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누가 너 찾아.”


학기가 다 끝나가는 시기에는 학교를 가도 하는 게 없다. 자거나, 잠시 깼을 때에는 선생님이 튼 건지, 애들이 튼 건지 모를 영화를 잠깐 보고, 다시 자다가, 밥을 먹고, 다시 좀 자고... 이 생활의 무한 반복이다. 그날도 비슷한 루틴으로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종례까지 다 마친 후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앞문에 앉는 애가 저를 부르는 소리에 앞문을 쳐다보았더니 문 너머로 웬 노란 대가리가 보였다.

뭐지? 우리 학교 염색 안 되는데. 선배는 아닌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데 여기에는 어떻게 있는 거야? 하는 갖가지 의심을 품고 가방을 챙긴 채로 앞문으로 다가갔다. 그 노란 대가리는 한겨울인데도 롱패딩은 무슨 낡은 패딩을 입고 있었고, 무슨 파마인지도 모를 머리에 이상한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여 있었다.


“누구세요?”

“야, 이씨... 너 나 기억 못 하냐? 어?”

“기억이고 뭐고 누군지를 모르겠는데.”


내 말을 들은 노란 대가리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마른세수를 하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같은 주위를 한 바퀴 빙글 돌았다. 한창 하교 시간이라 복도에 애들이 많았고, 낯설게 생긴 그 노란 대가리를 지나가며 한 번 씩은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있는 나도 그 애들의 눈에 걸렸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데 가서 얘기해요, 다른 데 가서.”

“아니 뭔 다른 데야, 다른 데는.”

“아, 좀.”


그 싸가지를 질질 끌고 겨우 온 곳이 학교 매점 앞이었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나 복도보다는 나았다.


“초코우유 하나 주세요.”

“엉? 야, 그런 거 사 줄 필요는 없는데.”

“네? 제가 먹을 건데요? 뭐래, 진짜. 제가 그쪽한테 우유를 왜 사 줘요?”


이 싸가지는 아까부터 존나 이상했다. 나는 댁을 처음 보는데 저를 기억하냐고 묻지를 않나, 내가 먹으려고 사는 초코우유에 대고 자기는 필요 없다고 하지를 않나. 진짜 개또라이 새끼인 거 아니야? 하는 생각들을 초코우유 한 모금에 한 개씩 삼키고 있었다.

노란 대가리는 우유를 꼴깍꼴깍 삼키는 나를 보고만 있더니 아, 맞다, 하며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이었다.


“야, 너 엊그제 짜장면 시켜 먹었지.”

“엊그제요? 엊그제? 엊그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똑바로 대답해라, 어? 대충 대답하지 말라고.”

“아무튼 그게 왜요?”

“너 그때 거스름돈 제대로 받았어?”

“거스름돈?”


초코우유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생각했다. 우선 엊그제 짜장면을 시켰는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짜장면을 시켰기는 시켰는데 그게 엊그제였는지, 더 전인지. 요즘 생활패턴이 워낙 비슷해야지. 아무튼 뭐, 시켰다고 치고. 거스름돈을 제대로 받았는가? 이건 더 기억이 안 난다. 배달원이 어련히 제대로 잘 줬겠지 하고 확인하지 않는 게 보통 아닌가. 아니면 말고. 아무튼 나는 확인을 따로 하지 않았기에 거스름돈이 어쩌고저쩌고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거스름돈이 왜요?”

“내가....”


노란 대가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그때 거스름돈 제대로 안 준 거... 몰랐냐?”

“엥?”


마지막 남은 초코우유가 콰르륵 소리를 냈다. 내가 영문도 모른 채 노란 대가리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내 대답 아닌 대답을 들은 싸가지는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지 머리를 부여잡고 풀썩 주저앉더니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왜 그러, 아, 씨발, 깜짝아!”


그리고 이 미친놈은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 상체를 숙이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거다. 한 손으로는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 코를 가리고, 한 손으로는 방금 떨어질 뻔한 심장을 부여잡았다. 와, 시발.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놀란 눈으로 그 애를 보고 있는데, 그 애가 내 쪽을 천천히 돌아보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적막만이 흘렀다. 새 지저귀는 소리는 무슨 낙엽 지나가는 소리도 안 들렸고, 나는 경계를 하며, 그 애는 현타가 잔뜩 온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적을 깬 건 그 애 휴대폰이었다. 최근 유행하는 여자 아이돌의 노래가 시끄럽게 울렸고, 그 애는 전화를 느릿하게 받았다.


“여보세요. 예, 예. 아니, 만났는데 몰랐다는데? 내가 그러게 그냥 있자고 했잖아. 그거 돈 얼마나 된다고....”


그 애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휴대폰 너머로 웬 남자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애는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귀에서 멀찍이 떨어뜨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어, 알았어요, 알았어.”


아직 휴대폰 너머로는 분명 어떤 남자가 화를 내는 건지, 뭔지 소리를 지르는 게 들리는데 얘는 그냥 끊어 버렸다. 그러더니 제 주머니에 휴대폰을 대충 넣고는 어깨에 둘러맨 힙색을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야, 이게 내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냥 대충 넘기려고 했는데....”

“뭘요?”

“네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너무 애새끼 같아서 그냥 넘길 수가 있어야지.”


힙색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더니 내게 건네며 눈을 마주쳤다.


“짜장면 두 개, 맞지. 그러면 내가 너한테 이천 원을 줘야 되거든?”


이천 원이면 천 원 두 장을 줘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 애 손에 들린 천 원은 족히 두 장은 넘어 보였다. 네 장정도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왜 사천 원을 주세요? 이천 원 줘야 되는 거 아닌가?”

“어어, 그 네가 먹은 짜장면 만든 돼지 새끼가 있거든? 그런데 그 돼지 새끼가 두 배로 주고 오란다. 그거 이천 원은 내 사비야, 알어?”

“그쪽 잘못이면서 왜 생색을 내지?”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린 나의 말에 그 애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 새끼가, 으른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딱 봐도 어른은 아닌 거 같은데? 기껏해야 두세 살 차이 나겠구만, 뭐.”

“이게 이 씨.”


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그 새끼가 나를 야렸고, 나에게로 몇 발자국 걸어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선생님 눈에 그 노란 대가리가 띈 것이다.


“거기 누굽니까!”

“뭐, 뭐야, 시발. 야, 나 간다. 그거 돈 제대로 받았다고 전화해. 고택일, 장풍반점!!”


허둥지둥 뛰어가며 내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그 애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진짜 미친놈이 다 있네....

장르 부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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