 풀었다.

 

똑똑. 건조하게 울리는 의원실 문에, 서류에 코를 박고 있던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세요.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벌컥 열리는 문.

 

“아니, 말도 없이 그냥 갑니까?”

“뭐 굳이 말을 해야 해요?”

“몸은 좀... 괜찮고?”

“몸이 왜요.”

“아니... 뭐 아픈 데는 없어요? 등이나 다리나... 허리...”

“아플 리가. 누구랑 싸우기라도 했나.”

 

지훈이 다시 서류에 코를 박았다.

 

“뭐하고 있어요?”

“일 합니다.”

“내년 개회까지 휴가 아닙니까?”

“할 일이 있으면 하는 거죠. 왜 왔어요?”

“올 수도 있지, 뭘 올 때마다 물어요?”

“할 말 없으면 가세요. 바쁩니다.”

“뭘 하는데 그래애.”

 

민규가 지훈의 테이블로 성큼 걸어와 서류들을 낚아챘다. <재개발 심의 조건 강화의건>. 민규가 표지와 함께 두어장 넘겨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준비하는 거에요?”

“내년도 첫 개회일에 발의할 겁니다.”

“끝까지 포기를 못 하시겠다?”

“재개발 무효화, 좋죠. 누구 덕분에 잘 해결됐습니다. 근데, 그 다음은요. 그 다음에 또 어디선가 민우마을 같은 곳들이 생겨날 텐데. 그럼 그 때마다 김대표님 스캔들로 딜 해야합니까? 김의원님 아버님은 애인이 100명이라도 돼요?”

“아... 100명까진 아닐 것 같은데...”

“마무리를 지어야죠.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자기 터전에서 가슴 졸이는 건 못 봅니다.”

“잘 할 수 있겠어요?”

“언제는 못 했습니까?”

“재개발 심의, 지금 발효 중인 것 우리 당에서 발의한 거 알죠 있죠. 나름 1년 가까이 연구한 겁니다.”

“그래서요. 1년 연구한 건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까?”

“그 때 연구한 자료들이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가지고 올게요. 지금 법안의 근원을 알아야 개선안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민규가 걸음을 옮기며 지훈에게서 물러났다. 달각, 의원실 문이 닫힐 때까지 지훈은 미동하지 않았다.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민규의 얼굴이, 얄미워. 그렇게만 생각했다.

 

똑똑. 있습니까?

 

“자료는 문 앞에 두고 가세요.”

 

지훈이 문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달각, 그럼에도 돌려지는 문고리에 들고 있던 펜을 던진 지훈이 점차 열리는 문을 노려보았다.

 

“뭡니까? 두고 가라니까.”

“점심은 푸드트럭 샌드위치라고 안 했습니까? 지금 딱. 점심시간인데.”

“전 이미 먹었습니다.”

 

민규가 지훈의 테이블 앞에 놓인 빈 컵라면을 흘겨보았다.

 

“저녁도 아닌데 컵라면을?”

“꼭 맞춰 먹으란 법 있어요?”

 

그런 지훈의 앞에 민규가 또 성큼 걸어와 섰다. 그리고 말했다.

 

“혼자 그렇게 감질맛 나게 굴면... 재밌습니까?”

 

그 말에 분주하게 움직이던 지훈의 손이 멈췄다. 민규가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웃었다. 모르는 척 하려는 거 내가 다 알지. 누구 앞에서 척을 해. 이 연수원 수석 졸업의 검사 46기 김민규 앞에서. 빠르게 시선을 돌리고 테이블 위 서류들을 의미 없이 만지작 거리는 지훈의 옆 모습에서 점차 빨갛게 달아오르는 귀가 보였다.

 

“어제 생각이 좀 나세요?”

“어제... 뭐요?”

“어제요, 어제.”

“그러니까 뭐요?”

 

끝까지 발뺌을 하시겠다. 민규가 웃었다. 생각보다 연기를 참 못하시네, 우리 이의원님이. 정치의 반은 ‘척’인데 말이야.

 

“샌드위치나 먹읍시다. 이의원님건 햄 샌드위치에요. 햄이 말캉말캉. 빵 사이에 잔뜩 깔려눌린 게, 아주 맛있었... 아니 맛있겠어요.”

 

민규가 지훈의 앞에 흔들흔들, 샌드위치를 흔들었다. 팍 낚아챈 지훈이 제 테이블에 딱 놓아두고는 매섭게 쳐다보며 말했다.

 

“가세요. 자꾸 어수선하게 하지 말고.”

“네, 뭐 그러죠. 저도 할 일이 있어서. 이따 짜장면 먹으러 와요. 나 이사할 거거든.”

 

더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가세요. 지훈이 서류들을 팩팩 넘기며 말했다. 아, 여기 자료. 지훈의 옆으로 서류 더미를 던진 민규가 유유히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둥둥둥둥. 끼이이이익. 툭.

 

코에 걸친 안경을 깊게 누르며 연구 자료를 읽던 지훈이 자꾸만 의원실 벽을 타고 흐르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의원 휴가 기간인데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음의 시작점을 찾았다. 어디서 들리는 거야, 대체.

의원실을 한 바퀴 휘 돌며 소리 나는 곳을 찾자 의원실 위측 바닥에 소음에 맞춰 잔잔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저기요. 지훈이 민규의 의원실 문 앞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람이 진짜.

 

저기요, 있냐고요. 네, 허윽, 있어... 있어요. 바툰 목소리가 문 건너에서 들려오자 지훈이 무슨 일이라도, 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그 때 휙, 문이 열리며 큰 박스를 들어 문 밖으로 툭 내려놓는 민규.

 

“허...어... 있어, 여기...”

“뭐해요 지금?”

“이사... 아, 힘들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아직 짜장면 타임 아닌데.”

 

지훈이 숨을 몰아쉬는 민규의 앞으로 그득 쌓인 박스를 바라보았다. 공정당 우수의원 표창장, 공정당 연설모음집, 발의 안건 결산집 같은 각종 서류와 명패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지훈이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뱉었다.

 

“제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조금 조용히 할 수 없습니까?”

“그랬어요? 난 뭐 한 거 없는데.”

“쿵쿵 계속 울린다고요. 귀가 멍멍해요.”

“멍멍해요? 개 좋아하셔서 그런가 보네.”

“아 장난 좀.”

“그러지 말고 다음 발의는 층간소음으로 해요. 이의원님이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조용히 해 줄 생각이 없다?”

“와서 도와주면 좋잖아요. 소음 속에 같이 있으면 하나도 소음 아닐텐데? 들어와요.”

 

민규가 문을 활짝 열고 손짓했다.

 

“됐습니다.”

 

지훈이 눈을 부라리며 말하고 돌아섰다.

 

“이의원!”

 

그런 지훈의 등 뒤로 민규가 소리쳤다.

 

“침대 좀 추천해 주세요. 소파가 좁아서 힘들더라구. 그쵸? 밤손님 오시는 날도 많아질 것 같고.”

 

타다다닥. 지훈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의원회관 복도에 지훈의 발걸음 소리만 메아리치듯 울렸다.

 

“짜장면 먹을 때 부를게! 꼭 와요!”

 


 

벌컥. 민규가 제 눈 앞에 열린 문에 두들기던 자세 그대로 멈춰섰다. 마치 파이팅을 하는 것처럼 팔을 굽어든 채 잘 차려입은 지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 갑니까?”

“애인 만나러 갑니다.”

“아아. 유기견 센터 가세요? 근데 뭘 그렇게 빼입었어요.”

“애. 인. 만나러 간다고요.”

“뭐 경단녀 센터 간담회 있습니까?”

“됐어요, 비키세요.”

 

지훈이 민규를 획 밀치고 걸어나왔다. 아니, 짜장면 먹어야 하는데 어디 가요. 이의원, 이의원! 재차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민규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어, 최보. 휴간데 미안해. 급하게 차 좀 보내줘. 의원회관 앞으로. 기자들 앞에 있는지 좀 살펴주고, 응. 이지훈 좀 챙겨줘.”

 

전화를 끊은 민규가 팔 위로 한껏 말아올린 셔츠를 돌돌 풀어내리며 읊조렸다. 늦게 오나. 탕수육도 시켰는데... 거 참.





*

드디어... 했다! 규훈!

당신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장 난 나침반 처럼 흔들렸다. | 정수경, 슬픔의 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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